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한] 十字軍 [영] crusades [독] Kreuzzuge [프] croisades

그리스도교를 수호하고 성지(聖地)를 탈환하기 위해 서방교회의 원정군이 행한 중세 최대의 군사원정. 13세기 중엽부터 원정군들이 입은 옷에 십자가가 그려 있다하여 이렇게 불려지게 되었다.

1. 동기 : 직접적 동기는 1071년 셀주크 터키족이 지중해 동해안에 진출하여 성지를 점거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한 사건과 터키군의 위협을 받은 비잔틴 황제가 교황에게 세 차례나 군사적 도움을 요청한데 있다. 1096년 11월 클레르몽(Clermont) 교회회의에서 교황 우르바노(Urbanus) 2세는 이 원정을 제창하였고, 여기에 강화된 교황권, 성지에 대한 오랜 관심, 그리고 동방과의 무역을 원하는 이탈리아 상인들의 야심 등의 요인이 결합되어 원정이 시작되었다. 대사(大赦)를 받고 전사할 경우 순교자의 칭호를 얻는다는 데서 참가자들은 크게 고무되었으며 또한 영토에 대한 기대와 유럽의 인구 압력 등으로 귀족과 농민들이 대규모로 참여하게 되었다.

2. 경과 : 실제적 원정시기는 1096년부터 원정이 끝내 실패하고 최후의 라틴령(領)이었던 아크르(Acre)가 함락당한 1291년까지이나 보통 동부 유럽으로 진출한 오스만터키족과의 니코폴리스(Nicopolis) 접전을 최후로 하여, 원정을 속개시키는데 실패한 비오(Pius) 2세가 서거한 1464년을 원정이 완전히 끝난 해로 본다.

제1차 원정(1096~1099년) : 동방세계를 구하고 성지를 탈환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안티오키아 함락(1098년), 예루살렘 탈환(1099년)에 성공. 지휘관 고드프리(Godfrey)가 ‘성묘(聖墓)의 수호자’로 임명되고 향후 20년간 안티오키아, 트리폴리, 예루살렘, 에데사를 잇는 라틴령이 성립되었다.

제2차 원정(1147~1149년) : 이슬람 세력의 반격으로 에데사가 함락(1144년)되면서 시작. 예루살렘에 이르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제3차 원정(1184~1192년) : 붉은 수염의 프리드리히(Friedrich) 황제, 영국왕 리처드(Richard) 1세, 프랑스의 필립(Philipp) 2세 등이 참가하였으나 예루살렘 재탈환에는 실패하였다.

제4차 원정(1202~1204년) : 원래의 의도를 벗어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라틴제국을 세웠다(1204년). 이 탈선으로 동 · 서 교회의 분열이 조장되고 이슬람 세력에 대한 동방세계의 방위력이 결정적으로 약화되었다.

제5차 원정(1217~1221년) : 시리아에 남아 있는 프랑크왕국 소유지를 방위하려고 노력, 2차의 대규모 이집트 원정이 모두 실패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술탄’(Sultan)을 개종시키기 위해 중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제6차 원정(1228~1229년) : 프리드리히 2세가 협상을 통해, 군사적으로 다시 한 번 예루살렘을 회복하였다.

제7차(1248~1254년) 및 8차(1270년) 원정이 모두 실패함으로써 실제적 원정은 모두 끝났다. 서방에서는 차츰 십자군 원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비폭력적인 설교를 통해 이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유럽 자체 내에서는 이교도 문제, 즉 스페인의 무어인, 이교 슬라브인, 프랑스 남부의 알비시(市)의 이단 등 더 현실적인 문제들이 다가왔다.

3. 결과 : 이 원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봉건제도에 묶여 있던 유럽사회에 정치적 · 경제적 · 종교적으로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켜 근대로 넘어가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부분 원정기간 중에 탄생하여 전통적인 은둔생활 대신에 군사적 활동과 병자와 순례자에 대한 봉사를 병행했던 기사수도회는 서구의 수도생활에 새 요소를 첨가하였고 비잔틴 문화 및 이슬람문화와의 접촉으로 이들에 의해 보존 · 발전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눈을 돌리게 되어 이것은 스콜라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또한 1차 원정의 승리로 절정에 올라 있던 교황권이 계속되는 원정의 실패로 크게 실추되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성지탈환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지만 이교도의 더 이상의 세력 확장은 저지되었다는 점 또한 이 원정의 성과라 하겠다.

[참고문헌] J. Bongars, Gesta Dei per Francos, v. 2, Hanau 1611 / J. Mich명, Paris 1811~1822 초판 / E. Heyck, 1900 / A.V. Ruville,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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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형 [한] 十字架刑 [라] cruxifixio [관련] 십자가

죄인의 양팔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매달아 죽이는 형벌, 원래는 고대 동방에서 생겨난 형벌이었으나 로마 제국에 유입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갖지 못한 중죄인을 처형하는 데 사용되었고, 십자가형의 집행 전에 죄인을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 일반 관례였다. 그러나 이 형벌이 너무 잔혹하여 기원전 69년 이후에는 일부의 하층민에게만 적용되었고 그 뒤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대제에 의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로마인들에게 이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당한 뒤 부활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제단,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또는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써 당해야 되는 고난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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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한] 十字架~ [라] via crucis [영] way of the cross, stations of the cross

가톨릭 신심행사중에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것 중 하나.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성화(聖畵)로 혹 조각으로 표현하여 축성된 십자가와 함께 성당 양벽에 걸어둔 곳(14처, stations)을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이것은 초기 교회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의 거리를 걸으면서 기도드렸던 데서 유래한다. 이 순례지가 지리적 정치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15세기, 16세기에 유럽에서는 성지 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각 처의 숫자와 기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기도는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는데 168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B. Innocentius) 11세는 이 수도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했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이 기도를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하였다. 1964년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이 특전을 확증했으며, 1762년 교황 베네딕토(Benedictus) 13세는 모든 신자들이 이 특전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1731년 교황 글레멘스(Clemens) 12세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곳의 숫자도 14처로 고정시켰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신심은 전세계에 퍼져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기도로 특별히 사순절에 널리 행해지고 있다. 성당이나 그 밖의 공적(公的)인 기도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사제와 함께 단체로 행해진다. 각 처를 순례하듯 옮겨가는 것이 원칙이나 단체로 할 때는 대표만 움직이고 다른 분들은 움직이지 않고 해도 무방하다. 각 처마다 정해진 기도문과 함께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외며 묵상한다. 14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처 : 예수, 사형선고 받으심. 제2처 : 예수, 십자가 지심. 제3처 : 예수, 기진하시어 넘어지심. 제4처 : 예수와 성모 서로 만나심. 제5처 :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짐. 제6처 :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 씻어 드림. 제7처 : 기력이 쇠하신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심. 제8처 : 예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제9처 : 예수, 세 번째 넘어지심. 제10처 : 악당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하였음. 제11처 : 악당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음. 제12처 : 예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 제13처: 제자들이 예수의 성시(聖屍)를 내림. 제14처 ; 예수, 무덤에 묻히심. 파스카의 신비를 생각하여 제15처 : 예수 부활 장면을 묵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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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한] 十字架 [라] crux [영] cross

가로와 세로의 십자(十字) 모양으로 교차되는 2개의 나무로 이루어진 것으로 십자가는 원래 이집트, 카르타고 등의 고대 동방(東方)에서 죄인의 양 팔과 발에 못을 박고 매달아 처형하던 도구였으나 이 형벌이 로마제국에 유입된 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자 그 후로는 십자가는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단,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써 당해야 하는 고통 등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러나 십자표시(十)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원시 종교들에서부터 태양, 별, 생명의 나무, 종합, 중심, 완전 등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의 상징이었다. 신학적으로 십자가는 계시(啓示)의 신비로 파악되며, 예수 자신도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고 말하며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십자가의 신비를 깨우치도록 가르쳤고, 또한 사도 바울로도 그의 서한들(로마 5:8, 고전 1:17, 갈라 4:16, 필립 2:6-11) 속에서 십자가의 신비를 주요한 테마로 다루었다.

십자가에 대한 공경은 4세기초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뒤부터 시작되었는데, 성녀 헬레나(Helena)에게 십자가가 발현하고, 이어 320년에서 345년 사이에 골고타에서 예수가 2명의 도둑과 함께 못 박혔던 2개의 십자가가 발견되어 이를 안치할 십자가성당과 부활성당이 예루살렘에 건축되었고, 335년 9월 14일이 양 성당의 헌당식 축일로 제정되자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공경 대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고, 그레고리오 대교황 때엔 로마교회에도 전해졌다. 그 뒤 692년 트룰라눔(Trullanum) 교회회의를 통해 십자가 공경은 강화되었고 787년 제2차 니체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십자가의 모양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먼저 동방과 그리스도교 고대 미술에 존재했던 卍형 십자가, 소아시아의 원형십자가, 이집트의 콥트교회에서 사용하던 십자가(♀), 그리스십자가(+), 라틴십자가(†), 안토니우스십자가(T), 베드로십자가, 안드레아십자가(X), Y형십자가, 켈트십자가 등과 이밖에 많은 복합적인 십자가 등이 있었고 또 많은 왕족, 귀족, 교황들의 문장(紋章)으로 사용된 십자가들과 15-16세기에 나타난 교황십자가, 대주교십자가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J. Stockbauer, Kunstgeschichte des Kreuzes, Schaffhausen 1870 / P.J. Munz, Archaologische Betrachtungen uber das Kreuz, 1866 / W. Wood Seymour, The Cross in Tradition, History and Art, London 1898 / L. Brehier, Les origines 여 crucifix, ed. 2, Paris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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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한] 十一租 [라] decimae [영] tithe [관련] 교무금

수입이나 생산물의 십분의 일을 교회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 내놓는 것을 말한다. 종교적 목적을 위해 농산물 · 가축 · 전리품(戰利品), 기타 소유의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은 고대에 다른 종교와 문화 속에서도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었다. 구약성서 안에서의 십일조에 관한 언급은 서로 다른 때와 장소에서 행해진 다양한 관습을 반영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고(창세 14:21), 야곱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유의 십분의 일을 하느님께 드린다고 맹세하였다(창세 28:22). 신명기 안에서 십일조는 땅과 그 소출의 주인인 하느님께 감사하는 헌물로(신명 14:22-27), 레위인들을 부양하는 수단(민수 18:21)으로 빈곤 구제를 위한 헌물(신명 14:28-29)등으로 언급되어 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속이는 일이라 하였고 충성스럽게 십일조를 드리는 일은 축복받은 일이라 하였다(말라 3:8-10). 결국 십일조는 인간의 모든 소유가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 속한다는 확신의 표현이다. 십일조의 관습은 신약에서도 인용되어 있다(마태 23:23-24, 루가 18:12). 유대법과 신약의 해석을 따라 구(舊) 교회법은 신자들이 생산물과 수입의 십분의 일을 성직자들의 생활과 종교 업무를 위해 바쳐야한다고 규정하되 각 지방과 국가의 법과 관습에 따라 십일조를 결정할 것을 허용하였다. 가톨릭 교회에서 십일조는 신자 각자에게 임의로 주어져 있다. 많은 나라에서 교회의 유지는 십일조보다 자발적인 기부에 의존하고 있다. (⇒) 교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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