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 [한] 洗者 [관련] 요한1

세례자 요한을 말한다. ⇒ 요한1 ② 세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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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 [한] 細心 [라] scrupulositas [영] scrupulosity

행위의 윤리성을 혼동하여 죄와 무관한 행위를 죄되는 행위라고 여기거나 경죄(輕罪)의 행 위를 사죄(死罪)라고 상상하는 심적(心的)경향. 일상생활에 있어서 매사에 죄가 되지 않을 지를 지나치게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지녔다 하여 세심 또는 과엄(過嚴)한 양심(conscientia scrupulosa)이라 부르며, 이는 병적인 증세이므로 세심증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세심 또는 세심증을 지닌 사람은 불필요한 근심 걱정을 일삼을 뿐 아니라 사소한 이유로 결심을 바꾸고 행동에 변화가 무상하며 장상(長上)의 유권적인 판단을 불신하고 아집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세심의 결과 가벼운 죄조차 회피하는 이익이 없지 않으나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 이행에 소홀하게 되어 영신상 진실한 진보를 성취할 수 없는 결점을 지닌다. 세심의 원인에는 신체적 허약, 윤리적인 가치판단력의 미확립 등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건강을 회복하거나 고해신부에게 상의하여 세심증을 치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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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라] Caecilia

Caecilia(2~3세기). 성녀. 축일 11월 22일. 동정 순교자. 초기 로마교회에서 가장 많이 숭배되던 순교자의 한 사람이다. 5세기 말경 씌어진 행전(行傳)에 의하면, 로마의 유서깊은 명문 귀족의 딸로 태어나 부모에 의해 이교도인 다른 귀족과 정혼되었으나 남편을 개종시키고 일생 동안 신앙과 동정을 지켰다고 한다. 남편 발레리아노(Valerianus)와, 세실리아에 의해 개종한 시동생 티베르시오(Tibertius) 역시 함께 순교, 성 갈리스도(St. Callistus) 1세 교황의 카타콤바에 묻혔다. 유해는 성 파스칼(St. Paschalis) 1세(재위 : 817~824) 교황에 의해 발견되어 로마시의 성 세실리아 성당에 안치되었다. 1599년 교회 수리를 위해 유해를 옮길 때 육신이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교회 음악의 수호성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교회 미술작품 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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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원] Cecille, Baptiste Thomas Medee

Cecille, Baptiste Thomas Medee(1787~1873). 프랑스의 해군제독 외교가 정치가. 프랑스 센 강(江) 하류의 루앙(Rouen)에서 출생. 1840년 아편전쟁 후 프랑스 극동함대의 일원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다. 1841년 조선(朝鮮)과의 총상을 계획, 군함 에리곤(l’Erigone)호를 이끌고 마카오에 들려 신학공부 중이던 김대건(金大建)과 신학교 교수 메스트르(Maistre, 李) 신부를 통역인으로 승선시킨 후 조선으로 향해하였다. 그러나 요동(遼東) 지방에 이르러 영국과의 분쟁에 대한 염려 때문에 조선원정을 포기하고 김대건과 메스트르 신부를 양자강 어귀에서 하선시키고 상해로 돌아갔고 그 후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어 다시 조선원정을 계획하였다. 1846년 6월 세 척의 군함을 이끌고 충청도 홍주(洪州) 연안의 외연도(外煙島)에 정박하여 조선정부에 대해 1839년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 모방(Maubant, 羅) 신부, 샤스탕(Chastan, 鄭) 신부 등 세 명의 프랑스 선교사 학살사건의 책임을 묻는 서한을 보냈으나 이에 대한 회답이 없자 회답을 받기 위해 이듬해 다시 올 것을 통보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조선 내에서 민심의 소란을 초래하여 결국 김대건 신부의 처형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847년 프랑스로 귀국하여 1849년 주영(駐英) 프랑스 대사를 지낸 다음 1853년 원로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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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페데스 [원] Cespedes, Gregorio de

Cespedes, Gregorio de(1551~1611). 예수의 선교사. 스페인의 마드리드(Madrid)에서 출생. 1577년 일본에 입국하여 사망할 때까지 일본에서 전교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천주교인인 왜장 고시니((小西行長)의 요청으로 쓰시마(對馬)를 거쳐 1594년 초 조선에 입국, 경남 진해의 웅천성(熊川城)에 이르렀고, 일본군의 종군신부로 1년 동안 사목하다가 이듬해 5월 일본으로 돌아갔다. 조선에 체류할 때 조선 사람과는 접촉할 수 없어 전교하지 못했지만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는 남양(南洋)으로 팔려가는 조선인 포로 2,000명을 구출하여 영세, 입교시켰다. 그 뒤 호소까와(細川忠)의 신임을 얻어 교회를 세우고 전교에 전념하다가 나가사끼(長崎)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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