진리 [한] 眞理 [라] veritas [영] truth [독] Wahrheit

1. 일반적인 뜻의 진리 : 존재자(개별적으로 있는 것)의 자기 자체에 대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의 성질로서, 이 존재자를 남에게 알려주는 것(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자면, aletheuein, 즉 밝혀내는 것). – 말이 그 말이 나타내는 사태와 일치하는 진술의 성질. – 존재와 정신이 일치하는 것(adaequatio rei et intellectus), 더 나아가서는 존재와 정신이 서로 완전히 꿰뚫고 있는 것. – 반대말은 ‘거짓’으로서, 말과 그 말이 나타낸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2. 논리적인 진리 : 전통적 고전적인 논리학에서는 두 가지의 개념들(주어와 술어)을 올바르게 연결시킴으로써, 한 가지의 사태를 올바르게 나타내는 판단의 성질을 뜻한다. ‘올바르게 연결시킨다’ 함은 판단 속에서 ‘긍정’으로나 ‘부정’으로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판단을 내릴 때에는 그 사태가 정신 자체에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고전적인 명제는 “진리는 정신과 사물이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칸트에 따르자면,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정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문제가 도는 것은 정신(사고, 인식)과 일치한다는 ‘사물’(존재자, 대상)을 무엇이라고 이해하느냐 하는 것뿐이다. 이런 일치가 순전히 논리적인 법칙(특히 모순율)에 따라서만 이뤄진다면 이런 일치는 단순한 ‘올바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일치가 존재자를 직관적이고, 따라서 내용적으로 현실화시키거나, 이 존재자를 정신적으로 실현시키는 데서 이룩된다면, 이런 일치야말로 진정한 뜻의 진리라 할 수 있다.

3. 인식의 진리 : 우선 인간에게는 진리가 인식의 진리로서 나타난다. 이 인식의 진리(논리적인 진리와 같은 뜻이기도 하다)는 판단 속에서 완성되고, 사고[생각]가 실제로 있는 사태를 정말로 있다고 긍정함으로써, 이 실제로 있는 사태와 동화되는 데서(같아지는 데서) 성립된다. 따라서 인간의 진리는(적어도 이론적인 인식에 있어서는) 존재의 표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진리는 사고가 여러 가지로 규정되어 있는 존재자를 묘사하고, 또 이런 뜻으로 사고가 존재자에 들어맞는 인식이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생각되어지고 묘사된 여러 징표들이 실제로 존재자들에게 있지만 하다면, 들어맞지 않는 인식만으로도 충분하다. 즉 진리는 그 때 그 때에 파악된 대상에 동화되기만을 요청하고 있다. – 진정한 진리는 ‘보편타당’하다. 이 말은 물론 진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방법으로 파악된다는 뜻이 아니고, 한 사람에게 ‘참’인 동일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거짓일 수 없다는 듯이다. 이런 뜻으로 진리는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진리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의 진리는 인간의 실제적인 인식 속에서만 실현되고, 또 인식이 이뤄지는 것은 여러 가지 역사적인 제약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가 ‘역사적’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상대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 또 ‘실존적’인 진리는 오직 오성에 의해서만 얻어지는(순수이론적) 과학적인 진리라는 뜻의 ‘보편타당한’ 진리와는 대립된다. 이 과학적인 진리는 필요한 소양을 갖추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얻을 수 있다. 과학적인 진리가 ‘의식 일반’에 속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실존적인 진리는 인격적이고 자유로운 결단을 요청하는 개인의 ‘실존’에 호소하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이런 결단이 이성 앞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확신이 증명을 통해 심리적으로 ‘강요될’ 수 없다는 뜻이다.

4. 존재론적인 진리 : 이런 인식의 진리는 존재의 진리(존재론적 진리)와 구별되는데, 이 존재의 진리는 존재(존재자의 근원이 되는 자)와 존재자 자체에 관련된다. 이 존재론적인 진리는, 스콜라철학의 전통에 있어서는, 존재의 적성(適性)이나 가능성을 인간의 정신(판단을 내리는 인식)에 밝혀 주는 것이고, 또 스스로 밝혀지는 존재자의 성질을 뜻한다. 존재자의 근본적인 가능성으로서의 이러한 진리는 ‘잠재적인’ 진리로서, 정신의 ‘현실적인’ 진리와 신학적인 사고에 있어서는, 모든 사물들의 잠재적 기초적인 진리의 바탕이, 창조자가 자기의 모범적인 정신의 이념에 따라 세계를 창조한 데에 있다고 보게 되었다.

존재의 진리는 존재자가 정신의 인식에 들어맞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존재자에게는 인간의 인식이 사실과 일치한다는 뜻의 진리는 중요치가 않다. 이런 뜻으로 우리는 ‘참된’ 황금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때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일컬어진 질료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되어진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황금처럼 빛나고, 따라서 몇몇 사람들은 황금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황금이 아닌 ‘가짜’ 황금이라는 말도 할 수 있다. 존재의 진리가 통일성 및 선함과 더불어, ‘초월적’인 규정, 즉 하나 하나의 존재자에게 해당되는 규정이라고 헤아려진다면, 우선 이 존재자들이 정신에 들어맞는다는 뜻이고, 이렇게 존재자와 정신이 들어맞음으로써, 하나하나의 존재자들이 사고의 대상으로 될 수 있다. 이런 뜻의 존재의 진리는 우리들이 우리들의 이성을 존재자 자체에 끼여들게 함으로써, 존재자의 초월적인 규정으로 된다. 이렇게 모든 존재자들을 인식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닌 모든 존재자들은 하느님의 정신 안에 있는 이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제한 받는다. 그래서 존재의 진리는, 모든 존재자들이 그 척도를 하느님의 이념에 두고 있으며, 이런 뜻으로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5. 초월적인 진리 :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잠재적으로나 기본적으로) 참이라는 것, 즉 인식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은,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이 당신의 모범적인 이념에 따라 ‘창조’를 했다는 사실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는 언제나 꿰뚫어 볼 수 있는 한 가지의 사실, 즉 존재자는 존재에 참여(관여)하는 자라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알 수 있다. 존재는 “맨 먼저 – 그리고 언제나 – 이미 – 있는 것”이다(ens est primum et quasi notissimum conceptum)[성 토마스]. 왜냐하면 사람의 말은 본질적으로 ‘있다(sein)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있다’는 말에 빠짐없이 들어맞으며, 그 어떻게든 알려지며, 또 이런 앎을 바탕으로 해서 더욱 더 잘 알려지게 된다. ‘있다’는 말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는 포괄적으로, 그러나 초월적으로 모든 것을 ‘참’이게 해준다. 따라서 존재의 초월적인 진리는 한 가지의 현실적인(비록 아직까지는 규정되지 않았고 앞으로 규정되어야만 한다고 하더라도) 진리다. 형이상학의 전통에서는 초월적인 진리로서, 참된 것[眞], 선한 것[善], 아름다운 것[美]이라는 세 가지를 내세우고 있다.

초월적인 진리와 마찬가지로 논리적인 진리와 존재의 진리도 그 바탕은 정신 형이상학의 사고에 두고 있다. 즉 원전한 뜻의 진리는 그저 현실의 절대적인 바탕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 바탕은 바로 정신이다. 그래서 진리란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고[아리스토텔레스]와 절대정신[헤겔]이 모든 시간적이고 유한한 주관을 무한히 넘어서서, 무시간적으로 스스로를 밝힌 것이요, 이러한 사고나 정신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스스로를 간직하는 것이다. 유한한 주관에게도 이러한 진리는 스스로의 유한성을 넘어섬으로써 근본적으로는 가능해진다.

‘하느님의 진리’는 ‘종속적인’ 진리로서의 존재의 진리, 인식의 진리 및 진실성 등을 다 내포하고 있다. 피조물들에 대한 하느님의 진리는 주어져 있는 대상에 대해 인식이 들어맞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진리, 즉 하느님의 이념에 피조물이 들어맞게 되는 것이다. – 하느님의 창조적인 진리와 비길 수 있는 인간의 진리는, 행위를 앞서 가는 양심의 판단과, 예술이나 기술의 계획 속에 들어 있는 실천적인 진리다.

6. 윤리적인 진리 : 이 진리는 인간의 행위방식의 성질, 즉 존재자가 존재자 자체와는 어떤 관계에 있고, 다른 존재자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려 주는 그런 인간의 행위방식들이 성질을 뜻한다. – 이 윤리적인 진리는 말한 것이 그 내적인 확신과 일치하는 것(반대말 : 거짓)만을 뜻하지 않고, 외적인 행위가 내적인 심정과 일치하는 것(반대말 : 속임, 아첨)도 뜻하며,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하는 것(반대말 : 스스로를 속이는 것)과 진리를 인식하려는 정직한 의지 등을 뜻한다. (姜聲渭)

[참고문헌] M, Muller(Hrg.), Kleines Philosophisches Worterbuch, Freiburg 1980 / H. Fries(Hrg.), Handbuch theologischer Grundbegriffe, Munchen 1963 / W. Brugger(Hrg.), Philosophisches Worterbuch, Freiburg 1978.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진도자증 [한] 眞道自證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샤바냑(Chavagnac, 중국명 沙守信, ?∼1717)이 저술하여 1718년 북경에서 4권 2책으로 초간된 교리서로, 주요 교리의 해설과 불교의 비판, 그리고 천주교에 대해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의문점의 규명 등을 주된 내용으로 싣고 있다. 초간 이후 1796년 북경교구장 구베아(Gouvea, 중국명 湯士選) 주교의 감준 아래 중간되었고 그 후로 상해 토산만(土山灣)에서 1858, 1868, 1917, 1927년에 각각 중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 중엽, 북경을 왕래하던 사신들에 의해 전해져 많은 실학자들과 이승훈, 이벽, 권일신, 정약종, 정약용 형제 등 한국 교회 창설자들에게 읽혀졌는데 실학자 안정복(安鼎福)은 ≪천학문답≫(天學問答)에서 영조(英祖)때 처사 홍정하(洪正河)는 ≪증의요지≫(證義要旨)에서 각각 ≪진도자증≫을 비판하고 있어, ≪진도자증≫이 상당히 일찍부터 도입되어 서학에 관심있는 인사들이 가까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진남포본당 [한] 鎭南浦本堂

1900년 평남 진남포시 용정리(平南 鎭南浦市 龍井里)에 창설되어 1950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 안나. 진남포지방은 1897년 진남포가 개항되면서 황해도 신천(信川)본당 주임 빌렘(Wilhelm, 洪錫九) 신부에 의해 전교되어 공소로 개설되었다가 1900년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폐쇄되기까지 진남포시와 용강군(龍岡郡)의 일원에 유사리(柳沙里) · 한현리(漢峴里) · 광량만(廣梁灣) · 계명리(桂明里) · 갈촌 등의 공소를 두고 관할하였다. 초대 주임신부로 파리 외방전교회의 포리(Faurie, 方) 신부가 부임, 1906년까지 사목하면서 성당을 마련하는 한편, 돈의학교(敦義學校, 1916년 폐교)를 개설했고, 이어 2대(1906∼1914년) 주임 르레드(Lereide, 申) 신부는 1908년 성당을 신축하고 이듬해 지정여학교(智貞女學校, 1916년 폐교)를 개설했으며, 4대(1921∼1926년) 주임 뤼카(Lucas, 陸) 신부는 폐쇄된 두 학교 대신에 해성학교(海星學校)를 개설하였다. 그 뒤 1923년 메리놀회에서 평안도 전역의 사목을 관할하게 되자 1926년부터 메리놀회 선교사들이 주임신부로 부임해오기 시작,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인해 평양교구 내의 모든 메리놀회 선교사들이 일제(日帝) 당국에 체포 구금될 때까지 본당 사목을 담당하여 이 시기에 성당이 신축되고 시약소와 양로원이 개설되었다. 1942년 양기섭(梁基涉, 베드로) 신부가 9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1943년 본당 운영의 소화(小花)병원을 개설하는 등 1945년까지 전력을 다해 사목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북한 공산정권의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11대 주임 조문국(趙文國, 바오로) 신부가 6.25동란 하루 전인 1950년 6월 24일 북한 공산정권에 체포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었다.

본당 내의 신심단체로 성 안나 부인회, 가톨릭청년회, 가톨릭운동연맹 지회 및 분회, 그리고 광복 후 조직된 명도회, 임마꿀라따회 등이 있었고,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는 해성학교, 마리아유치원, 성심학원, 양로원, 시약소, 소화병원 등이 있었다. 그리고 1937년도 본당 현황은 신부 2명, 수녀 7명(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소속), 교리교사 9명(남 3, 여 6), 공소 11개소, 총교우수 2,820명, 예비자 400명 등이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진교절요 [한] 進敎切要

나아가 많은 우몽(愚蒙)한 사람들이 천주교에 입교(入敎)하기 위하여 마땅히 지켜야 할 5가지 규구(規矩)와 명백히 외워야 할 7가지 경문(經文)을 아주 간략하게 적어 놓은 책. 칠성사(七聖事)에 대해서도 아주 간략하게 문답식(問答式)으로 적어 놓았다. 1883년 블랑(Blanc, 白圭三) 부주교가 감준(監准)하여 발간된 책과 1901년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감준하여 중간(重刊)된 책이 있지만, 정확한 한글본 초간(初刊) 연도를 알 수 없다. 한편 1897년 홍콩(香港) 나자렛(Nazareth) 출판사에서 발간된 한문본(漢文本)도 볼 수 있는데 그 첫 페이지에는 ‘범년노인우몽지배진교요리’(凡年老人遇蒙之輩進敎要理)라고 적혀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진교변호 [한] 眞敎辯護

진리(眞理)와 참종교[眞敎]를 변호하기 위하여 김성학(金聖學, 아릭스) 신부가 저술한 책. 13.2㎝×19.1㎝의 책 크기에 모두 112면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1933년 평양교구장(平壤敎區長) 모리스(Marris, 睦) 주교의 감준(監准)을 받아 1934년 평양 서포리본당(西浦里本堂)에서 발행되었다. 모두 3편(篇)으로 나누어 제1편에서는 총론(總論), 제2편에서는 거짓 종교[暇宗敎]들을 논함, 제3편에서는 이교(離敎)를 논함이라 하여 장로 · 감리교 · 안식교 · 성공회 · 그리스정교회 · 이슬람교[俄羅斯敎] 등을, 제2편과 제3편에서 문답식(問答式)으로 설명하고 있다. 천주교사상사연표(天主敎思想史年表)라 하여 가톨릭사상사연대표(思想史年代表)와 기독교소장 통계표(基督敎消長統計表)를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1934년 이후 중간(重刊)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