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요지 [한] 主敎要旨

초기 교회의 창설자의 한 사람인 정약종(丁若鐘)이 저술한 교리서.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말로 지은 최초의 교리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작연도는 확실치 않으나, 정약종이 1786년에 입교하여 1801년에 순교하였으므로 그 저작연도는 1786년에서 1801년 사이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교리에 대한 연구와 저작을 위한 지식의 함양을 고려한다면 후기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상 · 하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주교요지≫는 상권은 천주의 존재, 사후의 상벌, 영혼의 불멸을 밝히면서 이단을 배척하는 일종의 호교서(護敎書)이고, 하권은 천주의 강생과 구속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 교리서는 무식한 부녀자나 어린이까지도 읽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한글로 서술하였다. 황사영(黃嗣永)은 그의 백서(帛書)에서 정약종이 이 책을 저술함에 있어 여러 가지 책을 인용하였고, 자기의 의견도 보태었다고 했으며, 주문모(周文謨) 신부도 정약종의 ≪주교요지≫를 아주 적절한 것으로 인준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주교요지≫가 단순한 한역서학서의 우리말 번역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주교요지≫는 필사본(筆寫本)으로 전해져 오다가, 1864년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초기 교회 발전에 끼친 ≪주교요지≫의 공헌은 절대적이었다.

[참고문헌] 黃嗣永 帛書 / 朴鍾鴻, 西歐思想의 導入批判과 攝取, 韓國天主敎會史論文集, 第1輯, 한국교회사연구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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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연기 [한] 主敎緣起

독일 태생의 예수회 선교사인 아담 샬(Adam Schall, 湯若聖, 1591∼1666)의 저서로, 천주교의 역사를 논한 책이다. 1643년 중국 북경에서 4권으로 간행되었는데 천주의 실재, 영혼, 사후의 상벌, 천주의 강생과 구속(救贖) 등을 다루었다. 즉 제1권에서는 천주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영원히 그리고 어느 곳에도 계시다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제2권에서는, 천주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의 영혼은 영원불멸함을 논하였고, 제3권에서는 선한 자는 상을 받을 것이며, 악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으리라는 것과, 진정한 종교란 자연적임과 동시에 초자연적임을 밝히고 있으며, 제4권에서는 천지 창조와 천주의 강생, 그리고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승천과 부활에 대해 논하고 있다. ≪주교연기≫는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천주교 서적을 압수하여 소각해 버린 기록에 그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초기 교회에 이미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L. Pfister, Notices biographiques et bibliographiques sur les Jesuites de l’ancienne Mission de Ckine 1553∼1773, Chang-Hai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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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순시 [한] 主敎巡視 [관련] 사목방문

⇒ 사목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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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성성 [한] 主敎聖省 [라] S.Congregatio pro Episcopis [관련] 성성2

교황청 성성 안의 한 기구로 교구의 설정과 폐지, 주교 · 보좌주교 · 군목주교의 임명에 대한 일을 관장한다. (⇒) 성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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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단 지상주의 [한] 主敎團至上主義 [라] Episcopalismus [영] Episcopalism

주교들이 세계도처에 산재해 있거나 공의회로 연합되어 있음을 막론하고 교회 내의 수위권이 교황 개인에게 있지 않고 주교단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역사를 통하여 이 주장은 다양한 형태를 띠어 왔는데 그 중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형태도 있다. 이 주장의 근거는 교회생활에 대한 고대 문헌과 신약성서이다. 그리스도는 주교단의 전신(前身)인 사도단을 창설했는데 베드로는 이의 단장으로 임명받아 독특한 권한을 갖는다. 그러므로 사도단의 권위는 베드로의 권위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후자에 의하여 보완된다. 사도시대 교부들의 저작에 의하면, 주교는 그 지위가 고립되거나 그 임무가 자신의 관할구역에 제한됨이 없이 교회 전체의 공동선에 기여하며 그 책임은 다른 주교들과의 친교 속에서 표현된다. 주교단 지상주의의 이론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저서와 성 치프리아노 및 아우구스티노의 저서에서 이런 의미로 인용해 왔다.

역사상 교황의 수위권이 널리 인정된 중세에 주교단 지상주의의 일부 풍조는 교황의 권한과 주교들의 권한을 조화시켜 계승하지 못하였다. 여기에 교황의 아비뇽 유폐, 미모왕 필립과 바바리아의 루드비히의 충돌, 서방교회 대이교(大離敎) 등이 공의회 우위론의 발전을 촉진시켰고 원시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피사의 공의회를 비롯하여 수차의 공의회는 파리의 요한, 오캄의 윌리암 등 주교단 지상주의의 지지자들이 일으킨 사건기록을 누적시켰다. 이의 보급에 기여한 자는 프랑스의 갈리카니즘(Gallicanismus)이었다. 이들은 극단적인 교황지상주의(Ultramontanismus)에 반대하여 공의회 우위론과 교황의 교회법 종속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견해는 알마인(Almain)의 온건파에서 리처(Richer)의 강경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독일에서 주교단 지상주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와 베스트팔리아 강화조약 이후의 일이다. 공의회는 교황의 지위를 강화하는 한편 주교단의 근원이 하느님께 있음을 긍정했으나 양자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짓지 못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레(Maret)와 다르브와(Darboy) 몬시뇰에 의해 대표되는 주교단 지상주의에 대하여 그들의 견해 일부를 받아들이면서 주교단의 근원이 하느님께 있음과 교황 무류성의 제한적인 인정, 주교들의 관할권 등을 규정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단 지상주의의 정통적인 요소를 새롭게 표현하고 이단적인 요소를 배척하였다. 즉 사도들의 직무는 하느님에 의하여 주교단에 계승되었고 주교 개인은 이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주교단의 조직은 창설자인 그리스도의 뜻에 따른 것이다. 이의 단장은 베드로의 직무를 행하는 교황이다. 이런 방식으로 교회는 공의회 원리를 수위권의 원리와 결합시켰다. 교회의 최고 권위는 교황을 포함한 주교단에 있으며 이 권위의 행사는 주교단에 의하여, 혹은 주교단의 단장인 신분으로서의 교황에 의해 행사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Joseph Lecuyer, Episcophalism, Sacramentum Mundi, vol.3, Barns & Oates, 1968 / 鄭鎭奭, 주교단과 수위권, 司牧, 46호 / 鄭夏權, 敎階制度의 起源, 司牧,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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