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혁 [한] 鄭仁赫

정인혁(?∼1801). 순교자. 세례명은 다테오. 이기경(李基慶) 편저의 ≪벽위편≫(闢衛編)에는 이름이 인혁(麟爀)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울의 중인(中人) 계급의 집안에서 출생, 한국천주교회 창설직후 입교하였다. 1791년 신해(辛亥)박해 때 형 정의혁(鄭儀赫)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배교하고 석방된 후 잠시 냉담하다가 다시 교회로 돌아와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고, 1795년 주문모(周文謨) 신부가 입국한 후로는 더욱 더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로 다시 체포되어 이해 5월 14일(음 4월 2일) 정철상(丁哲祥), 최필제(崔必悌)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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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평화위원회 [한] 正義平和委員會 [라] Pontificia Commissio a Justitia et Pace [관련] 교황청위원회

교황청위원회 소속으로 가난한 지역의 발전과 국가들 간의 사회정의를 보장하도록 지역교회를 고무하는 일을 담당한다. (⇒) 교황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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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배 [한] 丁義培

정의배(1795∼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 마르코. 서울 창동(倉洞)에서 태어났다. 유업(儒業)을 쌓으며 생활하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프랑스 선교사의 순교장면을 목격하고 감동하여 그 즉시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그 후 열심히 신앙생활로 인해 1845년 페레올(Ferreol, 高) 주교가 입국하자 회장으로 임명되어 순교할 때까지 20여년을 헌신적으로 일했고, 또 1854년 성영회(聖嬰會)가 조직되자 성영회를 맡아 고아들을 돌보았다. 1866년 2월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가 체포된 후 주교의 하인 이선이(李先伊)의 밀고로 체포되어 3월 11일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신부, 그리고 제자 우세영(禹世英)과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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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한] 正義 [라] iustitia [영] justice [그] Dikaiosune [독] Gerechtigkeit [관련] 사회정의

정의는 그리스도교 사추덕(四樞德)의 하나로, 그 의미가 다양하여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플라톤은 개인이나 국가에 있어서 각 구성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정의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평균정의, 분배정의로 구분하였다. 평균정의는 모든 관계에서 상호 균등한 가치가 관철되는 것이고, 분패정의는 공평한 분배가 관철되는 것을 말한다. 성서에도 정의는 하나의 중심사상을 이루고 있다. 특히 예언자들의 사상에서 두드러지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은 아모스다. 이들은 거짓, 약탈, 계급적 이기주의, 억압, 불고정한 재판, 악정 등을 통해 가난한 자들을 수탈하는 위정자들을 통렬히 비판하고 사회정의를 이룩하려 하였다. 시편에서는 개인이든 단체든 야훼에게 가담하는 자를 의인이라 부르고 정의는 야훼와 관계를 맺는 한에서만 실현된다고 생각하였다. 루소는 정의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만큼 부유해서도 안 되고, 또 자신을 팔 만큼 가난해서도 안 되는 상태”라고 정의하였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보장되지 않고, 힘의 논리에 의해 정의가 부정되는 현대세계에서 특히 요구되는 것이 정의, 곧 사회정의다. 니체가 말한 대로 “힘이 곧 정의다”라는 말은 현대사회에서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온갖 불의와 부정이 힘을 바탕으로 정의라는 가면을 쓴 채 횡행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주교회의는 “구원의 거룩한 역사 속에서 하느님은 해방과 구원의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그 계획의 단계적 실현에 착수하고 계신 것이다. 교회의 정의를 위한 행동과 세계 개혁활동에의 참여는 복음 선포의 본질적 구성요소임이 명백하다”(세계안의 정의 29)고 강조하고 “인간이 이웃과 자신에 대한 정의의 의무를 다할 때에 하느님은 억눌린 자의 해방자로 나타나신다”(사회안의 정의 30)고 선언하였다. (⇒) 사회정의

[참고문헌] 사회정의, 가톨릭출판사, 1976 /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J. Rawls, A Theory of Justice, 1971 / 바오로 6세, 세계 안의 정의, 1971; 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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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본당 [한] 井邑本堂

1901년 창설된 전주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로사리오. 현 명칭은 시기동본당이다. 김순문(金淳文) 등 27명의 교우가 모여 1889년 3월 첫 신성리 공소를 열게 되었고 1901년 4월에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초대(1901∼1903년) 주임 신부인 김승연(金承淵,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정읍군 내장면 신성리(內藏面 新城里)에 초가 4간의 매입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대지 1,200평도 매입하였다. 2대(1903∼1924년) 미알롱(A. Mialon, 孟錫浩) 신부 때 8간 기와집 성당을 신축하고, 4간의 사제관과 6간의 사랑방(회합실)을 신축하여 둘레를 돌담으로 쌓았다. 16년간 재임한 미알롱 신부 시대에 정읍본당은 눈부신 발전을 보아, 주보 <알로이시오>를 발간하였으며, 당시 공소는 정읍 10, 담양 3, 장성 8, 부안 4, 고창 1, 도합 26개 공소에 신자총수는 1,000여명 헤아렸다.

3대(1924∼1931년) 페셸(R. Pechel, 白鶴老) 신부가 당시 정주읍 상리(井州邑 上里, 현 정주시 상동)에 함석집 4간을 매입하여 본당을 신성리에서 정주읍으로 옮겼다. 이어 4대(1931∼1932년) 고군삼(高君三, 베네딕토) 신부 때, 상동의 함석집을 팔고, 명덕동(明德洞,현재의 水城洞) 성당 대지를 매입하여 함석집 2채를 건축하고 본당을 다시 옮겼다. 그러나 이후 4년간(1932∼1936년) 주임신부 공석기가 있은 뒤에, 5대(1936∼1939년) 서정수(徐廷壽, 알릭스) 신부가 수성동에 목조 아연 평가 2채를 신축하여 임시성당으로 사용하여 왔으며, 6대(1939∼1944년)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를 거쳐 7대(1944∼1947년) 박성운(朴聖雲, 베네틱토) 신부 때 8.15광복을 맞아 현 성당터인 정주읍 기리 청수동(基里 淸水洞)에 일식(日式) 2층 가옥을 매입하여 성당으로 개조하여 이전하였다. 8대(1947∼1950년) 김후성(金厚星, 프란치스코) 신부를 거쳐 9대(1950∼1950. 6)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 신부 때 6.25전쟁이 일어난 종군신부로 나가게 됨으로써 이후 4년간 주임신부의 공석으로 정읍본당은 1954년까지 신태인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10대(1954∼1960년) 김영일(金永鎰,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하여 일식 가옥을 헐고, 현재의 성당인 연와제 120평의 성당과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본당 주보를 매괴의 모후로 정하고 신평리(新坪里) · 등천리(登川里)에 공소강당을 신축했고, 구량리(九良里)에 공소용 가옥을 매입하였다. 11대(1960∼1961년) 황인규(黃寅奎, 마태오) 신부는 성당 구내에 성모상을 건립, 죽림리(竹林里) 공소 강당을 신축했고 12대(1961. 7. 12∼1961. 12)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신부는 현 성당의 종각을 증축했고, 13대(1961. 12. 11∼1966년) 이상호(李祥浩,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회룡(回龍)공소 강당을 신축하였다.

14대 김환철(金丸喆, 스테파노) 신부 때 성체회수녀원 분원의 설립과 유치원의 신축 개원을 보았고, 한교공소 강당도 신축하였다. 15대 서용복(徐龍福, 토마스) 신부, 16대 이병호(李炳浩, 빈첸시오) 신부, 17대 정승현(丁勝鉉, 요셉) 신부, 18대 박중신(朴仲信, 시몬) 신부를 걸쳐 19대(1979∼1982년) 강인찬(姜仁贊, 도미니코) 신부 때 수녀원과 식당을 신축했고, 20대(1982∼현재) 박종근(朴鍾瑾, 안드레아) 신부 때에 와서는 제1회 본당의 날 설정 행사와 제2 성당의 신축기공식을 가졌다. 이리하여 오랜 역사를 지닌 정읍본당은 오늘날 정주시 시기(市基) 2동 239의 3에 소재하며, 1983년말 현재 신자수는 2,915명, 공소 10개소이다. 전주교구 관하에 속하는 본당 중 5번째로 창설연대가 오래된 본당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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