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혁 [한] 尹昌赫

윤창혁(1862~1895). 평신도. 세례명은 비오. 평남 중화(中和) 출생. 1865년 베르뇌(Berneax, 張敬一)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병인(丙寅)박해 후 1871년 만주의 차쿠(岔溝)로 피신. 그곳에서 10여년을 살다가 1881년 귀국하였으나 이듬해 체포되었다. 그러나 옥중에서 모진 형벌을 받으면서도 형리들을 감화, 입교시켰다. 그 뒤 1886년부터 전교에 투신, 박해로 흩어졌던 평안도 지방의 교우들을 모으는데 전력하다가 1895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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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헌 [한] 尹持憲

윤지헌(1764~1801). 순교자. 세례명 프란치스코. 전라도 진산군(현 충남군 진산면) 출신. 정약종(丁若鍾)의 외사촌(外四寸). 1789년 그의 형 윤지충(尹持忠)으로부터 교리를 배우기 시작 했고, 1791년 12월 8일 그의 형이 순교하자, 곧 고향을 떠나 전라도 고산으로 피해 살았는데, 1795년 이존창(李存昌)의 집에서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만나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더욱 믿음이 강해진 그는 교회발전을 위하여 전력을 다했는데,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4월 26일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서 문초를 받다가 서울 의금부로 이송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전주로 다시 이송된 그는 9월 17일 참수되어 순교하였는데 그의 나이 38세 때였다. 또한 그의 부인은 흑산도(黑山島)로 아들은 해남(海南)으로 딸은 평안도 벽동(碧潼)으로 각각 유배되어 온 가족이 이산(離散)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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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충일기 [한] 尹持忠日記

윤지충(尹持忠)의 옥중 수기(獄中手記). 1791년 진산사건(珍山事件)으로 체포되어 순교한 윤지충이 자신의 천주교 봉행과 체포후의 신문과정, 옥중생활 등을 기록한 한문(漢文) 수기로 윤지충의 순교 후 교우들에 의해 번역 필사되어 널리 읽혔다. 이 수기는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관변 측 기록인 ≪사학징의≫(邪學懲義)의 교우들로부터 압수한 서적목록 가운데 ≪죄인지충일기≫(罪人持忠日記)라는 서명(書名)으로 들어 있으나 현재까지 한문본, 한글본 모두 발견되지 않고 있고, 다만 달레(Dallet) 저술의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 Paris 1784)에 일부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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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충 [한] 尹持忠

윤지충(1759~1791). 세례명 바오로, 전라도 진산군(현 충남 금산군 진산면) 출신. 정약종(丁若鍾)의 외사촌(外四寸). 1784년 겨울 김범우(金範禹)에게서 처음으로 천주교 서적을 빌어보고 이를 연구하였고, 3년 후에 정약종 형제들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 때에도 그는 비밀리에 신앙을 지켜 나가던 중 1791년 모친상을 당하고도 그는 교리를 지키기 위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살랐다. 이런 사실은 곧 유림(儒林)에 알려져 지탄을 받게 되었고 끝내는 관가에 고발되어 한때 피신하였으나 그의 삼촌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진 관아에 출두하여 수감되었다. 진산군수는 여러 가지 말로 그를 위협하고 달래도 보았으나, 그는 교리의 타당함을 오히려 역설하였으며 그의 신앙을 떳떳이 고백하였다. 이어 전주감영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도 혹독한 고문으로 배교하기를 강요당했으나 그는 끝내 천주를 배반할 수 없음을 강조하여 굽히지 않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불효불충 악덕죄로 참수하되 5일간 현수(懸首)하고 사학 천주교를 철저히 엄계(嚴戒)하라는 훈령이 내려, 윤지충은 권상연(權尙然)과 함께 1791년 12월 8일(음 11월 13일) 참형되었다. 그의 나이 33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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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점혜 [한] 尹占惠

윤점혜(1776~1801). 동정순교자(童貞殉敎者). 세례명은 아가다. 윤유일(尹有一)의 사촌동생. 경기도 양근(楊根)에서 출생하여 모친의 가르침으로 입교했고, 동정(童貞)을 지키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피해서 17-18세 때에 서울로 올라와, 강완숙(姜完淑)의 집에 기거하면서 과부행세로 열심히 수정(守貞)하였다. 그러나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 1801년 3월 강완숙과 함께 체포되어 7월 2일(음 5월 22일) 사형을 선고받고 7월 4일 고향인 양근(楊根)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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