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규 [한] 李身逵

이신규(1794~1868). 순교자. 세례명 마티아. 이승훈(李承薰)의 셋째아들. 정약용(丁若鏞)의 생질이 된다. 아버지 이승훈이 사형당한 후 얼마동안 열심히 수계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문재(文才)와 의술에 뛰어난 그는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용인(龍仁), 진천(鎭川) 등지로 피난하다가 그해 9월 체포되었으나 뛰어난 학문과 의술의 사회적 공헌을 인정받아서인지 또는 배교 때문인지 분명치 않으나 석방되어 그 뒤 인천(仁川) 앞바다에 있는 영종도(永宗島)로 가서 1846년까지 살았다. 1846년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체포되었을 때 관련이 되어 5월에 다시 체포되었다. 처음엔 용감히 신앙을 고백하였으나 결국 배교하고 1846년 8월 1일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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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임 [한] 李時任

이시임(1782~1816). 순교자. 세례명 안나. 충청도 덕산(德山) 높은 뫼(현 지명은 忠南 禮山郡 古德面 夢谷里)의 양반 가정에서 태어나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려서 입교하여 오빠 성지(일명 儒震), 동생 성삼(일명 儒定)과 함께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고, 혼기에 이르러 수정(守貞)을 결심한 후 동정녀(童貞女)들이 한 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곳을 찾아 집을 떠났다. 그러나 도중에 박(朴)씨라는 한 사공에게 겁탈당하여 그와 결혼, 아들 하나를 낳았고 몇 해 뒤에는 과부가 되었다. 그러던 중 1815년 경상도 진보(眞寶)의 머루산에서 부활축일을 지내던 중 30여명의 마을 교우와 함께 체포되어 안동진영(安東鎭營)으로 압송되었고 그 곳에서 혹형과 고문을 당한 후 대구감영(大邱監營)으로 이송되었다. 대구감영에서 다시 혹형과 고문을 받았으나 이겨내고 이듬해 11월 8일(음) 김종한(金宗漢), 고성대(高聖大) · 고성운(高聖云) 형제, 김화준, 김희성(金稀成), 최성열(崔性說) 등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후 1827년에는 동생 이성삼이, 1832년에는 큰오빠 이성지가 각각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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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돌목장 [한] ~牧場 [영] Isidore Farm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금악리의 1236.5ha의 대지위에 소 170여 마리, 면양 1700여 마리, 돼지 3800여 마리의 이시돌목장은 1961년 11월 맥글린치(Patrick McGlinchey, 임피제) 신부에 의해 개설되었다. 현재 이시돌 농촌산업개발협회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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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한] ~農村産業開發協會 [영] Isidore Development Association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대림리에 위치한 본 협회는 천주교 한림교회의 주임신부 맥글린치(Patrick McGlinchey, 임피제) 신부에 의해 1962년 10월에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농 · 축산분야의 개량사업을 통한 농촌발전을 도모, 축산물의 증산장려, 사회사업, 육영사업을 그 설립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해 산하에 이시도르목장, 사료공장, 수직사, 이시도르의원, 이시도로회관, 양로원, 경로당 등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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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도로 [라] Isidorus

Isidorus(560?~636). 성인. 세빌랴(Sevilla)의 대주교. 교회학자. 축일은 4월 4일. 이시도로(Isidorus)의 초기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트족(Goths)이 카르타제나(Cartagena)에 침입해 왔을 때 가족들은 세빌랴로 이주, 그는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뒤에 세빌랴의 대주교가 된 형 성 린더(St. Leander)의 감독하에 수도원에서 교육받았다. 이 동안에 백과전서적인 지식의 기초를 확립, 아리아니즘(Arianism)에 대항하여 가톨릭 수도원에 들어갔고, 600년경 형의 뒤를 이어 세빌랴의 대주교가 되어 학교와 수도원을 세우고 유태교인들의 개종을 위해 일하는 등 스페인 교회와 학문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주요한 스페인의 교회회의(Councils)를 주관했는데, 톨레도(Toledo) 4차 회의(633년)는 특히 유명하다. 1598년 시성되었고 1722년 교회 학자의 칭호가 주어졌다.

그의 저서는 중세기 많은 저술가들이 인용하는 지식의 보고가 되었다. 특히 ≪Etymologiae≫는 당시의 교회와 신학적 문제는 물론 문법, 수사학, 수학, 의학, 역사 전반에 걸친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Sententiarum libri tres≫는 그리스도교 교의에 관한 편람서이며, ≪De ecclesiasticis officiis≫는 수도원의 권리와 의무, 전례에 관한 것이다. ≪Synonyma≫, ≪Chronica Majora≫, ≪Historia de Regibus Gothorum, Vandalorum et Suevorum≫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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