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꾹서 [한] ∼書 [라] Prophetia Habacuc [영] Book of Habacuc

1. 칼데아인의 등장 : 아람족에 속하는 칼데아인들이 기원전 8세기에 바빌론에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나보폴라사르(Nabopolassar, 기원전 625∼605년)의 영도 아래, 메디아인들과 연합전선을 펴고 아시리아에 전쟁을 걸었다. 그리하여 칼데아의 나부코도노소르(Nabuchodonosor)는 아시리아의 최후 방어진을 분쇄하고 이집트와의 카르케미시전투(기원전 605년)에 승리하게 되자,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전역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다는 신제국을 수립한 칼데아인의 침입과 압정 하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기원전 597년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기원전 597년에 공략당했고, 기원전 587∼586년에 와서는 함락되었으며 뒤이어 유다도 패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바꾹서는 바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역사의 전환점에서 생겨난 작품이다.

2. 인물 : 우리는 하바꾹 예언자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다니엘서 14장 33절 이하에 다소 이 예언자에 대한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는 ‘미드라시’(Midrash)로서 교훈적인 설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바꾹서 안에 있는 시편과 하바꾹 1장 2-4절의 신탁이 시편의 한 유형인 애원시와 비슷하다고 하여, 하바꾹서의 저자와 시편을 저작한 성전시인과의 친분관계를 논하는 학자도 있지만, 그것도 단편적인 추정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바꾹은 나훔과 마찬가지로 우선 미지의 인물로 남겨 두는 수밖에 없다.

3. 메시지 : 제3장의 시편을 포함한 전 예언서가 하바꾹 예언자의 작품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M. Delcor, E. Cothenet). 그리고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대별해 볼 수 있다.

① 하느님과 예언자의 대화 : 1장 2-4절에는 유다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의에 대해 첫 번째 탄식이 발해지고 있다. 뒤이어 나오는 1장 5-11절은 여기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인데, 하느님께서는 의외로 칼데아백성을 내세워 당신의 위력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저자는 1장 12-17절에서 칼데아인들의 착취와 만행을 다시 개탄하고 불경스런 이교도의 승리가 결코 합당하지 못함을 호소한다. 이 때 하느님은 폭군 칼데아인들이 멸망하리라고 선언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백성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는 한 생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마지막 대답이다(2:1-4).

② 압박자에 대한 저주(2:5-19)와 하느님께 대한 예언자의 신뢰(2:20).

③ 시편[註1] : 제3장의 시편에서는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의 분명 개입하리라는 영탄(詠嘆)이 발해진다. 이 장은 판관기 5장 및 신명기 33장을 연상시켜 주며, 시편의 주제를 이용하고 있다. 이 예언서가 예배 거행을 위해 작시되었다거나, 전례문(典禮文)으로 조작되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J. Trinquet). 이는 이 예언서의 메시지가 나훔서의 전갈과 그 성격 면에서 하등의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

하바꾹은 당시 유다 왕국이 처한 역사적 현실을 예언자적 안목 하에서 명상케 한다. 이는 3장의 시편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 과거 하느님이 행한 역사적인 위업(偉業)을 상기시키면서, 당시의 원수들도 하느님의 처벌을 받게 되리라 소망하며 멀지 않은 장래에 하느님이 극적으로 개입하리라 확신케 한 것이다. 하바꾹의 ‘예언자적 명상’의 성격은 나훔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이는 한 마디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하바꾹서에 제기된 문제는 의인과 악인의 문제이다(예레 12:1-3 참조).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악인이란 노도와 같이 침범하여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칼데아인이며, 의인이란 이러한 이교도의 승리에 충격을 받은 유다 왕국의 백성이다. 하바꾹은 이스라엘이 절망과 고뇌 가운데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께 충성(emunah)하는 것뿐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주님께 충성하고 신뢰(aman)하라는 이사야의 메시지(이사 7:96)를 재천명한 것이다. 사도 바울로는 로마 1:17에서 하바꾹의 이 메시지를 보다 심화시키고 있으니[註2], 의인이 살아가야 할 방편은 오직 믿음(piotis)인 것이다. (徐仁錫)

[註1] H. Bevenot, Le Cantique d’Habaquq, RB, 1933, pp.449∼525; W.F. Albright, The Psalm of Habakkuk, in: H. Rowley, Studies in OT Prophecy, Edinburg 1950, pp.1∼8; P. Beguerie, Le Psaume d’Habaquq, in: Etudes sur les prophetes d’Israel, Paris 1954, pp.53∼84; M. Delcor, La geste du Yahve au temps ds I’Exode, et l’esperance du psalmiste en Habacuc III, in: Miscellanea Biblica: B. Ubach, Montserrat 1953, pp.287∼302 참조. 쿰란에서 발견된 하바꾹 주해서(Pesher)를 보면 하바 3장이 없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M. Delcor, Le Midrash d’Hab., Paris 1951, p.2 이하, W.H. Brownlee, The Text of Habakkuk in the Ancient Commentary from Qumran, JBL, Monogr. XI, 1959, J.G. Harris, The Qumran Commentary on Habakkuk, London 1966. 참조.

[註2] J. Cambier, L’Evangile de Dieu selon l’Epitre aux Romains, Bruges 1967, pp.42∼46; E. Cothenet, SDB, VII. Col. 809∼810.

[참고문헌] P. Humbert, Problemes du livre d’Habaquq, Neuchatel, 1944 / ED. Nielsen, The Righteous and Wicked in Habaquq, in, Stud. Theol. VI, I, Lund 1953 / E. Cothenet, Prophetes-Habacuc, SDB VII, Col. 791∼811, Paris 1970 / W.H. Brownlee, The Placarded Revelation of Habakuk, JBL 82,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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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통회 [한] 下等痛悔 [라] attritio [영] attrition [관련] 참회

죄의 용서를 받으려는 참회자의 참회 동기가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에 있지 않고, 참회가 신앙의 다른 동기에 기초할 때, 예컨대 죄를 끊고 하느님을 섬기지 않으면 처벌받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참회하는 태도. 불완전한 참회라고도 한다. (⇒)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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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노 [라] Hadrianus

Hadrianus, 6세(1459∼1523). 최후의 독일인 교황. 유트레히트(Utrecht, 현 네덜란드령)의 아드리안 플로렌츠 데달(Adrian Florensz Dedal)에서 태어났다. 루뱅 대학에서 신학을 배웠으며, ‘공동생활 형제회’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루뱅대학 신학교수로 재직, 1497년 루뱅의 성 베드로 성당 수석사제가 되었으며, 그 후 대학의 총장을 두 번 지냈다. 1507년 칼 5세의 사부(師傅)가 되어 그를 위해 스페인 왕국의 완전한 상속권을 확보케 했고, 1516년 이래로 스페인의 추기경이자 섭정(攝政)인 히메네스(Ximenez de Cisneros)와 협력해서 스페인 통치에 종사, 히메네스가 죽은(1517년) 뒤에는 혼자서 담당하였다. 한편 1516년 스페인 토르토자(Tortosa)의 주교, 이듬해 아라곤 및 나바라의 종교재판관, 1518년 카스틸랴 및 레온의 종교재판관 겸임, 1517년 추기경이 되었다. 1519년 칼 5세가 대관식 때문에 로마에 갔을 때 그는 섭정을 맡아보았고, 1520∼1522년의 카스틸랴 폭동을 잘 진압하였다. 1522년 그 영성(靈性)과 학식에 의해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교황으로서 주요과제는 교회 개혁에 의해 종교개혁 운동을 억제하는 일, 그리고 터키인(人) 침입에 대항해서 그리스도교 제국(諸國)을 동맹케 하는 일이었다. 독일국정에 대해서는 1522∼1523년의 뉘른베르크 국회에 교황대사 키에레가티(Franc Chieregati)를 파견하여 개입하였다. 칼 5세와 프랑스와 1세의 화평에 진력했으나 허사로 끝났다. 모든 곤란에 공정을 잃지 않고 대처했으나, 마침내 적의(敵意)를 품은 프랑스와 1세에게 강제(强制)당해 칼 5세와 방어동맹을 체결하게 되었다(1523년 8월 3일). 그의 사목(司牧)의 관심은 스위스, 스칸디나비아, 폴란드, 헝가리에 쏠렸으나 환멸에 그친 곳도 있었다. 또한 종교개혁을 억제하기엔 그의 교황즉위가 너무 늦었었고, 실제로 종교개혁과 대항하기엔 그의 죽음이 너무 일렀다. 그의 수많은 계획은 그 의도의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엄격함 때문에 도리어 사람들의 반감을 샀다. 그러나 가톨릭세계의 부흥과 하드리아노 6세의 이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오늘날 일반적으로 여러 교황 중에서도 매우 존경할 만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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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응 [한] 河大應

하대응(1914∼1983). 음악가. 세례명 즈가리야. 강원도 홍천(洪川)에서 출생. 1930년대에 도일(渡日), 동경(東京)의 동양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성악을 전공하였고 동(同)교에 재학 중이던 1936년 전 일본 음악콩쿠르 성악부에서 1위 없는 2위로 입상했으며 1937년 동교를 졸업하고 귀국, 국내를 비롯하여 만주 일대까지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 뒤 수도원을 방문하게 된 계기로 종교음악에 심취하여 노기남(盧基南) 주교와 장면(張面) 박사의 권면으로 영세, 입교한 뒤 1939∼1952년까지 서울 가톨릭합창단을 지휘하였고 1954∼1980년까지 효성여대 음대에 재직, 1965년 예총 경북지구 음악협회 고문, 1970년 동 지도위원, 1973년 대구시립교향악단 자문위원 등을 겸임하는 한편, 소월(素月)의 시(時)에 곡을 붙인 많은 가곡과 종교음악 등을 작곡, 발표하였다.

1965년 경북문화상, 197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고, 1983년 5월 29일 미국 오하이오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하대응 가곡집≫(1963), ≪산≫(1973) 등의 작곡집과 <천주공경가>, <못잊어>, <그리움>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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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관련] 천주의 종

⇒ 천주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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