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한] 許筠

허균(1569∼1618). 문인.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성소(惺所), 백월거사(白月居士), 본관은 양천(陽川).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엽(曄)의 아들. 1589년 초시(初試)에 합격하고 1594년 정시문과 을과(庭試文科乙科), 159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1598년 황해도 도사(都事)가 되고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 형조정랑(刑曹正郞)을 역임한 뒤, 1602년 사예(司藝), 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전적(典籍), 수안군수(遂安郡守)를 지내고 1606년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으로 명(明)의 사신을 영접, 이 때 탁월한 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 뒤 상의원정(尙衣院正), 삼척부사(三陟府使), 내자시정(內資寺正), 공주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하였으나 숭불(崇佛)했다는 죄로 파직 당했다가 1609년 재등용, 형조참의(刑曹參議)가 되었고 이듬해 진주부사(陳奏副使)로 명(明)나라에 가서 게(偈) 12장(章)을 갖고 귀국, 이 해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친척을 부정으로 급제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 전라도 태인(泰仁)에 은거하며 작품 창착에 전념하다가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로 평소 친분이 두터운 서양갑(徐羊甲), 박응서(朴應犀) 등이 처형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 예조참의, 호조참의, 승문원 부제조(承文院副提調)를 거쳐 1614년 천추사(千秋使)로, 1615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대북파(大北派)의 일원으로 광해군의 신임을 이용, 반란을 계획했으나 이듬해 반란계획이 탄로나 하인준(河仁俊), 김개(金闓), 김우성(金宇成) 등과 함께 체포되어 능지처참되었다. 시문(詩文)에 뛰어나 누이 난설헌(蘭雪軒)과 함께 당대의 시재(詩才)로 이름을 떨쳤고 또 이조 봉건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새로운 이상향(理想鄕)을 제시한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저술하여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신분타파의 사회 개혁적인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평소 불교와 도교에 심취했으나 뒤에는 많은 서학서(西學書)를 읽고 연구하여 한국 최초의 천주교인이라는 설(說)도 있다. 작품으로는 ≪교산시화≫(蛟山詩話), ≪성소복헌고≫(惺所覆-稿), ≪한년참기≫(旱年讖記), ≪비한정록≫(秘閑情錄), ≪도문대작≫(屠門大嚼), ≪학산초록≫(鶴山樵錄) 등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 光海君日記 / 朝野輯要 / 燃藜室記述 / 於于野談 / 五洲衍文長箋散稿 / 趙神權, 韓國文學과 基督敎,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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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계임 [한] 許季任

許季任(1773∼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막달레나. 성녀 이정희(李貞喜) · 이영희(李英喜) 자매의 모친. 경기도 용인(龍仁)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봉천(奉天)의 이(李)씨 성을 가진 외교인과 결혼한 뒤 중년에 이르러 시누이 이매임(李梅任)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두 딸과 함께 입교하였다. 1839년 3월 성사(聖事)를 받으러 상경하여 시누이와 두 딸이 사는 집에 머무르고 있던 중, 남명혁(南明赫)과 이광헌(李光獻)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시누이, 두 딸, 김성임(金成任), 김 루시아(金累時阿) 등과 순교를 결심한 뒤 4월 11일 이들과 함께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들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자수하였다. 포청과 형조에서 배교를 강요하는 수차의 혹형과 고문을 당했으나 모두 이겨 내고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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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주삼덕 [한] 向主三德 [관련] 망덕 신덕 애덕 향주덕

하느님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덕행, 즉 신덕(信德, 믿음의 덕), 망덕(望德, 희망의 덕), 애덕(愛德, 사랑의 덕)을 말한다. (⇒) 향주덕, 신덕, 망덕, 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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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주덕 [한] 向主德 [관련] 대신덕

인간과의 관계에서 평가되는 윤리덕(倫理德)과 구별되는 것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얻는 덕, 곧 신덕(信德), 망덕(望德), 애덕(愛德)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 대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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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한] 香 [라] incensum [영] incense, frankincense

향을 태우는 관습은 근동을 포함한 동양의 관습으로 이스라엘 역사의 초기에는 없었다. 후기에 와서 가나안 지방의 관습을 도입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최초의 기록은 출애굽기(30:9)에 나오며, 이것이 이스라엘의 종교의식(宗敎儀式)에 도입된 것은, 기도와 희생을 가장 자연적이고 아름답게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16:20)에 따르면, 향은 유향(乳香, frankincense)을 비롯한 각종 향료에다 방부제용 소금을 섞어 잘 빻은 가루로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의식에 사용한 향은 번제물(燔祭物), 희생제물의 지방(脂肪), 곡식, 상징적 제물 등과 함께 태워지거나 향 하나만을 태우기도 하였다. 향만을 피우는 경우에는 특별히 만들어진 분향단(焚香壇)(출애 30:1-10), 황금제단(민수 4:11), 향로 속에서 태워진다. 신약에서는 루가복음(1:8-12)에서만 분향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그 뒤엔 그리스도 교회에서 향이 별로 쓰인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이교도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황제들은 자신에게 분향된 사실로 인하여 신성(神性)을 얻었다고 생각했고, 박해시대에는 많은 신자들이 황제의 동상 앞에 분향하여 충성심을 보이도록 강요당하였다. 당시의 교우들은 이러한 분향을 배교행위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4세기 이후 교회의 전례에서 서서히 향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먼저 장례의식에 향이 사용되다가 8세기경에는 제단, 성직자, 신앙심의 축성과 축복의 상징으로, 13세기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구마식(驅魔式)에서 향을 사용하였다. 17, 18세기에 오자 향은 자연향에서 화학적으로 제조한 것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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