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한] 李瀷

이익(1681~1763). 이조 중엽의 실학자(實學者). 자(字)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일생을 학문에 전심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많은 장서를 토대로 경전(經典) 정주학(程朱學)을 설립하고 이황(李滉)의 글을 탐독하여 사회현실을 역사적으로 고찰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실증적, 비판적 태도로 학문에 접근해야 한다는 이론을 세웠으며, 모든 학문은 사회에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서학(西學)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두어 유학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편견없이 이를 소화 소개 하였다. 즉 이익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李瑪竇)의 ≪천주실의≫(天主實義)의 발문(跋文)을 지은 바 있는데, 천주교의 천주와 유교의 상제를 비슷한 것으로 보았고, 또한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판토하(Pantoja, 龐-我)의 저서인 ≪칠극≫(七克)에 대한 비판을 하는 가운데 ≪칠극≫의 ‘七’자는 유학의 극기복례(克己復禮)의 기(己)를 풀이한 각주(脚註)인 것이라 하여, 유교의 윤리와 천주교의 윤리가 비슷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이익은 순수한 학자적 입장에서 천주교를 비판 소개하였고, 지리학(地理學) · 의학(醫學) 등에 있어서도 서양의 새로운 지식을 수립 이를 연구하여 보급시켰다. 저서로는 ≪성호사설≫, ≪성호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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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명 [한] 李頤命

이이명(1658~1722). 문신. 자는 양숙(養淑), 지인(智人). 호는 소재(疎齋). 본관은 전주(全州). 영의정 이경여(李敬與)의 손자. 대사헌 이민적(李敏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숙부 이민채(李敏采)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1680년(숙종 6년) 별시 문과에 급제, 홍문관의 정자(正字) · 박사(博士)를 거쳐 집의(執義)가 되었고 다시 1686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이해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영해(寧海)에 유배되었다가 1692년 다시 남해(南海)로 이배되었다. 2년 후인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 때 유배에서 풀려나와 호조참의(戶曹參議)로 재등용되어 강화부 유수(江華府留守), 대사간을 역임했으나 1698년 형 이사명(李師命)의 죄를 변호하다가 다시 공주(公州)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다시 유배에서 풀려나 형조참판 · 예조판서 · 대사헌 · 이조판서 ·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705년 우의정이 되었고 이어 좌의정에 올랐다.

그 뒤 1720년 숙종이 사망하자 고부사(告訃使)로 청(淸)에 가서 당시 북경(北京)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 쾨글러(Kogler, 중국명 載進賢)와 수아레스(Saurez, 중국명 蘇林)를 만나 이들과 서학(西學)에 대해 담론하며 친교를 맺었고, 이듬해 많은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갖고 귀국하여 서학을 깊이 연구하는 한편 국내에 이를 소개하였다.

1722년 왕의 병을 조작해서 발설하고 왕제(王制)로 하여금 대리청정(代理聽政)케 했다는 죄목으로 남해(南海)에 유배되었다가 목호룡(睦虎龍)의 무고를 받아 서울로 압송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영조(英祖) 즉위 후 신원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소재집≫(疎齋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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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송 [한] 李義松

이의송(1821~1866). 순교자. 세례명 프란치스코. 황해도 백천(白川) 출신. 의생(醫生). 1857년 서울로 이사와 정의배(丁義培)에게서 교리를 배워 1859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덕보(李德甫)와 함께 이북 12개 마을에 복음을 전하여 교세 확장에 진력하였는데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체포되어 아들 붕익(鵬翼), 처 김이뿐(金–)과 함께 체포되어 1866년 10월 22일, 45세의 나이로 양화진(楊花津)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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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하 [한] 李潤夏

이윤하(?~1793). 초기의 천주교인. 동정순교자(童貞殉敎者) 이순이(李順伊)의 아버지, 지봉 이수광(李睟光)의 8대손. 성호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이승훈(李承薰), 김원성(金源星) 등과 수학하고 천진암 · 주어사 강학회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 일어났을 때 처남인 권일신(權日身) 등과 함께 형조에 압수된 성물(聖物)들을 찾아오는 등 한국 천주교회 창설을 전후로 꾸준한 활동을 하였다. 자녀는 5남매를 두었는데, 장남 이경도(李景陶)와 딸 이순이(李順伊)는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순교했고 차남 이경언(李景彦)은 1827년 전주(全州)에서 혹형(酷刑)으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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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일 [한] 李~

이윤일(1823~1867).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 요한. 일명 제헌. 충청도 홍주(洪州) 출신의 태중교우로 경상도 문경(聞慶)의 여호목골에 살며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866년 병인(丙寅)박해의 여파가 경상도 지역에까지 미치게 되어 이해 11월 가족, 마을교우 30여명과 함께 상주로 이송되었고 상주(尙州)에서 한 달에 세 번씩 석 달 동안 9차례의 혹형과 고문을 당한 후, 다시 김 회장 형제와 함께 사학(邪學)의 두목으로 지목되어 대구(大邱)감영으로 이송되었다. 1867년 1월 21일 대구 남문 밖 관덕방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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