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원] Craig, Hugh

Craig, Hugh(1899∼1980).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 한국명 기후근(奇厚根). 미국 미네소타주(州) 미네아폴리스에서 출생. 메리놀회 신학교와 워싱턴 가톨릭대학을 졸업한 뒤 1925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5명의 동료선교사와 함께 한국에 입국하여 평남 영유(永柔)의 조선어연구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1926년 은산본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 1928년 본당을 순천으로 이전하는 등 1933년까지 사목했고, 1933년 신의주 본당 5대 주임신부, 1940년 마전동본당 3대 주임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마전동본당 주임신부로 재직 중이던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일제에 체포,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6월 평양교구의 모든 메리놀회 선교사들과 함께 강제 추방되었다.

그러나 광복 후, 1948년 한국에 다시 돌아왔고 인천 부평에서 본당 창설을 준비하던 중 혜화동 주임신부로 전임되어 사목하다가 6.25동란이 일어나자 유엔군과 함께 북진, 수복된 평남 안주본당에서 사목했으며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남하하여 1953년까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군종신부로 사목하면서 통신교리를 시작, 이를 한국에 소개 보급시켰다. 그 후 1954년 C.C.K. 사무국장을 거쳐 1954년 충북 보은본당, 1957년 충북 옥천본당 주임신부 등 메리놀회 관할의 청주 · 인천교구의 각지에서 사목했고 1977년 고령으로 은퇴한 뒤 메리놀회 한국지부 본부에서 기거하였다.

1980년 미국 방문 중 주위사람들로부터 미국에서 여생을 보낼 것을 종용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한국에 돌아와 이해 12월 7일 사망, 인천교구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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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란 [원] Quinlan, Thomas

Quinlan, Thomas(1896∼1970). 에이레 성 골롬바노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초대 춘천(春川) 교구장. 주교. 한국명 구인란(具仁蘭). 에이레에서 출생. 성 골롬바노 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사제로 서품된 뒤 1920년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13년 동안 중국 전역에서 전교하였다. 1933년 성 골롬바노 외방전교회가 전라도지역의 사목을 관할하게 되자 이듬해 한국에 입국, 6년 동안 전라도 일대에서 사목하였고 1939년 춘천본당으로 전임되어서는 강원도지역의 교세 신장에 주력하여 1940년 춘천교구가 서울교구로부터 분할 창설되자 초대 교구장에 임명되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일제에 체포 구금되면서 교구장직을 사임하였으나 광복 후 다시 교구장에 부임하였고 6.25동란 중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교황사절 번(Byrne) 주교와 함께 서울, 평양을 거쳐 만포에서 중강진까지 250리의 산길을 도보로 걷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겪기도 하였다. 1953년 3월 중강진 수용소에서 석방되어 잠시 고국인 아일랜드에 머무르다가 다시 교황사절 겸 춘천교구장으로 한국에 돌아와 1955년 12월 주교로 성성되었다. 그 뒤 전란으로 폐허가 된 춘천교구를 재건, 40여개의 본당을 창설하고, 춘천 · 강릉 · 삼척 등지에 병원을 세우는 한편 1964년 춘천에 성심여대를 세웠고 1965년 원주교구를 분할 독립시켰다. 1966년 노령으로 은퇴, 삼척의 성 요셉병원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목하면서 말년을 보내던 중 1970년 12월 31일 사망하였다. 유해는 춘천교구 성내리 본당에 안장되었다가 뒤에 춘천 죽림동본당 구내의 성직자묘지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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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를리에 [원] Curlier, Jean Jules Leon

Curlier, Jean Jules Leon(1863∼1935). 파리 외방전교회원. 한국 선교사. 한국명 남일량(南一良). 1886년 9월 13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 1889년 3월 3일 사제서품을 받고 곧 고국을 떠나 그 해 6월 21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첫 임지인 이천(伊川) 지방으로 내려가 이미 그곳에서 전교활동 중인 쿠데르(Couderc, 具) 신부와 합류하여 힘을 합쳐 전교활동에 전념하였다. 이어 그 해 8월에는 충청도지방을 맡게 되어 내포평야를 중심으로 향후 19년간을 사랑과 믿음의 복음을 전파하기에 온갖 정력을 다하였다. 처음엔 다블뤼(Daveluy, 安)주교가 체포되었던 곳에서 약 2km쯤 떨어진 양촌이라는 큰 공소에 자리 잡았다. 한때 동학란(東學亂)으로 새로운 박해를 겪을 뻔했으나 이를 모면하고, 몇 해 뒤에는 합덕(合德)으로 옮겨 그 곳에 성당과 사제관을 지어 교세를 확장시켰다. 1904년까지 이곳에서 전교한 후 이 지방의 중심지인 공주(公州)로 가서 그 곳 본당을 1909년까지 맡았다. 그 무렵 충청도지방이 차차 안정을 되찾자 주교에게 간청하여 간도(間島)와 같은 벽지로 가기를 자원하였다. 1921년에 베네딕토회가 이곳을 맡게 되니 하는 수 없이 그의 마지막 임지인 황해도의 매화동(玫花洞)으로 가서, 1935년 6월 6일 설사병으로 선종할 때까지 14년간을 그 곳에서 선교사업에 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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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사본 [한] ∼寫本 [관련] 사해문서

⇒ 사해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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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 [원] Kuhn. Johannes

Kuhn, Johannes(1806∼1887). 독일의 신학자. 배셴보이렌(Washenbeurren)에서 출생하여 튀빙겐에서 별세. 튀빙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831년에 서품. 무니히에서 셸링(F. Schelling)의 지도 아래 철학을 공부, 기센(Giessen, 1832년)과 튀빙겐에서 1882년까지 튀빙겐에서 교의신학 교수로 있었고, 1868년 상원의원이 되었다. 숙련된 변증가인 그는 슈트라우스(D.F. Strauss)의 저서 ≪Leben Jesu Kritisch Bearbeitet≫에 필적하는 예수의 생애 ≪Das Leben Jesu, Mainz 1838≫을 저술하였으며, 네 권으로 펴낸 저서 ≪가톨릭 교의≫(Katholische Dogmatik, Tubingen 1846∼1868)는 특히 유명하다. 쿤은 신앙의 내용을 이루는 진리들이 계시의 역사적 성격에 따라 발전해 왔음을 보여 주었고 이를 변증법을 통하여 사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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