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애 [한] 韓信愛

한신애(?∼1801). 순교자. 세례명 아가다. 1800년 강완숙(姜完淑)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고, 주문모(周文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조시종(趙時鍾)의 처. 박해 때 그의 집에서 많은 성서와 성물 성화 등이 발견됨으로써 체포되었는데, 이는 박해 때 발각된 성서 성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한신애는 강완숙 등 4명의 부인들과 함께 갇히어 끝까지 배교하지 않고 1801년 7월 2일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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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자전 [한] 韓佛字典 [프] Dictionnaire Coreen Francais

원명은 ≪한불자뎐≫. 우리나라에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이 편찬한 사전. 최초의 시도는 19세기 중엽 다블뤼(Daveluy) 주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1866년에 일어난 병인박해로 말미암아 수집해 놓은 원고가 모두 소실되고 편찬계획도 무산되었다. 이후의 편찬사업은 리델(Redel) 주교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다. 리델 주교는 병인박해 때 조선을 탈출하여 중국의 상해(上海)와 차쿠(岔溝) 등지에서 재입국을 기다리는 동안 자료수집에 종사하였다. 이 때 김여경, 최지혁 그리고 권치문 등의 조선인 교우들도 편찬작업에 참여하였다. 리델 주교에 의해 ≪한불자전≫과 문법서인 ≪한어문전≫(韓語文典)이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이 1876년 조선교구에 코스트(Coste, 한국명 高宜善) 신부가 배속되었다. 리델 주교는 원고를 코스트 신부에게 넘기고 자신은 조선전교에 전념키로 하였다. 코스트 신부는 원고를 갖고 일본에 건너가 1877년 요코하마(橫濱)에서 인쇄에 들어갔다. 그래서 1880년 <일본의 소리>(Echo du Japon)라는 잡지를 간행하고 있던 레비(Levy) 인쇄소에서 사전을 출판하게 되었다. 판형(版形)은 4 · 6배판으로 694면에 약 11만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 책의 구성은 서설, 본문, 부록으로 이루어졌다.

서설에는 범례(凡例)와 한글의 불문자화(佛文字化)에 관한 설명을 실었다. 615면에 이르는 본문에는 우리말을 알파벳순으로 나열하고, 그 옆에 발음을 알파벳으로 표기하고, 한자를 제시했으며, 다음에 그 말뜻을 프랑스어로 나타내고 있다. 부록은 ‘∼하다’와 ‘∼이다’의 활용법(活用法)과 한국 지명사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불자전≫은 이 땅에 도입된 천주교가 토착화하는 데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말과 문법의 연구에 선구적인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Choi Andreas, L’Eglise Catholique au service de la langue Coreenne au cours du XIXe siecle, Neue Zeitschrift fur Missionswissenschaft, Schweiz 1961 / 홍이섭, 다블뤼 신부의 조선연구에 대하여, 향토서울, 2 / 강충호, 19세기초에 있어서 서양인 선교사의 한국어연구, 동서문화,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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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들본당 [한] ∼本堂 [관련] 진안본당

1921년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全羅北道 鎭安郡 馬靈面 延章里)에 창설된 전주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모 무염시태. 한들본당은 진안본당의 공소로 출발하여 1921년 진안본당 주임이던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본당을 진안군 연장리로 이전함으로써 진안본당의 후신으로 창설되었다. 1922년 성당이 건축되고, 1936년에는 한들 해성학교가 개설되어 교우 자녀와 빈민아동들에 대한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 후 폐쇄되었던 진안본당이 1943년 다시 본당으로 재출발하게 되자 당시 주임이던 이기수(李基守, 야고보) 신부가 진안본당으로 전임되고 후임으로 허일록(許日錄, 다두) 신부가 부임하였고, 1951년 다시 김반석(金盤石, 베네딕토)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진안본당에 병합, 공소가 되었다. 그러나 1978년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어 소순형(蘇淳炯, 베르나르도) 신부가 부임, 사제관을 신축했고, 1981년 범영배(范永培, 라파엘) 신부가 부임하여 현재까지 사목하고 있다. 1983년 말 교세는 교우 수 1,167명, 공소 12개소임. 역대 주임신부 명단은 다음과 같다. 1대(1921. 11∼1931. 2) 이상화, 2대(1931. 2∼1940. 6) 권영조(權永祚, 마르코), 3대(1940. 6∼1943. 4) 이기수, 4대(1943. 5∼1951. 4) 허일록, 5대(1951. 4∼1952. 4) 김반석, 6대(1978. 1∼1981년) 소순형, 7대(1981∼현재) 범영배. (⇒) 진안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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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운 [한] 韓德運

한덕운(1748∼1802).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未詳).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 1790년 윤지충(尹持忠)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다음해 10월에 경기도 광주(廣州) 산골로 이사하여 옹기장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1801년 3월에 서울에 올라왔다가 우연히 서소문 밖 길가에 버려진 시체가 2월 26일에 순교한 홍낙민(洪樂敏)임을 확인하고 그의 아들 홍재영(洪梓榮)에게 연락하여 함께 그의 시체를 고이 매장하였다. 그는 용감하고 의협심이 강하여 배교자들을 엄하게 꾸짖었는데, 1801년 11월 12일에 그도 체포되어 1802년 1월 30일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참수되어 치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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