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르슈타인(Hallerstein)의 중국명. ⇒ 할레르슈타인
-
최신 글
-
2026 7월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
-

유세실리아(1761~1839).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정약종(丁若鍾)의 후처. 세례명은 세실리아. 시골에서 태어나 20세 때 상처(喪妻)한 정약종과 결혼, 3년 후 입교했고 주문모(周文謨) 신부에게 성세성사를 받았다. 1800년 살고 있던 양근(楊根) 지방에 박해가 일어나자 남편을 따라 서울로 이주했으나 이듬해 신유(辛酉)박해로 전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고 남편과 전처 아들 정철상(丁哲祥)이 순교한 후 석방되어 양근 마재[馬峴]에 사는 시동생 정약용(丁若鏞)의 집에서 정하상(丁夏祥) · 정정혜(丁情惠) 남매를 데리고 매우 어렵게 살았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났을 때 서울에 살고 있었는데 조카 한 사람이 시골로 피신하라고 권하였으나 “나는 항상 순교하기를 원했으니 내 아들 바오로와 함께 순교하고 싶네”라고 거절하고 결국 7월 11일 아들 정하상, 딸 정정혜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72세의 교령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12차례에 걸쳐 태장 230도를 맞고 4개월간 옥에서 신음하다가 11월 23일 옥사(獄死),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유성태(1789/1794~1828). 순교자. 세례명 라우렌시오. 일명 순지. 충청북도 단양(丹陽)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았다. 1827년 정해(丁亥)박해가 일어나자 경상도에 살던 친척들이 피신해 왔는데 이해 5월 한 외교인의 밀고로 친척, 교우 20여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단양 관아(官衙)에서의 혹형과 고문으로 함께 체포된 사람들이 모두 배교함에도 혼자 신앙을 고수하였으나 관장이 유성태가 배교해야 다른 교우들을 석방시켜 주겠다고 하자 하는 수 없이 배교하였다. 그러나 석방된 후 다시 단양 관아를 찾아가 배교를 취소, 혹형과 고문을 당한 후 충주진영(忠州鎭營)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함경북도 무산(茂山)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생활 중 공공연하게 신앙을 실천, 이를 미워한 포졸들이 식사를 주지 않아 굶어 죽었다. 구전(口傳)에 의하면 그의 순교일은 1827년 12월(음), 혹은 1828년 3월(음)이라고 하며 나이에 대해서도 35세 또는 40세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특정한 고해신부나 교회의 장상들만이 용서해 줄 수 있는 죄나 견책(譴責)들. 이들에 대한 사죄권이 귀속되는 주체에 따라 교황의, 주교의, 수도원장의 유보사항으로 각각 구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