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 [원] Zambia

중남부 아프리카에 잇는 독립국으로 면적 75만 2,614㎢에 인구 약 640만명(1982년 추계) 에 이르고 있다. 1964년까지 북 로디지아로 알려진 이 나라는 188o년부터 1924년까지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가 행정을 맡아보았으며, 그때부터 1964년 까지 영국 주권의 영향하에 소위 보호를 받았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이곳에 들어왔으나, 19세기 말엽에 프로테스탄트에 이어 가톨릭 선교사들이 조직적인 포교활동에 들어갔다. 1959년 교계제도의 확립으로 루사카(Lusaka)가 주교좌 도시로 되었다. 가톨릭 신자는 1982년 현재 약 175만명이고 223개의 본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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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한] 暫福

옛교우들이 사용하던 말로 세속(世俗)의 행복(幸福)을 의미한다. 원 뜻은 잠시 동안 행복을 의미하지만, 옛 교우들은 이 말을 영원한 천국의 복[天福]에 비해 순간적인 복(福)일 수밖에 없는 세속의 복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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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벌 [한] 暫罰 [라] poena temporalis [영] temporal punishment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잠시 당하는 벌. 모든 범죄에는 이에 상응한 벌이 다르게 마련이며 그 벌은 현세에서나 내세의 연옥 혹은 지옥에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다. 지옥에서 당하는 벌은 영원히 지속되지만 현세나 연옥에서 받는 벌은 유한하며 지옥의 영원한 벌에 비기면 ‘잠시의’ 벌에 지나지 않으므로 잠벌이라 한다. 한편 현세의 벌은 벌의 세 가지 기능 즉 응보적, 예방적, 교정적 기능을 모두 수행하나 내세의 벌은 응보적 기능만을 다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성세성사를 통하여 자신이 지은 죄뿐 아니라 이에 따른 벌까지 사(赦)함을 받지만, 성세성사 이후에 지은 죄는 고해성사를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을 뿐 그 잠벌은 용서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나 희생 등 보속을 함으로써 잠벌을 갚아야 한다. 경죄에 따른 벌이나, 고해성사를 통하여 용서받은 사죄(死罪)에 따른 벌은 잠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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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원] Jammes, Francis

Jammes, Francis(1868~1905). 프랑스의 가톨릭 시인, 소설가. 투르네(Tournai) 태생으로, 피레네산맥 기슭의 베이욘(Bayonne)에서 사망하였다. 모리악(F. Mauriac)이 간접적 수법의 대표자라면, 그는 직접적 수법이 대표자로 손꼽히고 있다. 시집으로 ≪De l’Angelus de l’Aube a l’Angelus du soir≫(1888~1897), ≪Le Triomphe de la Vie≫(1900~1901), ≪Quatre Livres de Quatrains≫(1923~1925), 소설작품엔 ≪Clara d’Ellebeuse≫(1899), ≪Pomme d’Amis≫(1904), ≪Ma Fille Bernadette≫(1910), ≪Cloches pour Deux Mariages≫(1925), ≪Divine Douleur≫(192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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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원] Jeanne d’Arc

Jeanne d’Arc(1412?~1431). 성녀. ‘오를레앙(Orleans)의 소녀’라고도 불려지며, 100년 전쟁에서 조국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국가적 영웅이다. 축일은 5월 30일. 프랑스는 당시 트르와(Troyes) 조약(1420년)에 의해 영국의 헨리 5세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프랑스의 샤를르 6세의 광기가 영국과 부르군드(Burgund)의 연합에 맞서 위기에 처해 있었다. 5년 뒤 프랑스의 새 후계자 도팽(Dauphin, 후에 샤를르 7세)이 추격당하고 오를레앙이 완전 포위되자 13세 때 조국을 구하라는 계시를 받은 잔 다르크는 남장으로 군대를 소집, 오를레앙과 파타이(Patay), 랭스 길목에서 차례로 전투,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고, 1429년 랭스의 대성당에서 샤를르 7세를 즉위하게 하였다. 그러나 1430년 콩피에뉴(Compiegne) 전쟁 때 부르군드인에 의해 영국군대에 팔렸으며 이단심문 끝에 마녀(魔女)로 선고, 파문되었다. 그리하여 속권에 넘겨져서 화형을 받았으나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무죄와 사명의 신성함을 주장하였다. 생존 때부터 신비스런 행동과 영혼의 순수성으로 인하여 성녀로 추앙되었으며 1909년 시복, 1920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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