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며 봉사하는 평신도 신심단체. 1921년 9월 7일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있는 마이러하우스(Myra House)에서 첫모임을 갖고, 1925년 11월 간부회의에서 레지오 마리에(Legio Mariae, 마리아의 군대)라는 명칭을 채택하였다. 한국에서는 1953년 5월 31일 당시 광주교구장 서리 헨리(Henry) 신부의 주선으로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시작되었다. 학생 레지오 마리에를 제외하고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18세 이상이 되어야 하며, 매주일 회합에 참석하여 기도와 영적 독서와 활동보고를 하고, 일주일 동안 최소한 2시간 이상의 사도직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회원들이 돌아가며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냉담자들의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 한편 실제적으로 활동하는 회원과 이 회원들을 돕는 협조회원을 두고 있다. 이 단체의 조직은 로마제국 당시의 군대조직을 본받아 가장 기본적인 단위조직을 프레시디움(Praesidium)이라 하고, 2개 이상의 프레시디움이 연합된 것을 꾸리아(Curia)라고 한다. 이러한 꾸리아의 협의체를 꼬미시움(Comitium)이라 하며, 한 지역 혹은 국가에서의 최고 협의체를 세나투스(Senatus)라 하는데, 이 세나투스 밑에 레지아(Legia)라는 협의체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각 지역 혹은 각국이 연합한 세계협의체를 콘칠리움(Concilium)이라 한다. 현재 한국 내에는 서울 세나투스(1978. 12. 23)와 광주 세나투스(1978. 7. 15) 산하에 수원 레지아와 대구 · 부산 레지아 3개가 구성되어 있고, 그 산하에 43개 코미시움과 380개의 꾸리아, 6,552개의 프레시디움이 조직되어 있다. 1980년 11월 22일 서울에서의 레지오 마리에 창단 25주년 기념을 겸한 제1차 민족복음화대회를 서울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전국 규모로 실시한 뒤 제2차 민족복음화대회는 수원 공설운동장에서 레지오 마리에 창설 60주년과 수원 레지아 승격을 기념하기 위해 1981년 5월 5일 실시하였다. 1981년 5월 30일부터 이틀간 제2차 전국 코미시움 및 의장단 회의를 개최하여 민족복음화대회에 대한 반성 및 평가와 아시아지역 레지오 마리에 협의체 설립문제, 북한 선교문제 등을 협의하였다.
한공렬 [한] 韓-烈
한공렬(1913∼1973). 대주교, 제2대 전주(全州) 교구장. 제6대 광주(光州) 대교구장. 세례명 베드로. 1933년 서울 경복중학교를 졸업하고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 1939년 동(同)교의 졸업과 함께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일본에 유학, 호오세이(法政)대학 법문학부를 졸업, 1945년 귀국하여 인천 박문여자중 · 고등학교장, 1946년 충남 서산(瑞山)본당 주임신부, 1948년 성신대학(聖神大學)[현 가톨릭大學] 교수, 1949년 동대학 부학장, 1954년 동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고 성신대학 학장으로 재직중인 1961년 2월 전주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 해 3월 20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으며 이어 1971년 7월 14일 대주교로 승임됨과 동시에 광주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1973년 2월 심근경색증으로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 중 3월 7일 사망, 유해는 광주 남동본당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학춤 [한] 鶴舞
조선조시대(朝鮮朝時代) 형벌(刑罰)의 일종. 수형자(受刑者)의 옷을 벗긴 뒤 양 팔을 뒤로 젖혀 엇갈리게 하여 묶고 허공에 높이 매달아 사방에서 채찍이나 몽둥이로 때리는 악형(惡刑)으로, 허공에 매달려 형벌을 받는 수형자의 모습이 학(鶴)의 춤추는 모습과 비슷한 데서 이 형벌의 이름이 유래한다. 박해 중 체포된 많은 교우들을 배교(背敎)시키기 위해 주뢰질, 치도곤, 육모매질, 사모창, 톱질, 압슬 등과 함께 이 형벌이 사용되었다.
하한주 [한] 河漢珠
하한주(1909∼1984). 수원교구 소속신부. 세례명 요셉. 경상남도 창녕(昌寧)에서 태어나, 1935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 해 5월 15일 사제로 서품되어 군산본당 보좌신부로 첫 성직생활을 시작하였다. 1937년 전주교구가 지목구로 설정되자 대구교구에서 전주교구로 이적되었고 1937년 이리본당 주임, 1939년 장수본당 주임을 거쳐 1952년 안양 성 라자로 마을 원장, 1959년 평택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평택본당 재임 중이던 1963년 수원교구가 신설되자 다시 수원교구로 이적되었다. 그 후 1967년 이천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던 중 1973년 은퇴, 수원교구 주교관에서 생활하다가 1984년 8월 7일 수원 성 빈센트병원에서 노환으로 선종하였다. 평소 바쁜 사목활동 중에서도 시조(時調)에 심취, 작품활동을 통해 신앙과 구도의 자세를 표현하여 생전에 ≪태양의 노래≫를 비롯한 4권의 시조집을 간행하였다.
하칠계 [한] 下七誡 [관련] 십계명
십계명 가운데 인간 서로간의 수평관계를 규정한 일곱 계명, 즉 “부모에게 효도하라, 사람을 죽이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을 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 하칠계는 신명기의 전승대로 아우구스티노가 분류한 십계명의 체계에 의한 것이며, 출애굽기의 전승에 바탕을 둔 필로의 분류, 즉 대다수 개신교가 채택하는 체계에 따르면 하육계가 되는 셈이다. (⇒) 십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