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자헌축일 [라] Festum in praesentatione B.M.V. [영] Feast of praesention of Mary [한]

성모 마리아의 부모가 성전(聖殿)에서 세 살된 마리아를 하느님께 봉헌한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11월 21일). 이 사실은 복음성서에 언급되지 않았고 위경(야고보의 원(原)복음과 위(爲)마태오 복음)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교회는 봉헌 사실만을 신심면에서 인정할 뿐 그 자세한 설명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 봉헌의 근거는 사람과 짐승의 맏배를 하느님께 봉헌하라는 모세의 법(출애 13:1-2)에 있다. 이 법이 발전되어 “산모가 사내아이를 낳았거나 계집아이를 낳았거나 몸을 푼 다음에”(레위 12:7) 정결례를 하게 되었다. 이에 따른 마리아의 봉헌을 자헌의 상징으로 보는 전승은 위경의 입장과 결과적으로 부합하는 점이 많다. 교황 식스토 5세는 1585년 이 축일을 전교회의 축일로 지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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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대축일 [한] 聖母∼原罪∼孕胎大祝日 [라] Sollemnitas in Conceptione Immaculata B.M.V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를 기념하는 축일(12월 8일)을 말한다. 이는 7세기경 서방교회에서 지내기 시작하였는데 9세기에 남부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 북서부 지방과 아일랜드에 소개되었고 11세기 중엽 영국에 전해졌다. 교황 식스토(Sixtus) 4세가 이날의 고유 미사와 전례를 1476년에 인가하였고 교황 글레멘스(Clemens) 11세가 1708년 전교회의 축일로 정하였다. (⇒) 원죄 없는 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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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의 노래 [한] 聖母∼ [라] Magnificat

성모영보(聖母領報) 후 성모마리아가 사촌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엘리사벳이 ‘주님의 어머니’라 부르며 인사를 했을 때 마리아가 노래했던 찬미의 노래(루가 1:46-55). 4세기의 라틴어역 성서에서 ‘Magnificat anima mea Dominum'(‘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니’)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첫 글자를 따서 마니피캇이라고 오랫동안 불려졌다. 몇몇 교부들이 성모의 노래가 성모 마리아의 노래라기보다는 엘리사벳의 노래라는 주장을 한 후 그 기원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12년에 개최된 교황청 성서위원회는 성모의 노래가 성모 마리아의 노래임을 천명하였다.

성모의 노래는 6세기 성 베네딕토(St. Benedictus) 때부터 서방교회에서 저녁기도의 찬미가로 사용되었다. 특히 장엄 저녁기도에는 특별한 후렴과 함께 제단에서 분향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동방교회에서는 큰 축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기도 때 불려진다. 성모의 노래는 많은 작곡가들에게 좋은 소재로 제공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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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왕고 [한] 聖母往顧 [관련] 성모축일

성모 마리아께서 세례자 요한의 모친이자 사제(司祭) 즈가리아(Zacharia)의 아내인 성 엘리사벳(St. Elisabeth)을 방문하신 것을 일컫는 말. 이 방문시에 엘리사벳은 세례자 요한을 잉태하고 있었다. 방문축일은 5월 31일. (⇒) 성모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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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영보수녀회 [한] 聖母領報修女會 [영] Sisters of the Annunciation

1960년 3월 25일 가톨릭대학 교수이면서 성서학자인 선종완(宣鍾完) 신부에 의해 경기도 소래(蘇萊)에 창립된 수녀회. 선종완 신부의 성서번역을 돕던 몇 명의 처녀들이 입회함으로써 시작되어 한국인에 의해 한국에서 설립된 관상 수녀회이자 반봉쇄 수녀회로서 실제로 가난한 생활을 함으로써 빈곤한 자를 돕고 근면한 생활로 노동의 존귀함을 드러내자는 것이 창립정신이다. 1958년 선종완 신부의 사재(私財)로 경기도 소래에 12정보의 땅을 매입함으로써 수녀원 설립이 태동되어 1960년 마침내 그 설립을 보았고, 초창기 회원들은 처녀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감당해야만 하였다. 메마른 땅에서 힘써 재배한 감자를 주식으로 하여, 메추라기, 젖소, 칠면조 등을 사육하는 한편 인천(仁川)까지 나아가 우유를 판매하였다. 또한 손수 제작한 흙벽돌로 지은 초라한 건물과 성당에서 생활해야만 하였다. 1967년 6월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果川面) 산골짜기에 그 터전을 이전하여 역시 흙벽돌을 찍어 새수도원을 건설하였고 1969년에는 피정의 집을 마련하였다. 1970년에는 창설 이후 최초의 허원식이 거행되었다. 대내외적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전개하여 박계리 부락 아이들을 위한 주일학교 개설, 장학금 지급을 하는 한편 1973년에는 대지 200평을 매입하여 어린이놀이터를 조성한 후 이를 기증하였다. 1975년에는 경기도 용인군에 용인분원을 설립하여 과천의 양계장을 옮겨오고 농장을 일구어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1976년에는 성 라자로 마을에 수녀들을 파견하고, 1979년에는 서울 살레지오회 청소년기숙사에, 1980년에는 파주군 광탄면(廣灘面)에 파견하여 활동하고 있다. 분원으로는 전북 함열(咸悅) 본당 상지원(上智院)에 1980년 설립되었고, 부산 오륜대(五倫臺) 피정의 집과 안동 봉화(奉化)에 설립되었다. 수녀회의 입회자격으로는 다른 수녀회와 달리 국민학교 졸업 이상으로 학력을 한정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 과천 본원을 비롯한 6개의 분원이 있고 본원장 노명숙(盧明淑) 수녀를 비롯한 9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본원이 있는 과천이 서울대공원 기지로 수용됨에 따라 이전계획 및 공사준비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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