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원] Jozeau, Moyse

Jozeau, Moyse(1866∼1894). 한국명 조득하(趙得夏).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1889년초에 한국에 도착하여 곧 경상도 북부지방을 맡아 전교활동을 약 1년간 계속하다가, 1890년에 부산지방의 교회창립사업을 맡았다. 신자라고는 한 명도 없는 그 곳에 교회를 세우고, 여러 곳의 벽촌과 섬을 순회하면서 복음 전파에 전념한 결과, 3년 후에는 약 2,000명의 신자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정력과 굳은 신념 때문이며, 교우들뿐만이 아니라 이교도들까지도 그를 존경하는 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1893년 그는 부산을 떠나 그와 같이 젊고 정력적인 인물을 필요로 하는 전라도로 전임케 되었다. 그의 거처로 된 배재마을은 곧 모범적인 마을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이 때 불행히도 동학(東學)의 일파가 그의 관할 구역을 습격하자, 그는 용감하게 이와 맞서 싸웠으나 정세가 점점 불리해졌으므로 구원을 청코자 서울로 올라갔다. 도중 전주를 거쳐 공주에 다다랐을 때 청(淸)나라 군사에게 잡혀 총살을 당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1894년 7월 29일 29세의 젊은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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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원] Jaugey, Joseph

Jaugey, Joseph(1884∼1955).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한국명 양수춘(楊秀春). 프랑스의 랑그르(Langres)에서 태어났다.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1907년 6월 사제로 서품 되었으며, 곧 조선교구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 해 8월 한국에 입국하였다. 경기도 양평(楊平)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던 중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프랑스로 돌아갔고, 전투 중에 포로가 되었으나 종전 후 석방되어 1919년 다시 한국에 입국, 원주(原州)본당 주임으로 사목하였다. 그 뒤 1924년 서울교구 당가로 임명되어 1942년까지 서울교구의 재정과 사무를 처리하는 한편 <경향잡지>의 편집 겸 발행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2년 서울교구가 방인(邦人)교구가 되자 당가직에서 물러났고 1948년 대전교구가 지목구(知牧區)로 설정되면서 대전교구 당가로 임명되었다. 1955년 1월 8일 대전교구 주교관에서 급성폐염으로 선종, 대전교구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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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천 [한] 曺在千

조재천(1912∼1970). 법조인, 정치인. 세례명은 바오로. 전남 광양(光陽)에서 출생. 1940년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1943년 판사를 거쳐 광복 후 부장판사로 재직하다가 정계에 투신, 민주당의 4선 의원(3∼6대)을 지냈고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지고 제2공화국이 들어서자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5.16군사 쿠데타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1963년 영세, 입교했고 1965년 이후로는 중림동본당 총회장으로서 교회사업에 헌신하였다. 1970년 7월 5일 뇌일혈로 입원 중이던 세브란스병원에서 사망, 경기도 벽제의 중림동본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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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원 [한] 趙仁元

조인원(1907∼1978). 신부. 세례명은 빈첸시오. 1907년 12월 25일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외리(長淵郡 長淵邑 外里) 71번지에서 부친 조성옥(趙成玉)과 모친 김흥석(金興石)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 경애학교(敬愛學校) 2년을 수료하고 당시 장연본당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의 추천으로 1920년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 사제수업을 마치고 1936년 12월 17일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주례로 종현성당(鍾峴聖堂)[지금의 명동 대성당]에서 임종국(林鍾國, 바오로), 유영근(兪榮根, 요한), 윤을수(尹乙洙 , 라우렌시오), 오기선(吳基先, 요셉)과 함께 사제로 서품, 1933년 1월 강원도 춘천본당 보좌신부로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1935년 춘천본당 주임, 1936년 신설 서천(舒川)본당 주임, 1938년 황해도 연안(延安)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하고 1941년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평양교구를 담당하던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추방당하자 평양교구로 잠시 파견되어 1942년 평남 안주(安州)본당, 1944년 평양 대신리(大新里)본당에서 사목하다가 1944년 11월, 서울교구로 복귀하여 충남 논산본당에 부임, 1945년 대건학원(大建學院)을 창설하고 그것을 모체로 1947년 중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겸임하였다. 이 학교는 후일 대건중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1948년 신설 신당동본당 초대 주임신부로 재직 중 6.25동란이 일어나자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군종신부로 입대, 1953년 한국 가톨릭군종신부단의 총책으로 육군본부 제2대 군종과장에 임명되어 초창기 군종사업을 개척하고 1954년 예편, 예편 후 서울교구 상서국장(尙書局長)[현 사무국장]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국장을 역임하였다. 1957년 가평본당 주임신부로 전임되어 본당 내에 정지신학원(貞知神學院)[가톨릭교리신학원의 전신]을 설립, 1963년 신학원을 미아리본당 내에 옮기고 원장으로만 봉직하였다. 1963년 7월 서울시로부터 신학원의 정식인가를 받고, 1964년 수유동(지금의 성체회수련원)에 원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1964년 8월 청량리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1971년 은퇴할 때까지 사목하였다. 1978년 9월 12일 간암(肝癌)으로 성모병원에 입원 중 72세로 선종, 용산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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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호 [한] 趙∼ [관련] 조화서

조윤호(1848∼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은 요셉. 성인 조화서의 아들.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교우로 태어났다. 1864년 부친을 따라 전주 근처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한 후 교우처녀 이 루시아와 결혼하였다. 1866년 12월 5일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부친, 정원지, 이명서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감영에서 부친과 6, 7차의 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부친이 순교한 지 10일 후인 12월 2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최후로 곤장 16도 맞은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 조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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