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주의 [한] 主意主義 [라] voluntarismus [영] voluntarism

‘주의설’(主意說)이라고도 하는 이 설은 일반적으로 감정이나 이성(理性)보다 의지(意志)를 중히 여기는 사고방식을 지칭한다. 철학상으로는 존재의 본질(本質)은 지성(知性)이 아니라 의지라고 보며, 의지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학설이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①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1308) : 신에 있어서는 지성보다도 의지가 우위이며, 그 결과로 진리와 전선(全善, divine goodness)은 신이 그렇게 기대했기 때문에 참이요, 선인 것이라는 주장, ② 성 아우구스티노 : 인간의 자유를 포함한 의지가 사람으로 하여금 뚜렷이 사람으로 있게 한다는 주장, ③ 쇼펜하워 : 세계는 맹목적 무목적(無目的)의 우주의 힘인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는 설, ④ 칸트 : 개인의 자유의지가 도덕상의 선악을 결정한다는 설, ⑤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 : 인격을 형성하는 주요 근본은 ‘자유의지’를 평생 동안 행사하는 일이다.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주장인데 이상은 모두 주의주의의 방향에 입각하고 있다.

인간의 의지는 지성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결정할 이유가 없더라도 자유로이 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 둔스 스코투스는, 아우구스티노의 사상을 완성하여,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제기된 의지와 지성의 우위 문제에 대한 매듭을 지어, 주의주의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의 제자인 오캄(W. Occam, 1300?∼1350?)이 이를 더욱 진전시켜, 윤리학 전체를 인식적 존재적인 기초에서 분리시켜, 순수한 의지윤리학(意志倫理學) 및 자의윤리학(恣意倫理學)에 다다랐다. 이리하여 하느님은 사실상의 의지의 반대까지도 의지할 수 있으며, 이럴 경우엔 이 의지의 내용이 동시에 ‘선’이라는 주장에서 볼 때, 궁극의 존재원칙이나 진리라 할지라도, 만일 하느님이 다른 것을 의지한다고 하면, 그것은 다른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존재의 궁극의 바탕은 비합리적인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주의주의는, 의지를 다른 모든 것에 앞지르는 근원적인 것으로 보는 여러 가지 입장들의 총칭임은 물론이다. 형이상학적인 주의주의를 대표하는 쇼펜하워는, 의지가 세계나 세계 안의 현상의 본질이요 본체(本體)라고 보았다. 즉 오성(悟性, Verstand)을 도구로서 사용하는 의지와 어둔 충동만이 세계의 근원적인 본질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셸링(F.W. Schelling)은 충동으로서 포착된 의지를 하느님에 있어서의 근원이라고 강조하였고, 니체(F.W. Nietzsche)는 권력에의 의지만이 현실의 본질이요 진리의 표준이라고 주장하였다. 의지를 인간의 마음의 근본기능으로 보고, 의식이나 감정도 모두 의지에 바탕한다고 생각하는 분트(W. Wundt, 1832∼1920)는 심리학적인 주의주의의 대표이며, 판단의 긍정 · 부정을 하는 ‘의지’를 인식작용의 근원에 두는, 곧 오성은 의지가 스스로 선으로서 추구하는 객체(客體)를 나중에 그 본질성에 있어서 인식한다는 빈델반트(W, Windelband, 1848∼1915)의 입장은 인식론적인 주의주의라고 지칭된다.

주의주의가 범한 오류 가운데서 두드러진 것은, 모든 행위의 영구적인 존재 기초 및 존재 규범을 부정하여 이성적 의지와 생명적 충동의 명확한 구별을 못 짓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적인 전통에 의해서 완성된 존재철학과 밀접히 결합할 때만이 주의주의는 자기의 위험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본다.

[참고문헌] Peters, Willenswelt und Weltwille, 1883 / W. Kahl, Lehre vom Primat des Willens bei Augustinus, Duns Scotus und Descartes, 1886 / Knauer, Der Voluntarismus, 1907 / J. Marcus, Intellektualismus und Voluntarismus in der neuern Philosophie, 1918 / F. Copleston, Arthur Schopenhauer, London 1946 / W.A. Kaufmann, Nietzsche, Princeton 1950 / H.J. Marrou and A.M. La Bonnardiere, S. Augustin et l’Augustinisme, Paris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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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재림 [한] 主∼再臨 [관련] 그리스도의 재림

⇒ 그리스도의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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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세례축일 [한] 主∼洗禮祝日 [라] festum Baptismatis Domini [영] feast of Baptism of Lord

예수 그리스도가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 의하여 세례받은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 예수 공현 대축일 후 첫 일요일에 지낸다. 예수는 요한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뜻에 따랐고(마태 3:14-), 죄인들 가운데서 당신을 겸손되게 낮추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요한 1:29, 36), 예수께서 요르단강에서 받으신 세례는 죽음의 세례를 선포하고 준비하는 것이다(루가 12:50, 마르 10:38). 예수님의 공생활은 물의 세계에서 시작하여 피의 세례로 마쳤다. 그래서 복음사가 요한은 창으로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왔음을 강조하였고(요한 19:34-), 셋의 증거자 곧 성령과 물과 피는 서로 일치한다고 하였다(1요한 5:6-8).

요한에게서 받은 예수의 세례는 성령의 강림과 하느님의 음성으로 명예로워졌다. 성령의 강림은 구약의 예언(이사 11:2, 42:1, 61:1)을 완성시킨 것이요, 교회와 (사도 1:5, 11:16) 교회에 들어올 모든 사람에게(에페 5:25-32, 디도 3:5-)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할 성령강림을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인정한 음성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당신의 양자로 받아들이겠다는 표시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친자(親子) 지위에 참여함으로써, 성령이 주시는 선물에 의하여 양자의 지위를 획득한다.

주님 세례 축일의 이동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 2일에서 8일 사이의 주일에 지내는데, 주님 공현 대축일이 7-8일인 경우에는 주일에 이어서 오는 월요일에 주님 세례 축일을 기념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을 주님 세례 축일로 기념합니다. 그리고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주님 세례 축일과 이어지는 주간이 연중 1주간이 됩니다. 그리고 구유는 주님 세례 축일을 저녁에 치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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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세례 [한] 主∼洗禮 [라] Baptismus Christi [영] Baptism of Christ

복음사가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마태 3:14-17, 마르 1:9-11, 루가 3:21-22, 요한 1:31-34). 즉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로서 그의 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시기 전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를 받은 예수가 물위로 걸어 나오셨을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의 머리 위로 내려왔으며, 하늘에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등 세 가지 기적이 일어났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는 메시아로서의 공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1월 9일을 ‘주의 세례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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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봉헌 축일 [한] 主∼奉獻祝日 [라] festum in praesentatione Domini

1969년 이후 초 축성의 날(Candlemas)을 로마 가톨릭에서 칭하는 이름. 그리스도 탄생 40일째 날 유대법에 따라 드린 성모 마리아의 취결례(取潔禮)와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사건을 기념한다. 국부적으로 예루살렘에서 350년경부터 2월 14일 이 사건을 기념하였으며 후에 2월 2일 되었다. 542년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가 이 날을 콘스탄티노플에서 지키도록 명하였는데, 이것은 흑사병이 퇴치된 것을 감사하기 위해서였다. 후에 서방에도 펴졌다. 서방 교회에서의 특기할 만한 행사는 초에 대한 축성인데, 촛불 행렬로써 그리스도가 이방인에게 구원의 빛이 된 것을 기념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이 축일을 오랫동안 성모 취결례 축일로 지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주의 봉헌주일로 지정됨으로써 본래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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