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한] 再臨 [라] parusia Christi [영] second coming, second advent(of Christ) [그] pa

장래에 그리스도가 심판을 위해 다시 내림한다는 것을 지칭하며, ‘주님의 날’(1고린 1:8)이라고 말한다. “나는 당신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갑니다. 내가 가서 당신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돌아와서 당신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데려 가겠습니다”(요한 14:3). 그리스도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사도들에게 한 이 약속은, 그리스도의 강생과 구원의 위업의 완결이 될 것이다.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재림의 때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열성적인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의 어떤 자는, 얼마 안 있어, 아마도 자기들의 생존 중에 그리스도는 다시 돌아오리라는 틀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은 그리스도교 신자의 희망의 기초이며, 교회에 의해 항상 유지되어 왔다. 재림의 조짐으로서는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진다는 것, 그리스도교적인 신앙 및 생활로부터의 배치, 가(假)그리스도의 출현 등을 들 수 있고, 또한 그 직전의 조짐으로는 커다란 천지이변이 일어난다고 하고 있다(마태 24:29 이하).

재림에 관련하여, 바울로가 디도에게 준 편지에서 다름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줍니다. 그리고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해 줍니다”(디도 2: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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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본당 [한] 載寧本堂

황해도 재령군 재령을 문창리(文昌里)에 위치한 이 본당(주보는 성가광영)이 설정된 것은 1899년 5월이었고, 창설신부로는 그해 2월에 우리나라에 입국한 23세의 르각(Carolus Le Gac, 郭元良) 신부가 부임하였다. 르각 신부는 그 해 8월에 모성학교(慕聖學校)를 개설, 1900년에는 조그마한 성당을, 1901년에는 신부사옥을 건축하였다. 1905년 2대 멜리장(Petrus Melizan, 梅履霜) 신부가 부임, 16년간 재임했으나 교세 발전은 없었다. 1921년 3대 신성우(申聖雨, 마르코) 신부가 부임, 9년간 있으면서 산하 17개 공소(교우수 600명)를 관할하는 한편, 프랑스제 종(鐘)을 들여와 설치, 성당 부근의 야산을 매입, 개간하여 신종(新種)의 포도 · 사과 · 앵두나무 등을 심어 훌륭한 과수원을 조성하였다. 1930년 몇몇 교우들로 인한 불미한 사건 때문에 교구청으로부터 본당 폐지 결정이 내려 신 신부는 신천(信川)본당 창설신부로 전임, 재령본당은 공소로 격하되어 1930년부터 신천본당의 2대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1933년 2월 방유룡(方有龍, 레오) 신부가 재령본당 재건을 위해 4대 본당주임으로 부임,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본당을 새로 일으켰다. 1936년 5대 박정렬(朴貞烈, 바오로) 신부가 부임, 사제관 겸 강당을 신축하였다. 1940년 본당에서는 교우 의사가 경영하던 삼성의원(三省醫院)을 2만 9,000원에 인수하여 9월 1일 성심(聖心)의원이란 이름으로 개원하고 그 운영은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에게 맡겼다. 박 신부는 1942년 12월에 병사하고, 1943년 6대 김경민(金景旻, 루도비코) 신부가 부임, 1946년에는 7대 양덕환(梁德煥, 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하였다.

북괴당국의 교회에 대한 박해는 날로 가중되어, 1947년 7월에는 샤르트를 성 바오로회 수녀들이 더 이상 활동 할 수 없어 월남해서 서울 본원으로 돌아왔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 북괴군이 유엔군에게 쫓겨 후퇴하던 무렵인 그 해 10월 5일 양신부는 납치되어 해주(海州)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유엔군의 입성 직전에 피살된 것으로 보이며 시체는 찾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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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해 [한] 再告解 [라] frequens Confessio [영] frequent confession

성사적 고백을 일년에 한 번 이상 하는 일, 또는 그 고백. 제4차 라테란 공의회 이래 분별 연령에 달한 모든 신자는 적어도 일년에 한 번 자신의 사죄(死罪)를 고백할 의무를 진다(교회법 989). 그러나 이 의무를 최소한도로 이행하는 것은 완덕(完德)을 추구하는 열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신자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죄의 용서를 받으며 하느님과의 우애를 회복하게 되므로 성사적 고백을 자주 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러한 ‘잦은 고백’ 또는 ‘신심고백’(信心告白)을 일컬어 19세기 이래 한국 천주교회에서 재고해라 불렀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경죄(輕罪)도 또한 고백하여 용서받기를 권고하면서(교회법 988②) 성사적 고백을 자주하여 신심을 증진시키도록 장려한다. 경죄의 사함까지 받고 덕행에 진보하는 수단인 신심고백에 의하여 “순수한 자기인식이 깊어지고 그리스도교적 겸손이 자라며, 악습이 제거되고 영적 태만과 냉담이 극복되며, 양심이 순화되고 의지가 강해지며, 구원적 자기억제가 이루어지고 성사자체에 의하여 은총이 증진된다”(교황 비오 12세 회칙 ). 일반적으로 매월 1회의 신심고백은 성실한 신자들에게 현명한 횟수가 된다고 보고 있으나 거의 매일 영성체하는 신자들은 매주 1회 고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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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한] 齋 [라] abstinentia [영] abstinence [관련] 대재 소재

재라는 말은 ≪한불자전≫(韓佛字典)에 따르면, 식음의 절제(節制) 또는 전폐를 지칭하며 ‘재일’(齋日)이란 바로 단식 또는 절식(節食)을 하는 날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라는 할 때는 ① 심신의 건전관리를 위한 절식, ② 대재(大齋)에 대응하여 소재(小齋)를 뜻하며, ③ 절주(節酒), 금주(禁酒)까지도 포함하여 이르는 말이다.

소재는 작은 재 즉 육식을 하지 않는 재이고, 대재는 큰 재 즉 단식을 하는 재로서 신자에게 예수고난을 상기케 하여 준행하도록 한다. 연중 지키는 횟수는 각국의 교회관례에 따라서 다르다. (⇒) 소재, 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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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학교 [한] 長興學校

황해도 장연본당의 장방동(長芳洞) 공소에서 운영하던 초등교욱기관. 1907∼1911년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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