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영] Zion [그] Sion [히] Siyyon

원래는 예루살렘 남동부에 위치한 언덕을 가리키는 이름 이었으나, 다윗이 계약의 궤를 이곳에 옮겨서 제단을 쌓은 이래 이 언덕은 ‘야훼의 거룩한 산’이라 불리게 되었다(2사무 6:12-18, 시편 2:6). 그 후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웠기 때문에 시온이라는 명칭은 모리야산의 성전까지도 포함하는 이름이 되었고(이사 18:7, 미가 4:7), 상징적으로는 ‘거룩한 산’, ‘예루살렘 도시 전체’(시편, 48:2 69:35, 이사 2:3, 60:14)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이 경우는 대체로 시적인 용법에 자주 나타나는데 ‘야훼의 도시’로서의 예루살렘이라는 점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시온의 딸’이라는 성서의 표현법은 예루살렘의 시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시온은 기다리는 유대의 신정(神政)을 의미하기도 하며 (시편, 126:1, 이사 34:8), 신약성서에서는 하늘에 있는 신의 도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히브 12:22, 묵시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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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니즘 [독] Zionismus [영] zionism [관련] 시온

19세기말에 일어난 유대민족의 국가건설운동. 유럽 각지에 흩어져 소수민족의 상태로 있던 비정상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조상들이 살던 곳에 유태인에 의한 유태국가를 건설하려던 시오니즘은 1948년 팔레스타인 지방에 이스라엘을 건설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유대민족이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운동을 시작한 것은 유대국가가 로마의 지배로 그 명맥이 끊어진 이후부터 계속되었지만, 정치적 운동으로 전환된 것은 데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스라엘인이 하나의 민족임을 표명하고 유태인 대표자회의(제 1회 시오니스트회의)를 1897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개최하여 여기서 “시오니즘의 목적은 유대민족을 위한 국가를 공법상 보증된 형태로 팔레스티나 지방에 건설하는 것”이라는 바젤 강령을 채택하는 데 공헌하였다. 1917년 이 성명은 영국정부의 빌보어선언에 의해 확인되고, 그동안 유태인들은 속속 팔레스티나지방으로 귀환하여, 1920년부터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다가, 1947년 11월 국제연합 총회에 의해 유태인 국가의 건설이 결의됨으로써 1948년 5월 이스라엘은 독립하였다. 그러나 팔레스티나지방에 살던 아랍민족과의 대립과 마찰은 이제까지 계속되어 온 중동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어 놓았다. (⇒) 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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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 [한] ~聖堂 [영] Sistine chapel

바티칸 궁전안의 주요한 성당. 승천하신 성모(聖母)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규모가 수준급이다. 식스토 4세(재위 : 1471-1484) 교황 시대에 설계된 관계로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일련의 유명한 프레스코화(畵)로 장식되고, 좌측벽에는 모세 성전의 사건들이, 우측벽에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보티첼리(S. Botticelli), 코지모(Cosimo), 로셀리(Rosselli), 기를란다요(Ghirlandajo), 페루지노(Perugino), 핀투리코(Pinturicchio) 등에 의해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의 걸작으로 간주되고 있는 천장화는 현존하는 최대의 그림이며, 1508년에 착수되어 4년 후에 완성되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에 의해 둥근 천장으로 보이게 한곳의 각 부분에 천지창조,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아담과 이브의 추방, 노아의 총수 장면 등을 그렸다. 그 아랫부분에는 일련의 유명한 예언자 및 여자 예언자의 좌상(坐像)이 그려져 있다. 1508년에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보다 23년 후인 1536년에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 1541년에 완성하였다. 이 그림은 최후의 만찬의 정경을 가장 총괄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성당 안의 대리석제 제단부분 칸막이와 성가대석은 피에솔레(Mino da Fiesole)가 설계 제작하였다.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제단은 진주층으로 장식되어 있다.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의 사적인 예배당이며,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 회의가 거행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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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시복운동 [한] 諡聖諡福運動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신앙선조들을 성인과 복자의 반열에 들게 함으로써 순교자들의 위대한 신앙심을 만방에 알리고, 이들의 신앙심을 본받으려는 신앙운동. 이 운동은 1939년 경성교구(현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태동하였으나 일제의 방해로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가 광복 후인 1946년 9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조선천주교순교자현양회가 발족되면서 이 회를 중심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의 운동은 순교지 조사 보존, 순교자의 유물 수집을 통한 순교자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고 1971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즉 1971년 12월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는 한국순교복자 시성추진안을 정식 안건으로 접수하였고, 1975년 9월 13일 전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평협)는 제8차 정기총회에서 시성시복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의하였으며 1976년 4월 주교회의 봄 총회는 한국 순교복자 103위에 대한 시성청원서를 교황청에다 제출하고 시성추진위원장에 김남수 주교를 임명하였다. 1977년 시성추진위원희는 로마에 유학중인 박준영 신부를 로마주재 시성수속 담당관으로 임명하였고, 전국 평협은 시성시복추진을 위한 기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는 가운데 1978년 4월 13일 교황청은 시성청원서를 정식으로 접수하고, 심사에 착수하였다. 1980년 시성시복운동은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의 기념사업으로 입안되었고, 1982년 5월 28일 주교단은 한국 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을 위한 기적보고 관면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하는 한편 1983년 1월 28일부터는 순교자 유해순회기도회를 개최하였고, 같은 해 2월 1일 시성시복 후보자 표준영정 제작을 위촉하였다. 이에 교황청은 그 해 6월 9일 한국 순교복자 103위의 시성에 필요한 기적심사를 관면하였고, 9월 27일 시성을 허락하였으며, 10월 29일 한국주교단에서 요청한 시성식의 한국거행과 시성 제목을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순교자’로 할 것을 허락하였다. 이에 따라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창설 200주년 기념행사차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의 순교자 103위가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103위의 시성이후 시성시복운동은 이벽을 비롯한 신앙 선조들의 시복시성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 시성시복운동 일지

1946. 9. 16 조선천주교순교자현양회(이하 순교자현양회) 발족

1947. 12. 14 순교자현양회 1차 중앙위원회 개최, 순교지 조사와 박해 유물수집 및 순교비 건립 문제 논의

1956. 12. 12 순교자현양회, 순교지 절두산 1,360평 매입.

1971. 12. 13 주교회의, 한국 복자시성추진안을 정식안건으로 채택.

1975. 9. 13 전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이하 전국 평협), 시성시복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의.

10. 28 전국 평협, 시성시복운동을 위한 자문위원회 위촉.

11. 29 자문위 개최.

1976. 4. 21 주교회의, 시성청원서 교황청 제출 및 시성추진위원장에 김남수 주교 선임.

1977. 10. 13 시성추진위, 박준영 신부를 로마주재 한국 순교복자수속 담당관으로 임명.

1978. 4. 13 교황청, 103위 시성청원서 정식 접수.

1980. 7. 17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준비위원회, 시성시복추진사업을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입안.

11. 17 변기영 신부 시성시복추진부장으로 임명.

1982. 5. 28 주교단, 103위 시성을 위한 기적보고 관면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

6. 18 김진석 신부 박준영 신부 후임으로 로마주재 한국 복자시성수속 담당관으로 피임.

11. 22 시성시복추진위 1차 회의 개최.

1983. 1. 28 순교자유해 본당순회기도 시작.

2. 1 시성시복추진위, 시성시복후보자 표준영정 제작을 담당할 위원 위촉.

2. 7 시성시복추진위 2차 회의 개최.

3. 7 윤민구 신부, 김진석 신부 후임으로 로마주재 한국 순교복자 시성수속 담당관으로 피임.

3. 15 김남수 주교, 교황청 시성시복성성 장관 팔라치니 추기경 예방.

4. 16 시성시복후보자 영정제작회의 개최.

4. 18 시성시복추진위 제3차 회의 개최.

4. 20 김수환 추기경, 시성문제로 교황방문.

6. 7 시성시복추진위, 제4차 회의 개최.

6. 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기적심사 관면허락.

7. 13 주교단, 시성식의 한국에서 거행과 제목을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로 변경해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

7. 19 시성시복추진위, 제5차 회의 개최.

9. 10 시성대상자의 약사를 교황청에 제출.

9. 16 시성시복추진위 제6차 회의 개최.

9. 27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03위 시성 승인.

10. 29 교황청, ‘한국에서 시성식 거행’ 등 한국 주교단의 청원을 허락.

1984. 5. 6 시성식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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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시복성성 [한] 諡聖諡福聖省 [라] Sacra Congregatio pro Causis Sanctorum [관련] 성성2

교황청기구의 하나로 시성과 시복에 관한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담당한다. (⇒) 성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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