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라] Agnes

성녀. 동정 순교자. 축일은 1월 21일.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박해(304-305) 때 로마에서 순교. 로마 미사경본을 비롯한 동서 순교록에 모두 언급되어 있으나 순교 장소와 시간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들 문헌은 이 동정 순교자가 12~13세의 어린 소녀였다는 점에서 모두 일치하는데, 이 사실은 1903년 유해에 대한 검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6세기의 전설에 의하면, 아녜스는 아름다운 소녀로 구혼에 실패한 사람들에 의해 그리스도교 신자로 고발되었으며 매음굴에 끌려가는 등 곤욕을 치렀으나 기적적으로 동정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처형되었으며 그 시신은 살라리아(Via Salaria)로(路) 옆에 이 순교자의 이름을 딴 카타콤바에 안치되었다. 350년경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의 딸 콘스탄티나(Constantina)는 묘지위에 대성당을 지었다. 현재 유해는 로마의 성 아녜스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 6세기 이후 교회 미술작품에서 양을 안거나 발밑에 데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는 아녜스의 이름이 라틴어의 ‘양'(Agnus)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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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오 [라] Anastasius, Sinaita

Anastasius, Sinaita(?~700?). 성인. 축일은 4월 21일. 팔레스티나의 수사, 신학 논객(論客). 교부. 시나이산의 성 가타리나 수도원 원장으로 있다가, 이집트, 시리아의 이교도들과 논쟁을 벌이기 위해 수도원을 떠났으며, 일찍부터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 및 단의론(單意論)을 공격(640년경). 여러 형태의 이단과 싸우면서 정통교리를 강력히 옹호하였다. 그의 가장 중요한 논문 역시 이단을 공격한 것이다. 154개의 ≪문답≫이 미뉴(Migne)판으로 된 그의 저작(P.G. LXXXIX, 35~1288)에 들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형태로 보아 후에 가필(加筆)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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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글리파이파 [한] ~派 [영] Aglipayan

20세기초 필리핀에서 발생한 이교(離敎). 1902년 필리핀 마닐라 출신 사제인 아글리파이는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한 기회를 이용하여 스페인에 의한 교회의 지배에 반대하여, 필리핀을 독립 가톨릭 교회라고 선언하면서 자신이 필리핀 가톨릭 교회의 교황임을 자처하였다. 1940년 그가 죽음을 맞을 때까지 100만여 명의 추종자를 확보하였으나, 그 후 교회와 화해하였고 이 운동도 쇠퇴하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아글리파이파는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유니테리언파와 미국의 감독교회와 제휴하고 있는 트리니테리언파 등 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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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노에타이파 [한] ~派 [영] Agnoetes

무지파(無知派)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부제 테미스티오스(Themistios)인데, 그들에 의하면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무지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교회는 아그노에타이파가 주장하는 단성론(單性論)이 이단임을 선언하고 그 주도적인 인물들을 배척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인간성이 무지라는 주장은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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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 [그] agape

초기 교회에서 사랑의 잔치를 일컫던 말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동사(agapao, 사랑하다)와 달리 전성명사(agape, 사랑)는 전혀 쓰이지 않았었는데, 당시 널리 쓰이던 이집트 방언에서 차용되어 ≪70인역 구약성서≫에서 최초로 ‘agape’를 사용하였다. 신약성서에서는 자애로운 사랑, 인간의 사랑, 인간의 형제애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초기 교인들은 반(半)전례적 성격을 가진 갖가지 형태의 형제애를 나누는 식사를 이렇게 불렀다.

고대 유대와 이방세계에서 그 비슷한 예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리스도 교인들에 의한 이 사랑의 잔치는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루가 14:12-14, 22:26-27)을 따라 형제적 사랑을 표현하고 기른다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선을 위한 아가페와 망자와 순교자를 기리기 위한 아가페에는 빈자(貧者)와 과부들이 초대되었다. 이것은 성찬식 자체는 아니지만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그의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잔치로서 성찬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요한 13:1). 아가페는 보편적 관습이나 일반적인 규칙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도시대 이후 지방교회에 다라 다양한 형태로 행해졌으며, 결국 조금 덜 인격적이기는 하였으나 좀 더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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