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한] 安息日 [라] Sabbatum [히] Sabbat

이스라엘 민족이 한 주간 날들 가운데 야훼에게 전적으로 바치기로 정한 날로 주일의 제7일(토요일)이다. 유태인들은 이 날을 거룩하게 보내기 위하여 전혀 일을 하지 않았으며(출애 20:10) 두 번씩 제사를 드리고(민수 28:9-10) 예배를 위한 특별한 모임을 가졌다(레위 23:2-3). 이 날의 유래로는 두 가지 전승이 있는데, 태초에 하느님이 6일 동안 창조사업을 마치시고 제7일에는 쉬셨다는 것(출애 20:11, 31:17)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것과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것(신명 5:15)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있다. 어쨌든 이 날이 지켜진 것은 인간, 특히 노예와 가축의 휴식(신명 5:14)과 신에게의 예배(출애 31:13-17)를 위해서였다. 구약에 의하면 이 날에 노동을 금지하는 법은 매우 엄격하여 마카베오 시대의 신심이 깊은 유태인들은 이 날 전쟁을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였다1마카 2:32-38). 신약시대에는 병자를 치료하고(마태 12:10) 밀이삭을 잘라먹는 것까지도 금지하였다(마태 12:1-2). 그리스도는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바리사이인에게 커다란 반감을 샀다(마르 2:27). 원시 그리스도 교도들은 주로 일곱째 날인 토요일에 안식과 기도를 하였지만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과 성신이 강림한 날이 주일의 첫날이었기 때문에 곧 일요일을 주일로 지켰다. 현대에까지 제7 재림교회와 몇몇 기독교 교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리스도 교도들은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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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교 [한] 安息敎

일주일 중 제7일인 토요일(sabbath)은 하느님이 정하신 거룩한 날(출애 20:8-10)이므로 이날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파의 총칭으로 ‘제7일 침례파'(Seventh-day Baptists)와 ‘제7일 예수재림파'(Seventh-day Adventists)가 대표적이다.

① 제7일 침례파 : 침례교의 한 분파로 1639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월리엄즈(Roger Williams)에 의해 창립되었다. 그는 본래 칼빈주의적 신학으로 침례교회에서 탈퇴하여 독자적인 교회의 건설을 시도하여 1671년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에서 최초의 제7일 침례파 교회를 세웠다. 이 파의 사람들은 교회가 세속화되는 원인을 교회가 안식일을 함부로 변경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여 유대의 안식일, 즉 금요일 일몰로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휴식을 하며 예배일로 지킨다. 이 파는 미국 외에 독일에도 전파되어 있다.

② 제7일 예수재림파 : 1845년경 미국인 밀러(William Miller)가 창립한 재림파 교회 중 가장 유력한 분파로 프레스톤(R. Preston) 부인, 베이트스(Joseph Bates)가 처음으로 제7일 예수재림파 교회를 세웠지만 화이트부부(James & Ellen White)의 지도로 1853년 이후 급속히 발전하였다. 1860년 교회의 이름이 ‘제7일 예수재림파’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1863년 총회를 개최하여 외국전도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현재 이 파는 미국 외에도 남아메리카, 유럽, 중앙아메리카,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등지에 분구(分區, division)가 있다.

이들은 삼위일체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믿지만 영혼불멸과 지옥 등은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 왕국설, 성인 세례와 침례, 안식일 엄수 등을 주요 교리로 한다.

제7일 예수재림파는 1904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평안남도를 중심으로 전교하다가 그 후 서울에 본부를 설치하였다. 현재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본주를 두고 있으며, 삼육대학 등의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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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스가리오 [라] Ansgarius

Ansgarius(801∼865). 성인. 대주교. 축일은 2월 3일. 이름은 Anscharius, Anschar, Ansgar라고도 쓴다. ‘북유럽의 사도’ 서프랑크 왕국(현재는 프랑스)의 코르비 부근에서 태어나 독일 브레멘에서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수도원에 수용, 13세 때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다. 827년 루드비히 경건왕의 명을 받아 덴마크에 선교하러 갔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829년에 귀국하였다. 그 해에 스웨덴에서 선교사 파견요청이 있자 스웨덴에 진출, 8개월간 선교하면서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루드비히의 귀국명령을 받고 돌아와 831년 코베이(Corvey)의 대수도원장, 이듬해 교황 그레고리오 4세에 의해 함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덴마크 및 스웨덴과 루드비히 사이의 조정에 힘썼고, 교회와 수도원 건설에 노력하였다. 847년 루드비히에 의해 브레멘 대주교로 등용되자 다시 북유럽 선교활동을 지휘하였다. 그가 별세한 뒤 스칸디나비아 제국은 다시 완전히 이교화 하고 말았다. 교황 니콜라오 1세(재위 : 858~867)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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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한] 按手 [라] impositio manuum [관련] 견진성사 신품성사

안수를 받는 사람에게 특별한 권리와 능력 및 자격을 수여하는 상징. 옛날부터 손은 축복을 이끄는 신체부위로 일반인들에게서도 존중되었다. 구약 성서에는 장자권 상속(창세 48:14), 육체의 건강기원(1사무 17:21), 직권의 양도(민수 27:18-23), 죄의 이전(레위 8:9, 16:21)에 안수가 행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도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성령수여(聖靈授與, 사도 8:17, 19:6), 직위수여(사도 6:6, 1디모 4:14, 5:22), 병자치유(사도 28:8), 축복(마태 19:13)에 안수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교회에서는 세례지원자에게 악마를 내쫓을 때, 사죄를 할 때, 병자성서, 견진성사, 신품성사에서 안수를 한다. 또 사람(수사, 수녀, 수도원장)이나 사물(세례용 성수, 미사용 빵과 포도주)의 축복에도 안수를 한다. 그러나 안수는 직위와 권능의 수여와 직위계승의 의미가 강하다. 물론 스콜라학자들은 서품에 있어서 ‘용구(用具)의 수여’(Porrectio instrumentorum)를 중시하였지만,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안수가 서품식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1947년 교황 비오 12세는 안수를 서품의 유일한 질료(質料)라고 교황령(Sacramentum Ordinis)에서 밝혔다. (⇒) 견진성사, 신품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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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모논법 [한] ∼論法 [영] Anselmian argument

캔터베리 대주교 성 안셀모(Anselmus, 1033~1109)에 의한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유명한 방법. 하느님의 업적에서 추론(推論)하는 귀납적 논법(a posteriori)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개념에서 출발하는 연역적 논법(a priori)에 의한 하느님의 존재의 증명법이다. 안셀모는,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매한 자(시편 14:13)에게 반론하기 위해서 이 논법을 사용하였다. 그 논법은 다음과 같다. 즉 우리들은, 하느님은 매우 위대한 분이며,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정의는 하느님은 믿는 자의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에 의해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 위대한 존재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존재가 마음속에만 존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이상으로 위대한 존재가, 즉 같은 것이 마음밖에, 다시 말해서 현실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마음속과 현실의 쌍방에 존재한다. 안셀모의 논법은 플라톤의 현실적 형이상학에 입각하고 있어서, 여러 세기에 걸쳐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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