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한] 李止淵

이지연(1777~1841). 문신. 천주교 박해자. 자는 경진(景進), 호는 희고(希谷), 본가는 전주(全州). 공조참판(工曹參判) 의열(義悅)의 아들. 1805년 증광문과 을과(增廣文科乙科), 1806년 문과중시 을과(文科重試乙科)에 각각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고 주서(注書)를 거쳐 경연관(經筵官)이 되었다. 그 뒤 도승지(都承旨)와 형조 · 이조 · 호조판서를 지내고 1837년 우의정에 승진 이듬해 실록정 총재관(實錄廳總裁官)으로 ≪純祖實錄≫ 편찬에 참여하였고, 이해 영의정 이상황(李相璜)과 좌의정 박종훈(朴宗薰)이 사직하자 홀로 정승의 지위에 있었으며 조인영(趙寅永) · 조만영(趙萬永) 형제 등 풍양조씨 세력과 결탁, 대왕대비 김씨(大王大妃金氏)를 비롯하여 천주교에 대해 호의적인 안동김씨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1839년 기해박해를 일으켜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 모방(Maubant, 羅) 신부, 샤스탕(Chastan, 鄭) 신부와 많은 천주교인을 사형시켰다. 그러나 이해 말 우의정을 조인영에게 빼앗기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전임되었다가 1840년 대사간 이재학(李在鶴), 대사헌 이희준(李羲準) 등에 의해 정권을 독점했다는 탄핵을 받고, 함경도 명천(明川)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시호는 문익(文翼) 저서로 ≪희곡유고≫(希谷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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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배 [한] 李中培

이중배(?~1801). 순교자. 세례명은 마르티노, 본관은 전주(全州). 경기도 여주(驪州) 출신으로 1797년 김건순(金建淳)의 전교로 이종사촌 원경도(元景道)와 함께 입교하였고, 그 뒤 독실한 신앙생활로 가족들을 입교시켰다. 1800년 4월 원경도와 함께 정종호(鄭宗浩)의 집에서 부활 축일을 지내던 중 체포되어 여주관아, 경기감영(京畿監營) 등에서 1년간 옥살이를 하였고, 이때 옥소에서 의술(醫術)을 발휘, 사방에서 병자들이 진찰을 받으려고 몰려들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서울로 압송되어 의금부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해 4월 25일(음 3월 13일) 고향인 여주성 밖에서 원경도, 정종호, 최창주(崔昌周), 임희영(任喜永) 등과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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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사목위원회 [한] 移住司牧委員會 [영] Migration Pastoral Committee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전국위원회 가운데 하나로 1981년 가을 주교회의에서 이향신자 사목부와 해외교포 사목부를 통합, 발족시킨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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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창 [한] 李存昌

이존창(1752~1810). 초기의 천주교인. 일명 단원. 세례명 루도비코. 충청도 천안군 여사울의 농민 출신, 학자. 초기 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權日身)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는 열렬한 신앙심과 학구심을 가져 초기 교회의 가성직단(假聖職團)의 일원이 되었으며, 고향인 충청도지방의 전교임무를 맡았다. 그는 가족은 물론 내포(內浦) 지방 일대에 복음을 널리 전함으로써 후일 내포의 사도로 불리기까지 하였다. 가성직제도가 교리에 어긋남을 깨닫고는, 신부 영입을 위해 윤유일(尹有一), 지황(池璜) 등에게 여비를 주어 중국 북경으로 보내 마침내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맞아들일 수 있었다.

그는 1791년 신해박해(정조 15년) 때 잡혀 심한 고문과 꾀임에 빠져 한때 배교했으나, 그 뒤 양심의 가책으로 내포지방을 떠나 홍산(鴻山)으로 이사하여,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전보다 더욱 열심히 신앙을 지키며 전교에 힘썼다. 그 결과 내포와 그 인근지방은 다른 어느 곳 보다도 천주교가 성했고, 따라서 박해 때마다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성인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집안도 그의 전교로 입교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할머니는 그의 조카딸이 되며, 최양업(崔良業) 신부도 그의 생질(甥姪)의 손자이다. 더욱이 오늘날 조선 교우의 거의가 그가 개종시킨 교우들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으리 만큼 그의 전교상의 공헌은 지대하였다.

1795년 말에 이르러 그는 다시금 지방 관리들에게 체포 되었고, 고향인 천안으로 옮겨져 6년 동안 연금 생활을 하다가, 1801년 3월 18일(음 2월 5일)에 다시 체포 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리하여 4월 8일(음 2월 26일) 정약종(丁若鍾)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고, 충청도의 감사가 있는 공주(公州)로 호송되어 50세를 일기로 참수되어 순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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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한] 李貞喜

이정희(1799~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바르바라. 성녀 허계임(許季任)의 딸. 성녀 이영희(李英喜)의 언니. 경기도 봉천(奉天)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과부가 되어 집에 돌아온 고모 이매임(李梅任)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어머니, 동생과 함께 입교했고 혼기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 청년과의 결혼을 강요하자 수정(守貞)할 결심으로 3년을 버틴 후, 교우청년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2년만에 남편을 여의고는 잠시 친정에 있다가 신앙생활을 위해 상경, 이미 상경해서 살고 있는 고모, 동생과 함께 살며 열심히 수계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고 이해 4월 초 남명혁(南明赫)과 이광헌(李光獻)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하여 순교를 결심한 후 당시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던 이매임, 이영희, 김성임(金成任), 김 루시아(金累時阿), 그리고 성사를 보러 상경한 어머니와 함께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들에게 자수했다. 그 후 포청과 형조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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