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원] Piero della Francesca [관련] 프란체스카

⇒ 프란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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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악수선가 [한] 避惡修善歌 [관련] 천주가사

대표적 천주가사(天主歌辭)의 하나. 1850~1860년에 작사되었고 저작자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내용 · 문체 · 구성 등이 최양업(崔良業) 신부 저작의 천주가사들과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저작자는 최양업 신부로 추정된다. 4 · 4조(調)의 기본운율에 총 344행(行)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용은 제목 그대로 악(惡)을 피하고 선(善)을 닦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천주가사들이 교우들을 대상으로 작사된 것에 비해 이 가사는 예비자들을 대상으로 작사된 것이 그 특징이다. 이 가사는 1850~1860년대의 천주가사집인 ≪사주구령가≫(事主救靈歌) 속에 <사향가>(思鄕歌), <삼세대의>(三世大意) 등과 함께 수록도어 있다. (⇒) 천주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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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숑 [원] Pichon, Leon

Pichon, Leon(1893~1945). 신부, 피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한국명 송세흥(宋世興). 프랑스에서 출생. 파리 외방전교회를 졸업한 뒤 1921년 11월 28일 사제서품을 받고, 이듬해 1워 24일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충남 공세리(貢稅里), 강원도 이천(伊川) 등지에서 사목하다가 1927년 용인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전입되었고, 이어 명동본당, 경기도 덕정리(德亭里)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하였다.

평소 한국 천주교회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프랑스의 각 도서관과 한국내의 천주교회사 자료를 수입, 연구하여 1933년부터 1936년까지 <가톨릭 청년>지(誌)에 11편의 논문(論文)을 발표하였고 1938년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서한 16통과 김대건 신부의 연보 · 전기 등을 수록한 ≪조선성교사료≫(朝鮮聖敎史料, Pro Corea Documenta)를 편찬, 간행하였다. 그러나 교회사연구의 완성을 맺지 못하고 1945년 2월 덕정리본당 관내의 공소순방 중 병을 얻어 2월 25일 명동 성모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유해는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술로는 <조선가톨릭사의 편영(片影)>(가톨릭청년, 제1권 제5호~제2권 제4호, 1933년 10월호~1934년 4월호), <조선가톨릭사 부록>(가톨릭청년 제2권 제6호, 1934년 6월호),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의 약력>(가톨릭청년 제2권 제7호, 1934년 7월호, <조선 가톨릭교회 은인 소(蘇) 주교>(가톨릭청년 제3권 제9~10월호, 1935년 9~10월호), <정다산(丁茶山)의 신앙여부>(가톨릭청년 제3권 제11호, 1935년 11월호), <나신부 서간수편(羅神父書簡數篇)>(가톨릭청년 제4권 제1호, 1936년 1월호), <나신부의 입선경로(入鮮經路)>(가톨릭청년 제4권 제2호, 1936년 2월호), <정다산(丁茶山)과 조선가톨릭 초창기>(가톨릭청년 제4권 제4호, 1936년 4월호), <고(高)주교 관리시대의 조선가톨릭>(가톨릭청년 제4권 제7~9호, 1936년 7~9월호), <이(李)신부 · 장(張)주교 관리시대의 조선가톨릭>(가톨릭청년 제4권 제11호, 1936년 11월호), <장(張)주교 관리시대의 조선가톨릭>(가톨릭청년 제4권 제12호, 1936년 12월호)과 ≪조선성교사료≫(Pro Corea Documenta, 서울교구, 193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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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 [원] Fisher, John

Fisher, John(1469~1535). 성인. 순교자. 축일은 6월 22일. 영국 로체스터의 추기경 주교. 요크셔주 비벌리에서 태어났다. 1491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 특별연구원이 되면서 사제로 서품. 1497년 동대학 마이클하우스 학장(學長), 1501년 부학장, 1505년 퀸즈 칼리지 학장이 되었다. 1504년 로체스터 주교가 되어 학장을 겸무, 에라스무스(D. Erasmus)를 초빙하여 학적 수준 향상을 도모한 외에도 크라이스트 칼리지(1505년), 세인트 존즈 칼리지(1511년)의 창립에도 진력하였다. 일찍이 헨리 7세의 모후(母后) 마거리트, 헨리 8세의 제1비 캐더린의 고해신부를 지낸 바 있고, 종교개혁 풍조에 항거, 로마교회 신앙을 견지, ≪루터주의 반박론≫(Confutatio assertionis Lutheranae, 1523)을 저술하였다. 헨리 8세의 이혼문제에는 왕비에게 가담하여 왕에 반대하고 로마 교회로부터의 분리에도 반대하였다. 수장령(首長令, 1534년)을 인정치 않았기 때문에 런던탑에 유폐되었고, 1535년 옥중에서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 추기경에 임명되었으나, 그해 6월 헨리 8세에 의해 반역자로 참수형을 받았다. 그의 무덤은 피터 애드 빙쿨러 탑성당에 함께 순교한 모어(Thomas More)의 무덤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1886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복(諡福), 1935년 순교 400주년에 즈음하여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명저 ≪성찬론≫(De veritate corporis et sanguinis Christi in Eucharistia, 152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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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공의회 [라] Concilium Florentiuum [영] The Council of Firenze [한] ~公議會 [관련] 공의회

1438~1445. 제17차 세계공의회. 터키로부터의 방위를 요청해 온 그리스 정교회와의 일치를 모색하기 위해 교황 에우제니오(Eugenius) 4세(재위 : 1431~1447)가 소집. 공의회 우위론자들이 우세했던 바젤 공의회(1431~1449년)가 교황에 의해 페라라(Ferrara, 1438~1439년), 피렌체(1439~1443년), 로마(1443~1445년)로 이전되면서 모두 피렌체 공의회 회기로 간주되었다. 페라라에서는 동서방교회에서 700명 가량이 참석하였는데 성신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하였다는 교리, 누룩 없는 빵을 면병으로 사용하는 문제, 연옥 교리, 교황 우위권 등이 쟁점이 되었다. 8개 회기로 이루어진 피렌체 회의에서는 동방교회측이 서방교회측의 입장을 대부분 접수함으로써 교황의 우위론, 신경(信經)에 ‘필리오케’(Filioque)문구를 첨가하는 문제, 성체와 연옥 교리 등이 확정되었다.

1439년 6월 동서방교회 사이의 일치교령이 조인되고, 그리스측 참석자들이 떠난 뒤에도 바젤 공의회에서 야기된 우위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는 계속되었으며 마침내 공의회에 대한 교황의 우위를 대칙서 (1441. 4)로 선포하고, 바젤 공의회의 공의회우위론자들은 이단으로 파문되었다. 11439년의 일치선언은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에 함락(1453년)됨으로써 그 효력을 잃었으나 다른 전례를 허용하는 신앙의 일치라는 일치 원칙은 이후의 재일치 노력에 계속 반영되었으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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