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욱 [한] 孫~

孫~(?~1824). 순교자. 세례명 요셉. 성녀 심 데레사의 남편.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태어났다. 1817년 10월(음) 덕산(德山)의 배나다리(현 지명은 禮山郡 揷橋邑 龍洞里 三區)에서 마을교우 30여명과 함께 체포되어 해미진영(海美鎭營)으로 압송되었고 해미진영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신앙을 고수하였다. 그 후 6,7년간 해미진영의 옥(獄)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관장의 허락을 얻어 옥 근처인 개인집에서 동생과 함께 살던 중 1824년 어느 날 새벽, 철야기도와 삼종기도를 바친 후 선종하였다. 그가 체포되고 10년간의 옥살이 끝에 1927년 옥사했고, 아내 김 데레사는 1840년 1월 9일에 순교, 1984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손여심 [한] 孫~

孫~(?~1827).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未詳). 충청남도 덕산(德山) 출신으로 1817년 10월(음) 덕산의 배나다리(현 지명은 禮山郡 揷橋邑 龍洞里 三區)에서 아들 및 30여명의 마을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해미진영(海美鎭營)에서 20여 회의 형벌과 고문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으나 옥살이를 해야 했고, 1827년 10년간의 옥살이 끝에 병사(病死) 하였다. 아들 손연욱도 1824년 병사, 순교했고, 며느리 김 데레사는 1840년 순교하여 1984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손소벽 [한] 孫小碧

孫小碧(1801~1840).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성인 최창흡(崔昌洽)의 아내. 세례명 막달레나. 서울의 교우가정에서 태어나 1801년 부친이 신유(辛酉)박해로 순교하고 얼마 후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자 외할머니에게서 자랐다. 17세 때 최창흡과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새로이 교리를 배우고 1821년 전국에 콜레라가 퍼지자 남편과 함께 대세를 받고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이해 6월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사위 조신철(趙信喆)이 북경에서 가져와 맡겨 놓은 교회물건들의 출처 때문에 3차의 주뢰와 태장 260도를 맞는 혹형과 고문을 당해 야 했고, 형조에서도 3회의 형문을 당했으나 모두 이겨내고 1840년 1월 31일 6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堂峴]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손선지 [한] 孫~

孫~(1820~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20일. 회장. 세례명 베드로. 일명 승운. 충청도 임천(林川)의 괴인돌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입교한 후로 열심히 수계했고, 16세 때 샤스탕(Chastan, 鄭) 신부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순교할 때까지 회장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해 12월 5일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정문호 · 한원서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전주감영에서의 신분 중 회장임이 탄로나 공소를 거쳐 간 서양신부와 교회서적의 출처를 알려는 관헌들에게 매우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해야 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고, 옥중에서도 회장의 직무를 다하여 함께 갇힌 교우들을 위로하고 근면하였다. 12월13일 전주 서문밖 숲정이에서 대성동과 성지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손경윤 [한] 孫敬允

孫敬允(1760~1802). 순교자. 세례명은 제르바시오. 정조실록(正祖實錄)에는 이름이 경윤(景允)으로 나온다. 1790년 최필공(崔必恭)에게 문교(問敎)하였고, 안국동에서 약방을 경영하며 교우들을 모아 축일(祝日)을 지내고 예비교우들을 가르쳤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경기도 양근(楊根), 양지(陽智) 등지로 피신해 다녔으나 가족이 자기 대신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포청에 스스로 나와, 1802년 1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