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규조 [한] 會長規條

공소회장들을 위한 지도서(指導書). 한글본과 한문본의 두 가지가 있다. 한글본 ≪회장규조≫는 모방(Maubant, 羅伯多祿) 신부가 입국한 다음 해(1836년)에 이미 지방의 회장을 임명하고 그들이 할 직분을 지시한 바 있으며, 오늘날에 전해지는 필사본에 “두 신부마저 잡혔다”는 구절이 적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1839년 기해(己亥)박해 이전에 저술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문본 ≪회장규조≫는 1873년 북경교구의 전유사(田類斯) 주교의 감준으로 간행된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1876년경에 선교사들을 통해 들어온 것 같다. 한국과 중국의 천주교회는 회장제도에 있어 거의 같기 때문에, 이 책은 곧 우리말로 번역되어 공소회장들에게 보급되었다.

≪회장규조≫는 회장의 본분과 위치, 회장 선출의 규칙, 교중사를 다스리는 책임, 신부에 대한 본분과 신자들에 대한 본분, 그리고 미신자들에 대한 본분의 7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회장은 반드시 재덕을 겸비한 사람 중에서 그 지방신자들이 추천하되, 그 임명은 주교가 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회장은 본당 재산을 관리해야 하며, 신자들을 돌보고, 신부를 공경해야 한다. 교리문답에 밝지 못한 신자가 있으면 회장이 책임맡아 익히게하고, 비신자의 어린 아이가 죽음에 처했을 때, 회장은 마땅히 그에게 대세(代洗)를 주어야 한다는 등 회장이 지켜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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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라] Catechista [한] 會長

교우집단의 지도자로서 신부를 보좌하고 교우들과 신부 사이에 중재역할을 하며 신부 유고시 신부를 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회장에는 크게 본당회장(本堂會長)과 공소회장(公所會長)이 있고 이밖에 특수한 직무를 수행하는 전교회장(傳敎會長)과 여회장(女會長)이 있는데, 그 직무와 권한은 약간씩 다르다. 본당회장의 직무는 사무 보조, 예비자 교육, 병자 방문, 냉담자 권면, 신부 유고시 유아세례 · 대세 · 혼인의 성사집행 등이고, 공소 회장의 직무는 예비자 교육, 춘추 판공(判功)준비, 공소재산관리, 공소 예절 주관, 공소에서의 유아세례 · 대세 · 종부 · 혼인의 성사집행 등이며, 전교회장은 전교활동이, 여회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 직무이다. 그리고 회장은 직무수행에 필요한 신덕(信德), 지덕(智德), 열심, 순명, 진실, 지식 등의 덕행을 의무적으로 닦아야하며 회장 피정을 통하여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회장에 대한 임명 및 해임권은 본당신부와 교구장에게 있고, 회장 선출방법은 본당 신부와 교구장이 직접 적임자를 선출하거나 혹은 교우들의 추천이나 투표를 통해 적임자를 선출하는데, 회장에 임명된 사람은 본당신부와 교구장이 서명날인한 임명장을 받는다.

이러한 회장제도는 한국 천주교회 고유의 제도로 한국 천주교회의 특수한 상황, 즉 박해 때문에 생겨났다. 교회 창설 이후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로 숨어든 교우들이 독특한 교회공동체인 공소(公所)를 이루게 되면서 신부들이 적은 숫자로 수많은 공소를 관리할 수 없게 되자 신부들을 대리할 수 있는 평신도가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교회 당국에서는 지도급 평신도를 뽑아 교육시키고 그들에게 합법적인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신부를 보좌하게 하고 신부가 없는 지역에서는 신부를 대신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회장제도는 박해시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체계화되었고, 신교(信敎)의 자유가 보장된 후로는 더욱더 체계화되어 1923년 회장들의 지도서 ≪회장직분≫의 간행을 계기로 한국 교회에 정착되었다. 회장제도의 변천 및 정착화를 역대 한국 교회지도서를 통해 살펴보면, 1857년 ≪장주교윤시제우서≫(張主敎輪示諸友書)에서 최초로 회장의 직무가 어린이 세례, 혼인에의 입회, 영해회 운영 등으로 명기된 이래 1880년대의 ≪회장규조≫(會長規條)에서는 회장의 위치가 밝혀지고, 1887년의 ≪한국교회지도서≫(Coutumier de La Mission de Coree, 서울 1887)에서는 회장의 중재자적 역할이 뚜렷이 나타나며, 1913년 ≪회장필지≫에서는 회장의 교회사무에 대한 직무가 추가되었고, 이어 1923년 ≪회장직분≫에서는 거의 완전한 체제의 회장제도가 나타난다. 1954년 간행되어 1964년까지 사용된 ≪가톨릭지도서≫의 회장에 대한 내용도 1923년 ≪회장직분≫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그 뒤 회장제도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에 도입된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사목협의회 등의 제도와 조화를 이루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Berneux, 張主敎輪示諸友書, 1857 / 會長規條(한글역본) / 金元永, 會長必知, 행주 1912 / 최루수, 회장직분, 성서활판소, 서울 1923 / 韓國가톨릭指導書, 서울교구출판부, 1954 / 金承柱, 한국 교회 지도서들을 통하여 본 공소회장의 위치와 역할, 大建神學大學 大學院 碩士學位論文, 광주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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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 [영] scepticism [독] Skeptizismus [한] 懷疑主義 [라] scepticismus

인간이 보편적인 진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설. 서양철학사에서 회의론은 프로타고라스의 개인주의적 상대론, 고르기아스의 회의론적 변증법을 거쳐 피론(Pyrron)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 그는 모든 일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epoche)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또 아카데미학파도 스토아학파의 독단론을 공격하면서 개연적인 지식에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뒤 피론의 회의론이 부활하였다가 고대사회가 붕괴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고대의 회의론은 상대적인 경험적 진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고, 독단적인 형이상학에 반대한 것으로 실증주의적 태도에 가깝다. 그들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불안의 근원인 오류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화(ataraxia)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스의 회의론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배한 중세시대에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근세초 몽테뉴와 베일(Bayle)에 이르러 부활하였다. 이 경우 회의론은 중세사상과 교회의 권위에 대한 싸움에 중요한 사상적 원천의 하나가 되었다. 데카르트는 방법론적 회의론(methodischer Skeptizismus)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전통적으로 확실하다고 인정되어 온 모든 명제에 대해 의심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 근대사상사의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파스칼, 흄, 칸트, 마하 등도 회의론자의 한 사람으로 근대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개연론, 불가지론, 상대론, 주관주의, 내재론(內在論), 실증주의, 실용주의, 비합리주의, 허무주의 등에는 회의론의 싹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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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 [한] 回心 [관련] 회개

⇒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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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소원 [한] 會赦溯源 [관련] 성교통고

≪성교통고≫(聖敎通考) 통권(通卷) 제10권으로서 천주교회내의 각 회(會)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 ≪성교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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