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한] 十誡命 [라] Decalogus [영] Ten Commandments

야훼가 모세에게 계시한 열 가지 계명. 이는 두 개의 돌판에 새겨져(신명 4:13)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승되었고 그들의 사회와 종교생활의 규범이 되었다. 십계명의 연원(淵源)은 출애급기 20장 1-17절과 신명기 5장 6-21절인데, 양자는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전자는 아내를 남편의 소유물에 포함시키나, 후자는 이를 구별하여 안내의 지위를 독립시키는 점, 둘째 안식일을 지키는 동기가 전자에는 야훼의 초월성이지만, 후자에는 그분의 구원행위인 점이 그것이다. 십계명의 형식은 고대 근동에서 일반화되었던 결의론적(決疑論的) 형태가 아니나, 십계명의 내용은 고대 근동에서 보편화되었던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과 내용은 십계명이 이스라엘 민족과 깊이 관련되었으며 그 구성 시기가 후기 예언자들의 시대(7세기)가 아니라 모세 시대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출애굽기 20장 17절에서 아내를 재물 속에 포함시켜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고 하는 하나의 계명이 신명기 5장 21절에서 아내와 재물을 분리함으로써 두 계명으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조문’(신명 4:13, 10:4)으로 표현한 이유는 ‘열’(10)이 전승적인 숫자였기 때문이다. 이 신명기의 전승은 서방교부들을 통하여 라틴교회에 계승되었다. 그리스교회와 루터교회를 제외한 개신교는 십계명의 출애급기 구분을 따르면서 라틴교회의 제1계명을 하느님 흠숭과 우상숭배 금지의 둘로 나누어 숫자 10을 유지한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 간에 맺은 계약의 핵심이요 선물이다. 인간편의 계약 당사자는 단체로서의 하느님 백성이므로 각 개인은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계약에 참여하게 되고 계약의 내용인 구원을 얻게 된다. 각 개인의 권리와 윤리적 의무의 근거는 구원의 공동체에 귀속함에 있다.

십계명의 첫 세 개 계명(출애급기 전승에 따른 경우 첫 4계명)은 하느님과 인간의 수직관계를 규율한다. 이를 상삼계(上三誡)라고도 부른다. 제1계명은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이며 우상숭배 금지는 ‘하느님 흠숭’을 보호하고 떠받드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은 하느님의 흠숭을 구체화시킨 것이다. 나머지 일곱 계명(제4~제10계명)은 계약의 백성 상호간의 수평관계를 규율하는 내용으로서 하칠계(下七誡)라 부른다. 그 보호하는 이익은 생명, 부부의 신의, 재산, 증언의 진실성 등이다.

십계명의 편성은 성서기자가 처한 사회배경에 따라 달리할 수 있다. 이는 안식일의 동기를 달리 표현하거나 아내의 지위를 독립시킨 사례를 통하여 인정된다. 그리스도는 십계명을 사랑의 계명 아래 통합시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의 사랑으로 요약하였고, 산상설교(마태 5~7장)와 고별사(요한 14~17장)에 의하여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리스도 교인이게 주어진 계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주신 사랑의 계명이다. 이 사랑의 계명은 십계명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십계명을 포함하고 완성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 교인에게 십계명의 준수의무가 면제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참고문헌] S.M. Polan, B. Haring, Ten Commandments,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4, McGraw-Hill, 1968 / J.C.H. Wu, Natural Law, ibid / Ten Commandments,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Oxford university press,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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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한] 審判 [라] judicium [영] judgement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은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그 초대에 응한 정도에 따라 죽은 후에 하느님으로부터 응보를 받는 일. “사람은 단 한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된다”(히브 10:27). 그러므로 그리스도 교인은 그리스도께서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사도신경) 라고 고백한다.

심판은 하느님과 인간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세 번째의 계기를 이룬다. 그 첫 번째 계기는 자유와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찬 하느님의 초대이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사랑과 기쁨 속에서 인간 서로 간에 일치하고 인간들과 하느님이 더불어 하나가 되어 당신의 선(善)과 행복에 참여하도록 부르셨으며 이 부르심을 통하여 창조 목적을 구현하고자 하셨다. 두 번째 계기는 이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다. 그 응답은 하느님의 목적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성실히 협력하는 생활로 나타나거나, 그 목적을 외면하여 하느님과 당신의 의도로부터 멀어지는 생활로 표현된다. 세 번째의 계기는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에 대하여 하느님이 창조목적에 비추어 판단을 내리는 순서이다.

그 판단은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하느님의 초대에 대하여 이를 거절함으로써 유죄(有罪)한 응답을 한 자는 지옥으로 보내어 멸망시키고, 그 초대를 불완전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한 자는 연옥에서 정화의 과정을 거치게 하며, 하느님의 부르심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생활한 자는 천국으로 보내어 그의 응답 행위를 완성시킨다. 이러한 세 가지 판단을 사람이 죽은 직후에 개인적으로 받는 것을 ‘사심판’이라 하고, 세상 종말에 공적으로 받는 형태를 ‘공심판’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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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아기 [한] 沈阿只

沈阿只(?~1801). 순교자. 동정녀(童貞女). 세례명 바르바라. 경기도 광주(廣州) 출신으로 1801년 신유(辛酉)박해로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신문을 받던 중 장하치명(杖下致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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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술 [한] 心靈術 [영] parapsychology

심령현상(paraphenomena)을 연구하는 과학으로 심령과학이라고도 한다. 심령현상이란 현대의 과학으로 해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정신현상, 즉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생각이 서로 전달되는 정신 감응(精神感應, telephathy),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감각하는 천리안(千里眼, clairvoyance), 예언(豫言, premonition) 등과 같은 ‘감각의 지각’(ESP = extra sensory perception)과 정신적인 힘으로 물리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염력(念力, PK = psychokinesis) 등을 총칭하여 지칭하는 용어다. 이러한 심령현상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주물숭배(呪物崇拜, fetishism), 마술, 점성술 등을 발생시켰다.

이러한 심령술이 교회 내에서 문제시되기 시작한 것은 십자군운동 이후의 일이다. 즉 십자군운동으로 인하여 중동지방에서 발흥하던 마술, 신비철학, 점성술, 악마추방을 위한 형벌 등이 서구사회에 유입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혼란에 빠뜨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들은 심령술을 악마에게 공헌하는 행위라 규정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심령술을 배척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령술은 민간에서 미신이나 관습의 형태로 계승되어 19세기에는 메스머리즘(mesmerism, 최면술) 등을 발생케 하였고, 19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심령술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게 되었다. 1882년 영국에서 ‘심령연구협회’(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가 창립되었고, 이어 미국과 기타 여러 나라에서도 유사한 단체가 생겨났다. 그러나 당시의 심령술에 대한 연구는 주로 사례의 수집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20세기에 들어서야 조직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심령술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화란교리서≫(Die Nienwe Katechismus)에서 간단히 제시된다. 이 책은 ‘감각외적 지각’을 좀 더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① 심령술이 악용되는 경우, ② 심령술을 장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피난처로 삼는 경우, ③ 인생의 궁극적인 신비를 심령술로 해결하려는 경우에 대해서는 잘못된 접근법임을 예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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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 [한] 沈瓊

沈瓊(?~1815).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未詳). 1815년 경상북도 청송(靑松)의 노래산(老萊山)에서 부활축일을 지내던 중 30여명의 마을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경주진영(慶州鎭營)으로 압송되어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고, 경주진영에서 대구감영(大邱監營)으로 이송된 후 그곳에서의 형벌과 고문으로 인해 옥사(獄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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