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엔트공의회 [한] ∼公議會 [라] Concilium Tridentinum [영] Council of Trent

1545∼1563년까지 약 18년간에 걸쳐 이탈리아의 북부 트리엔트(현 Trento)에서 개최된 공의회로 종교개혁으로 혼란스러워진 가톨릭 교의(敎義)를 명백히 하였고, 교회개혁을 추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 소집되었고, 율리오 3세를 거쳐 비오 4세의 재위기간에 폐회되었다. 세리판도(G. Seripando), 소토(Dominicus de Soto), 라이네스(D. Lainez), 살메론(A. Salmeron), 그로퍼(J. Gropper), 베르타노(P. Bertano), 포스카라리(A. Foscarari) 등 저명한 신학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가톨릭 고유의 교의를 확립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대체로 다음의 3기로 구분된다.

① 제1기 : 1545년 개회되어 1548년 정회(停會)될 때까지 약 3년간의 기간으로 이 동안 공의회는 성서만이 신앙의 유일한 원천이 된다고 한 프로테스탄트의 주장을 이단으로 배척하고, 전통적인 해석에 따라 성서와 성전(聖傳) 모두가 신앙의 원천임을 재확인하였다. 아울러 불가타역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였고, 성서의 해석권은 교회만이 갖는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또한 프로테스탄트의 은총절대설과 정의가산설을 배척하고 원죄와 의화에 대한 정의를 명백하게 규정하였다. 성사에 대한 교리도 제1기에 규정되었다. 황제 칼과 교황 사이의 관계 악화로 중단되었다.

② 제2기 : 교황 바오로 3세의 후계자 율리오 3세가 1551년 개회하여 다음 해 독일 제후들의 봉기로 좌절될 때까지 약 1년간의 기간으로 성체성사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존(現存)’과 ‘실체변화’(實體變化), 고해성사, 병자성사, 사죄(赦罪), 비밀고해, 보속 등의 교리가 정의되었다. 제2기에는 제1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독일지방의 주교들이 참석하였고, 황제의 입김으로 프로테스탄트들도 참석하였다.

③ 제3기 : 가장 성과가 많았던 회기로 제2기가 끝난 뒤 약 10년 후인 1562년에 개회되어 이듬해 폐회되었다. 이 회기 중 가장 중요한 심의대상은 성체성사와 미사, 사제서품, 혼인성사에 관한 것들이었고 이에 관한 교리가 규정되었다. 그밖에도 모든 성인의 통공, 성인유해의 공경, 연옥, 대사, 성화상의 사용, 교구신학교 설립, 주교의 임명, 교구 시노두스, 강론 등에 관한 교령이 반포되었다.

예딘(H. Jedin)이 “트리엔트 공의회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대한 교회의 교도직으로 응답한 최고의 대답이었다”고 한 바대로 프로테스탄트가 제기한 문제를 수렴하여 가톨릭의 신앙과 교리에 대해 명확히 함으로써 교회의 영성생활에 기반을 제공하였고, 그 뒤 계속된 교회의 개혁에 기초를 닦아 놓았다. 공의회의 신앙고백은 공의회가 폐막된 1년 후인 1564년 <트리엔트 신앙고백>(Professio fidei Tridentina)이란 이름으로 발표되었고, 그밖에 공의회에서 마무리짓지 못한 문서들은 후임 교황들에 의해 차례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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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 토바고 [영] Trinidad and Tobago

서 인도제도의 남동단, 베네수엘라 북동쪽에 있는 영연방에 속하는 공화국. 베네수엘라 앞바다의 트리니다드섬과 토바고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 5,130㎢, 인국 약 120만명(1998년 추계)이다. 인종 구성은 흑인 45%, 인디언 35%, 혼혈 16%, 백인 2%이며, 언어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으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이 사용되고 있다.

트리니다드섬은 1498년 콜룸부스의 제3차 항해 때 발견된 이후 18세기말까지 네덜란드 · 프랑스 · 영국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점령한 바 있었으나 스페인 점령하에서 원주민은 전멸되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사탕수수 농원에 투입되었다. 1802년 아미앵조약으로 트리니다드가 정식으로 영국령이 되었고, 188년에는 토바고섬도 영국령이 되었다. 가톨릭 신자는 40만 3,000명(1982년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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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룰로스교회회의 [한] ∼敎會會議 [영] Council of Trullo

69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종교회의. 동방의 주교들에 의해 소집되었고, 그들만이 참가하여 제5차(533년), 제6차(680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다루다가 결정을 보지 못했던 사항들을 다루었다. 이 회의는 성사(聖事)로 집행된 결혼이 합법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으나 교황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방교회가 재혼을 허용하는 것은 이 회의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의가 트룰로스 교회회의라고 불리는 까닭은 회의가 개최된 곳이 그리스어로 트룰로스(Trullos)라고 불리는 ‘둥근 천정’이 있는 황제의 궁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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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피스트회 [한] ∼會 [라] Ordo Cisterceinsium Reformatorum [영] Trappists [관련] 시토회

1098년 프랑스의 시토(Citeaux)에 세워진 수도회, 즉 시토회 중 ‘엄률(嚴律) 시토회’의 주요 수도회. 1892년 시토수도원이 모원(母院)으로 회복될 때까지 라 트라프(La Trappe)가 엄률 시토회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1664년 랑세(A.J. Le B. de Rance)에 의해 개혁의 물결이 일게 되었으며 이 때 ‘트라피스트’란 이름이 생겨났다. 이는 이전의 시토회의 성격을 보유하면서 더욱 엄격성을 추가한 회였다. 트라피스트의 생활은 ‘기도와 참회, 침묵과 노동’으로 요약된다. 현재 85개 수도원에 3,100명의 회원이 있다. (⇒) 시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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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빙겐학파 [한] ∼學派 [영] Tubingen School [독] Tubingen Schule

18∼19세기의 독일의 튀빙겐대학 교수들에 의해 형성된 학파로 가톨릭적인 구(舊)튀빙겐학파와 프로테스탄트적인 신(新)튀빙겐학파로 구분된다. 스토르(G.C. Storr, ?∼1805)에 의해 창시되어 쿤(J. Kuhn)과 그 제자들의 의해 계승된 구 튀빙겐학파는 역사적 방법과 사변적 방법을 유기적으로 통합시켜 신학의 독특한 방법론을 개발하였고, 근대의 사상사조를 반영한 근대철학을 신학에 도입하였다. 또한 유리주의(唯理主義)와 경건주의(敬虔主義)의 영향을 받고 신학적인 자기 성찰을 통하여 헌대 독일 신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한편 19세기에 이르르면 헤겔의 영향을 받은 바우르(F.C. von Baur)에 의해 신 튀빙겐학파가 형성된다. 바우르는 헤겔철학의 방법론을 신학의 모든 분야에 적용하여 신학에서 역사적 방법론을 개발하였다. 이 방법론은 젤러(E. Zeller), 시베글러(A. Schwegler), 볼크마르(Volkmar) 등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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