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한] 宗敎 [라] religio [영] religion [관련] 그리스도교 도교 동학 불교 신흥종교 유교 유태교

1. 용어설명 및 정의 : 종교(宗敎)라는 용어는 19세기말 종교학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religion’[英, 佛, 獨語로 ‘종교’]의 번역어로 만들어진 것으로 근대화의 물결 속에 중국, 우리나라 등 한자(漢字) 문화권에 통용되게 되었는데, 근본되는 가르침이란 뜻이다[宗이라는 단어는 중국불교에서는 ‘siddhanta’의 번역으로 진리를 파악한 최고의 경지를 뜻하며, 敎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여 가르치는 것을 지칭하였는데, 인류의 종교현상 전체를 가리키게 된 현대어 종교와 직접적 연결은 없다]. 그런데 religion이란 본래 라틴어 religio에서 나온 말로 고대로부터 두 가지로 해석되었다. 곧 기원전 1세기 치체로(Cicero)에 의하면 “다시 읽는다”라는 뜻을 지닌 ‘re-legere’에서 나온 단어로 반복되어 낭송되는 종교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초월자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낸 것이고, 4세기 그리스도교 저자인 락탄시오(Lacius C.F. Lanctantius)에 의하면 “다시 묶는다”는 ‘re-ligare’에서 나온 말로 신(神)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죄로 끊어진 관계를 재결합시켜 주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종교의 핵심을 유일신 전통에서 하듯 절대신과 인간의 관계로 보든, 궁극적(究極的) 실재를 향한 내성(內省)의 마음가짐이라고 보든,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을 다루는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1870년 뮐러(F. Max Muller)가 런던왕립연구소에서 종교과학(a science of religion)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탄생을 호소한 연설을 그 발단으로 삼는 현대적 학문으로서의 종교학([독] Religionswissenschaft)은 종교적 표현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인간 안에 내재한 궁극적인 관심의 표현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종교학은 이러한 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현상을 이해하려는 학문적 노력이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 축적된 여러 문화에 대한 지식과 호기심, 그리스도교 선교사업의 확장 및 계몽주의적 합리적 사고에 기초를 두고 유럽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이라고 하겠다. 곧 전통적으로 종교 연구 자체가 구원을 얻기 위한 수행으로 간주되었다. 인도의 우파니샤드철학, 불교의 대승철학, 이슬람의 마드라사(Madrasa, 모스크 소속 학교) 전통, 그리스도교의 신학 등은 각기의 신앙공동체를 위하여 그 전승을 계속하고 심화시키려는 노력으로서 타종교나 이단파들과의 투쟁 속에 이론을 정립하였던 것이다. 이와 달리 현대적 종교학은 각 종교의 주관성을 존중함과 동시에 종교라는 현상이 인간문화의 보편적인 것이라는 각도에서 객관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2. 현대 종교학적 연구의 소개 ① 종교사학과 종교현상학 : 우선 종교학적 연구방법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끝으로 연구의 대상이 되는 종교전통들에 대하여 논하겠다. 가장 중요한 종교연구방법은 종교사학(宗敎史學, history of religion)과 종교현상학(宗敎現象學, phenomenology of religion)으로 이들은 현대 종교학의 두 기둥과 같은 위치에 서서 최근에는 이 두 접근방법의 결합 및 조화 속에서 종교학의 앞날을 전망하고 있다. 종교사학은 종교가 특정한 역사적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모습을 사료의 역사학적 연구방법에 의하여 고찰하는 것으로 각 종교의 특이성, 발전성, 역사성을 중시한다. 역사적 발전성의 문제는 20세기 초기 조단(Louis H. Jordan)이나 틸레(Cornelius P. Tiele) 등에 의하여 주창되었던 종교적 진화론에 입각한 종교간의 우열을 따지는 진화론적 비교방법은 근거가 미약해서 이제는 거의 포기되었고, 각 종교전통 안에서의 역사적 변천 및 사상의 발전을 살펴보려는 노력에 치중하고 있다. 결국 종교사학의 전제는 종교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종교의 시작과 역사를 알아야만 된다는 것으로, 종교의 의미를 그 역사적 전개를 통하여 찾으려는 것이다.

한편 종교현상학은 나타나는 그대로의 종교현상을 믿는 자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1891년 처음 종교현상학을 주창했던 소세(Chantepie de la Saussaye)에 의하면 알려진 종교적 사실들을 편견 없이 분류하고 체계화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영역으로 종교사학과 종교철학의 중간에 위치한 학문이다. 죄더블롬(Nathan Soderblom)과 오토(Rudolf Otto)에 의해 확립된 종교체험 고유의 거룩함의 개념은 종교현상학의 기초적 범주의 역할을 하였다. 20세기 전반기에 크리스텐센(W. Brede Kristensen)과 반 데어레우(G. van der Leeuw)에 의하여 고전적 시기를 맞이하였고, 엘리아데(Mircea Eliade)에 의하여 대중화되었다. 종교현상학은 연구가의 핵심을 뚫어보는 통찰력과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예민성을 중요시하나 연구의 대상인 믿는 자의 종교적 주체성을 절대시하여 모든 편견을 배제하고 판단을 보류(epoche)할 것을 요구한다. 존경스러운 태도로 옆에 서서 나타나는 현상 그대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며 전체가 이해되었을 때 체계적 서술 내지는 여러 종교현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유형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종교사학이 각 종교의 역사적 특수성을 중시하는 데 비하여, 종교현상학은 인간의 공통된 종교성 그 자체를 추구한다는 데서 서로 보완적이다.

② 종교인류학, 종교심리학, 종교사회학 : 둘째 부류의 종교 연구방법은 사회과학적인 것으로 곧 종교인류학, 종교심리학, 종교사회학이다. 종교인류학은 문화공동체 현상을 중시하고 공동체가 공유하는 신화의 의례야말로 그 사회의 세계관을 알려 준다는 전제에서 초기에는 통과의례(通過儀禮) 등 종교의 외부적인 의식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였고, 보통 경전이 없는 원시전통을 다루어 왔다. 최근에 와서는 세계 종교전통의 신념체계, 상징화과정 등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처음 종교인류학은 18, 19세기에 계몽주의 및 진화론의 영향 아래 원시종교에 대한 관심과 원시종교에서 종교의 기원을 찾으려는 추구로 시작되었다. 드 브로스(Charles de Brosses)의 서물숭배론(庶物崇拜論, fetishism), 타일러(Edward Tylor)의 애니미즘(animism, 精靈論), 매레트(Robert Marett)의 마나론(Manaism) 및 프레이저(James Frazer)의 주술론(呪術論, magic) 등은 그 대표적 예였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인류학자들의 성급한 이론화는 당시대의 원시인의 경험에서 역사 이전의 상태를 유추할 수 있고 오늘의 세계종교들이 원시신앙에서 진화되어 나왔으리라는 증명될 수 없는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더구나 계속된 인류학적 연구에서 마나(Mana)를 비인격적 개념이라고 보았던 매레트의 마나론과 종교보다 주술이 먼저 있었다는 프레이저의 주술론이 오류였다는 것이 밝혀져서, 종교의 기원을 실증적으로 찾으려는 시도는 그 추구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판정되고 있다(프레드릭 스트렝, 종교학입문, 36∼55면).

종교를 비롯한 인간현상을 모두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이성절대주의에 대한 반발이 19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나 낭만주의의 물결이 퍼지면서 이성 대신에 인간의 감정과 상상력 및 내적 경험을 중시하게 되었다. 헤겔(Hegel)은 그의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정신과 접촉되어 있는 신적 정신을 인간 문화의 정수라고 보았고, 실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는 종교적 감정을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보아 종교를 무한자를 향한 절대의존감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추구가 발전되어 오토는 종교체험 안에서 발견되는 신성(神性)의 비이성적 요소인 뉴멘(numen)을 묘사하였고, 인류학자인 스트로우스(Levi Strauss)는 신화연구를 통행 의식적 현상에서 무의식 속에 있는 보편적 특성을 찾는 구조주의를, 엘리아데는 상징론을 내놓게 되었다.

한편 종교심리학이 개척되어 우선 제임스(William James)는 1901년의 길포드 강의에 기초를 둔 ≪종교체험의 다양성≫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실증적 연구로 개인 성숙에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보려고 하였다. 그는 종교의 제도적 표현은 2차적인 것이고 그 원천적 모습은 인간 자아의 내부세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종교인들의 체험적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결과 종교체험의 특징을 밖으로부터 오는 힘에 의하여 매혹되는 기쁨과 안녕의 체험 및 초월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심각성과 한계성의 체험의 공존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종교체험은 인간자아에 새로운 국면을 일깨워 큰 변화를 일으킨다고 결론 내렸다. 그 이후 종교심리학의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융(C.G. Jung)은 무의식의 심층 속에서 종교의 기능을 보려 하였다. 프로이트는 종교는 무의식적 죄의식 및 알력의 투사로서 인간에게서 책임감을 앗아가기 때문에 인간 성숙의 저해하는 ‘인류의 보편적 강박 노이로제’라고 정의한 반면에, 융은 인간의 내적 심층에 나타나는 ‘집합적 무의식’ 속에서 종교는 창조성의 원천이 되어 인간 성숙을 돕는다고 결론 내렸다. 곧 종교심리학은 종교현상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개인적 체험 속에서 종교가 인간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에 비하여 종교사회학은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및 사회제도가 종교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심을 둔다. 현대사회학의 사조라 부를 수 있는 뒤르켐(Emile Durkheim)은 1915년 ≪종교생활의 기초형태≫라는 책을 써서 종교는 사회가 지닌 ‘집합적 의식의 상징적 표상’으로서 사회적 유대를 견고케 하여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종교의 연구는 사회의 연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종교가 그 사회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결국 사회에서 모든 종교적 가치가 시작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회를 종교의 기원이요 척도라고 본 뒤르켐의 결론은 순수한 종교학적 입장에서 보면 종교를 종교가 아닌 다른 요인에서 시작된 것으로 설명하려는 하나의 환원주의(reductionism)에 분명하여 비판받고 있지만, 종교의 사회적 기능 및 종교와 사회의 밀접한 간계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는 데서 종교사회학의 기초를 놓았다고 보겠다. 종교의 통합적 기능을 중시했던 뒤르켐과는 달리 베버(Max Weber)는 종교가 역사적 사회적 변혁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가장 복합적인 세계종교들을 연구하였고 각 종교에서 발견되는 독특성에 관심을 쏟았다. 근대화를 이끈 자본주의 정신과 칼빈주의와의 관계에서 서양 근대사회의 특징을 찾았고, 예언자 등 카리스마적 종교지도자들이 사회변화에 끼친 영향을 중시하였다.

결국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자들에 의한 사회과학적 종교연구는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으로서 조교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에는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으나, 종교현상 그 자체를 이해하고 궁극성을 내포한 그 특수성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역시 처음에 언급한 종교사학 및 현상학적 연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곧 종교를 학문적 객관성을 가지고 이해하기 위하여는 그 종교의 역사를 이해함과 동시에 시간적 변천 속에서도 지속되는 종교적 의미와 구조를 파악해야 되며, 그 뒤에 그 종교가 가지는 기능적 역할까지 알아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종교연구는 다양성을 띠며, 종교의 전체적 이해는 다각적인 연구결과의 종합으로만이 가능하다.

③ 종교철학과 종교신학 : 종교연구의 셋째 부류는 종교철학(philosophy of religion)과 종교신학(theology of religion)으로 위의 경험적 연구방법과는 달리 규범적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곧 종교철학은 진리의 문제를 직접 취급하여 종교의 본질 · 핵심 등을 규명하려고 하며, 철학적 논리성으로 종교적 사료를 체계화한다. 종교신학은 특정종교의 입장에서 타종교를 보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가치를 수용, 비판하고 자기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재해석하여 종합하려는 시도로 전통적 종교연구방법의 연속이며, 실존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점점 그 경향도 학문적으로 체계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의 종교신학적 방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선포한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과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모든 인간을 비추는 진리의 빛이 부분적이나마 타종교들 안에 반영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그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순수한 인간적 가치를 긍정하고 발전시키라고 격려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대표적 가톨릭 신학자로는 라너(Karl Rahner)와 실레테(H.R. Schlette)를 들 수 있다.

3. 종교전통에 따른 구분 : 종교를 연구하는 접근방법에 따라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고찰하였는데, 이제는 종교전통을 간단히 분류하여 설명하겠다. 우선 종교를 오랜 역사와 경전 및 기록된 전승[literate tradition]을 소유한 세계 종교들과 의식이나 설화 등을 통해 구두로만 전승된 원시종교전통[illiterate tradition]으로 구분한다. 세계종교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권에서 발생한 유태교 · 그리스도교 · 이슬람교 등의 유일신 계시종교들과 고대 인도 브라만 문화와 연결된 힌두교 · 불교 및 중국의 종교들에 있어서 거대한 문화형성의 원동력이 되어온 살아 있는 종교 전통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의 종교전통인 유교 · 도교 · 불교 등을 삼국시대로부터 받아들여 발전시킴과 동시에 원시종교전통으로 구두 전승되는 무속신앙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 곧 한국의 종교전통은 상층에는 유 · 불 · 선 전통과 200년 전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그리스도교 등 세계종교들을, 하층에는 동북아시아를 비롯하여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샤마니즘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흡사 종교의 살아 있는 박물관과 같은 다원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중의 종교생활 속에서 이 두 상하층은 긴장 속에서도 융합되었고 1860년 동학운동 이후로 새로운 종교공동체까지 산출하게 되어 무수한 신흥종교를 일으켰다. 따라서 한국은 종교적으로 다원화되고 있는 지구촌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대표적 예이며, 오늘의 도전과 미래의 좌표가 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앞에서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을 다루는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였다. 궁극성을 달리 표현하면, 곧 모든 종교는 구원의 종교라는 말이다. 그런데 구원 안에는 여러 가지 의미의 폭이 있어서 현세적 기복(祈福)신앙에서부터 내세적인 불멸 내지 부활이라는 영생에의 신앙 및 인간존재의 완성에 대한 신앙 등이 있다. 이 세 가지 의미의 구원이 서로 연결성을 지니지만, 그 중에서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고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호소력을 지닌 것은 구원의 세 번째 의미일 것이다. 참된 인간이 되고 싶고 비인간화된 기계문명 속에서 인간화의 원동력이 종교 안에 있음을 현대인들은 무의식적으로나마 느끼고 있는 것이다. 종교학적인 연구 자체에서도 인격화를 부르짖는 종교학자 스미드(Wilfred Cantwell Smith) 교수는 인류가 서로를 ‘우리’라는 의식 속에 알고 배우게 되리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인간을 중시했던 동아시아 전통 속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궁극자는 인간성숙(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종교의 의미와 인간의 구원문제가 다루어지게 될 것이다. (⇒) 유태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신흥종교, 동학 (金勝惠)

[참고문헌] F.E.D. Schleiermacher, Reden uber die Religion, 1799 / G.W.F. Hegel, Die Phanomenologie des Geistes, 1807 / M. Muller, 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Religion, 1873 / C.P. Tiele, The Elements of the Science of Religion, 1897-1899 / Durkheim, Les formes elementaires de la vie Profane, 1912 / S, Freud, Totem und Tabu, 1913 / R. Otto, Das Heilige, 1917 / W. James, The Varieties of Religions Experience, 1920 / J. Soderblom, Das Werden des Gottesglaubens, 1926 / C.G. Jung, Psychology and Religion, 1938 / M. Eliade, The Sacred and the Profane, 1959 / K. Rahner, Schriften zur Theolo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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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과경 [한] 終課經 [관련] 끝기도

⇒ 끝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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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한] 存在 [라] esse, ens [영] being, presence [독] Sein, Existenz

존재가 귀속시키는 것은 존재자(存在者, ens)이다. 존재는 최고의, 가장 보편적인, 여러 개념에 환원될 수 없는 개념의 내용을 표시한다. 존재의 영역은 온갖 것을 포괄하며, 특수영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콜라학(學)에서는 ‘존재의 초월성’이라고 불렀고, 그런 뜻에서 존재는 초월적이다. 가톨릭의 입장에서 보는 존재관(存在觀)에 한정시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존재는 온갖 존재자가 귀착되고, 그것에 바탕하여 인식되는 것으로서 근원적인 개념이다. ens는 모든 실재성(reality)을 가리키는 보통 용어로서, 인간의 지성(知性)에 의하여 인식되는 갖가지 실재성에 따라서 우선 보편적인 존재(esse commune)와 ‘존재 그 자체’(ipsum esse) 곧 절대적인 존재인 하느님(신)으로 구별된다. 다시 말해, ‘ens ab alio’는 ‘타자(他者)에 의한 존재’ 곧 다른 원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 피조물(被造物)이며, ‘ens a se’는 ‘자존’(自存) 곧 자기에 의한 존재자, 자기의 존재의 원인 = 하느님(신)이다.

존재자는 존재자인 한에 있어 어떤 존재법칙에 따르게 마련인데, 스콜라학에서는 근본적인 존재 법칙 말고도, 모든 존재에 귀속하는 ‘초월적인 규정’으로 지칭되는 하나[一], 참[眞], 선(善)을 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는 존재자가 통일적인 본질을 가져야 하며, ‘참’은 존재자가 지성에 의하여 인식될 수 있어야 한고, ‘선’은 존재자가 가치노력에 대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였다.

존재자의 존재의 기본적인 분류에서 첫 번째로 구별되어야 할 것은 실존(實存, Dasein, existentia)과 사존(斯存, Sosein, essentia)이며, 둘째 번으로 구별되어야 할 것은, 자존유(自存有, substantia, 實體)와 타존유(他存有, accidens, 偶有)이고, 세 번째로는 현실유(現實有, actus)와 가능유(可能有, potentia)이다. 존재자의 존재를 경험상으로 볼 때에는 네 가지의 근본적인 종류로 나누어진다. 즉 무기적(無機的) 존재, 유기적(有機的) 존재, 감성적(感性的) 존재, 정신적 곧 영적(靈的) 존재가 그것인데, 이것은 ‘존재고도’(存在高度)라고 할까, 즉 존재의 완전도(完全度)가 위에 말한 차례에 따라 차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만 한다. 이상에서 추려내면, ‘ens in se’는 ‘자기내유’(自己內有)이며, ‘ens per se’는 ‘자기 자신에 의한 존재’ 곧 본성(本性)에 의한 존재 또는 한정될 수 없는 존재인데, 모두가 자존유 곧 실체이다. ‘ens entis’는 ‘존재의 존재’ 즉 그 자체로는 실재할 수 없고, 실체 속에서만 실재할 수 있는 것, 따라서 ‘우유’(偶有) 곧 타존유이다. 유한적인 존재의 궁극의 근거로서 무한의 영적인 존재인 하느님을 어림잡을 수 있다.

스콜라학의 용어인 ‘아날로기아 엔티스’(analogia entis)란 자연 즉 피조물과 초자연 즉 신과의 사이에는 존재적인 구별과 동시에 유비(類比)가 있다고 봄을 지칭하는 말인데, 가톨릭 신학에 있어서는 현대에 와서도 보통 이것이 기본적인 원리의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다. 존재를 ‘presence’라는 말로서 해석할 때, 이는 실제로, 혹은 효과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자의 가까이에 있음을 가리킨다. 이 말은 어원이 되는 라틴어 prae(∼의 앞에) + ens(존재), 또는 praesens(진행되고 있는 일에 참여하는 것)에서 왔다. 실재라는 것은 대상 물건이 현실로 실체적으로 거기에 있음을 말한다. 효과적인 존재란 이 대상물의 영향이 미치는 존재를 가리키지만, 그 영향의 원인은 실제로는 다른 곳에 있다. 영적인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부재일지라도, 어떤 사람의 지성과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를 가리키지만, 그 영향의 원인은 실제로는 다른 곳에 있다. 영적인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부재일지라도, 어떤 사람의 지성과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인 것이다. 하느님(신)은 개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들이 사물을 인식하듯이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사람이라기보다 인간성을 초월한 그 이상의 존재이다. 헬비히(Monika Hellwig)가 지적했듯이, “예수 안에서 사람들은 독특한 모양으로 하느님과 접촉하고 있고, 또 접촉하도록 초대받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접촉은 인간의 전존재(全存在)를 변화시킨다.” 사도들이 우리에게 한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의 존재 이유 때문에 예수를 만났다는 말은,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하느님과 우리가 직접으로 인격적인 대면을 하도록 초대받은 체험을 말한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만남의 장소이요, 예수는 곧 하느님이다.

[참고문헌] E. Przywara, Analogia entis I, Freiburg 1932 / N. Hartmann, Zur Grumdlegung der Ontologie, Berun 1935 / J.B. Lotz, Sein und Wert I, Paderborn 1938 / A. Guggenberger, Der Menschengeist und das Sein, 1942 / J. Maritain, Sept lecons sur l’etre, Paris 1933; A Preface to Metaphysics: Seven Lectures on Being, New York 1945 / T.C. O’Brien, Metaphysics and the Existence of God, Washington 1960 / B. Montagnes, La Doctrine de l’analogie de l’etre d’apres saint Thomas d’Aquin, Louvain 1963 / Monika Hellwig, who is Jesus Christ?, What are the Theologians Saying?, Ohio 1970 / John A. Hardon, S.J., Catholic Dictionary, No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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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서 [한] 趙∼

조화서(1815∼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베드로.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복사(服事). 성인 조윤호의 아버지. 경기도 수원(水原)에서 태어났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로 부친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충청도 신창으로 이주하여 한 막달레나와 결혼, 아들 윤호를 두었고 이 때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신부를 보필하였다. 그 후 1864년 다시 전주의 성지동으로 이사했고 얼마 후에 아내가 사망하자 김 수산나와 재혼하였다. 1866년 병인(丙寅)박해가 지방으로 확산되어 이해 12월 5일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이명서, 정원지, 아들 윤호와 함께 체포되었다. 옥에서 아들에게 “네 마음이 변할까 염려된다. 관장 앞에서 진리대로 말하여라” 하고 격려했고 이에 아들 윤호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라고 대답하였다. 이렇듯 아들과 함께 순교를 각오하고 6, 7차의 신문을 당했는데, 후손이 끊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체하며 배교를 권유하는 관장의 유혹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모든 유혹과 형벌을 이겨내고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성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아들 윤호는 10일 후인 23일 같은 장소에서 순교함으로써 3대가 순교하는 영광을 얻었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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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증 [한] 趙喆增

조철증(1827∼1868). 문신. 천주교인. 자는 치양(稚壤), 본관은 풍양(豊壤). 서울에서 조능하(趙能夏)의 아들로 출생. 1859년 증광문과 병과(增廣文科丙科)에 급제, 주서(注書)를 거쳐 사간원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로 프랑스 선교사들과 많은 교우들이 처형당하자 장치선(張致善), 최인서(崔仁瑞) 등과 함께 박해상황을 중국의 선교사들에게 알리고 조선에 남아 있는 프랑스 선교사들을 탈출시키려는 계획에 참여, 페롱(Ferron) 신부의 구원 요청을 위해 중국으로 가는 최인서, 지자익(池子益) 등을 재정적으로 후원했고 리델(Ridel, 李福明) 신부의 피신과 상해(上海)로의 탈출을 도왔으며 조정에 있으면서 천주교박해를 완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1868년 오페르트(Oppert)의 남연군 묘 도굴사건 직후 체포돼 김계교(金季釗)·장치선 등의 자백으로 4월 19일 의정부에서 월해초구죄(越海招寇罪)로 체포령이 떨어졌으나 당시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이던 조카 조유선(趙猷善)이 미리 체포령 소식을 알려주자 체포되기 전에 단양(丹陽)에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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