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주의 [한] 世俗主義 [영] secularism, laicism

세속주의는 일반적으로 그 자체를 휴머니티, 합리성, 자유의 이데올로기적인 혼합양태로 나타내는 자기완결을 내세우는 폐쇄된 주의요, 주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에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쓰이는 두가지의 세속주의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넓은 의미의 ‘세속주의'(secularism)로, 엄밀히 말해서 19세기 이후 처음에는 영국에서, 그 다음에는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주장된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 철학을 지칭하는 세속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평신도의 ‘세속주의'(laicism)로 불리는 교회의 여러 가지 사항을 평신도만에 의하여 집행하는 관리운영을 지칭하는 세속주의이다.

① secularism : 이 경우의 ‘세속주의’는 인간의 존재와 운명을 ‘영원’과는 상관없이 이세상의 입장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폐쇄적인 사상체계를 말한다. 사회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현세에 인간이 처해 있는 상태의 향상을 주장하는 것이 특징이고, 교회가 신과 내세에 관하여 중점을 두어 현세에서의 인가의 빈곤이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지적하여 교회를 비난하기도 한다.

② laicism :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 ‘laicus'(인민에 속한다)에서 왔으며, 이 라틴어는 그리스어 ‘laos'(인민)이라는 말에서 왔다. 이 경우의 ‘세속주의’ 사상은 시민생활, 사회생활, 또는 정치에 있어서의 종교적인 이상(理想)의 가치를 부정하고, 교회가 교회당이나 성당 이외의 장소에서 활동함을 방해한다.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요구하게 되며, 이런 요구의 밑바닥에는 의례 성직(聖職)에 대한 강한 반대가 깔려 있다. 따라서 이러한 반(反)성직주의 제창자들은, 교육, 결혼, 병원, 교구(敎區)성당, 수도원, 교회당, 그 밖의 조직 등 당연히 교회에 소속되어야 할 역할들을 정부의 관리와 감독 아래에 둠으로써 세속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 세속주의는, 역사적으로는 갈라카니즘(Gallicanism) 즉 갈리아(Gallia) 주의, 페브로니우스 주의(Febronianism), 요제피니즘(Josephinism) 및 프랑스와 멕시코의 반(反)종교적인 법률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이 세속주의는 공산주의의 정치 이론의 일부이기도 하며, 교회와 국가와의 분리를 주장함에 있어 교회는 당연히 국가 아래 종속된다고 해석하는 나라들에 있어서 늘 지배적임이 사실이다.

이상 세속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사상체계는 폐쇄적이고, 반종교적이라는 점에 유의하면서 그 폐쇄성과 반 종교성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살펴 볼 때, 먼저 자연주의 철학의 이해방식에 따른 ‘세속주의’의 대두를 들 수 있다. 자연을 초월한 것, 자연이 아닌 것과의 대결에 있어서, 즉 넓은 의미에서의 비판적인 기능에서 자연주의는 전개되고 있는데, 그 까닭은 바로 `초자연(超自然)이 오랜 동안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던 중세기가 종말에 들고 근세가 시작되는 시점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의 범신론(汎神論)이나, 홉즈(Thomas Hobbes, 1588~1679)의 유물론(唯物論)이 자연주의적이었던 것도 그런 상황에서 고개를 든데 연유한다고 본다. ‘물자체'(物自體)나 자유를, 자연을 뛰어넘은 것으로 파악할 경우, 현상과 필연성의 세계를 고집하게 되는 자연주의가 나오게 되는데, 이런 유형에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나 니체(F.W. Nietsche)의 이상주의 반대론이라든지,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유물론 등이 있다. 마르크스의 말에 따르면, 공산주의란 ‘완성된 자연주의’인 셈이다. 그리고 과학적인 태도가 인간성을 압살할 것처럼 느껴질 경우, 이것에 대결하기 위하여 정감과 동경을 내세운다면, 루소와 마찬가지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이 터져 나올 터이다.

그러나 세속주의가 신앙과 모순되며, 종교에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지만, ‘세속화’는 오히려 복음으로의 지향을 전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틸리히(P.J. Tilich, 1886~1965)는 “어떤 철저한 세속화가 특수한 기능을 빌어 종교를 박멸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정신적인 기능의 터전으로 되어 있는, 이른바 궁극적 관심의 특질인 종교성만은 파괴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세속화를 통하여 더 철저하게 성(聖)을 부각시키자는데 ‘세속화’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G.J. Holyoake, The Principles of Secularism, London 1859 / E. Lecanuet, Les Peres du laicisme en france, Le correspondant 277, 1919 / G. Weill, Histoire de l’idee en France au XIX’ siecle, Paris 1929 / L. Caperan, L’Invasion laique, Paris 1935 / E.M. Acomb, The French Laic Laws, 1879~1889, New York 1941 / O. Giacchi, Lo stato laico, Milan 1947 / J. Lecler, The Two Sovereignties: A stud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church and State, New York 1952 / J. Collins Marxist & Seculer, Secular Humanism, Social Order 3, 1953 / P.H. Caron, L’Etat contre l’Esprit: Laicisme ou christianisme, Paris 1955 / H.X. Arquilliere, L’Augustinisme politique, Paris 1955 / L.V. Mejan, La Separation des Eglises et de l’Etat, Paris 1959 / B. de Vaulx, History of the Missions, tr. R.F. Trevett, New York 1961 / L. Caperan, Histoire contemporaine de la laicite francaise, t. 3, Paris 1957-1961 / J. B. Trotabas, La Notion de laicite dans le droit de l’Eglise catholique et de L’Etat republicain, Paris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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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권 [한] 世俗權 [영] temporal power

교회 주교가 정식으로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이나 재정수단 등을 가지고 행사하는 정치적 권한을 의미한다. 교회가 현세의 재산에 대해서 갖는 지배권, 혹은 교황령의 경우와 같이 교회에 소속된 영지에 대한 교황의 권한 등이 그것이다. 이 권한은 영적 사항에 관한 교황과 지배권과 더불어 교황의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국가권력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 교황의 세속권은 1929년 라테란조약 이후 바티칸시국에서 행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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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한] 世俗

① 세상을 일컫는 말. 세상은 하느님이 만든 아름다운 피조물이지만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악으로 물들여져 있으므로 하느님의 구원을 받아 쇄신되어야 한다. 이처럼 새로워져야 할 세상을 세속이라 불러 교회나 하늘나라와 구분한다. “세상을 위해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이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합니다”(요한 17:9)라고 한 예수의 기도에서 세상은 세속을 의미한다.

②세상이 지니는 반(反)복음적인 요소를 뜻하는 말. 세상은 하느님의 성성(聖性)에로 나아가려는 인간에게 유익한 도움과 함께 장애되는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후자의 예로는 하느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사회 풍속, 유행, 사조(思潮), 전통 따위이다. 이러한 요소를 지칭하여 세속이라 한다(尹亨重, 註解 天主敎要理, 上, 가톨릭출판사,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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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한] 世上 [라] mundus [영] world

일반적으로 인류가 살고 있는 지상(地上)을 뜻하는 세상을 구약성서는 ‘하늘과 땅'(창세 1:1)이라 표현한다.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인들의 코스모스(kosmos = 우주)는 인간과 신(神)들 및 우주법칙과 만물의 순환을 포함하는 범신론적 세계였으나, 성서에 의하면 세상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기 위한 도구로서 의미를 지니고, 이 세상의 최종 운명도 이 계획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은 세상에서 태어나 세상을 지배하며(창세 1:28) 자신의 고유한 문명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로서 세상을 사용한다.

구세사에 있어서 세상은 이중적(二重的)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창조된 세상은 하느님의 자비를 표현하며 그분의 신성(神性)을 보여 주나(지혜 13:3-), 범죄한 인간에게 세상은 또한 하느님의 분노의 도구라는 의미를 아울러 가진다(창세 3:17, 신명 28:15-46). 지혜서는 이집트인들을 멸망시킨 바로 그 물이 이스라엘에 구원을 가져다주었다고 하면서 이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지혜 11:5-14). 신약성서에서 가르치는 세상도 하느님의 말씀(요한 1:3, 히브 1:2 참조)에 의하여 창조된(사도 17:24) 아름다운 피조물이며 하느님을 증거하고 있으나(사도 14:17), 범죄한 인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탄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그런데 하느님은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을 보내 주셨다(요한 3:l6). 이때부터 세상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이 역사는 사탄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악의 세력을 이기는 예수의 승리라는 소극적인 면과 예언자들에 의해 약속된 새로운 세계가 예수로 인하여 열린다는 적극적인 면을 동시에 지닌다. 예수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요한 8:23) 세상의 임금은 그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으므로(요한 14:30) 세상의 미움을 받아(요한 15:18) 죽음을 당하였다. 그 죽음으로써 그리스도는 악의 세상을 이기고(요한 16:33) 세상을 사탄의 지배에서 해방하였으며 당신의 피로 세상을 깨끗이 씻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그가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바치기 위해(1고린 15:25-28) 영광으로 나타날 그날에 가서야 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세상은 그 때까지 고통 속에서 자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한다(로마 8:19). 태어날 자녀란 성숙한 모상을 가진 새로운 인간이며 옛 세상을 대신할 새로운 세상이다(묵시 21:4). 이처럼 쇄신된 세상이 ‘새로운 하늘과 새로 운 땅’ (이사 65:17)이다.

그리스도 교인은 그리스도가 지상생활을 영위했을 때처럼, 세상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요한 15:19) 세상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요한 17:11).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는 뜻에서 세상과 이탈해야 하고 세상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갈라 6:14). 세상의 재물은 형제적 사랑의 요구에 따라 타당하게 사용해야 한다(1요한 3:17). 한편 그리스도 교인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세상에 온 그리스도처럼, 진리의 증인이 되도록 세상에 파견되었으므로 생환의 증거와 말씀의 선포로 그 임무를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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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아노 [라] Sebastianus

성인. 초기 교회 순교자. 축일 1월 20일. 성 암브로시오(St. Ambrosius)에 의하면, 밀라노 출신으로 디오클레시아누스(Diocletianus) 박해(297∼305년) 때 순교했다고 한다. ≪354연대기≫와 ≪예로니모(Hieronymus) 순교록≫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유해는 아피아(Appia)로(路)가에 있는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에 대하여 별로 알려진 것은 없으나 중세와 르네상스시대에 그려진 영웅화된 많은 그림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450년경 편찬된 전설에 의하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군사로서 그리스도교도라는 것이 발각되어 화살에 맞아 처형될 뻔하였으나 이레네(Irene) 라는 과부의 간호로 살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황제에게 발각되어 이번에는 곤봉에 맞아 죽었다. 그래서 르네상스시대에 그려진 회화에 주로 화살을 맞고 있거나 화살을 쥐고 있는 영웅적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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