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 [한] 神社參拜

일본의 고유신앙인 신도(神道)의 종교의식임과 동시에 제국주의 일본의 국민의례의 일종으로 일본의 신도와 관련된다. 일본신도에는 신사신도(神社神道)와 교파신도(敎派神道)가 있다. 신사신도는 원래 농경의 수호신, 부락의 수호신을 숭배하던 것이었으나 일본의 제국주의적 국가권력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종사(宗社)로 변모되었고, 신사에 대한 참배는 국민의례의 일종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교파신도는 종파(宗派)신도라고도 하는 바, 종교성이 약한 신사신도에 대비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여기에는 유불선합일(儒佛仙合一)과 샤머니즘의 경향이 농후하게 포함되어 있으며, 일종의 자연종교로 파악된다. 신도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이중적 성격 때문에 신사참배를 단순한 국민의례인가 아니면 교파신도의 종교의식인가를 구분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그리스도교 교회에서는 신사참배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일본은 1910년 조선을 강점한 이후 1915년 신사사원규칙(神社寺院規則)을 반포하여 서울의 조선신궁(朝鮮神宮)을 비롯해서 각 지방에 신사를 세우고 조선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하였다. 신사참배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 중 하나로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시행한 사상통제 정책이었다. 그러나 신사참배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 성격 때문에 유일신 하느님에 대한 숭배만이 허락된 그리스도교와 충돌이 야기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도 1917년 나가사끼(長崎)교구의 가톨릭 학생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체포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신사에서 거행되는 의식이 종교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에 신사참배를 거부해야 한다고 단안을 내렸다. 한국 천주교회는 실제로 1925년 교리교사를 위한 <교리교수지침서>를 통해 신사참배는 확실히 이단행위이므로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였다. 당시 일제당국은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강경(江景)에서 공립학교에 다니던 천주교 학생이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퇴학처분을 당하였다. 이에 교회 당국은 신사참배의 참석거부를 재천명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천주교회가 점차 신사참배를 수락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1932년 마침내 일본 천주교회는 동경 대주교로 하여금 신사참배가 애국심과 충성을 드러내는 시민적 예식인지에 관해 아니면 신도의 종교의례인지 문부대신에게 정식 회답을 요구하게 하였다. 문부대신은 차관을 통해 신사참배는 시민적 예식 외에 별다른 것이 아님을 통고하였고, 일본 주교들은 이에 근거하여 신자들에게 신사 참배를 허락하였다. 일본 주교들의 결정을 근거로 로마 교황청은 1936년 5월 18일 천주교 신자들은 신사 참배를 해도 좋다는 훈령을 내렸고, 그 사실을 주일(駐日)로마 교황 대사관에 통고하였다. 이에 교황사절 마렐라(Marella)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 신자들에게 <국체명징(國體明徵)에 관한 감상(感想)>이라는 서한을 통해 교황청의 통고를 전달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거의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신사참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성직자와 수녀들 중에는 신사참배 거부를 위해 학교나 병원을 그만 두어야 하였고, 생계의 위협을 무릅쓰고 직장을 떠나야 했던 평신도들도 다수 있었다. 또 신사참배를 완강히 거부함으로써 투옥된 성직자와 평신도들도 많았다. 신사참배의 문제는 교황청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먼저 신사참배 때 이뤄지는 예식이 일본 당국의 주장대로 순수한 시민적인 예식으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일제의 천황 신격화(神格化)가 점차 노골적으로 표출될 때, 하급관리들은 신자들 앞에서 “그리스도가 높으냐, 천황이 높으냐”라는 말조차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 원칙론에서 보더라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신사참배를 허용함으로써 제국주의의 민족말살 정책에 간접적 동조의 형식을 취했다는 것은 한국 천주교사에서 하나의 오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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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한] 神師 [관련] 신부

영적(靈的)인 스승이라는 뜻으로 신부(神父)를 지칭하던 옛 말. 탁덕(鐸德), 사탁(司鐸), 서사(西士) 등과 함께 신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잘 쓰이지 않고 있다.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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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판주의 [한] 新批判主義 [프] neo-criticisme

넓은 의미로는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신칸트주의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보다 엄밀하게는 칸트의 비판철학을 계승한 프랑스의 칸트주의만을 일컫는다. 독일의 신칸트주의와 비슷하지만 콩트의 실증주의를 계승하여 칸트보다 더 철저한 반(反) 형이상학적인 현상주의(現象主義, phenomenisme)와 상대주의적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 대표자인 르누비에(C. Renouvier)는 철학의 유일한 임무를 여러 현상간의 법칙을 파악하는 것이라 하고 이를 위해선 인식의 보편적인 법칙과 그 한계를 명백히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신비판주의에 있어서 모든 범주는 관계의 범주로 환원되고 칸트에게 남아 있던 본체(本體)의 세계는 철저히 부정되었다. 또 칸트에게서는 분리되었던 순수이성의 주체와 실천이성의 주체가 르누비에에 있어서는 인격이라는 궁극적인 주체에 의해 통일되었다. 신비판주의는 당시의 전체주의적 사회관과 과학적 결정론에 반대, 자유로운 인격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대표자로는 르누비에 외에 그의 제자 피용(F. Pillon)과 개연론으로 초 이성주의 사상을 주장한 쿠르노(A.A. Cournot)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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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신학 [한] 神秘神學 [라] theologia mystica [영] mystical theology [관련] 영성신학

일반적으로 수덕신학보다는 숭고하고 상위적인 개념으로서 신비적인 체험, 생활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설명하는 학문. (⇒) 영성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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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한] 神秘 [영] mystery

하느님이 계시한 진리를 신비라 하는데, 신비는 계시되기 이전에 그러한 신비가 일어나리라는 가능성을 인간의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으며, 계시된 이후에도 그 내적 본질을 유한한 지성을 가진 인간이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계시된 신비가 이해 불가능한 것은 그것이 무한의 존재이자 창조된 지식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인 하느님의 표현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신비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의 이해는 가능하다. 따라서 신자들의 주요 의무의 하나는 기도와 연구와 체험을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의 진리, 즉 신비에 대한 이해를 깊이고 넓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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