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서간 [한] ~書簡 [라] Epistolae Catholice [영] Catholic Epistles

가톨릭 서간에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첫째 성서상으로 보아, 신약성서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성 바울로, 성 야고보, 성 베드로, 성 요한, 성 유다의 여러 사도가 쓴 21개의 서간을 총칭하여 ‘서간’이라고 하는데 이중 바울로의 것을 뺀 나머지 7개 서간 즉 야고보의 편지, 베드로의 첫째 편지 · 둘째 편지, 요한의 첫째 편지 · 둘째 편지 · 세째편지, 유다의 편지를 ‘공서(公書), 곧 가톨릭 서간(Catholic Epistles)이라고 부른다. 전례상(典禮上)으로 볼 때는, 미사 준비하는 동안 축문(祝文, Collect) 다음에 사제가 복음서 이외의 성서의 한 부분을 낭독하는 것을 독서라 하며, 주로 성 바울로의 서간으로부터의 발췌이지만, 성 베드로, 성 야고보, 성 유다의 여러 서간, 때로는 사도행전, 묵시록 또는 구약성서 중의 예언서, 지혜서 및 집회서에서 뽑아 낭독하기도 한다. 이러한 낭독이 위에서 말한 공서를 주로 하였을 경우 특히 가톨릭 서간의 낭독이라고 볼 수 있다. 서간을 복음의 봉독에 앞서서 교회가 읽게 하는 까닭은,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려는 땅에 먼저 사도를 보내어,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킨 일이 때때로 있었으므로 이에 따르는 법도에서 생겨난 것이다.

성서 가운데의 21개 서간은, 개인 또는 교회에 보내진 서간인데, 바울로의 것은 14개로서, 개인 또는 단체명으로 호칭되고 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둘째 편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둘째 편지,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둘째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인들게게 보낸 편지가 그것들이다. 그리고 나머지 서간은 발신인, 즉 필자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바울로의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둘째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등 3개 서간은, 2명의 주교에게 보낸 것인데, 수신인에 관한 개인적인 사항이 적고, 오로지 주교의 임무 등에 관한 교훈을 많이 담고 있으므로 ‘사목서간’(司牧書簡, Pastoral Epistles)이라고 호칭된다. 사도서간 중 바울로의 것을 제외한 7개 서간을 특히 ‘가톨릭 서간’ 즉 공서라는 이유는, 요한 2서, 요한 3서가 개인에게 보낸 것이기는 하나, 그밖의 것은 대개가 특정한 교회 상대는 아니며 넓은 범위의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보낸 것이므로 그렇게 지칭하는 것이다. 전례의 경우, 창(唱)미사에서는 부제(副祭)가 서간을 노래하는데, 독서대(讀書臺, Ambo)가 있으면 거기에서 하고, 없으면 제대의 남쪽에 서서 노래한다. 교황 창미사 때, 서간은 그리스, 라틴 두 언어로써 노래함이 상례이다.

[참고문헌] P. Glane, Die Vorlesung der hl. Schriften im Gottesdienst, 1907 / A. Rahlfs, Die alten Lektionen der griechischen Kirche, 1915 / Eisenhofer, Handbuch der Kath. Liturgik, II,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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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사회운동 [한] ~社會運動 [영] Catholic Social Movement [관련] 사회정의

가톨릭 교회는 인류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 모든 인간의 구원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이 보편성을 뜻하기 때문에 교회는 그 누구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는 그 본질이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이며, 사회의 누룩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회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구원의 표지로서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육화(肉化)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귀중한 목숨을 바쳤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특히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교인의 구원의 기준은 보잘 것 없는 이웃에 대하여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마태 25:31-40).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집단으로서 그 임무는 사랑의 실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교회의 역사를 보면 사랑의 공동체의 기능보다도 전례의 공동체라는 기능이 더 많이 드러난 것 같다. 환언하면 신앙을 통한 자기영혼의 구령에만 집착하여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교회의 현대화 과정 속에서 가톨릭 교회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황 레오 13세의 <레룸 노바룸>(노동헌장, Rerum Novarum, 1891) 이후 많은 회칙을 통하여 버림받은 자,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 억압당한 자들에 대하여 교회는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것인가를 강조하여 왔다. 이에 따라 노동자를 위한 사목, 농민을 위한 사목, 병자나 노인을 위한 사목이 활발히 전개되어 왔으며, 특히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사회적 예언직이 성실히 수행되어 왔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사회운동은 넓게는 모든 사회적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는 정의 · 평화운동 · 노동자 · 농민을 위한 운동과 각종 구조사업 · 의료사업 · 교통사업 등 사회복지사업으로 구별할 수 있다.

1. 정의평화운동 : 가톨릭 교회의 사회운동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사회정의와 인류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운동이다. 거기에는 인권의 수호와 신장을 위한 운동도 포함된다. 이 운동을 위하여 바티칸 교황청에는 1970년대에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가 조직되었고, 1975년에는 <교회와 인권>이라는 문헌을 발표하여 정의와 평화와 인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다양한 시대의 표징들 가운데의 하나로서, 전세계에 걸쳐 날로 절실하게 인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증거이다. 이는 인권을 조직적 사회 생활의 핵심으로 보는 개인이나 집단의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이 운동은, 오늘날 인권이 조롱을 당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직 너무도 흔히 무시되고 있거나 형식적인 인정만 받고 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인격적 관리의 신장은 바로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고, 동시에 평화는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기 때문이다(세계인권선언 25주년에 즈음하여 유엔에 보낸 교황 바오로 6세의 메시지).

상기한 바 교황청의 정의평화운동은 각국에 ‘정의평화위원회’를 조직케 하였으며, 1976년에 한국에도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주교회의 산하의 공식기구로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발족이래 한국 사회 안에서의 부정과 부조리를 규탄하고, 특히 인권의 신장과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많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지학순(池學淳) 주교의 구속에 즈음한 선언문, 명동 3.1기도회 사건과 관련된 각종 성명서, 동일방직 오원춘 사건에 대한 성명서 발표 등은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정의운동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가톨릭 신자뿐만 한국 국민에게 많은 희망을 던져 주었다.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운동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활동이다. 이 단체는 교회의 공식기구는 아니지만, 1970년대의 한국 교회의 사회정의운동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단체가 조직된 계기는, 지학순 주교의 구속사건이었으며, 그 뒤에도 계속 사회정의, 인권, 민주회복, 노동자 농민문제를 비롯 학원사태, 언론자유 등에 대해서도 가톨릭 교회의 예언직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이 단체는 주로 한국 교회의 소장사제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하였으며 각 교구에도 조직이 확산되어, 주로 사회문제에 대한 기도회를 개최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차에 걸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에 속해 있는 상당수의 사제들이 구속되거나 투옥되어 많은 박해를 받았는데, 그것은 교회의 사회적 예언적 수행과정에서 많은 십자가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2. 노동운동과 노동청년회 : 이 운동은 1935년 카르디안 추기경이 “남녀 청년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다. 그들은 기계도 아니며 동물도 아니고 오직 하느님의 아들 딸이다. 그들은 생을 잃은 죽은 존재가 아니며, 미래의 인간도 아니고, 오로지 하루하루 생을 영위하는 오늘 여기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인간성과 더불어 천상의 존엄성을 띤 하느님의 귀여운 자녀들이다”라는 정신으로 창설하여 노동자의 구원이 부자의 구원과 똑같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한국 가톨릭 교회가 노동자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에서 부터였다. 1960년대 인천에서 전 미카엘 신부에 의해 가톨릭 노동청년회(JOC)가 창설된 이후 각 교구로 확산하여 교구단위 또는 본당 단위의 가톨릭 노동청년회가 조직되었다.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초기 활동은 주로 교육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1965년 강화도의 심도직물에서 노동청년회에 가입한 노동자에 대한 부당 해고 이후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활동은 보다 적극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71년 영창실업 사건이 일어나자 가톨릭 노동청년회는 억압받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관여하였다. 1972년에는 삼립식품 사건, 한국모방 퇴직금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에도 가톨릭 노동청년회는 유린당한 노동자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눈물겨운 투쟁을 전개하였다. 1973년의 광진섬유 사건 때도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활동은 대단하였다. 1975년 1월에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특히 가톨릭 노동청년회 총재주교였던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자 지주교의 석방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1977년 1월 15일 원주교구 가톨릭 노동청년위원회 연합회는 <우리의 주자>이라는 노동자의 인권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활동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인천 동일방직 사건이었다. 1976년 4월 인천에 있는 동일방직주식회사는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활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JOC의 위원을 부당 해고하였다. 이에 항의하여 가톨릭 노동청년회원들은 단식투쟁을 감행하고, 소위 ‘똥물사건’까지 당하면서도 용감하게 투쟁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78년 4월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노동자의 권익을 수호하기 위한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한국 천주교 정의 평화위원회도 그리스도 교인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그 뒤 1978년에 마산 자유수출지역 사건과 태평섬유분회 사건이 일어났고, 1979년에는 원주제사 사건과 충남방적 종교탄압 사건 등이 일어났다. 이 때에도 노동청년회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복음적 정신으로 큰 활동을 벌여 노동자의 인권을 위하여 크게 공헌하였다.

요약컨대 한국 천주교회는 노동청년회를 중심으로 가난하고 버림받은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그 사명을 다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3. 농민운동과 가톨릭 농민회 : 가톨릭 농민운동의 중심은 ‘한국 가톨릭 농민회’인데, 1964년 8월 가톨릭 노동청년회 안에 농촌청년부로 출발하였다. 그 뒤 1966년 9월 노동청년회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가톨릭 농민회는 1930년대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제국에서 시작되어 오늘날에는 약 70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 농민회는 농민이 복음정신에 따라 인류사회에 봉사하고 농촌환경을 혁신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하는 자발적 운동으로 청년교육, 새 농촌사회의 창조, 사회 안에서 교회를 현존케 하는 것이 목적이요, 사명이다.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가톨릭 농민회는 농촌청년 자신의 문제 및 환경 안에서의 당면문제를 재발견하고 환경의 개선과 문제를 해결하도록 농촌청년을 이끌며 또한 그리스도 교인 농촌청년들이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그들 환경 안에서 복음의 정신대로 생활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농민회의 활동방법의 원칙은 관찰-판단-실천이다.

가톨릭 농민회의 조직은 지도자 그룹과 일반회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도자 그룹은 각 마을의 대표로 구성한 본당 중심의 조직으로 월 1~2회 정기회합을 가지며 각 마을의 청년 및 환경문제들이 보고되고 공동으로 토의 판단하여 실천활동이 계획되고 연중과제에 의한 계속적인 활동이 집행된다. 자도자팀은 각 마을의 청년 몇 사람을 내정하여 책임지고 도와주며 활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일반회는 본당 내의 지도자, 팀회원 및 기타 청년들의 모임으로서, 때때로 회의를 개최하여 활동의 성과와 지방문제를 연구하고, 모든 청년들을 위한 행사를 개최한다. 이러한 활동 이외에 가톨릭 농민회는 농민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부당한 농업정책을 비판하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1975년 전남 함평군에서는 비료를 살 때마다 출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단보당 200~400원씩 떼는 것에 대하여 항의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또 예비군 경비의 명목으로 호당 700원씩의 돈을 거두는 데 대하여도 항의하였다. 한편 1976년 1월 4일에는 <한국 소작농의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하였으며, 1976년 12월 30일에는 비료 도입에 있어서의 가격 조작을 규탄하고 농민의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수차에 걸쳐서 쌀 수매가격이 정당하게 책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1978년 4월 전남 함평군에서는 ‘고구마 부정수매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톨릭 농민회가 중심이 되어 정부의 부당한 농업정책을 신랄하게 공격하므로 드디어 농민의 주장이 관철되었다. 이 사건은 비단 전남 함평군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톨릭 농민회 이외에 한국 천주교 주교단, 정의구현 사제단,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등이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 인하여 가톨릭 교회의 사회운동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여실히 입증하였다. 이 사건은 안동교구 가톨릭 농민회의 청기분회장 오원춘이 수사기관에 의하여 납치 실종된 사건으로 가톨릭 농민운동에 대한 정부의 탄압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이 때에도 가톨릭 농민회는 전국적 차원으로 투쟁하였으며 한국 교회 전체가 이에 가담하였다.

3. 기타 사회운동 : 이 밖에도 가톨릭 교회의 사회운동 중 인성회와 신용협동조합의 활동은 큰 의의가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인성회(人成會)는 1975년 6월 26일자로 주교단에 설치한 교회의 사회사목 조정기구로서 교회 내의 제반 구호, 자선, 복지, 개발사업과 활동을 격려시키며 활성화시키고 상호 유기적인 협력과 조화를 이루어 줌으로써 교회의 대 사회적 봉사를 원활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인성회는 정의평화위원회와 함께 교회 사회사목을 담당하는 주교회의의 전국위원회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기능을 원활하고도 효과적으로 수행키 위하여 첫째로 교회인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헌신하며 이들을 위하여 또한 이들과 함께 투신할 수 있도록 교회의 대 사회적 가르침을 일깨우는 의식계발 활동을 주고 하고 있으며, 둘째로는 이러한 활동에 이미 투신하고 있는 교회 내의 제반 그룹 · 단체 · 기관 · 조직에 관한 조정과 활성화 및 정책적인 제시를 갖출 수 있는 안목을 일깨우는 활동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활동은, 긴급 재해대책 활동의 조정, 각종 사회사목 종사단체의 활성화지원, 사회의식계발을 위한 적극적 교구차원 및 분야별 모임과 연수회, 제반 간이 연구조사사업, 각종 자료발간, 제반 회의, 범교회적 신자의식 계발교육인 사순절운동 및 원조업무 조정 등이다. 인성회는 독자적 자체조직보다는 기존 교회 조직을 활성화시키는 최소한의 조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각 교구에 위원회를 설치하여 교구 차원의 사회사목 조정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교구위원회의 대표자와 사회사목 전국기구의 대표자가 전국위원회를 구성하고 있고, 전국위원회는 최소한의 사무국을 두고 있다. 인성회가 한국 교회사목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교황청(콜루눔, 국제카리타스) 및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인간발전 위원회), 선진국과 아시아 각국 인성회의 협력체(인간발전 아시아 협력기구) 및 제반 국제기구(난민위원회 사회사업위원회, 선진국 해외개발 원조기구)의 회원기구로 되어 있다. 인성회는 인간 발전을 위한 교회의 도구이기 때문에 인성회 자체의 발전을 도모하기보다는 교회의 대 사회적 봉사와 투신을 증진시키는 촉매자의 역활을 담당함으로써 교회가 세상 속에서 만민의 구원과 일치를 위한 표지와 도구로 쓰여지도록 하는 활동을 담당한다. 신용협동조합은 하나의 금융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그 활동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상부 상조하는 정신을 각성시키고 있으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협동으로 불굴의 정신을 실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 사회정의 (韓庸熙)

[참고문헌]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사회정의, 가톨릭출판사, 1976 / 명동천주교회, 한국 가톨릭 인권운동사, 분도출판사, 1984 / 교회와 인권, 분도출판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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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사회복지회 [한] ~社會福祉會

위기에 처해있는 이웃을 도움으로써 복지사회 구현에 기여하고 하느님 나라에 모든 사람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1976년 5월 1일 발족한 서울 대교구의 복지기환. 1972년 6월 안경렬(安慶烈), 이문주(李文柱) 신부가 유럽 등지에서 사회사업 관계 견문을 넓힌 뒤 1976년 귀국하여 곧 안경렬 신부를 회장으로 하여 본회가 발족되었다. 주요 사업내용으로는 첫째, 서울교구 내의 사회사업기관들 간에 서비스의 통합 조정의 기능을 맡아 효과적으로 돕는 일, 둘째로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기능이 미개발인 분야에 대해서는 직접 그 기능을 제공하고, 세째로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인력 개발을 추진 확대해 가는 일들로서 1976년 10월 결핵요양소 ‘시몬의 집’을 개설하여 운영하는 이외에 모금활동을 통한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1976년 11월에는 기관지 <나눔>을 창간하여 발간하다가 1980년 12월 서울교구 기관지 <새벽>에 통합되었다. 현재 사무실은 서울 명동 사도회관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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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사회과학단체 [한] ~社會科學團體 [영] Association of Catholic Social Sciences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이라면 교회는 교회와 모든 인류가 몸담고 있는 세상, 즉 사회에 대하여 외면하거나 무관심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만이 완전사회이며 이 세상과 사회는 불완전사회라 하여, 교회는 가급적 사회나 사회문제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어 사회 문제는 바로 인간의 윤리문제이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거나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을 채택함으로써 교회가 모든 사회문제에 대하여 복음적 입장에서 해명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회의 의무라고 규정하였다.(사목헌장 4). 이러한 의미에서 <사목헌장>은 ‘가톨릭 교회의 사회헌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의 사회적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 일찍이 교회 안에는 신화적 입장에서 사회과학을 조명하기 위한 많은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그 중에서도 1936년 국제사회연구연합회(International Union of Social Studies)가 발족되어 《사회원리강령》(A code of social principles)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가정생활, 시민생활, 직업사회, 경제생활, 단체, 국제생활, 초자연적 생활 등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체계화하였다. 이 책은 <사목헌장>의 기본적 자료가 되었으며, 이 연구단체는 그 뒤에도 많은 연구를 계속하여 훌륭한 문헌을 발표하였다. 가톨릭 사회과학 연구단체는 국제적인 단체 이외에 국가별도로 많은 단체가 조직되고 있다.

독일의 ‘사회과학연구소’는 독일주교회의 직속기구로서 독일교회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교회와 사회>(Kirche und Gesellschaft), <가톨릭 사회론>(Katholische Soziallehre) 등 정기적인 학술지를 발간하는 한편 수많은 단행본을 간행하여 독일교회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연구단체에도 좋은 연구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다른 서구라파 국가에서도 가톨릭 교회 내에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단체가 조직되어 교회적 입장에서 그 나라의 사회문제를 분석, 식별, 판단함으로써 교회의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교회의 공식기구로서 사회과학 연구단체가 조직되어 있지는 않으나 일반 사회과학 연구단체나 사회학 연구회와 공동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특히 개신교와 공동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일본은 일찍이 ‘사회문제연구회’가 발족되어 매월 <사회문제>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이 잡지는 현재 약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일본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과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82년 1월 말에 가톨릭 신자로서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와 교수들이 ‘한국가톨릭사회과학연구회’를 발족시켜 1년에 두번의 연구 발표회를 개최하고, 매년 몇 편의 논문집을 발간하여 한국 사회와 가톨리시즘의 관련성을 연구하며 한국 교회의 토착화와 사회적 예언직의 수행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각국에는 교회 안에 사회과학 연구단체가 모두 조직되오 있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교회가 인류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사회과학과 제휴하면서 이 세상과 사회의 복음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며, 그러기 위하여 많은 사회과학 연구단체가 조직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교회, 사회과학 연구단체 및 가톨릭 사회과학자에 의해서 발표된 사회과학적 문헌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레오 11세의 <레룸 노바룸>(1891), 비오 1세의 <과드라제시모 안노>(1931), <무신론적 공산주의>(1937), 국제사회연구협의회의 《사원원리강령》(1943), 요한 23세의 <어머니와 교사>(1961), <지상의 평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1967), <산아제한에 관하여>(1977), <세계 안의 정의>(1971), <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1972), <세계평화와 정의에 대한 교회의 공헌>(1072), <인권과 화해>(1974),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의 <교회와 인권>(1975), 회프너의 《그리스도교 사회론》(1975), 마리탱의《자연법과 인권》(1943), 《인간과 국가》(1956), 하로웰의《민주정치의 도덕적 기초》(1954). (韓庸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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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법조인회 [한] ~法曹人會

법조계에 종사하는 신자 상호간의 친목과 신앙생활의 향상을 기하고, 나아가서는 교회 발전과 가톨릭적인 이념에 입각한 사회정의의 구현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1965년 3월 22일에 서울교구에서 발족한 이후 그 조직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월례회 및 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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