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의 후반부(後半部)로서 성찬의 전례와 폐회식으로 구성된다. 이 명칭은 역사상 예비신자를 제외하고 신자들만이 미사의 이 부분을 참례한 적이 있었던 사실에서 유래한다. (⇒) 성찬의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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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후반부(後半部)로서 성찬의 전례와 폐회식으로 구성된다. 이 명칭은 역사상 예비신자를 제외하고 신자들만이 미사의 이 부분을 참례한 적이 있었던 사실에서 유래한다. (⇒) 성찬의 전례
미사성제의 ‘말씀의 전례’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 하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사제적 기도. 이런 형태의 기도는 초대 교회에서 성행하여 2세기 때 성 유스티노(St. Justinus)는 신자들의 기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사적 개인적인 감정 표현의 남용으로 6세기 이후 사라졌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복구되었다.
공의회의 <전례 헌장>은 최소한 주일과 의무 축일에 복음과 선교 후에 신자들의 기도를 재도입할 것을 천명(전례헌장 53), 말씀의 전례는 이 기도로 끝이 난다. 기도의 내용은 공동체를 위한 보편적인 기도로서 지향의 일반적인 순서는, ① 교회 전체가 필요한 일들, ② 위정자와 세계 구원, ③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하여 있는 이들, ④ 지역 공동체의 소망 등으로 이루어진다. 특수한 목적을 기도 지향에 포함시킬 수 있다. 신자들의 기도를 지도하여 간단한 권고로 신자들에게 기도할 뜻을 자극해 주고 맺음 기도를 바치는 것은 집전사제의 임무이다. 기도 지향은 부제나 성가대원, 또는 다른 적당한 사람이 혼자 말하고 신자들은 공동으로 적절한 탄원으로 응답하든지 침묵으로 그 기도 지향에 동의한다. (⇒) 미사
옛 교우들이 사용하던 말로 대자녀(代子女)를 의미한다. 성세(聖洗) 또는 견진성사(堅振聖事)로써 맺어진 영적(靈的)인 인척관계를 신친관계(神親關係)라 불렀는데 대부모(代父母)를 신친(神親), 대자녀를 신자(神子)라고 불렀다. (⇒) 대자녀, 신친
신인식(1892~1968).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892년 12월 6일 충남 서산군 팔봉면 금학리(忠南 瑞山郡 八峰面 金鶴里)에서 교우가정의 3남 2녀 중 차남(次男)으로 출생. 어려서 가족과 함께 충남 당진(唐津)의 합덕(合德)으로 이주, 그 곳에서 성장하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 사제수업을 마친 뒤 1920년 9월 18일 드브레(Devred, 兪世俊) 주교의 주례로 종현성당(鐘峴聖堂, 지금의 명동대성당)에서 사제로 서품(敍品). 종현본당 보좌, 1921년 약현 본당(지금의 중림동본당) 보좌를 거쳐 1927년 명동 성가기숙사(聖家寄宿舍) 사감으로 10년을 봉직하였다. 명동 성가기숙사 시절 <가톨릭청년>지에 유물사관唯物史觀)을 비판하는 글을 비롯하여 많은 글들을 발표하였고, 1934년에는 ‘조선 5교구 가톨릭운동’ 서울교구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 뒤 1937년 황해도 신천(信川)본당 주임 신부, 1938년 혜화동 소신학교장 1945년 미아동본당 창설 신부 등을 역임하면서 1944년 서울 여의전(女醫專), l946년 서울대학교, 1947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강의하였고 또한 일제말기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서 편찬에 착수한 ≪우리말 큰사전≫의 천주교관계 항목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1946년 4월 약현성당 주임신부로 전임되어서는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관심을 갖고 1946년 잠실에 고아들을 모아 ‘성심원’(聖心園)을 개설하는 한편 1949년 성심학관(聖心學館), 1954년 성 요셉 간호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54년 11월 본당사목을 사임하고 인천(仁川) 성 바오로 수녀회 지도신부로 있다가 1955년 대방동본당 주임으로 다시 사목을 시작, 1961년 약현 본당 주임신부, 1963년 명동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한 뒤 1964년 은퇴, 가르멜 수녀회의 지도신부직을 맡았다. 1967년 건강이 악화되어 가르멜 수녀회 지도신부직을 사임하고 주교관과 명동 성모병원에서 병상 생활을 하다가 1년 뒤인 1968년 8월 12일, 74세로 선종, 용산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