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 [라] Salesius, Franciscus

Salesius, Franciscus(1567-1622). 살(Sales)의 프란치스코라고도 한다. 성인. 축일은 1월 24일. 제네바의 주교. 교회학자. 이탈리아 귀족 출신으로 안네시(Annecy), 파리 및 파두아(Padua) 대학에서 수학하였고 1593년 사제 서품되었다. 칼빈주의로 개종한 샤블레(Chablais)에 첫 부임하여 4년간의 사랑의 설교를 실시, 대부분의 주민을 가톨릭으로 복귀하게 하였다. 1602년 제네바의 주교가 된 뒤 교구 개혁과 재조직에 전념하였고 16510년 과부 샹탈(St. Jeanne de Chantal)과 함께 성모방문 수도회를 창설하고 리용의 한 방문 수도회에서 일생을 마쳤다. ≪신심 생활의 입문≫(Introduction a la vie devote, 初版 1609)과 ≪신애론≫(神愛論, Trait de l’amour de Dieu, 初版 1616)을 저술하였는데, 후자는 인간의 삶 속에 있는 신에 대한 사랑을 다룬 가벼운 논문으로 그의 가장 뛰어난 저서이다. 또한 과학, 예술 및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으로 프랑스 아카데미(Academie Francaise)가 세워지기 이미 30년 전에 안네시에 아카데미(Academie Florimontane)를 세웠다.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언론인과 저술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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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여지전도 [한] 山海與地全圖

중국 선교사인 예수회 소속 리치(Matteo Ricci, 利瑪寶)가 제작한 동양최초의 근대 세계지도라고 알려져 있다. 산해여지전도는 조경판(肇慶版, 1584), 조심당판(趙心堂版, 1584-1599), 남경판(南京版, 1600), 귀주판(貴州版, 1604)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는 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조경판과 남경판은 리치가 직접 제작했다고 하며, 나머지 둘은 방각본(倣刻本)으로 각각 조가회(趙可懷), 곽자장(郭子章)에 의해 간행되었다고 전한다. 지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지도의 내용과 규모 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음 몇가지의 문헌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즉 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 1602) 오좌해(吳左海)의 서문, 풍응경(馮應京)저 재임증(載任增)역 ≪월령광의≫(月令廣義, 1602),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之峰類設), 알레니(J. Aleni, 艾儒略)의 ≪이마두선생행적≫(利瑪竇先生行蹟), 리치의 ≪입연기록≫(入燕記錄), 바들리(J.F. Baddeley)의 <마테오 리치의 중국지도>(Father Matteo Ricci’s Chinese World-Map, Gegraphical Journal, Oct. 1917)등이 <산해여지전도>의 자료를 담고 있다. 이들 문헌에 의하면 리치는 1583년 광동성 조경(肇慶)에 도착하여 중국 선교를 시작하면서 선교의 한 방법으로 서양식 세계지도를 번역하였다 한다. 최초의 판인 조경판은 조경총독 왕반(王伴)의 요청으로 오르텔리우스(A. Ortelius)의 세계지도≪Treartum Orbis Terrarum≫(1570)를 한자로 번역, 표기했다고 한다. 다만 대형의 한자를 넣기 위해 도폭(圖幅)을 원도(原圖)보다 확대하였다. 지도는 중국인 학자들의 호평을 받았고 이로써 리치는 남경과 북경에 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조경판은 리치가 중국에 도착한 지 2년만에 제작되어 한문번역에 미숙함이 많았고 따라서 리치 자신도 오류가 많았음을 시인하였다. 그러던 중 남경 오좌해(吳左海)의 도움으로 남경판을 제작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金良善, 明末淸初 耶蘇會宣敎師 製作한 世界地圖, 한국천주교회사논문선집, 제1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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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영] Santa Claus

세인트 니콜라스(Saint Nicholas)로부터 전화(轉化)된 말. 크리스마스 전날 밤,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고 다니는 붉은 외투 차림에 흰 수염의 노인. 미국에 이주해온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전해져 세계 여러 나라에 대중화되었다. 원래는 4세기 전반에 터키의 남부에 있는 지금의 담브레(Dembre)의 미라(Myra)에 살았던 성 니콜라오(St. Nicholaus) 주교를 지칭한다. 그는 어린이와 선원들의 수호성인이다. 또한 러시아, 자선단체, 동업조합 등 여러 형태의 수호 성인으로 동방 · 서방교회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이나 미라의 주교였으리라는 사실 외에 그의 생애를 밝혀 줄 역사적인 자료는 확실치 않다. 유럽에는 그에게 봉헌된 교회가 수십 개에 달한다. 그의 유해는 1087년 미라에서 남부 이탈리아의 바리(Bari)로 이장되었다. 교회는 12월 6일을 축일로 기념한다. 13세기 수도원학교에서 예전부터 행해져 오던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의 관습인 ‘소년 주교 의식'[소년들 중 주교를 뽑아 12월 28일의 축일까지 주교 행세를 하게 함]이 이날로 옮겨졌다.

또한 자선심이 많고 특별히 어린이를 사랑했던 성 니콜라오가 어린이들을 방문하여 선물을 나누어주었다는 전설과 결부하여 축일 전날 밤, 어린이들의 양말 속에 장난감과 과자를 가득 채워주는 풍습이 발전되었다. 신대륙 발견 이후 미국에 이주해 온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이러한 옛 가톨릭 관습을 그대로 보존, ‘신비의 사람 방문’이란 관습으로 되살려 12월 5일에서 25일 사이에 실시하여 현재까지 계속된 것이다. 그러나 성인과 그 축일의 근본적인 면은 도외시하여 그를 ‘자비로운 요술쟁이’로 대치시켜 ‘산테 클라아스’라 불렀고 이 발음이 영어화되자 어린이들이 더 정답게 부르게 되어 산타클로스로 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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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한] ∼大聖殿 [이] Santa Maria Maggiore

로마의 4대 바실리카의 하나. 일명 눈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한국식 옛 명칭은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이라고 하였다. 교황 리베리오(Liberius, 재위 : 352-366)가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 창건, 교황 식스토 3세(재위 : 432-440)가 재건하였다. 리베리오 교황의 성당 착공에 앞서, 성모마리아는 로마의 한 귀족에 대한 발현(發顯)에서 교황이 성당을 세우려고 원하던 에스퀼리노 언덕에, 한 여름철인데 눈이 내리게 해서 장소를 정해 주셨다는 전설이 있다. 식스토 3세의 재건 때(432년) 이 성당은 성모에게 봉헌되었다. 봉헌축일은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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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동본당 [한] 山亭洞本堂 [관련] 목포본당

⇒ 목포본당

전라북도 여기저기 여러 본당이 설립되었던 1896년 가을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호남지방 순회 때 목포에 될 수 있는 한 신자들을 이주시키도록 당시 수류 본당(水流本堂) 라크루(Lacrouts, 具) 신부에게 위임하였다. 한편 1897년 봄 뮈텔 주교로부터 책임을 부여받 드예(Deshayes, 曺) 신부는 목포시 산정동 90번지에 20여 평 규모의 성당 겸 신부사택용으로 벽돌 건물을 세우고 1898년 봄에 목포 본당을 설립, 1909년 봄까지 초대 주임신부로서 전교사업을 벌였는데, 당시 교우수는 약 300명이었다.

2대(1909-1912년) 투르뇌(Tourneux, 呂) 신부, 3대 샤르즈뵈프(Chargeboeuf, 宋) 신부 때인 1913년에는 목포시 산정동 94번지에 현재의 성당을 벽돌조 건물로 100여평 대지 위에 신축하여 성 십자가 성당으로 이름지었다. 4대(1914-1915년) 카넬(Canelle, 簡) 신부는 부임하자마자 1차 세계대전으로 소집되어 전사함으로써 1년 동안 본당신부 없이 제주읍의 라크루 신부가 대신 관리하였다. 5대(1915-1922년) 타케(Taguet, 嚴) 신부 때는 교우수가 400명, 6대(1922-1932년) 주재용(朱在用, 바오로) 신부 때는 교우수 700명, 7대(1932-1934년) 송남호(宋南浩, 요셉) 신부 때는 교우수 800명으로 차차 증가추세를 보이다가, 8대(1934-1942년) 성 골룸바노 외방전교회 신부인 모나간(Monaghan, 矣) 신부 때는 1,800명, 9대(1942년 봄-여름) 김재석(金在石, 요셉) 신부 때는 1,950명, 10대(1942년 여름-1944년) 박문규(朴文奎, 미카엘) 신부 때는 2,050명, 11대(1944-1949년)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 때는 2,500명, 12대(1949. 2-1949년 가을) 김재석 신부 재부임 때는 2,600명, 13대(1949년 가을-1950. 7. 24) 쿠삭(Cusack, 高) 신부 때는 2,750명이었다. 그런데 쿠삭 신부는 6.25 동란으로 인하여 캐롤(Caroll, 安) 몬시뇰, 보좌신부인 오브라이언(Obrien, 吳) 신부와 함께 공산군에 의해 납치되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1952년에는 목포 본당이 경동 본당(京洞本堂)을 분리시키면서 산정동 본당으로 이름이 바뀌어지게 되었다. 쿠삭 신부의 뒤를 이어 모란(Moran, 安) 신부가 14대(1950-1953년)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는데, 이 때 교우수는 3,000명이었다. 그 뒤 15대(1953-1953. 6) 도슨(Dawson, 孫) 신부, 16대(1953. 6-1956년) 새비지(Savage, 元) 신부 때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들이 전교활동을 시작하면서 성심유치원을 창립, 운영하였다. 17대(1956-1960년) Dunne(都) 신부 때인 1958년에는 목포시 북교동 본당(北橋洞本堂)의 신설로 본당 관할구역이 분리되었다. 18대(1960-1962년) 휴스(Hughes, 柳) 신부 때는 교우수가 4,594명, 19대(1962-1964년) 모리시(Morrisey, 矣) 신부 때는 교우수가 4,650명이었다. 20대(1964-1969년) 브라질(Brazil, 陳) 신부 때인 1966년 5월 29일에는 목포시 산정동 97번지에 166평의 철근 콘크리트 및 벽돌 슬레이트 성당, 45평의 사제관을 건립하고 성 미카엘 대천사를 본당주보로 정하고 성 미카엘 성당으로 이름지었다. 그리고 1969년 9월 3일에는 목포시 연동 본당의 신설로 본당 및 공소 관할구역을 재조정하였다. 21대 캐얼란(Carelan, 車) 신부 때는 교우수가 3,000명이었고, 목포시 대성동 본당의 신설로 다시 본당 및 공소 관할구역을 재조정하였다. 22대(1972-1974년) 모리시 신부 때는 교우수 2,000명, 23대(1974-1978년) 놀란(Nolan, 盧) 신부 때도 2,000명, 24대(1978-1983년) 이재흥(李載興, 힐라리오) 신부 때도 2,000명이었다. 1978년 10월 27일에는 6.25때 피랍된 성직자(캐롤 몬시뇰, 쿠삭 신부, 오브라이언 신부) 순교비를 본당 내 성모상 옆에 세워 제막하였다. 25대(1983-현재) 주임신부는 박영웅(朴英雄, 가브리엘) 신부이다. 1984년 현재 신자수는 1,937명이고, 3개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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