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 [한] 細心 [라] scrupulositas [영] scrupulosity

행위의 윤리성을 혼동하여 죄와 무관한 행위를 죄되는 행위라고 여기거나 경죄(輕罪)의 행 위를 사죄(死罪)라고 상상하는 심적(心的)경향. 일상생활에 있어서 매사에 죄가 되지 않을 지를 지나치게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지녔다 하여 세심 또는 과엄(過嚴)한 양심(conscientia scrupulosa)이라 부르며, 이는 병적인 증세이므로 세심증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세심 또는 세심증을 지닌 사람은 불필요한 근심 걱정을 일삼을 뿐 아니라 사소한 이유로 결심을 바꾸고 행동에 변화가 무상하며 장상(長上)의 유권적인 판단을 불신하고 아집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세심의 결과 가벼운 죄조차 회피하는 이익이 없지 않으나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의무 이행에 소홀하게 되어 영신상 진실한 진보를 성취할 수 없는 결점을 지닌다. 세심의 원인에는 신체적 허약, 윤리적인 가치판단력의 미확립 등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건강을 회복하거나 고해신부에게 상의하여 세심증을 치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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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라] Caecilia

Caecilia(2~3세기). 성녀. 축일 11월 22일. 동정 순교자. 초기 로마교회에서 가장 많이 숭배되던 순교자의 한 사람이다. 5세기 말경 씌어진 행전(行傳)에 의하면, 로마의 유서깊은 명문 귀족의 딸로 태어나 부모에 의해 이교도인 다른 귀족과 정혼되었으나 남편을 개종시키고 일생 동안 신앙과 동정을 지켰다고 한다. 남편 발레리아노(Valerianus)와, 세실리아에 의해 개종한 시동생 티베르시오(Tibertius) 역시 함께 순교, 성 갈리스도(St. Callistus) 1세 교황의 카타콤바에 묻혔다. 유해는 성 파스칼(St. Paschalis) 1세(재위 : 817~824) 교황에 의해 발견되어 로마시의 성 세실리아 성당에 안치되었다. 1599년 교회 수리를 위해 유해를 옮길 때 육신이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교회 음악의 수호성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교회 미술작품 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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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원] Cecille, Baptiste Thomas Medee

Cecille, Baptiste Thomas Medee(1787~1873). 프랑스의 해군제독 외교가 정치가. 프랑스 센 강(江) 하류의 루앙(Rouen)에서 출생. 1840년 아편전쟁 후 프랑스 극동함대의 일원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다. 1841년 조선(朝鮮)과의 총상을 계획, 군함 에리곤(l’Erigone)호를 이끌고 마카오에 들려 신학공부 중이던 김대건(金大建)과 신학교 교수 메스트르(Maistre, 李) 신부를 통역인으로 승선시킨 후 조선으로 향해하였다. 그러나 요동(遼東) 지방에 이르러 영국과의 분쟁에 대한 염려 때문에 조선원정을 포기하고 김대건과 메스트르 신부를 양자강 어귀에서 하선시키고 상해로 돌아갔고 그 후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에 임명되어 다시 조선원정을 계획하였다. 1846년 6월 세 척의 군함을 이끌고 충청도 홍주(洪州) 연안의 외연도(外煙島)에 정박하여 조선정부에 대해 1839년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 모방(Maubant, 羅) 신부, 샤스탕(Chastan, 鄭) 신부 등 세 명의 프랑스 선교사 학살사건의 책임을 묻는 서한을 보냈으나 이에 대한 회답이 없자 회답을 받기 위해 이듬해 다시 올 것을 통보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조선 내에서 민심의 소란을 초래하여 결국 김대건 신부의 처형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847년 프랑스로 귀국하여 1849년 주영(駐英) 프랑스 대사를 지낸 다음 1853년 원로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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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페데스 [원] Cespedes, Gregorio de

Cespedes, Gregorio de(1551~1611). 예수의 선교사. 스페인의 마드리드(Madrid)에서 출생. 1577년 일본에 입국하여 사망할 때까지 일본에서 전교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천주교인인 왜장 고시니((小西行長)의 요청으로 쓰시마(對馬)를 거쳐 1594년 초 조선에 입국, 경남 진해의 웅천성(熊川城)에 이르렀고, 일본군의 종군신부로 1년 동안 사목하다가 이듬해 5월 일본으로 돌아갔다. 조선에 체류할 때 조선 사람과는 접촉할 수 없어 전교하지 못했지만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는 남양(南洋)으로 팔려가는 조선인 포로 2,000명을 구출하여 영세, 입교시켰다. 그 뒤 호소까와(細川忠)의 신임을 얻어 교회를 세우고 전교에 전념하다가 나가사끼(長崎)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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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 [한] 世俗化 [라] saecularisatio [영] secularization, laicization [독] Sakularisieru

세속화라는 말은 매우 다의적(多義的)으로 사용되며, 이에 해당하는 외국어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 독일어의 경우 ‘Profanisierung’과 ‘Sakularisierung’이라는 말이 있고, 가장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쓰이는 경향이 있는 말로 ‘Sakularisation’이 있다. 그런데 ‘Sakularisierung’은 반드시 신앙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세속주의'(世俗主義) 즉 ‘Sakularismus’와 구별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세속’을 ‘profan’과 ‘sakular’로 구별한다. 즉 ① 라틴어 ‘profanus[신전(神殿)의 바깥에 존재하는, 통상의, 신성하지 않다]에서 온 영어의 ‘profane’은 세속적(世俗的)인 것, 인간적인 것을 뜻한다. 이 경우의 ‘세속`이란 말 자체는 ‘오성'(汚聖, profanation)의 의미는 담고 있지 않으며, 신의 본질은 거룩함이고, 신이란 자신이 만들어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우주를 초월한 ‘전면적인 타자(他者)’이므로, 이 창조자인 신과 대조할 때, 엄밀히 말해서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인 우주전체는 ‘세속’이다. ②라틴어 ‘saeculais'[이 세상에 속한다], ‘saeculum'[이 세상]에서 온 영어의 ‘secular’는 내세(來世)에, 천상에, 신에 속하는 것과 대조하여 현세(現世)에, 지상에, 인간에 속하는 것, 피조물, 유형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을 지칭한다. ‘세속’은 상대적인 것,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 따라서 때, 장소,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세속화라는 말은 본래 교회 및 수도원의 재산의 해방을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었으며, 이 런 의미의 커다란 세속화는 카롤링(Karoling) 왕조시대, 종교개혁시대, 그리고 19세기의 비엔 공의회 때 실시되었다. 이렇듯 좁은 의미의 ‘세속화'(secularization)는 교회의 소유 또는 교회용으로 정해진 재화를 교회의 허가 없이 국가적 또는 세속적 목적을 위하여 몰수 또는 징발하는 것, 징발당하는 일을 뜻한다. 국유화(國有化)와 동의어로 쓰일 때가 바로 이 경우이다. 넓은 의미로는 수도자 신분의 상실, 수도원의 폐지 또는 성당이나 제구(祭具)의 속용화(俗用化) 등 사람 혹은 물건의 세속화를 뜻하며, 정신의 세속화로서는 개인, 사회, 문화를 초자연적 정신적인 구속이나 관계로부터 해방, 즉 사회의 비(非)그리스도교화를 의미한다. 교회 재산의 몰수의 예로 1803년의 독일의 경우, 그 결과 신성 로마제국의 몰락을 가져왔고, 가톨릭 신자는 점점 더 열세자가 되어 주교와 교황에의 의존을 촉진한 사실을 역사는 제시해 주고 있다.

평신도 즉 ‘laicite’ 또는 ‘laic'(laique)이라는 말에서 온 ‘세속화'(laicization)라는 용어의 개념은, ① 성직자를 평신도의 신분으로 격하하는 것, ② 성스러운 물건을 세속의 용도로 충당하는 것, ③ 교회 건조물의 용도변경에 따라 세속용으로 하는 것, ④ 교회에 속한 어떤 시설의 관리 운영권을 세속의 권위자가 탈취하는 것 등을 지칭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 쓰이는 세속화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수도자의 ‘환속'(還俗)의 뜻이 강하며, 성직자의 환속은 특별한 이유와 교회의 선(善)을 위하여 주교, 신부, 부제(副祭)를 평신도의 신분으로 낮추는 경우를 가리키는데, 이 경우라 하더라도 환속된 사람은 성사의 효력을 상실하지 않으며, 아직도 신품성사 받은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다만, 환속자는 직위에 부수된 의무라든지, 일반적으로 독신을 지킬 의무가 면제되어 결혼할 권리가 주어지며, 긴급한 때는 환속된 신부로서도, 병자도유성사와 고백성사를 유효하게 집행할 수 있다.

대체로 지금까지는 ‘세속’을 하나의 비종교화 내지는 성(聖)에 대한 대립개념으로 이해하여 왔기 때문에, 일종의 종교적인 타락으로 이해하기가 일쑤였다. 세속화의 문제를 신학문제로서 가장 본격적으로 다른 고가르텐(Friedrich Gogarten, 1887~)은 고대에 신들이 지배하는 세계에 인간이 둘러싸여 있던 시기엔 세속화의 가능성도 없었는데, 그리스도교가 세계를 신의 피조물로 보고, 인간에게 세계로부터의 자유를 주고, 세계에 대한 책임을 준 뒤부터 세계는 단순한 세계에 불과하게 되었고, 이때 세속화가 대두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세속화의 근본적인 요소는 이전에 신의 섭리의 역사로 보아왔던 제도와 이념과 경험을 순수한 인간의 사상과 행위의 산물로 변형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어쨌든 세속화는 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으로 하여금 인간의 행위를 조정하고 인간 역사 창조에 동참케 한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간을 자유존재로 부르는데 있지만, 신의 아들(Sohn)이라는 점을 망각했을 때, 세속화는 마침내 신을 거부하는 세속주의로 전략하게 된다. 세속주의는 하나의 종교적인 구실을 하기 때문에 ‘세속화’라는 말과는 반대의 개념임을 알아야 한다. (⇒) 국유화

[참고문헌] A.Poschl, Protokoll der ausserordenlichen Reichsdeputation, vol.6 Regensburg 1803 / L. Konig, Pius VII., die Sakularisation und das Reichskonkordat, Innsbruck 1904 / I. Rinieri, La secolarizzazione degli stati eccl. della Germania, Roma 1906 / J. Schmitt, Staat und Kirche, Brgerlich-rechtliche Beziehungen infolge von Sakularisation, 1919 / K. Kastner, Die grossen Sakularisationen in Deutschland, 1926 / F.K. Schumann, Zur berwindung des Sakularismus in der Wissenschaft, 1950 / A. Gutierrez, De exclaustratione qualificata, ComRel 34, 1955 / F. Deldkat, Uber den Begriff der Sakukarisation, 1958 / C. Dawson, America and the Secularization of Modern Culture, Houston 1960 / P.V. Buren, The Secular Meaning of the Gospel, 1966 /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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