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도제도에서 가장 큰 쿠바섬과 약 1,600여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공산화되었으며 정식명칭은 ‘쿠바공화국’이다. 면적은 11만 4,524㎢, 인구는 약 978만명(1982년 추계)이다. 1492년 콜룸부스(Christopher Columbus)에 의해 발견되었고 1511년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해 1898년 독립할 때까지 영국의 군사 점령기(1762∼1763년)를 제외하고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1902년 미서(美西)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를 받다가 1959년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하는 혁명운동에 의해 독립되었다. 쿠바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것은 스페인의 식민통치 기간 중이었다. 현재 국민의 41%인 약 401만명(1982년 현재)이 가톨릭 신자이며 7개의 교구를 갖고 있다. (⇒) 라틴아메리카
쿠랑 [원] Courant, Maurice
Courant, Maurice(1865∼1935). 동양학자. 초대 주한 프랑스 부영사 겸 통역사. ≪조선서지≫(朝鮮書誌, Bibliographie Coreenne)의 저자.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 1886년 파리대학교의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양어학교의 중국어와 일본어 강좌를 1888년에 수료하였다. 외무부 통역단에 들어가 북경(北京)에 파견되었고, 1890년 5월 23일 북경에서 서울로 전임되었다. 약 21개월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조선서지≫을 편찬하였는데 이 책은 19세기말 조선에서 유출된 중요한 한국책들의 소유자 이름과 소재지를 밝혀 놓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취급된다. 이 책의 편찬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은 조선교구 8대 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였다. 1892년 2월 다시 북경으로 전임되었고, 곧 귀국, 결혼 뒤 동경으로 전임, 그곳에서 ≪조선서지≫를 출판했고, 1895년에는 천진(天津)으로 전임되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학부대신 민종묵(閔鍾默)의 요청으로 쿠랑을 학부의 고문으로 초청하려 했으나 러시아 공사 웨베르(Weber)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1896년말 본국으로 귀국, 리용(Lyon) 상업회의소와 리용대학에서 35년간 재직하면서 조선과 관계되는 많은 논문을 남겼다.
주요저서와 논문으로 <한국행정제도 역사일람>(Repertoire historique de l’administration Coreenne, 1891), <한국사의 주요시대>(Les principales Periodes de L’histoire de Coree, la Revue Francaise, Tokyo, 1895∼1897), <9세기까지의 조선>(La Coree Jusqu’au Ⅸe Siecle, 1897), <고구려왕국의 중국비석>(1898), <조선의 종교의식의 연혁과 개요>(Sommaire et historique des cultes Coreens, 1899), <조선과 외국세력>(La Coree et les puissances etrangeres, 1904), <일본의 조선기지, 15세기 이래의 부산>(Un etablissement Japonais en Coree, Pousan depius la ⅩVe siecle, Annales Coloniales, Paris 1904), <중국고전음악에 관한 역사적 연구, 한국음악에 관한 부록>(1912), <두 세계에서의 정치생활>(1908∼1914) 및 <정치학지>(政治學誌, 1903∼1908)에 실린 <극동에 관한 연대기<年代記>) 등이 있다.
쿠데르 [원] Couderc, Vincent
Couderc, Vincent(1859∼1892). 파리 외방전교회원. 조선교구 선교사. 한국성(韓國姓)은 구(具). 프랑스의 부스케(Bousquet)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학으로 공부하여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신부가 되었고 1884년 11월 19일에 파리를 떠나 1885년 5월 5일에 한국에 도착하였다. 곧 황해도 수안에 자리 잡고, 콜레라와 심한 기근으로 참상이 형용키 어려운 이 지방에서 교우들과 힘을 합쳐 복구작업에 노력하던 중, 얼마 뒤 찾아온 로(Rault, 盧) 신부에게 이곳을 맡기고, 새 임지인 강원도 지방으로 갔다. 강원도 지방은 이때 가난이 더욱 심했고 교우들은 뿔뿔이 흩어져 간신히 연명하고 있었다. 천여명이 넘는 교우들이 모여 살게 될 만큼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누구나가 다 성경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였다.
1892년 4월 연례피정에 참가하려고 서울로 가던 도중, 장티푸스가 창궐하던 교우촌에 들러 이를 살피고 올라온 그는 5월 1일 갑자기 고열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 자신도 장티푸스에 걸린 것이다. 동료 신부들의 정성어린 간호도 헛되이 5월 15일 선종하였다.
쾨글러 [원] Kogler, Ignatius
Kogler, Ignatius(1680∼1746).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신부. 중국명 대진현(戴進賢), 자는 가빈(嘉賓). 독일 바바리아주(州)의 란츠베르크(Landsberg)에서 출생하여 1696년 예수회에 입회, 지원기를 마친 뒤 스페인으로 건너가 수련기를 거쳐 1714년 사제서품을 받고 1716년 13명의 선교사와 함께 리스본(Lisbon)을 떠나 중국 마카오에 도착, 선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디었다. 1717년 청(淸)의 강희제(康熙帝)의 부름으로 북경에 가서 천문역산지리서(天文曆算地理書)의 편찬에 참여하고, 1720년에는 조선(朝鮮)에서 온 주청사(奏請使) 이이명(李頤命)과 만나 서양의 역산, 지리, 종교 등에 대해 담론하기도 하였다. 그 뒤 1725년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흠천감감정(欽天監監正)이 되어 사망할 때까지 종사하였고 1731년 예부시랑(禮部侍郞), 1732년 시찰교무(視察敎務), 1738년 예수회 중국관구 부관구장을 역임하였다. 1746년 북경에서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책산≫(策算, 北京 1722), ≪황도총성도≫(黃道總星圖, 北京 1752), ≪의상고성≫(儀像考成, 1744), ≪예감록≫(睿鑑錄, 1736∼1738) 등이 있다.
[참고문헌] 方豪, 中國天主敎史人物傳, 3冊, 公敎眞理學會, 香港 1970 / Pfister, Notices Biographiques et Bibliographiques, Chang-Hai 1932; 馮承鈞(漢澤), 入華耶蘇會士列傳, 商務印書館, 臺北 19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