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 [한] 決定論 [라] Determinismus [영] determinism [독] Determinismus

모든 사건들은 인과율(因果律)이라는 빈틈없는 법칙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일반적인 철학적 명제다. 인간의 이른바 자유로운 행위를, 인과율의 절대적인 적용을 기초로 삼아, 행위자에게 비의존적인 외면적 내면적 요인의 필연적인 결과로 보는 입장의 주장이다. 결정론에 따르면, 주어진 어떤 특정 조건들의 군(群) 아래에서는 오직 한 가지의 결과만이 가능하다. 이 명제는 어떤 자유의지의 개념도 배제한다. 종교사적으로 볼 때, 결정론은 큰 역할을 해 왔다. 결정론은 한편에 있어서, 운명론적인 이슬람교에서처럼, 종교의 윤리적인 해석을 결정하였고, 다른 한편에서, 신적인 섭리와 인간적인 자유에 관한 문제의 근본적 해명에 대한 자극을 주어 왔다. 성 바울로에서 시작되어, 아우구스티노를 거쳐 스콜라학에 이르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도 매한가지였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ient) 이후의 시대에, 이 결정론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몇 개의 학파로 갈라졌으며, 이단설(異端說)의 기원에 있어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촉매가 되었다.

인간의 각 개인의 자유의지적인 결단을 긍정하지 않고, 따라서 인간의 책임성이나 공로와 죄과를 부정하는 결정론은, 그리스도교 윤리 뿐 만 아니라, 일반 사회윤리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고를 빠뜨리고 예사로이 넘어간다는 점에서 이 결정론은 근대철학의 지배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결정론에는 다음 다섯 가지 기본적인 연구법이 있다.

① 물리학적 결정론 : 인간까지 포함한 자연 내의 모든 것들은 침해될 수 없고 변함이 없는 자연법들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주장.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이 철학을 주창하였다. ② 심리학적 결정론 : 모든 인간의 행위는 우연한 요소들에 의하여, 즉 행위자의 선행적 개인적인 발전과 아울러 행위에 선행하는 관념 및 동기와의 강제적인 작용에 의하여 추진된다는 주장. 스키너(B.F. Skinner)가 이러한 입장에 대한 최대의 대변자이다. ③ 논리학적 결정론 : 인간들의 마음들이란 마치 기다란 두 개의 토막나무 틈에 가로 구멍을 파서 그 구멍 안에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로 채우던 형구(形具)인 차꼬[着錮]로 채운 것처럼 고정된 것이어서, 마음에 의하여 아무 것도 변경시킬 수 없다는 주장. 이는 숙명론(宿命論)과 동일하다. ④ 윤리학적 결정론 : 지식이 선택을 좌우한다는 주장.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선을 알고 있다면, 그는 자동적으로 선을 따르게 된다는 입장이다. ⑤ 신학적 결정론 :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하느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주장. 이 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만물은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절대적인 신성이 그에게 그런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는 이 결정론으로부터 선지(先知)와 예정에 대한 관념들이 생겨났다. 선지와 예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하느님은 모든 것을 미리 알고 목적을 세우며, 자신의 영원하고 불변하며 착오가 없는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한다고 본다. 이런 입장은 루터나 칼빈의 신학에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J. Lindworsky, Der Wille, Aufl. 2, 1923; Willensschule, Aufl. 12, 1927 / Bostroem, Storungen des Willens(Bumke, Handbuch der Geisteskrankheiten, 1928중) / Jules Payot, L’education de la volonte, Paris 1975 / J.D. Douglas, ed.,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결의론 [한] 決疑論 [라] casuistica [영] casuistry [독] Kasuistik

결의론은 가장 넓은 의미로서는 보편적인 규범을 정확하게 적용하기 어려운 특정한 경우에 있어서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하는 기술을 뜻한다. 그리스도교 세계에 있어서 도덕가들은 본론(本論)이 전제하는 가정들에 따라서 결의론의 표제 밑에 반드시 취급돼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을 취급해 왔었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세계에서도 유태인의 율법에 대한 엄격한 관심과 스토아(stoa)철학자들에게서 받아들인 양심관념이 일반적인 의무규정의 예외적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행동지침을 제공 못하는 경우를 당할 때, 무언가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각성시켰다. 그리하여 중세의 스콜라(schola)철학에서 이 같은 연구가 행하여졌다. 결의론은 마침내 종교상 윤리상의 일반적인 규범과 의무가 충돌하는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적용하는 윤리학의 한분야로 성장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역사 속에서 결의론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제기되어 왔는데, 하나는 과거에 과오를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을 평가하는 문제요, 다른 하나는 의무규정이 모호한 때에 어떻게 행동지침을 제시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첫째 경우에는, 교회로부터 축출시켜 마땅한 죄의 한계가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였고, 두 번째의 경우는 거짓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이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그 예로 들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을 결정하는 문제가 바로 결의론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문제들이었다. 가령 17세기에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교회들이 직면했던 문제들 가운데는, 만약 국가나 사회의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양심과, 반체제 인사들이나 교회의 자유가 유린될 때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 있었다. 의무들이 상충될 때 그리고 상충되는 두 의무를 다 이행함이 마땅하다고 양심이 요구할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이 결의론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양쪽에 다같이 타당한 도덕적인 요구를 양립시킬 수 없을 때, 양심은 혼란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결의론의 문제는 한 특정 행동이 윤리적으로 정당한지 부당한지 모호할 때 생긴다. 전제 정부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이 빈발하는 현대의 상황들은, 자유를 얻기 위한 거짓, 속임, 테러행위가 정당한 것인가, 특히 무저항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복음서의 교훈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이 폭력과 강권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야기시켜 준다. 결의론은 흔들리는 양심에 확신을 갖도록 도와 줄 뿐만 아니라, 어떤 행동이 그 자체로서 옳은가 그른가를 규명해 주기도 한다. 또한 보편적인 규범을 일률적으로 적용시킬 수 없는 환경을 바로 보게 해 주는 구실도 한다. 결의론은 이렇게 혼란을 일으키는 문제들과 심사숙고 끝에 이루어진 행위들의 도덕성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 이외에도, 이미 저질러진 행위를 승인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도 다룬다.

도덕적 판단을 내릴 경우의 판단기준은 행위의 객관적인 모습, 즉 예를 들면 사람을 살해했느냐 아니면 생명을 살렸느냐는 문제 이외에도, 범죄 또는 덕행을 증가시킬 수 있는 환경이었느냐, 감소시킬 수 있는 환경이었느냐 하는 환경의 문제도 고려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예를 들면 살인은 더 나쁜 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증거인멸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절도를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 반면에 남의 생명을 구해주는 행위로 인도적인 동기에서 나올 수도 있고, 공범을 살려 두기 위한 동기에서 나올 수도 있으므로, 행위의 주된 목적이 무엇이고 동기가 무엇이었느냐도 문제 삼게 되었다. 이같이 동기에 따라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윤리학에 이바지한 공헌이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표준이 될 때 그것은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교리, 이를테면 마키아벨리(N.B. Machiavelli)나 난봉꾼이 결의론을 역이용하여 엉뚱한 이론을 정당화시키게 된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상 설명을 간추리면, 결의론은 일반적 보편적인 규범이 있는 곳으로부터 논리를 전개하며, 그런 다음에 여러 가지의 예외 또는 정상 또는 수정의 필요성을 감안하여 필요한 경우 규범의 무제약적인 엄격함에서부터의 이탈, 즉 예외의 경우가 어느 정도 용인될 때 결의론에 대한 언급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은 너무나 독특하여 일상적인 보편적 규범이나 인정된 예외적인 범주들에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전혀 조정하거나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들이 있는데, 이런 문제는 결의론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이다. 어디까지나 규범, 분류 가능한 예외들, 분류될 수 없는 독특한 문제들, 즉 이상 세 개의 도덕적 실재들을 구별하는 것이 결의론의 임무이다. 규범을 수정?적용해야 할 예외적인 경우나 또는 판결에 따를 수 없는 독특한 문제들이 있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격주의가 저지르는 폐단이다. 그러나 또한 결의론적인 고려만이 전부가 아니고, 그 뒤에 규범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예들 들어 굶주려 죽게 된 사람이 한 조각의 빵을 훔칠 수도 있으나 그의 정직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원칙)과 예외적인 경우를 보편적 도덕규범의 근거로 유용하려는 것은 방종주의를 장려하는 위험이 따른다. 결의론은 잘 운용되면 보다 많은 자비를 실천할 수 있게 되며, 일반화된 지식의 결함도 메워주므로 필요악을 훨씬 더 극복하게 되리라고 본다.

[참고문헌] William Perkins, The Whole Treatise of the Cases of Conscience, Works, Ⅱ, 1603 / J.P. Gursy, casus conscientiae, ed. 4, 1891 / A. LehmKuhl, Casus Conscientiae ed. 4, 1913 / J. Mausbach, Die katholsiche Moral und ihre Gegner, Aufl. 5, 1921 / K.E. Kirk, Introduction to Casuistry, 1927 / M. Pribilla, “Klugheit und Kasuistik,” Stimzeit 133, 1938 / R. Egenter, “Kasuistik als Christliche Situationsethik”, Munch ThZ 1, 1950 / E. Hamel, “Valeur et limites de la casuistique” Science ecclesiastiques 11, 1959 / Genicot and Salmans, Casus Conscientiae, various editions, 1959 / Eduard Hamel, S.J., Loi Naturelle et Loi du Christ, 196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결약의 궤 [한] 結約~櫃 [영] Ark of the Covenant

궤(櫃)란 단어는 히브리어 aron을 번역한 말로 구약 성서에 200여회나 나온다. 궤라는 단어 단독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주로 증거의 궤(출애 26:33), 계약의 궤(신명 10:1-5), 하느님의 궤(2사무 6:2), 야훼의 궤(여호 7:6) 등과 같이 관형어를 동반하고 쓰이는 경우가 많다. 궤라는 단어 앞에 붙는 관형어는 위의 것들을 포함해서 약 20여개가 있다. 이렇게 관형어가 많은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결약의 궤가 가지는 의의가 다양하기 때문이지, 여러 종류의 궤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약의 궤를 ① 야훼께서 구체적으로 현존하시는 보좌(寶座)(민수 10:35-36, 1사무 6:3·5·8·20), ② 왕조시대 이전 이스라엘 부족동맹의 전쟁 수호신(1사무 4), ③ 시나이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돌판[石版]을 담은 그릇(출애 25:16, 신명 10:1-95)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신명기(10:1-5)는 모세가 어떻게 결약의 궤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민수기의 ‘결약의 궤의 노래’(10:35-36)는 결약의 궤가 이스라엘 군대의 지도자 또는 직접적으로 야훼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결약의 궤가 이상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볼 때 그것이 제사의식의 대상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은 쉽게 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부족 12지파 동맹시대에 결약의 궤가 지녔던 의의는 왕조시대에 들어서면서 차차 빛을 잃어 갔다는 사실이다. 사울이 결약의 궤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1사무 21:2). 결약의 궤는 시나이산에서 제작된 후 길갈에 안치되었고(여호 7:6), 베텔(판관 20:27), 실로(1사무 3:3)를 거쳐 아벡의 전쟁터에서 잠시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겼다가(1사무 4:11), 다윗시대에 이르러 예루살렘에 안치되었고,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후에는 성전 지성소 안에 안치됐다(1열왕 6:19).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결배조당 [한] 結配阻擋 [관련] 혼인장애

무효장애 중의 하나. 합당한 혼인을 한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다시 혼인을 하려고 할 경우 이를 금하는 교회법적인 조건. 정당한 이유란 배우자가 죽었을 경우, 행방불명되었다가 죽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을 때, 교회재판에서 행방불명된 자가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죽었다고 판결할 때 또는 그 밖의 판결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행방불명자의 생사(生死)가 확인되지 않은채 혼인한 것도 결배조당에 해당된다. (⇒) 혼인장애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견진성사 [한] 堅振聖事 [라] Sacramentum Confirmationis [영] the Sacrament of Confirmation

성세성사를 받은 신자에게 성령과 그의 선물을 주어 신앙을 성숙시키고 증거케 하는 성사. 칠성사의 하나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사를 통하여 성장하며 그리스도의 구원행위에 참여하고 하느님을 만나며 구원의 은총을 얻는다. 성세성사가 우리로 하여금 처음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죄의 용서를 받으며 하느님의 새로운 자녀로 탄생시켜 주는 것이라면, 견진성사는 성숙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교회의 완전한 구성월이 되게 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견진성사를 집행한 사례로는,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서(사도 8:14-17), 바울로가 일찍이 직접 세례를 준 적이 없는(1고린 1:17) 에페소에서(사도 19:1-6) 각각 이미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신자에게 안수를 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게 함으로써 견진성사를 집전한 사실을 들 수 있다. 한편 성세와 견진을 연결하여 하나의 전례로 집전한 경우도 있다(사도 10:44-48). 이와 같은 사도의 전승이 교부시대에 계승되었는데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와 치프리아노(Cyprianus)를 비롯한 교부들의 서한에서 그 사실이 나타난다. 견진성사의 성사성 또한 예루살렘의 치릴로(Cyrillus of Jerusalem)와 바실리오(Basilius) 등 교부들이 남긴 저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다만 5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성세와 견진이 하나의 예절로 집전되었다. 그 이후 양자가 분리된 것은 시골 성당에서나, 질병 등으로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 성세만을 받은 신자에게 주교가 안수를 하여 성세를 완성시키는 관행이 계기가 되었다. 12세기에 신학자들이 성사의 종류를 설명할 때 견진을 성세 다음 순서에 두었고 리용 공의회가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견진성사를 독립된 성사로 보게 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은 사실과 성령강림에 있다. 견진의 자세한 예절은 사도들에게 위임된 셈이다. 로마 전례상 견진예절은 신자의 머리 위에 주례자가 안수를 하고 그 이마에 성유로 십자를 그으며 성령의 임하심을 기도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안수와 기름바름 가운데 전자는 사도전승(사도 8:14-20, 히브 6:2)을 이어받은 것이고, 후자는 동방교회의 전통을 살린 것이다. 물론 양자의 보다 오랜 기원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전승에 있다. 견진성사에서 안수가 상징하는 것은 성령이 신자를 거느리고 신앙의 역군으로서 그 사명을 다하도록 축성하시는 사실이다. 도유는 성령이 신자를 왕이요 세제이며 예언요 증거자로 축성함을 나타낸다.

견진성사의 효과는 성세를 완성시키고 (신앙선포의 성령칠은을 받게 하며) 인호를 남긴다는 점이다. 견진이 성세를 완성시킨다는 말은 성세가 불완전한 성사임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가 죽음과 부활로 이룩한 구원을 성령이 강림함으로써 구원의 결실을 내고 거룩하게 하는 관계와 같다. 성세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일치시키고 견진은 성령강림의 은혜를 주는 것이다. 견진성사로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이 성세성사 때에도 오심은 물론이다. 다만 성령의 역사하심이 다를 뿐이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동정녀에게 잉태되었을 때는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하였으나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는 그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임과 아울러 고난받는 종의 사명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은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에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시고, 견진을 받을 때에는 영적으로 성장시켜 하느님의 자녀된 신분을 공적으로 드러내어 신앙을 고백하고 증거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견진의 효과인 용기의 선물 또한 신앙을 용감하게 증거하며 필요하면순교까지도 불사하는 용맹을 주는 은혜이다(사도 1:8,5:32, 요한 15:26-27 참조). 견진의 인호를 받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며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고 방어한다. 견진성사의 고유한 집전자는 주교이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사제도 집전할 수 있다(교회법 882-888조 참조). 견진성사의 대상은 성세받은 신자로서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한 자이다. 다만 그 연령에 관햐여 지역 주교회의가 달리 정할 수 있는 등 예외를 두었다(교회법 891조). 견진을 받은 신자에게 대부모를 두어 견진받은 산자를 그리스도의 진정한 증거자로 생활할 수 있게 보살펴 주도독 하였다(교회법 893조).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