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삼 [한] 趙∼

조용삼(?∼1801).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경기도 양근(楊根)의 양반 가정에서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하여 아버지 조제동, 동생 조호삼과 함께 여주(驪州)의 임희영(任喜永) 집에 얹혀살면서 교리를 배우던 중 1800년 4월 조제동, 임의형과 함께 체포되었다. 여주 옥(獄)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이겨냈고, 옥중에서 베드로란 세례명으로 영세한 후 1801년 3월 27일(음 2월 14) 옥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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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학교 [한] 朝陽學校

연길교구 팔도구본당에서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 1903년에 설립되었고, 1918년 4년제 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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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노 [원] Joanno, Pierre Marie

Joanno, Pierre Marie(1832∼1863). 조선교구 선교사. 1832년 2월 9일 코트 뒤 노르(Cote du Nord)의 멜이오네(Mellionnee)에서 태어나, 1856년 1월 3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 1857년 12월 19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1858년 3월 21일 한국으로 떠난 그는 1859년과 1860년에 걸쳐 두 번씩이나 조선 입국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1861년 세 번째만에 비로소 잠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성모영보구역인 충청도 공주(公州) 지방에 파견되어 전교활동을 계속했으나, 불과 2년 후인 1863년 4월 13일 충청도 둠벙이[公州郡 新下面 造平里]에서 병을 얻어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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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행 [한] 趙愼行

조신행(?∼1801). 순교자. 양반 출신으로 주문모(周文謨) 신부 입국 후 입교하였다. 명도회(明道會)에 입회하여 황사영(黃嗣永)이 주도하는 모임에 참석, 교리연구에 전념하던 중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장하치명(杖下致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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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철 [한] 趙信喆

조신철(1795∼1839). 성인(聖人). 축일은 9월20일. 세례명 가롤로. 일명 덕철(德喆). 성녀 최영이(崔榮伊)의 남편. 성인 최창흡(崔昌洽)의 사위. 강원도 회양(淮陽)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5세 때 모친을 여읜 후 부친이 얼마 안 되는 가산을 탕진하자 잠시 중이 되었다가 환속, 서울로 이사하여 23세 때부터 동지사(冬至使)의 마부(馬夫)로 일하였다. 30세경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던 정하상(丁夏祥) · 유진길(劉進吉) 등과 알게 되어 입교했고 북경에서 성세 · 견진 · 성체 · 고백성사를 받고 계속 동지사의 마부로 일하면서 북경 교회와의 연락, 성직자영입운동 등에 깊게 관여하여 1833년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 1836년 모방(Maubant, 羅) 신부, 1837년 샤스탕(Chastan, 鄭) 신부와 앵베르(Imbert, 范世亭) 주교 등을 입국시켰다.

항상 궁핍한 교우들을 도와주고 외교인들을 가르쳐 입교시켰고, 고집이 센 아내를 인내와 노력으로 훌륭한 교우로 만들어 선종케 했는데 아내가 죽은 후 독실한 교우인 최창흡의 딸 최영이와 재혼하였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처가(妻家)로 피신해 있었으나 6월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오던 중 처가를 습격한 포졸들이 어린 젖먹이까지 잡아가는 것을 보고 포청까지 따라가 자수했다. 포청에서 집에서 발견된 성물(聖物)과 교회서적 때문에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해야 했고, 곧 이어 체포된 유진길 · 정하상 등과 함께 서양신부들의 은신처를 알려는 관헌들에게 더욱 더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형벌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내고 9월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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