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한] 社會主義 [영] socialism [독] Sozialismus

사회주의는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함으로써 노동계급이 소외되고 빈부의 차가 격심해짐에 따라 노동자의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 해방을 주장하는 사상을 말한다. 사상사적으로 볼 때 먼저 오웬(R. Owen), 생 시몬(Saint Simon), 푸리에(J.B.J. Fourier)등에 의해서 사유재산의 철폐와 재산의 공유가 주장되었다. 그러나 이 사상들은 마르크스(K. Marx)에 의해서 공상적 사회주의로 규정되어 마르크스 이후의 사회주의와 구별된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넓은 의미로 보면 마르크스 이전과 이후의 모든 사회주의적 사상을 포괄하나 좁은 의미로 보면 마르크스와 레닌(V.I. Lenin)에 의해서 발전된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가톨릭 교회는 어떠한 정치사항을 배격하거나 찬양하는 입장을 취하지는 않으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비오 11세가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대한 회칙>(Divini Redemptoris, 1937)에 서 그 비인도적 성격을 신랄하게 공격하였고 그 후에도 많은 문헌을 통해서 비판을 계속하고 있다. 혁명의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과거에 가톨릭 교회가 추한 태도는 이론적 입장에서는 무신론 및 종교에 대한 공격이나 박해를 비난하고 단죄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신학이 가톨릭 신학에 대해서 중대한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회주의는 신의 계획과 인간의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문제를 새로운 형식으로 부활시키는 것이며,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적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도록 재촉하고 있다. 또 세계를 과거로부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 이해해야 함을 요구하고, 성서 가운데 내포된 미래지향성을 재발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가톨릭 교회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양자간의 이론적인 차이나 대립을 보다 엄밀하게 이해하고 규정하는 동시에, 실천적인 측면에서 가능한 한 협력해 가려고 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종교비판은 모든 사회 비판의 제일조건이다. 이 종교비판은 이중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하나는 종교를 관념론의 최고 형태로서 비판하고 또 하나는 종교를 자본주의 사회의 일부로서 비판하는 것이다. 즉 종교는 강자의 약자 압박의 결과이며 수단이라고 말한다. 레닌은 “우리는 종교와 투쟁하여야 한다. 이는 유물론 전반의 입문이며 따라서 마르크시즘의 초보다”라고 말하고 “신이란 자연의 힘과 계급의 속박으로 압박되어 둔해진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공상의 총화이며 이런 공상은 계급투쟁의식을 약화시키고 억압시킨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비오 11세는 “현대세계에 있어 가장 무서운 위험은 사회질서를 전복하고 그리스도교 문명의 근본까지도 뒤엎어 버리려는 과격한 무신론적 사회주의이다.”라고 말하였다.

사회주의는 인간을 한갓 현세의 부분품으로, 물질의 노예로만 격하시키는데 반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간의 인간다운 품위를 옹호하고 인간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현세의 올바른 질서를 가르친다. 그것은 물질에 대한 영성의 우위, 찰나주위에 대한 영원한 생명의 우위, 상대적 존재들에 대한 절대자의 우위성이다. 사회주의자의 대다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한낱 환상적 투신에 불과하며 근거가 없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는 복음에 비추어 인간경험을 이해하기 때문에 정반대의 견해가 옳다는 것이다.

마르크시즘의 중심에는 인간을 소외로부터 해방하여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화해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혁명의 중개의 관념이 있다. 그러나 교회의 중심에는 참으로 특수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그리스도라는 중개자의 성질에서 최고의 효력을 발생시키는 구원의 중개가 있다. 사회주의는 이성과 하느님의 계시에 반하는 오류에 가득찬 체계이며 사회의 근본을 파괴하는 이론이다. 그것은 인간 인격의 제 권리, 그 존엄, 인격 자체를 무시하는 체계이다.

사회주의는 인간으로부터 윤리적 행위의 영적 원리인 자유를 박탈한다. 사회주의는 집단에 대한 개인 인격의 본성적인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에 있어서 인격은 이미 조직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적 체제들은 인간의 참된 가치와 초자연적 목적을 무시한다. 사회주의의 교리는 한편으로는 인간을 고양(高揚)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로 비하시키고 있다. 즉 사회주의는 인류의 마음을 침범하여 그것을 멸망시키는 치명적인 페스트와 같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양심, 인격적인 이성과 자유를 소멸시키는 일은 단연코 용납하지 않으며, 또 계급을 인간의 양심과 이성과 자유에 대치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는 공동체의 이성을 인정하고 계급의 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민족이나 계급보다는 더욱 깊고 훨씬 더 높은 현실이다. 이 진리는 모든 계급과 모든 이해(利害)와 증오에 대항해서 주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의 근본적 결점은 유물론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 안에 있는 정신질서의 고급한 경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확히 해석하지도 못한다. 많은 이들의 고급경향이 감소되고 물질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느 계급에 속하든 간에 그의 정신이 특히 계급관념을 추월할 만큼 관대하며 이해성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졍제학비판 서문에서 “인간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그들의 의지에 의존하지 않은 특정의 필연적 관계 즉 생산관계를 맺는다. 이 생산관계는 그들의 물질적 생산력의 특정한 발전단계에 대응한 것이다. 이들 생산관계의 총체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는데, 이것이 실존적 기초가 되어 그 기초 위에 알맞게 특정된 사회적 의식 형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물질적 경제생활의 생산방법은 사회적 · 정치적 · 정신적 생산과정을 제약한다. 사람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라고 말하였다.

물론 이 세상에서 생산방법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발전이 생산방법에 대하여 필연적으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경제적 변화는 계급투쟁과 혁명에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현존 경제체제로 인하여 혜택을 받는 계급의 저항과 이 체제에 대하여 수정을 요구하는 계급의 압력을 매일같이 확인할 수 있다. 요약하면 유물사관은 상당히 확실한 역사적 사실을 수집하였고 이에 대하여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충분한 설명을 하였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유물사관이 보편적 진리가 되기 위하여는 중요한 모든 역사적 사건의 근본 원인도 설명하여야 한다. 즉 다만 경제조건만이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주어야 하며, 경제적 인자만이 역사적 변천에 간섭하여야 하며, 계급투쟁과 혁명이 세계사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가피한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는 이러한 여러 명제를 설명하지 못하였고 앞으로도 절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에 있어서 다른 요인들이 역사에 작용하여 또 역사의 흐름은 숙명에 맡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계급을 물질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사회의 계층으로 본다. 따라서 계급형성에 있어서는 심리적인 요인이나 다른 요인은 전혀 무시된다. 계급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중요성은 상대적이다. 가령 마르크스가 계급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부분에 관한 것뿐이고 전체적인 인간에 관한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의 가장 현저하고 가장 비인간적인 허위는 인간을 초월하여 계급을 보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가장 깊은 곳뿐만 아니라 그 내면의 정신적 체험에 이르기까지 계급에 종속되는 한 가지 기능으로 환원해 버리는 일이다. 계급을 유기적 현실체로 생각하는 것은 사회나 인격을 고찰하는 데 있어서 더 한층 근거가 박약하다. 계급은 사회적 과정의 한 기능이며 이에 따르는 일체의 것을 다만 인격에 종속하는 부분을 이루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정치이론은 계급투쟁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고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즈와지의 투쟁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로 옮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부자와 빈자의 관계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줄기찬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며 이 두 계급은 처음부터 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사회주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그 때에는 필연적으로 자본가 계급에 대하여 무산자 계급의 투쟁이 벌어진다. 착취자인 자본가에 대하여 노동자들은 착취를 감수하고 있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피착취자들의 힘이 증대해지면 현존사회의 균형은 무너지고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즉 현존 경제체제에 의존하던 상층구조는 전복되고 새 경제체제에 부응하는 상층구조가 점차로 성립된다. 사람들은 이 혁명의 시기를 지연시키거나 단축시킬 수 있을 뿐 혁명 자체를 저지할 수 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계급투쟁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회주의의 정치이론의 허점은 폭력이라는 것이 최후의 수단이며, 불가피한 숙명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폭력은 결코 정의를 구현하는 가장 올바른 절차가 될 수 없다. 그들은 계급투쟁과 증오와 파괴를 인류의 진보를 위한 십자가로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견해이다. 혁명불가피론 또한 잘못된 이론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이 진리였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 자본국에서 먼저 일어났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자본주의가 가장 부진했던 러시아에서 소수인에 의해서 혁명이 조직되고 추진되었다.

오늘날 개인이나 집단이 인간 품위에 알맞은 충만하고도 자유로운 생활에 굶주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러한 요구들이 오직 폭력혁명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사회주의자의 주장을 단호히 배격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의 사유재산제도 속에서 인간의 자기 소외의 원인을 발견하는 데 반하여 그리스도교는 소유권의 확인 속에서 또 지상의 부의, 만인에 의한 사용이라는 기본적 권리의 한계 내에서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의 현실적 자유의 원천을 본다.

사회주의는 그리스도 교인에 있어서 극히 특수한 의미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그리스도교인이 자기의 의무를 태만히 하고 그리스도교적 사상을 실현하지 않았던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리스도 신자를 회심시켰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정의는 오늘날까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깊은 섭리에 의해서 악의 힘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 것이다. (⇒) 공산주의 (韓庸熙)

[참고문헌] 한용희, 가톨리시즘의 공사주의 비판, 숙명여대정치경제연구소 논문집, 1981 / 비오 11세,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관한 회칙, 1937 /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N. Berjaev, 그리스도교와 계급투쟁, 대한기독교서회,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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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교위원회 [한] 社會主敎委員會 [영] Commission for Social Affairs [관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산하 상설 주교위원회 가운데 하나. 그전까지 분과위원회제로 운영되었으나 1981년 10월 14일 주교회의의 결의에 따라 주교위원회로 개편되었다. 구성은 6명의 주교와 총무신부 1명으로 이뤄져 있고, 필요에 따라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전문위원을 둘 수 있게 되어 있다. 사회복지, 정의, 평화, 매스컴,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제반문제를 연구·심의하며 인성회, 나사업가연합회, 정의평화위원회, 매스컴위원회 등의 단체들을 지도 · 감독한다.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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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 [한] 社會正義 [영] social justice

가톨릭 교회는 그 본질상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이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 빛을 던지고 썩어 가는 양심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존재한다. 특히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마태 25:31-40)이 가톨릭 교회의 가장 큰 존재이유이다. 따라서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사목헌장 1).

그러나 과거의 교회는 성속이원론(成俗二元論)이 지배하여 세상이나 사회를 외면하고 교회만이 완전사회이며 선(善)을 독점한다고 생각하여 왔다. 따라서 사회문제에 대한 예언직(豫言職)은 망각되고 인간의 자유, 인간의 권리, 인간의 해방 등에 대해서 외면하였으며, 때때로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를 단죄(斷罪)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는커녕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체제와 공존하기도 하였다. 교회는 이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수행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현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지도 못하였다. 특히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자의 빈곤에 대해서 오직 침묵을 지킴으로써 교회는 약한 자의 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레오 13세가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 1891)을 발표함으로써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요한 23세의 말대로 이 회칙은 ‘경제사회 대헌장’이었다. 그 후 비오 11세의 회칙 <콰드라제시모 안노>(Quadragesimo anno, 1931)는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재천명하고 인간의 평등성에 의하여 계급간의 관계가 균형잡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요한 23세는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1961)와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사회정의를 뚜렷하게 재정립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는 볼 수 있는 단체요 영적 공동체로서 전인류와 함께 길을 걸으며 세계와 같은 운명을 겪고 있다”(사목헌장 40)고 천명하면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운동을 높이 평가하였다.(사목헌장 41).

바오로 6세에 이르러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조되었다.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1967(에서 세계인류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여 빈부의 격차를 없애고 서로 형제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고, 레룸 노바룸 반포 80주년(1971년)을 맞이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 교회는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모든 회칙들은 교회는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역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해야 하며 사회의 양심이 됨으로써 이 지상에서 하느님나라의 가치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이 세상의 모든 사회문제는 바로 인간윤리의 문제이며 인간윤리의 문제는 바로 교회문제이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교회의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의 교회는 많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여 사회의 누룩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교황청 정의 평화위원회와 각국의 정의 평화위원회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가톨릭 교회가 지향하는 정의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 품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행복한 생활을 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모든 사람은 중요한 생활필수품을 공정히 분배받아야 하며, 각자의 정당한 포부가 이루어지고 진리를 탐구할 수 있어야 하며, 인종 · 종교 · 연령 · 언어 · 계급 · 성의 차별 없이 인격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어떠한 체제의 객체(客體)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압제적 제도, 불의에 가득찬 사회를 정력적으로 비판하여 그 시정을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부정과 불의를 보고 침묵만을 지키면 교회가 부정과 불의를 저지른 자와 공범자(共犯者)로 취급당하게 된다. 부정과 불의 중에서 가장 현저한 것은 권력 · 부의 특권화다. 따라서 교회는 권력을 장악한 자와 부를 누리는 자가 권력과 부의 노예화에서 해방되도록 각성시켜야 하며, 이 세상에서 야기되는 압박과 착취의 상황을 진보와 희망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교회는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불의의 상황들을 공동선(公同善)을 추구하는 복음화로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인류 구원은 영신적 구원만이 아니라 현세적 구원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인간의 구원이 요구한다면 불의를 규탄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교회와 인권 57).

교회의 사회참여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권의 문제다. 인간의 인권이 소중하다는 것은 성서와 모든 교회문헌의 핵심사상이다. 특히 가난한 자의 인권을 수호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큰 의무다. 그러기 때문에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교회는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예언직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인권옹호의 고무자였다는 점에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며 성직의 책임이다. 또 인권이 없는 곳에는 평화도 없다. 따라서 교회는 인권의 수호자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하며 인간의 기본권, 영혼의 구원에 필요할 때 교회는 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사목헌장 76).

물론 교회가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사랑·봉사·희생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교세의 양적 증가에 힘쓰는 한편 사랑의 사도로서의 영성을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교회적인 방법으로 수행되어 나가야 한다. 따라서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어서는 안 되고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성직자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가 요구된다. 평신도야말로 복음의 증거자로서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인권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권리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무에 대해서도 의식화시켜야 한다. 특히 인권문제에 있어서 교회 내의 인권존중이 선결되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교회의 사회운동은 자연법과 복음의 한계 내에서 보편성과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폭력은 그리스도교인적인 것도 아니요 복음적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폭력과 피동은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평화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특정한 사회문제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어떠한 특정한 사회체제를 주장하거나 배격해서도 안 된다. 결국 교회는 정의와 공동선에 일치하는 체제는 그것을 찬양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배격할 의무가 있다. 교회의 사회문제에 대한 예언직은 교회의 많은 사명 중의 하나이지 전부는 아니다.

한국 교회는 1960년대 이후 사회정의를 위하여 많은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1960년대에 이르러 노동청년회와 농민회가 조직되어 노동자의 권익과 농민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조직되고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조직되어 부정과 불의 및 인권의 침해에 대해서 항의해 왔다. 또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 때 성명서를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교적인 사회정의의 원리를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노사협조만이 승공(勝共)의 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평등하다. 노동자는 결사의 자유와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바로 <레룸 노바룸>의 정신이 한국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를 위하여 그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 후 1975년 2월 28일 주교단은 지학순(池學淳) 주교사건을 계기로 메시지를 발표하여 부정부패 · 사회부조리 · 인권유린에 대한 교회의 예언직 수행을 재천명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도 1977년 3월 28일의 성명서를 통해서 교회는 인권과 관련하여 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다는 것, 김지하(金芝河)를 석방할 것, 성직자에 대한 연금과 감시 연행을 중지할 것 등을 정부당국에 요구하였다. 1978년 7월 11일 및 7월 25일에도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사회정의의 구현, 민주정치의 회복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동년 8월과 9월에는 오원춘(吳元春) 사건을 계기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편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1974년 11월 6일 언론의 자유, 학원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고, 1975년 3월 21일에는 동아일보사건에 즈음하여 언론의 자유를 선언하고 한일외교정상화에 대한 태도를 밝혔으며 구속된 양심범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 후 1977년 4월 18일에도 시국선언을 발표하여 정치권력의 본질은 공동선의 추구에 있다는 것,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철폐할 것, 3.1구국선언은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천명하였다.

이상으로 가톨릭 교회가 사회정의, 인권, 특히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를 위하여 예언직을 수행하고 직접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고립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선의의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이 사회에는 많은 종파가 있고 무종교자도 있다. 따라서 그들 중에서 하느님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협력할 수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의식하고 같이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정의구현과 인권수호가 가톨릭 교회의 독점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교회가 정의를 구현하려고 할 때 불의를 자행한 사람과의 대화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가 가난한 자만이 아니라 가진 자도 구원해야 하는 보편적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가톨릭 교회의 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그리스도 교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과 일치의 소명에 충실히 응답함으로써만이 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예언직과 활동은 언제나 교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결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계층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대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 정의 (韓庸熙)

[참고문헌]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사회정의, 가톨릭출판사, 1976 / 교회와 인권, 분도출판사, 1975 / J. 회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 현대 가톨릭사상, 서광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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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론 [한] 社會理論 [영] social theory

사회이론이란 사회에 관한 이론이다. 사회란 일정한 시공(時空)을 점유한 인적 결합체이다. 일정한 인적 결합체이긴 하지만 다만 우연적인 결합체를 사회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군집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가 그것으로써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일정한 기능을 어느 정도 항구적으로 수행하여야 하고, 그 기능이 수행되기 위한 규범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사회는 생성하여 발전하며 변동한다. 그러므로 사회이론이란 사회의 생성 · 발전 · 변동에 관한 이론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사회현상에 관한 체계적 연구는 소크라테스 후기의 철학자들에 의하여 행해졌다. 사회의 윤리와 사회에 관한 일반적 이론이 이집트의 학자들의 작품과 함무라비 법전, 인도의 성전, 중국의 유교 경전, 히브리아 성서 등에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초기의 시도는 어떤 형식을 취하지 아니하였고, 사회의 일반 이론이라기보다는 철학이나 윤리학, 정치학 등의 학문의 한 분야로서 행하여진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공화국≫(Republic)속에서 사회의 이론체계의 윤곽을 제시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Nichomachean ethics)에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탐구하고, 인간은 사회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밝혔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큐리아학파가 이 방면에 대한 연구를 더욱 진전시켰고, 폴리비우스(Polybius)와 같은 역사가도 사회에 관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성 아우구스티노와 여러 교부들은 고전적 학문을 원용하여 사회를 인간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중세의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관을 수용하여 정의라든가 정치적 합법성과 같은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즉 이때까지도 사회에 관한 이론은 윤리학 · 정치학 등과 구별되지 않고 있었다.

14세기에 회교도 사학자 이븐 칼둔(Ibn Khaldun)은 아랍민족에 대한 연구에서 역사 발전의 계속성을 강조하였고, 그의 연구는 17세기의 콩도르세(M. Condorcet), 비코(B.B. Bico), 고드윈(Francis Godwin) 등에 전승되었다. 마키아벨리에 의하여 정치학이 윤리학과 결별하면서 역사는 신학과 분리되었다. 이러한 발전과 보조를 같이하여 인간과 사회의 복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물론 사회개혁운동은 고대에도 있었지만, 중세가 붕괴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도주의가 새로운 사회운동의 양상을 띠고 등장하였다. 이 방면의 연구로서 모어(Thomas More), 생 시몽(Saint Simon)등이 있다. 사회현상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전통적 접근방법은 근대 초기에 큰 변혁을 겪었다. 그것에는 베이컨(Frencis Bacon)의 귀납법의 도입과 뉴턴(Isac Newton)의 물리학 이론 등이 큰 작용을 하였다.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모든 시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절대질서(absolute social order)의 관념을 배척하고, 특정시대, 특정국민에게는 그에 알맞은 사회질서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합리주의와 민족주의, 자본주의가 발흥하면서 오스틴(John Oustin), 티보(Anton Thibaut), 사비니(F.K. von Sabigny)에 의하여 법률학 연구가 크게 활기를 띠고, 스미드(Adam Smith), 리카도(David Ricardo), 밀(J.S. Mill)등에 의하여 근대 경제학이 발흥하였다.

사회에 관한 이론이 독립과학으로서 연구된 것은 1839년 콩트(Auguste Comte)에 의해서다. 그는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이른바 실증주의(positivism)를 창시하였다. 당초에 그는 사회현상에 관한 이 새로운 학문을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이라고 명명하려고 하였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회현상에 관한 학문을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리학 등과 같은 자연현상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지식이 3단계 –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실증적 또는 과학적 단계 – 의 과정을 거쳐서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는 생 시몽의 제자로서 사회발전과 사회정의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사회학의 연구방법으로서 관찰 · 실험 · 비교 등의 방법을 도입하였으나 그 중에서 특히 비교연구법을 중시하였다.

산업혁명이후 사회가 복잡 다양해지고 국제적 교류가 빈번하여 짐에 따라서 대중사회에서의 인간의 역할과 기능, 인간의 소외, 도시화, 공해문제, 범죄문제, 조직사회에서의 개인의 역할 등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행하여지고, 사회학은 특히 심리학 등의 도움을 받아 많은 훌륭한 이론적 업적을 쌓았으며, 이렇게 정치(精緻)한 사회학 이론은 역(逆)으로 정치학, 법률학, 범죄학 등에 공헌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괄목할 만한 업적들은 뒤르켐(E. Durkheim)등의 기능주의(機能主義), 스펜서(H. Spencer)등의 신화론적 사회학, 마르크스(Karl Marx)의 변증법적 유물론, 베버(M. Weber)등의 관념주의 사회학, 파슨즈(Theophilus Parsons) 등의 구조기능주의 등의 접근방법이 있다.

[참고문헌] E.F. Borgatta and H.J. Meyer, Sociological theory, New York 1961 / J. 회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 金璟東, 現代의 社會學, 博英社,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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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업위원회 [한] 社會事業委員會 [라] Pontificium Consilium de humana et Christiana progressio

Pontificium Consilium ≪Cor Unum≫ de humana et Christiana progressione fovenda. 교황청위원회 소속으로 사회발전을 위해 상부상조하여 개발을 촉진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 교황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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