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 [라] Elisabeth

① 헝가리의∼(E. Hungariae, 1207∼1231). 성녀. 축일은 11월 17일. 헝가리왕 안드레아스 2세의 딸로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나 4세 때 튀링겐의 영주 헤르만의 아들 루드비히와 약혼. 14세 때 새로 영주가 된 루드비히와 결혼,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며 3자녀를 낳았다. 발트부르크에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제자를 자신의 고해신부로 삼고, 청빈 · 자선으로써 궁정의 사치를 피했으며 1226년의 대기근 때는 난민 구조로 활약, 병원을 건립하고 특히 어린이 구제에 종사하였다. 남편이 십자군 원정 중에 죽자(1227년), 마르부르크에 작은 암자를 짓고 프란치스코회 제3회원으로서 탁발(托鉢)생활을 하며 기도와 박애자선사업에 전념하다가 24세 때 죽었다. 헝가리의 엘리사벳의 ‘장미의 기적’ 이야기는 유명하다. 1235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② 삼위일체의∼(E. Trinitatis, 1880∼1906). 가르멜 수도회 수녀. 프랑스의 부르제 부근에서 태어나 4세 때 육군장교인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머니는 엘리사벳에게 훌륭한 그리tm도교 교육을 시켰다. 14세 때 동정녀(童貞女)가 될 것을 맹세했고 21세 때 디종의 가르멜수도회에 입회, 2년 후인 1903년 허원(許願)을 하였다. 1904년 11월 엘리사벳은 유명한 기도문구를 지었다. 1905년의 부활절을 앞두고 성 바울로에게서 삼위일체의 영광을 찬양하는 자신의 사명을 찾아냈다. 엘리사벳은 1906년의 그리스도 승천절과 그보다 조금 뒤의 두 차례에 걸쳐 하느님과의 일치로 들어가는 영감을 체험하는 은총을 받았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엘로힘 [히] Elohim

일반적으로 하느님을 지칭하는 히브리어. 이는 엘로아(Eloah)의 복수 형태이나 단수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며 고대 페니키아에서 모든 신들의 대표적인 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우가릿에서 발굴된 아마르나 서한, (Amarna Letters)]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일컫는 단어로 사용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르짖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마태 27:46)의 ‘엘리’는 엘로힘의 변형이다. 그밖에 엘로힘은 이교도들의 신들(출애 18:11)이나 모압(Moab)의 신 그모스(Chmosh, 판관 11:24)를 뜻하였고, 사무엘의 영(1사무 28:13), 모세(출애 4:16), 왕(시편 45:7), 천사들(창세 6:1-4), 다윗 왕조와 메시아(즈가 12:8)를 의미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엔시더불류시 [영] National Catholic Welfare Conference(N.C.W.C.)

미국가톨릭복지협의회의 약칭. 미국교회가 교육사업과 사회사업, 이민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1917년 설립한 단체로 처음에는 미국가톨릭전쟁평의회라고 불렀다. 1919년 미국 주교회의에 의해 공식단체로 승인을 받았으며, 1922년 미국 가톨릭 복지협의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본부는 워싱턴에 있고, 각 교구에 지부에 설립되어 있다. 본부에는 교육부, 사회부, 평신도부, 가톨릭운동구부, 출판부, 청년부, 법제부 등의 7개 부가 있고, 필요에 따라 위원회를 둔다. 이 위원회 가운데 하나인 전쟁구호 위원회(Catholic Relief Service, 약칭 C.R.S.)는 2차 대전 중인 1943년 세계 각국에 산재해 있는 전쟁포로와 난민 및 빈민들을 돕기 위해 조직되었다. 그리하여 세계 80여개국에 지부를 설립하고, 미국에서 조달한 기금으로 구호와 사회복지사업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46년이었고, 1952년 외원법(外援法)에 의거하여 외국원조 단체로 보사부에 등록되었다. C.R.S.의 초대 한국지부장은 당시 평양교구장이며 주한교황사절이었던 메리놀회 한국관구장 캐롤(George M. Carroll, 安) 몬시뇰이었으며, 1947년부터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양곡으로 원조사업을 펼쳤고, 농로개설, 축산, 저수지축조, 관개(灌漑), 주택, 간척 사업 등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1963년까지의 C.R.S. 사업은 무상 원조에 치중하였고 이후는 시설원조로 방향을 바꾸었다.

[참고문헌] 임진창 편, 한국의 사회발전과 가톨릭교회의 역할, 서강대학교 사회문제연구소, 1976.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엔또오 슈우사꾸 [한] 遠藤周作

遠藤周作(1923∼). 일본의 소설가. 도쿄(東京) 태생. 3세 때 만주(滿洲)의 대련(大連)에 이주, 유년기를 보냈다. 10세 때 부모가 이혼, 어머니와 함께 귀국, 얼마 후 가톨릭 신자였던 백모(伯母)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았다. 나다(灘)중학을 거쳐 게이오(慶應)대학 문학부에 입학, 재학시절부터 <가톨릭 작가의 문제> 등의 평론을 발표하였다. 1950년 가톨릭 유학생으로 프랑스 리용대학에서 3년간 유학, 귀국 후 형이상학적 비평론을 제창하였다. 이윽고 창작으로 전환, 1955년 ≪하얀 사람≫으로 아꾸따가와상(芥川賞)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1957)으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그 후 ≪침묵≫(1966)에서 ≪사무라이≫(1980)에 이르기까지 약자(弱者) 속에 인간 성화의 가능성을 보는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을 추구하는 동시에, 통속적 소설, 수필, 평론, 희곡 등 폭넓은 문학 활동을 통해 인기작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엑스카르디나시오 [라] excardinatio [관련] 교구제적

교구제적을 지칭하는 라틴어 ⇒ 교구제적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