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문서 [한] 死海文書 [영] Dead Sea Scrolls

1947년 초여름, 무리에서 떨어져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벼랑으로 기어오르고 있는 한 마리 산양을 쫓고 있던 베두인족(族) 양치기 소년에 의해 한 동굴(쿰란동굴 1)에서 오래된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두루마리 등의 문서가 발견되었다. 그 지역은 1948년 5월 이후 이스라엘 공화국과 요르단 왕국으로 분열된 팔레스타인의 요르단 왕국쪽에 속하며, 사해의 북서쪽, 예루살렘의 동남쪽에 펼쳐지는 ‘유다의 황야’의 일부이다.

‘사해문서’는 한 개의 문서가 아니고, ‘유다의 황야’에 있는 ① 쿰란(Wadi Qumran) 동굴, ② 무라바트(Wa야 Murabbaat) 동굴, ③ 미르드(Khirbet Mird) 폐허, ④ 하브라(Wadi Habra) 동굴, ⑤ 세이얄(Wadi Seiyal) 동굴 등에서 이미 발견되었고 현재까지도 계속 발견되고 있는 수많은 고문서의 총칭이다.

1. 쿰란동굴 : 1947년에 쿰란동굴 1(1Q)이 발견되면서 그 부근 일대에 대한 탐사가 시작되어, 200개 이상의 동굴이 시굴(試掘)되었으며, 그중 11개 동굴에서 문서가 출토되었다. 동굴 1에서 발견된 두루마리들은 아마포에 싸서 항아리에 넣어져 있었기(예레 32:14) 때문에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다. 동굴 1에서 최초로 발견된 두루마리는 이사야서(1Q Isa,b), 하바꾹서 주해(1Q p Hab), 교단교규계율(敎團敎規戒律, 1Q S), 아람어의 외전적 창세기(1Q Apocry), 빛의 자식과 어둠의 자식의 싸움(1Q M), 감사의 시편(1Q H) 등이며,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에 소장되었다. 이들 문서의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2-1세기의 것으로 보고 있다. 그후 1949년 봄의 동굴 1의 또 다른 과학적 탐험 발굴에서 수백 개의 구약정전, 외경, 위전(僞典) 사본의 단편(斷片), 경찰(經札),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그밖에 수확이 풍부했던 동굴은 동굴 4(4Q)인데, 동굴 11(11Q)에서 나온 문서는 동굴 1의 것에 못지않게 보존상태가 양호해서, 완전에 가까운 몇 권의 두루마리가 얻어졌다. 동굴 4에서는 판독(判讀)이 가능한 것만도 382개의 사본군(寫本群)에 속하는 수천 개의 단편이 발견되었다. 예루살렘의 고고학 박물관에는 쿰란동굴의 것만도 대소 400개 이상의 사본 또는 그 일부, 4만 개 이상의 사본단편이 구입, 소장되어 있다. 동굴 3에서는 보물의 매장 장소가 기록되어 있는 2개의 동판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

2. 쿰란 폐허 : 예리코(Jericho)의 남쪽 12km, 사해의 서북 연안에서 1.3km, 사해 수면에서 약 300m 높이에 위치한 이 폐허는 1951년부터 5차에 걸쳐(1951, 1953, 1954, 1955, 1956년) 드보(Roland de Vaux)와 하딩(G.L. Harding)에 의해 처음으로 조직적 발굴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건물내를 종횡으로 달리고 있는 수로(水路), 몇 개의 저수지가 달린 수도원풍의 커다란 석조건물의 윤곽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석조건물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그중의 큰 방 하나는 사경실(寫經室)이다. 그리고 집회실 또는 식당으로 보이는 넓은 방, 약 1,000개의 식기류가 저장되어 있는 방, 다수의 화폐도 발견되었고, 부근에는 1,100개의 묘가 있는 묘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 주거지(住居址)는 기원전 100년경에 건립되고, 제1차 유대반란(67-70년) 때 파괴되었다고, 드보는 결론지었다.

3. 무라바트 동굴 : 2개의 동굴에서 1951년에 많은 출토품이 얻어졌는데, 쿰란 동굴 출토품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되어 있고, 로마시대와 그 이후의 날짜로 된 이 출토품 중에는 유다 제2차 반란 즉 바르코크바(Bar Kokhba)의 난(132-135년)에 관계되는 문서와 바르코크바 자신의 편지도 포함되어 있다.

4. 미르드 폐허 : 요르단의 Wadi en-Nar 부근에 위치하며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자리였던 이 폐허에서 1952년에 다량의 출토품이 얻어졌다. 그리스어, 아람어, 아랍어로 쓰여져 있는 이 문서들의 기록연대는 5세기에서 8세기에까지 이른다. 여기에는 구약 및 신약성서 사본, 서한, 그리고 5세기 그리스의 극작가 유리피데즈(Euripides)의 작품 ≪Andromache≫의 단편(斷片)도 포함되어 있다.

5. 하브라 동굴 : 이스라엘에 있는 이 동굴에서 1960년과 1961년의 2회에 걸쳐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일련의 고문서들을 발견하였다. 1960년의 출토품에는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로 된 바르 코크바의 15통의 서한이 포함되어 있었고, 1961년에는 50내지 60개의 문서가 추가 발견되었다.

6. 세이얄 동굴 : 1952년 베두인족에 의해 ‘미상(未詳)의 장소’에서 일련의 고문서가 발견되었는데, 후에 그 고문서가 이스라엘에 있는 이 동굴에서 나온 것임이 확인되었다. 히브리어, 아람어, 아랍의 나바타이어(Nabataean), 그리스어로 된 이 문서들은 2세기 바르 코크바 시대의 서한과 약정서, 그리고 구약성서에 나오는 소예언자(小預言者)들의 예언서 그리스어본을 포함하고 있다.

7. 쿰란 사본 및 단편의 내용 :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모든 사본은, 쿰란 폐허에 있었던 건물에서 거주하던 쿰란 교단(敎團)에 관계가 있는 것들로, 그 모든 문서는 성서 또는 성서와 관계가 있는 것, 묵시문학(默示文學) 또는 그 교단의 조직과 생활에 관계되는 것들이다. 그 사본 및 단편 속에는 에스델기 이외의 구약성서의 각서(各書)가 포함되어 있고, 그밖에 위경(僞經) 및 성서 이외의 문서도 포함되어 있다. 구약 정경(正經)의 사본 · 단편 주에서는 신명기(申命記), 이사야서, 시편, 다니엘서 등이 가장 많고, 또한 정경 이외의 문서 속에 나오는 인용구(引用句)에도 이들 4개의 서(書)로부터의 인용이 많다. 12족장의 유훈(遺訓), 요엘서의 단편 등은 신약성서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8. 쿰란 교단 : 엄격한 계율에 따라 수도원적인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이 교단의 조직과 생활에 관해서는 교단교규계율(1Q S), 회중규정(1Q Sa), 감사의 시편(1Q H) 등 이외에 1910년 카이로에서 발견된 다마스코서 등이 주요 자료이다. 많은 학자들은 쿰란 교단을 예수 시대의 유태교 3대 종파의 하나인 에세네파(派)와 동일시하고 있으며, 사해문서가 신약성서의 진정하고 분명한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는 에세네파의 일원은 아니었고, 교회는 쿰란 교단의 일파도 아니다. 이 교단은 이방세계 사람들을 획득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증오했으며, 율법의 사슬 밑에서 떠날 수도 없었다.

9. 사해문서의 공헌 : 첫째로, 구약본문 비평학(舊約本文批評學)에 대한 공헌을 들 수 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히브리어 성서 사본보다 근 1천년이나 더 오래된 이 사본의 발견이 가져다 준 공헌은 크다. 마소라 본문(本文)과의 비교, 또는 70인역(七十人譯, Septuaginta)의 평가문제에서 구약비평학은 새로운 전개를 보이고 있다. 둘째로, 히브리어 학자에게 새롭고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로, 종래에 자료가 빈약했던 구 · 신약 중간시대사, 특히 에세네파 또는 그들의 사상 · 교의 · 생활 등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넷째로, 신약성서와의 관련에서 많은 연구과제를 제시한다. 초대교회와의 유사점(類似點)과 상위점, 목욕재계의식과 초대교회의 세례, 메시아 사상, 세례자 요한과 에세네파 또는 쿰란교단과의 관계, 하느님과 벨리알(Belial, 타락한 천사), 빛과 어둠의 항쟁 등 문제에 대한 연구자료로서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구미 각국에서는 많은 학자들이 사해문서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참고문헌] W.S. La Sor, Bibliography of the Dead Sea Scrolls 1948-1957, Fuller Theological Seminary Bibliographical Series 2, Pasadena 1958 / C. Burchard, Bibliographie zu den Handschriften vom Thten Meer, ZATWiss Beiheft 76, Berlin 1959 / F.M. Cross Jr., The Ancient Library of Qumran and Modern Biblical Studies, Garden City, N.Y.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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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징의 [한] 邪學懲義

1801년 신유(辛酉)박해에 대한 기록. 저자(著者)는 형조와 포청의 자료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천주교 박해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전하는 판본(板本)으로는 일본 도쿄(東京) 제국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된 4책의 총사본(叢史本)과 6.25동란으로 소실된 2책의 김양선(金良善)본, 그리고 현재 양화진 순교자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2책의 양화진본 등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양화진본은 2책 2권의 한 장 필사본(漢裝筆寫本)으로 34.5cm x 21.5cm 크기의 전체 193장(張) 386면(面)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71년 양화진 순교자기념관에 입수되어 1977년 한국 교회사연구소에 의해 영인, 출판되었다. 양화진본의 권1은 96장 192면의 분량으로, 1801년 1월 10일부터 12월 25일까지 투옥된 교우들의 신문과 처벌내용을 일지(日誌)식으로 기록한 전교주계(傳敎奏啓), 교우들의 처벌과 관련하여 형조에서 타기관으로 발송한 13편의 공문과 주의사항이 첨부된 이문질(移文秩), 교우들의 처벌과 관련하여 타기관에서 형조로 보내 온 41편의 공문을 기록한 내관질(來關秩), 사학죄인으로 처형된 37명의 추안(推案), 문초(問招)를 기록한 정법죄인질(正法罪人秩) 등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권2는 형조의 심문 중 배교한 교우들의 추안과 제사(題辭)를 기록한 형방질(刑放秩), 교우들과 관련되어 구금된 15명의 일반인들에 대해 기록한 백방질(白放秩), 형조에 출두해 스스로 배교를 선언한 51명에 대해 기록한 감화자현질(感化自現秩), 유배형에 처해진 67명의 기록인 작배죄인질(酌配罪人秩), 그리고 교우들에게 압수한 서적과 성물의 목록인 부록형식의 부요화사서소화기(附妖畵邪書燒火記) 등 6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학징의≫의 가치는 이제까지 겨우 그 인명만을 파악할 수 있었던 많은 교회인물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사실을 밝혀낼 수 있는 자료로서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趙珖, 邪學懲義의 史料的 價値, 邪學懲義(影印本), 한국교회사연구소,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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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죄인 [한] 邪學罪人 [관련] 사학

박해로 체포된 천주교인을 지칭하는 말 또는 체포된 천주교인들의 죄명(罪名)으로, 나라에서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금했기 때문에 천주교인이 체포되면 국금(國禁)을 어긴 사학죄인의 죄명으로 처형되었다. (⇒)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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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 [한] 邪學

한국 천주교회가 박해를 받던 시기에 박해자들과 외교인들이 천주교를 지칭하던 말. 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천주교인인 윤지충(尹持忠, 바오로)과 권상연(權尙然, 야고보)이 폐제분주(廢祭焚主)한 이른바 신해진산사건(辛亥珍山事件)이 일어나자 편벽한 유교사상에 젖은 일부 위정자들이 천주교인을 조상에게 제사도 드리지 않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공경하지 않으려 하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무리, 인륜(人倫)을 저버린 금수(禽獸)의 무리로 단정하여 체포, 처형하고 천주교를 사악한 종교로 금하게 하였다. 그 뒤부터 신교(信敎)의 자유가 허락될 때까지 천주교는 사학(邪學) 또는 사교(邪敎)로 불렸고, 천주교인은 체포되면 국금(國禁)을 어긴 사학죄인(邪學罪人)이란 죄명으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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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원] Sahara

아프리카 북서부에 위치한 나라. 대서양, 모로코, 보리타니아 등과 경계를 짓고 있으며 면적 26만 6,000㎢, 인구는 약 15만 1,000명(1982년 추계)이다. 원주민들은 대부분 회교도이며 가톨릭 신자들은 주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유럽인들이다. 1954년 알제리의 가르다이아(Ghardaia) 대목구로부터 분리되어 스페인령 사하라와 이프니(Ifni)에 지목구가 설립되었다. 사하라에는 현재 1개의 지목(知牧)구가 있으며 약 400명(1982년 현재)이 가톨릭 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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