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업 [한] 社會事業 [영] social service

가톨릭 교회는 단순한 전례의 공동체나 신앙의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사랑의 공동체로서 세상의 빛이(마태 5:13-16) 되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이 사회 안의 어두운 곳을 찾아서 어두움을 없애고 광명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는 너무도 어두운 곳이 많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병든 사람, 육체는 건강하나 정신이 병든 자, 정신은 건강하나 육체가 병든 자 등이 있다. 이렇게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그들의 희망을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교회의 생명이다. 물론 교회의 본질은 모든 인류를 보편적으로 구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특히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구원하러 왔다. 그리고 그는 눈먼 소경과 나병환자를 고쳤다. 특히 그리스도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에게 사랑을 베풀도록(마태 25:31-40)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한국 가톨릭 교회는 200년의 역사를 통해서 많은 사회사업을 전개하였으며 현대에 와서 고통받는 이와 함께 울고, 함께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 교회가 버림받고 소외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현세적인 구원을 위해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과거의 교회는 현세적인 구원보다 내세의 구원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적인 고통을 내세에서의 영생을 위한 준비와 보속으로 생각하였다. 신앙은 오늘 여기에서 내가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 인류를 창조할 때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고통없이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으면서 살기를 원하지 않고 우주만물을 지배하여 잘 살기를 바랐다. 따라서 교회는 사후의 문제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현세 안에서 고통받고 버림받은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할 교회의 기능이 사회사업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사회적 사업 중에는 교육사업, 의료사업, 문화사업, 사회사업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교육사업, 의료사업, 문화사업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항목에서 기술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사회사업에 한정해서 서술하기로 한다. 사회사업은 그 비중에 있어서 크고 작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는 아무런 기준없이 한국 가톨릭 교회와 관계 있는 사회사업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 구미근로여성복지관 : 1973년 경북 구미시 송정동에서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구미공단 근로여성들의 인격도야 및 생활향상을 위해 기능교육 · 취미교육 · 출강교육 · 교양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설립단체는 왜관 성 베네딕토 대수도원이다. △ 국제 마리아의 사업회 :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고 1969년(여자)과 1974년(남자)에 설립되었다. 주된 활동은 초대 교회의 모습을 따라 모든 회원이 소득을 함께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며, 포클라레운동을 하는 남녀회원이 중심이 되고 있다. △ 덕산신생원 :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사회복지법인으로서 1952년에 설립된 후 요보호 아동을 수용하여 보호하고 원생을 초중고등학교에 진학시키고 졸업 후에는 기술을 습득시키고 있다. △ 마산 가톨릭여성회관 : 1976년 경남 마산시에서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정기 프로그램으로 학습반 · 취미반이 있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젊은이 교실 · 사임당교실 · 성교육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 살레시오 근로청소년 기숙사 :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있고 1979년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설립하였다. 주된 사업은 불우청소년들에게 목공기술을 가르치며 그들을 위한 기숙사를 운영함으로써 의식개발 · 교육 · 협동 · 우정 · 자립정신을 함양하고 있다. △ 쌘뽈원 : 충남 논산군 논산읍에 있으며 1973년에 정식으로 사회복지법인이 되었다. 노인복지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성인불구자의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샤르트르 성바오로 수도회에 소속되어 있고 현재 65세 이상의 여자 노인 33명을 보살피고 있다. △ 서강대학교 부설 산업문제연구소 :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내에 있으며 1966년에 설립되었다. 설립목적은 사회정의를 구현하려는 근로자의 활동을 지원하고 노동문제에 대한 기업인의 이해를 촉구시키고 노사간의 긴밀한 협조로 공동선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 동안 주로 교육사업과 조사연구사업을 했으며 논문집이 10집까지 발간되었다. △ 성심원 : 서울 대교구가 불우아동 및 부상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1946년 서울 강남구 잠원동에 설립하였다. 현재 수용인원은 58명이고 파티마 성모수녀회에서 담당 운영하고 있다. △ 성인복지원 : 1976년 전북 옥구군 옥구읍에 설립되었다. 거룩한 말씀의 회에서 설립한 이 단체는 부양가족이 없고 경제적으로 자활이 불가능한 60세 이상의 여자노인을 수용하여 여생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성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 : 본부는 서울 명동에 있으며 마음의 가난함을 생활화하는 단체로 1961년에 설립되었다. 전국본부 밑에 교구이사회가 있고 그 밑에 각 본당협의회가 있는데, 현재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원은 1,500명에 이른다. 주된 사업은 환자, 가난한 자, 걸인을 돌보고 노쇠자에게 삶의 수단을 제공하며 불우청소년을 선도하는 일이다. △ 소화영아재활원 : 부산 남구 남천동에서 1946년 소아보육원으로 출발하였다. 주된 사업은 지체부자유영아의 재활사업이며 부산교구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현재 남자 127명, 여자 67명을 수용하고 있다. △ 엠마우스집 : 1981년 설립된 것으로 성인 정신지체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교육과 직업훈련을 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 요한 보스코 기술교육원 :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으며 1969년에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불우아동을 수용하여 직업보도교육과 기술교육(가구제작, 목공예, 배관)을 실시하고 있는데 설립단체는 성 빈센트 청소년 복지회다. △ 전진상 교육관(가톨릭 여학생관) : 1957년 현 국제가톨릭형제회의 도움으로 서울 명동에 기숙사를 건축하여 지방에서 온 여대생들을 수용하면서 활동은 시작되었다. 그 후 JOC, JEC, 가톨릭학생회, 가톨릭스카웃, 가톨릭부인회 등과 상호 협조하여 의식화교육, 가치관 교육, 자기계발, 성교육 등 교육관 자체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의 교육내용은 월요강좌, 삶 · 사랑 · 성과 너, 노자(老子) 연구, 기적을 이루는 사랑, 심성 개발훈련, 성서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여학생관은 비신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진영성모의원별관 : 경남 김해군 진영읍에 있으며 1975년에 설립하였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불우한 결핵환자를 고쳐주는 것이 주된 사업이며 하(河) 마리아가 설립하였고 ‘도움회’ 회원들이 후원하고 있다. △ 춘광대구요양원 : 대구시 남구 송현동에 위치하고 있는 극빈폐결핵 환자 요양원으로 1966년 서정길(徐正吉) 대주교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현재 87명의 환자가 수용되어 있고 앞으로 더욱 시설을 확충하여 보다 많은 환자를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 한국 SOS 어린이 마을 : 대구 동구 검사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3년에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국제 SOS 어린이 마을, 즉 헤르만 그마이너 재단의 기본이념에 입각하여 요보호아동을 가정적 분위기 속에서 양육하고 퇴소 후에 독립생계를 유지토록 자립능력을 배양하고 있다. 현재 대구 이외에도 서울과 순천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 협동교육연구원 :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으며 1962년 서울 대교구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설립목적은 협동정신을 기르고 각종 협동조합운동을 일으켜 모든 사람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다. 교육내용은 정신교육 · 이론교육 · 생활교육 · 실습교육이며, 지금까지 7,700명이 배출되었다. △ 꽃동네 : 한국 가톨릭 교회의 사회사업 중 특기해야 할 사업은 충북 무극에 있는 꽃동네로 청주교구 오웅진 신부가 혼자서 걸인들을 모아 그들을 보살펴 주면서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영위시킨 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오신부의 높은 뜻에 감동하여 이제는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많은 사람들이 협조와 성원으로 갈 곳 없는 노인들을 평생 보살펴 주고 있다. 특히 꽃동네의 특징은 구걸할 수만 있으면 퇴거토록 하는 것으로 자생의 능력이 전혀 없는 노인만을 보호하는 곳이다. △ 성모자애원 : 경북 포항시 대잠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수성심시녀회가 1935년에 설립하였다. 심신장애자를 재활시키는 곳으로 현재 82명이 수용되어 있다. △ 영원한 도움의 성모보육원 : 부산 해운대구 반송2동 614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4년 와따나베(渡邊末子, 파물라) 수녀에 의해 설립되었다. 6.25 동란 후 기아가 날로 증가하여 이 버림받은 생명들을 입양, 양육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하였고 현재 갓난아기부터 만 5세까지의 아기 78명을 수용하고 있다. △ 갈릴리 어린이집 : 청주시 사창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2년 개원하여 6-7세의 정신 · 지체아들을 받아 교육하고 있다. △ 경기도 안양의 근로자의 집 : 1963년 수원교구에서 설립하여 근로자들의 수용과 교육에 힘쓰고 있다. △ 성 프란치스코의 집 : 경남 진주시 칠암동 78에 위치하고 있고, 1963년 프란치스코회에서 설립하였다. 주된 사업은 버림받고 의지할 곳 없는 노숙자들을 수용 · 보호하는 일이다. △ 성모자애원 : 경북 영일군 연일읍 대잠동 270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3년 남(南) 루도비코 신부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설립목적은 불쌍하고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과 지체 불구자를 수용 · 보호하는 일이다. △ 마리아 자매원 :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으며 1975년 착한 목자 수녀회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문제청소년을 교도하고 상담과 숙소를 제공하며 미혼모를 위한 기숙사를 운영하고 초등학교 과정과 중학교 과정을 이수시킨다. △ 성심양로원 : 경북 선산군 선산읍에 있고 1970년에 설립되었다. 주된 사업은 불우한 노인을 수용하여 물질적 정신적으로 그들을 도와주고 있다. 현재 약 100명이 수용되고 있다. △ 성가양로원 : 1921년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에 설립되었고 1958년 성가양로원으로 개칭되어 성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주된 사업은 무의무탁한 노인들을 구호하는 일이다. △ 백백합 보육원 : 대구 중구 남산동에 1915년에 설립되었다. 설립 목적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보호 육성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수천 명을 수용했으며 설립단체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이다. △ 해성 보육원 : 인천 남구 용현 4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894년 프랑스인 수녀가 설립하였으나 현재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경영하고 있다. 주된 사업은 요보호 아동과 지체 부자유아 및 정박아 수용 및 양육, 국내외 입양을 하고 있다.

이상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사회사업 중 그 일부에 대해서 서술하였으나 이 이외에도 수십 개의 사회사업 단체가 있으며 그들은 보이지 않게 가난한 자와 약한 자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교회의 사회사업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는 첫째, 교회는 특별히 정부나 일반 사회단체에서 망각하기 쉬운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버림받고 소외된 계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남이 하기 어려운 사업을 찾아서 그들에게 빛을 던져주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임무다. 가톨릭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잘 식별해서 그들에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고 그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교회의 사회사업은 양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 몇 명을 도와주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에는 시간과 공간이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교회의 사회사업은 어떤 기관이나 단체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그리스도 교인이라면 누구나 사회사업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자기의 주변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 교인의 소명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모든 가톨릭 신자는 사회사업가이며 모든 신자가정은 사회사업 단체인 것이다. 셋째, 교회 당국이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많은 재정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성당도 지어야 하고 문화사업도 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육화를 오늘의 현실 안에서 연장시키는 일이다. 특히 도시 교구나 본당에서는 그 지역사회 안에 어두움을 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직시하여 그들을 위한 예산을 배정함으로써 정말 가톨릭 교회의 본질적 의미를 증거해야 할 것이다. (⇒) 사회보장 (韓庸熙)

[참고문헌]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요한 23세, 지상의 평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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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장 [한] 社會保障 [영] social security [독] Sozialversicherung

근대 산업국가에서는 경제적 안녕과 복리증진을 위하여 개인과 가족을 각종 재해와 빈곤으로부터 보호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데, 이 방법을 보통 사회보장, 혹은 사회보장제도라 부른다. 19세기말까지만 하더라도 경제적인 보장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으나, 구조적 실업에 의한 개인의 직장박탈, 공황에 의한 산업파탄 등과 같이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빈곤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이의 개선을 위한 요구가 크게 일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실업보험과 빈민구제책 등의 새로운 제도가 등장하였다. 재해보상에 관한 최초의 제도적 장치는 1789년 스위스 바젤에서 제정되었으나, 사회보장에 대한 현대적 계획이 수립된 것은 비스마르크 집권하의 독일에서 처음 수립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회보장제도가 나타나게 된 것은 역시 1929년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서 일련의 사회보장법이 입법되어, 1935년 발효한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이후의 일이다.

사회보장은 근로자와 일반 민중의 생활수준의 상대적인 저하를 막고, 사회생활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실업보험, 산업재해보험, 의료보험, 국민보험 등 다양한 형태로 각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 보장제는 국가에 따라 달라서 북유럽의 여러 국가와 뉴질랜드처럼 발달된 국가도 있고, 그렇지 못한 국가가 있지만, 대체로 각국은 사회보장제를 법제화하여 실직자, 고령자, 무능력자, 유자녀, 환자, 작업중 재해를 당한 자들에게 화폐를 지급, 최저의 생활을 보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보장은 빈곤방지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며, 보험료의 사용자 부담에 따라 사회보장 전체의 비용을 보험료나 대중과세에 의존, 관리 운영이 정부의 손에 집중되어 민주적 성격을 상실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각국의 실정이다.

한국에 있어서도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어 실시되고 있으나 제도적인 결점과 시행상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구미제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가톨릭 교회는 사회보장제도가 국가의 전체수입을 정의와 공평의 기준에 의하여 재분배하는 데 유효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국민 각층의 생활수준의 균형을 회복하는 도구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문헌]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요한 23세, 지상의 평화,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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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 [한] 社會民主主義 [영] social democracy [독] Sozialdemokratie

계급투쟁을 통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이룩함으로써 계급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혁명노선(革命路線)을 거부하고, 정치적으로는 의회주의, 경제적으로는 노동조합에의 참여를 통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착실하게 개량함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 이론체계가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이다. 사회민주주의는 19세기 후반에 태동하였다. 라살(Ferdinand Lassaele, 1825-1864)은 마르크스주의자의 경우처럼 국가 권력의 타도에 의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노동자 조직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 의회에서 다수의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노동자들은 가혹한 ‘임금의 철칙'(iron law of wages)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1895년 엥겔스가 죽은 후 베른슈타인(Edward Bernstein, 1850-1932)도 혁명 대신에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이행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카우츠키(K.J. Kautsky)와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는 이들을 수정주의 내지는 개량주의라고 강력히 비난하였다. 그러나 카우츠키마저도 1905년 이후부터는 전제적 폭력에 의한 혁명을 거부하고 평화주의자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그는 총파업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고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발전한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참여가 보장된 의회활동에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진출함으로써 의해 내에서 다수당이 되면 정권을 장악하여 광범하고 장기간에 걸친 개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사상을 강령으로 채택한 최초의 정당은 독일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1901년)의 전신인 독일사회주의노동당(1875년)이다. 그 후 덴마크(1876년), 미국(1876년), 벨기에(1885년), 스위스(1886년), 오스트리아(1888년) 등지에 사회민주당이 구성되고, 영국에서는 사회민주당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당이 구성되었다. 이들 정당의 대표자들이 1889년 파리에서 제2 인터내셔널을 구성하였다. 이로부터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를 맹세한 각국의 사회민주당이 제국주의 전쟁에 노동자를 동원함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노동자의 전체이익에 우선시킴에 따라 제2 인터내셔널은 붕괴된다. 그 후 러시아 혁명과 함께 제3 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이 구성되어 (反)파시즘 전선(戰線)을 펴 나가면서 사회주의 운동의 주류는 볼세비즘으로 이행한다. 코민테른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개량주의적이며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를 붕괴시킨다고 비판을 가하고, 사회민주주의의 설립기반을 식민지 초과이윤이 존재하여 노동귀족의 육성이 가능한 서구 선진자본주의제국에서 찾고 있다. 이와 아울러 또 하나 사회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것이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대응한 노동자의 존재형태의 변화, 즉 노동자의 선거권 획득, 광범한 의무교육, 사회보장으로 노동자의 생활양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사회민주주의를 공산주의에 대하여 ‘수정된 사회주의, 개량주의, 우익사회주의’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한다. 한편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또 다른 정의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민주당에서 내려지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란 자본주의체제의 전면적 부정이 아니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정적 측면을 개량해서 복지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이념체계이다. 가톨릭 교회는 어떠한 특정의 정치제도나 정치이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사회정책적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배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참고문헌] G.D.H. Cole, History of Socialist Thought, London 1953-1960 / Bernstein, Die Voraussetzungen des Sozialismus und die Aufgaben der Sozialdemokratie, 1899 / Gustav A. Wetter, Il materialismo dialettico Sovietico, Torino 1948, 강재륜 역, 변증법적 유물론비판,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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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 社會 [라] societas [영] society

1. 사회학에서의 사회론 : 사회라는 말은 대단히 모호하면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상식적 수준에서는 모든 사회현상이나 사회적 사실들을 의미하지만, 학문적으로는 개념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은 사회를 “공통된 문화와 지역적 토대를 갖고 있으며, 상호작용하는 개인들과 상호관련된 집단들로 구성된 거대하고 지속적이며 조직화된 인간집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회학자들이 정의하는 사회의 개념에서 공통된 특성은 다음과 같다. ①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인간의 사회적 행위이다. ② 사회는 경제적 자원이나 기타의 모든 자원을 획득하고 배분하는 절차와 방식을 제공한다. ③ 사회는 의사결정 과정과 성원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 ④ 사회는 그 성원이 충성을 바치는 최고의 조직체이다. ⑤ 사회성원들은 특수한 문화와 언어를 공유한다. ⑥ 다른 사회와의 관계는 엄격히 통제되어 있다. ⑦ 사회는 모든 집합체 가운데 가장 높은 자기충족성(self-sufficiency)을 갖는 집합체이다.

사회에 대한 인식이나 지적 탐구는 근대 이전까지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사화라는 개념은 국가라는 개념과 거의 구별되지 않고 있었다. 이 두 가지 개념이 구별되면서 사회에 대한 지적 관심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나타난 절대주의 국가에 대한 시민계급의 투쟁과, 그 후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인한 전통 사회질서의 붕괴에 직면하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서구 지성계는 혼란된 사회질서와 급증하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사회와 국가는 별개라는 인식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의 구조와 변동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사회학의 성립을 가져왔다.

사회학이 발전됨에 따라 사회에 대한 인식은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그 하나는 ‘사회명목론'(社會名目論, social nominalism)으로서, 사회의 기본 단위는 인간의 사회적 행위이며 집단이나 사회는 사회적 행위의 단순한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는 사회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서 단지 사회적 행위를 분석하기 위한 추상적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개인만이 실재하는 것이며, 사회보다도 개인이 우월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자연법 사상, 공리주의, 사회원자론 등에 연유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실재론'(社會實在論, social realism)으로서, 사회는 개인의 사회적 행위로 구성되지만, 개인을 초월한 그 자체의 속성을 갖는다는 입장이다. 즉 집단이나 사회는 개인에 외재(外在)하면서 개인을 구속하는 나름대로의 속성과 유형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사회란 실재하는 실체이며, 개인보다도 우월성을 갖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 관점은 사회유기체설, 집단심설과 맥락을 같이한다. 현대 사회학자들의 상당수는 사회실재론적 입장을 취한다.

사회질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사회학은 사회질서나 사회체계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두 가지의 사회론으로 대별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초반 대부분의 사회이론가들은 사회질서는 고전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and)에 의해 스스로 유지되어 나아갈 것으로 낙관하면서, 사회는 생물계에서와 같이 적자생존의 원칙에 의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화 · 발전될 것으로 전망하였다[사회진화론]. 그러나 19세기 후반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발달이 기존 사회질서를 크게 붕괴시키면서 도덕적 사회적인 문제들을 보다 심각하게 나타내자, 이에 대한 원인과 대책은 다양하게 모색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뒤르켐(Emile Durkheim)은 사회질서의 해체 원인을 공리주의적 원리의 확대와 함께 공동체적 연대가 약화되는 가치붕괴에서 찾으면서 규범혼재상태(Anomie)에 주목하였고, 마르크스(Karl Marx)나 베버(Max Weber)는 권력의 편재에서 나타나는 인간소외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와 같은 튀르켐의 가치합의와 마르크스의 권력관계에 대한 주목은 현대사회학에 전승되어 구조·기능주의(structural-functionalism)와 갈등이론(conflict theory)이라는 두 개의 경쟁적인 사회론으로 정착되었다.

구조 · 기능주의는 사회도 생물유기체와 같이 특정한 구조 내지는 조직을 가지며, 사회의 각 부분은 서로 연관성을 맺을 뿐만 아니라, 각기 자기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전체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사회론에서는 사회질서는 성원간의 가치합의에 의해 유지되며, 사회는 필요로 하는 것[기능]을 충족시킬 수단[구조]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균형과 안정을 찾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 입장에서는 사회의 질서, 조화 및 균형(equilibrium)에 주목한다. 반면, 갈등이론은 사회의 기본구조는 통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상태, 특히 이익의 갈등상태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사회론에서는 사회의 기본특성을 성원간의 불합치에서 찾으려 하면서, 이 불합치는 권력과 부의 편재 때문인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 입장에서는 사회의 질서가 가치합의가 아닌 지배와 복종이라는 힘과 강제의 권력관계에 토대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현대사회학에서의 사회에 대한 정의나 관점은 사회학의 수효가 사회학자의 수만큼 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된 것은 사회를 보는 동기나 관점이 사회질서의 회복이나 개편, 또는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다는 점이다.

2. 그리스도교 사회론 : 사회학에서의 사회론이 사회질서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연유하는데 비해,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그리스도교적 인간론의 한 부분으로서 출발한다. 즉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새로운 실천강령이나, 또는 그리스도교적 사회학 교육을 위한 현대사회학에서의 유용한 지식의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인간론의 불가결한 한 부분인 것이다(어머니와 교사). 따라서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초기부터 교회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 왔다. 그러나 이 주제가 크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산업사회의 등장에 따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대립과 함께 인간 실존의 문제가 크게 제기되면서부터이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교 사회론이 교리의 발전만이 아니라 그 교리의 올바른 적용에 있어서도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도록 그 가르침을 연구하라고 신자들에게 촉구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사회론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31). 그리스도교 사회론에 대한 교회의 지침은 여러 사회회칙, 즉 <노동헌장>(1891), <노동헌장 40주년>(1931), <어머니와 교사>(1961), <지상의 평화>(1963), 그리고 <민족들의 발전>(1967)이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에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교 사회론의 신학적 토대는 다음과 같다. ① 인간의 신의 모상으로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원되고 신과의 영원한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고 있다. 또한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신약의 큰 계명이다. 따라서 인간은 국가적 사회적 경제적인 처리과정의 대상과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 사물의 질서는 인간의 질서에 종속되어야 하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② 그리스도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인간을 구원하였다. 따라서 개별적인 영혼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을 위축시키며 기형화하는 것이다. ③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공동생활에는 신의 의지에 기인하는 질서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사회적 질서와, 복음의 구원계획에 따른 그 회복과 완성(노동헌장 40주년),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의한 그 구성(어머니와 교사)은 그리스도교 사회론의 대상이다. ④ 인간이 그 속에 살고 있는 사회적 제 관계는 인간을 자주 탈선시키고 악행으로 유인함으로써 영원한 인간 구원의 실현을 곤란하게 만든다. 구원에 역행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는 단순한 사회비판이나 자선의 형식만으로써가 아닌, 그리스도교 사회론의 제 원칙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빈곤 · 기아 · 질병 · 재해를 물리치는 일은 그리스도교적 의무이다.

⑤ 그리스도교 사회론이 그리스도교 인간론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강생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인해 교회는 인간사회의 생명원리가 되었다. 따라서 교회와 세계는 분리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융합된 실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는 구원을 힘을 지닌 채 ‘누룩’과 ‘소금’과 ‘씨앗’과 ‘빛’으로서 세상 한 가운데 현존한다. 그리스도의 공현을 통해서 전 인류의 역사는 신의 구원사업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신학적 토대를 통해 볼 때,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인간사회의 본질과 질서, 그리고 거기에서 생겨 각 시대의 사회적 관계에 적용될 규범과 질서의 과제에 관해서 사회철학적으로(본질적으로 사회성을 지닌 인간본성에서), 그리고 사회신학적으로(그리스도교적 구원질서에서) 획득된 지식의 총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사회론의 대상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비추어 사회질서를 형성하고 쇄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존재과학적인 내용과 규범과학적인 내용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사회철학적인 방법과 사회신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이 사회론은 자연법의 제 원칙과 계시의 제 진리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신 앞에 공통적인 원천을 갖는다는 것과, 이 양자는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된 인류 안에서 합치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즉 자연과 초자연을 포괄하는 구원질서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 사회론에서 보면, 자연법적으로 정당한 것은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며 구원경륜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교 사회론이 인간사회의 모든 현실을 종교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국가 · 경제 · 신학 · 예술 등 문화의 전통분야가 갖는 나름대로의 상대적인 독자성을 인정한다.

창조와 구원에서 출발하는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모든 피조물이 그러하듯이 사회적인 것도 구원을 필요로 하고, 또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자연법을 초월하여 신학적 범주를 전개시킴으로써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예를들면, 모든 인간의 근원적인 결합성과 연대성의 사회적 의미를 상세히 검토하여 그것이 어떻게 하여 창조에 대한 가르침과 남녀의 창조,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과 신에 대한 자녀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비체로부터 밝혀지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이 사회론의 주요 관심사이다. 또한 죄의 사회적 영향과 그 결과, 그리고 반 그리스도론과 그리스도에 의한 세계역사의 구원론이 갖는 역사신학적 의의도 주요과제가 된다.

한편, 사회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 사회론에는 18세기 이후 계속 등장하는 모든 공상적 사회론을 경계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현세의 낙원을 약속하는 각종 신흥종교와 이단종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산업화나 과학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은 그리스도교 사회론이 경계해야 할 중요한 대상인 것이다. 그리스도교 사회론의 목적은, 특히 그 사회정책적 · 사회윤리적 · 사회교육적 측면에서의 목적은 현세적 낙원이나 세속적 세계가 승리하는 영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의 뜻을 실현하고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질서의 형성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비추어 사회질서를 형성하고 쇄신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사회론의 대상이라고 할 때, 사회형이상학적 · 사회윤리적 · 사회신학적 기초를 연구하는 것이 주요 과제가 되겠지만, 신이 세운 불변의 가치와 질서는 이 기본 원칙 안에서 현실의 시대상에 대한 분석과 결부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일반론이든 특수론이든 그리스도교 사회론에 내포된 모든 문제들은 해명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본명제 자체에는 잘못이 없더라도 자칫 추상론에 빠질 위험성이 있게 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경험적 체계적 사회학, 사회사, 사회심리학, 인구학 등의 성과를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것은 급격한 기술적 경제적 발전이 인간의 생존양식과 생활형태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는 현대에 와서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의 그리스도교 사회론은 신적인 것과 역사적으로 가변적인 것, 특전(特典)된 것과 부과된 것, 그리고 필연성과 자유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려고 고민하고 있다. (盧吉明)

[참고문헌] David L. Shills, ed.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Social Science,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1974 / 吳甲煥, 社會의 構造와 變動, 博英社, 1974 / Jonathan H. Turner, The Structure of Sociological Theory, The Dorsey Press, 1978 / Jeseph Kardinal Hoffner 著, 朴永道 譯, 그리스도교 社會論, 분도 出版社, 1979 / 飯島幡司 著, 趙基勳 譯, 그리스도교 사회관, 가톨릭출판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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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가 [한] 思鄕歌 [관련] 천주가사

대표적인 천주가사(天主歌辭)의 하나. 저작자는 최양업(崔良業) 신부. 4 · 4조(調)의 기본운율에 총 833행(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영원한 본향(本鄕)인 천국을 생각하고 현세의 박해를 이겨내자는 것으로, ≪신명초행≫(神命初行, 1864)의 내용에 영향을 받아 작사되었다. 저작 연대는 ≪신명초행≫이 간행되기 이전 이미 그 내용이 교우들에게 교육되던 시기, 즉 최양업 신부가 활동하던 시기(1850-1860년)이다. (⇒) 천주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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