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한] 礪山

전주지방 제2의 성지. 박해를 피해온 충청도지방의 교우들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병인박해(1866년) 이후 이어진 순교의 행렬은 호남 천주교회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병인박해 때 여산의 감옥은 잡혀 온 교우들로 가득 찼다. 갖가지 형벌을 당했고 이들은 대부분 동헌(현재 경로당) 앞마당에서 백지사(白紙死), 감옥에서 옥사(獄死), 숲정이, 장터 등지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옥에 갇힌 동안 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던 교우들은 사형집행을 받으러 풀밭에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풀을 뜯어먹었다고 전해진다. 1868년 한 해 동안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일기에 수록된 숫자로도 22명이나 된다. 현재 여산본당에서는 이들 순교자의 높은 뜻을 기념하기 위해 여산 숲정이 주위의 논 4,000평을 매임, 성역화작업을 하고 있다. 전북 익산군 여산면 여산리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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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울

‘내포지방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李存昌)의 고향. 여사울이 어느 고을에 속했던가는 자료마다 약간씩 상이하다.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에는 천안군, ≪순조실록≫(純祖實錄)에는 신창(新昌), 혹은 예산(禮山)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료들이 상이한 지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사울이 행정구역의 변천에 따라 신창, 예산, 천안 등지에 속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음에 불과하다. 현재 여사울은 예산군에 속해 있고, 100년 전에 건립된 공소(신례원본당 소속)가 있으며, 주민의 85%가 천주교 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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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제 [한] 女副祭 [라] diaconissa [영] deaconess

교회내 특정의 공직을 맡은 여자. 바울로가 “겐크레아 교회에서 봉사하는 여교우 페베를 여러분에게 소개”(로마 16:1)하고 있지만 여부제란 용어는 4세기 이후에야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여부제는 여성 환자를 간호하고 가난한 여자를 돌보며 여자가 주교나 신부나 부제들과 면담할 때 임석하였다. 여성 예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교회내 여교우들의 질서유지를 담당하였다. 여부제의 이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예비신자의 세례식 집전 때 부제를 돕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른 세례식이 드물어지자 여부제의 지위도 빛을 잃어 갔는데 이러한 쇠퇴경향은 그리스도 단성론자와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 사이에 성행했던 여부제직의 남용 사례, 즉 여부제가 성체성사를 집전하고 성서를 봉독하고 설교한 사실로 인하여 가속되었다. 몇몇 지역공의회는 여부제직을 철폐시켰으나 여부제직이 서방교회에서는 11세기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성체 분배권을 포함하여 여러 특권을 지녔던 동방교회의 여부제는 서방교회보다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개신교의 여집사(女執事) 제도는 19세기에 비롯되었으며 성공회에는 주교의 안수를 받은 종신(終身) 여부제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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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복사 [한] 女服事

천주교회에서 미사를 지낼 때 사제(司祭)를 도와 시중드는 사람을 본래 ‘복사’(服事)라고 하는데, 여기서 넓은 의미의 복사란 사제를 돕는 사람을 뜻하며 노동 · 식사 · 심부름 · 기타 사무적인 잡무까지를 다 수행하는 일꾼이라고 하겠다. 특히 여자의 경우 ‘여복사’라고 부르며, 남자의 경우는 그냥 ‘복사’라고 부르는 것이 예전에는 일반적인 관례였다.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에 따르면 여복사란, ① 여종(servante), ② 가정부(femme domestique)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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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한] 輿論 [영] public opinion [독] Offentliche Meinung [관련] 홍보

사회 구성원 전체의 운영과 관심사에 대한 대중의 공통적인 의견을 여론이라 한다. 여론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하나는 ‘백성의 소리는 신의 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격언에서와 같이 여론에 세속의 최고권위를 부여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여론은 변덕스러우며 무책임한 군중심리의 표현에 불과하다고하여 여론을 허위의식과 동일시하는 입장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민중에 대한 정치철학의 차이에서 나온다. 전자는 여론의 가치를 중요시하여 여론을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의 하나로 인정하는 데 반해, 후자는 대중민주주의 하에서 나타나는 여론의 현상적인 면에 중점을 둔다. 그러므로 후자는 여론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를 냉소적(冷笑的)으로 받아들이거나 무시함으로써 파시즘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다. 여론이 항상 진리이거나 항상 허위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성장하는 ‘사회심리’와 목적지향을 갖는 ‘이데올로기’의 중간 범주로 보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여론의 본질을 명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론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대중사회가 아닌 전통적인 사회에서 여론은 상호작용에 기초한 대인 전달(對人傳達, personal communication)로 이뤄지지만, 현대의 대중사회에서의 여론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여론조작에 의해 허위의식으로 전락할 여지가 많다. 대중소비를 의도하는 현대사회는 검열의 수단을 통해 정보의 흐름을 제한하는 선전(propaganda)이나 어떤 일방적인 관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도록 미리 계산된 형태로 정보를 제공하는 PR(public relations)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다. 여론 조작에 의해 여론이 허위의식이 될 때 그 여론을 조작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되지만, 민중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악(惡)의 동조자가 된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체제는 어느 체제나 여론을 존중한다. 여론을 존중한다는 것은 여론 조작에 의해 오도된 여론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여론의 본질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대중매체가 여론을 오도하여 “창조주를 거슬러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매스 미디어 교령 2항)는 사실에 주목하고 “모든 국민의 사생활과 공생활에 큰 영향을 주며 대단한 권위를 행사”(매스 미디어 교령 8항)하고 있는 여론을 올바르게 형성하기 위해 매스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공익을 해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 홍보

[참고문헌] 高橋徹 編, 世論, 有斐閣, 1960 / W. Lippman, Public Opinion, 1922 / Tonnis, Kritik der offentliche Meinung, 1922 / Le Bon, The Crowd: A Study of the Popular Mind, New York 1960 / 제2차 바티칸공의회문헌, 매스미디어에 관한 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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