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 [한] 邪敎 [관련] 사학

근본이 옳지 못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종교, 또는 그 나라의 도덕이나 사회제도에 어긋나는 종교를 사교라고 한다. 종교는 인간의 심리적 측면에 시점(視點)을 쏟고는 있어도, 사회적 집단적인 성격이 매우 두드러진 현상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개인을 조직한 사회집단이 종교를 짊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이러한 종교집단이 경우에 따라서는 부족이나 씨족 기타 자연적 집단에 합치할 경우도 있고, 혹은 종교적 목적을 위해 특별히 결성된 교단, 교회, 종파(宗派)등이라고 지칭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스미드(W.R. Smith)가 지적하듯이 “종교는 개인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존재해 온 것이 아니라, 사회의 존속 번영을 위하여 존재해 왔다”는 사회성 즉 앰즈(E.S. Ames)가 말하는 ‘최고의 사회가치의 의식’이 바로 종교의식(宗敎意識)이라는 견지에 서서 볼 때, 당해 사회가치에 해악을 끼치는 종교가 사교로 규정됨은 물론이요, 당해 사회제도에 어긋나는 종교를 사교로 낙인찍음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의 천주교는 그 근본에 있어서, 더구나 위에 말한 사회가치에 해악을 끼치는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래 초기 단계에 유교 숭상계급으로부터 마치 사교나 되는 듯한 잘못된 대접을 받았다. 당시 사회가 특히 사교로 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천주학(天主學)을 위정당국자가 사학(邪學)으로 몰아친 것은 매우 온당치 못한 처사를 자행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사학(邪學)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관청 [한] 仕官廳

조선시대 포교(捕校)들이 공무를 보던 청사(廳舍). 포장(捕長)의 사택(私宅)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 103위 성인 가운데 이경이(李瓊伊)와 권진이(權珍伊)가 기해박해(己亥迫害) 때인 1839년 7월에 잠시 이곳에 갇혀서 이순성(李順性)의 온갖 배교 위협과 유혹을 받던 중 탈출한 곳이기도 하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계의 재 [한] 四季∼齋

일년 사계절(四季節)에 각각 3일씩 단식하고 금육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기도하던 때를 말한다. 교회력을 따라 겨울에는 대림 제 3주간, 봄에는 사순 제1주간, 여름에는 성신강림절, 가을에는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등을 전후하여 각각 수요일과 금요일, 토요일에 지켜졌다. 수요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되심을 기념하는 의미로, 금요일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켜졌으며 토요일은 예수 죽음의 슬픔과(성금요일)예수 부활의 기쁨(부활주일) 사이에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사계재일의 기원과 목적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고대 로마시대에 각 계절의 농경 축제일에 가졌던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것 같으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를 받아들여 각 계절을 성화(聖化)시킨다는 의미로 보탠 것 같다. 교황 레오 1세(재위 : 440∼461) 시대에 서방교회로 널리 퍼져 나가 성직자들의 서품식(敍品式)을 특별히 이날에 거행하기도 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폐지되어 지금은 단식이 대재(大齋)의 형태로, 금육이 소재(小齋)의 형태로 남아 사순주간을 비롯하여 각국 주교회의에서 정하는 특별한 때에 지켜지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계 [한] 四季 [라] quatuor tempora [영] quatember days

교회 내의 사계(四季)란 봄의 사순절 첫번째 일요일, 여름의 성신강림절, 가을의 성 십자가 축일(9월 14일), 겨울의 성 루시아 축일(12월 13일)을 가리킨다. 이 사계 후에 맞는 첫 번째 수 · 금 · 토요일은 사계의 재일(齋日)이라 하여 기도와 단식을 하며 보낸다. 사계의 기원은 고대 로마의 농경제(農耕祭)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것을 라틴 전례에서 받아 들여 성화(聖化)시켰다. 8∼9세기에는 사계가 전유럽으로 퍼졌고 성 젤라시오(St. Gelasius) 교황은 496년 ‘사계의 재일’을 서품식 날로 정하였다. 중세 시대에는 이 날이 되면 다른 날보다 더 많은 희사금(喜捨金)을 내고, 빈민들에게 음식물을 나눠주며, 교회에 나가 죽은 자를 추모하였고, 또 서품받는 자를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1969년 로마력(曆)의 개정 후 사계의 재일은 각국의 주교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삐숑 [원] Pichon, Leon [관련] 피숑

⇒ 피숑

Pichon, Leon(1893~1945). 신부, 피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한국명 송세흥(宋世興). 프랑스에서 출생. 파리 외방전교회를 졸업한 뒤 1921년 11월 28일 사제서품을 받고, 이듬해 1워 24일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충남 공세리(貢稅里), 강원도 이천(伊川) 등지에서 사목하다가 1927년 용인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전입되었고, 이어 명동본당, 경기도 덕정리(德亭里)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하였다.

평소 한국 천주교회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프랑스의 각 도서관과 한국내의 천주교회사 자료를 수입, 연구하여 1933년부터 1936년까지 <가톨릭 청년>지(誌)에 11편의 논문(論文)을 발표하였고 1938년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서한 16통과 김대건 신부의 연보 · 전기 등을 수록한 ≪조선성교사료≫(朝鮮聖敎史料, Pro Corea Documenta)를 편찬, 간행하였다. 그러나 교회사연구의 완성을 맺지 못하고 1945년 2월 덕정리본당 관내의 공소순방 중 병을 얻어 2월 25일 명동 성모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유해는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술로는 <조선가톨릭사의 편영(片影)>(가톨릭청년, 제1권 제5호~제2권 제4호, 1933년 10월호~1934년 4월호), <조선가톨릭사 부록>(가톨릭청년 제2권 제6호, 1934년 6월호), <복자 안드레아 김대건의 약력>(가톨릭청년 제2권 제7호, 1934년 7월호, <조선 가톨릭교회 은인 소(蘇) 주교>(가톨릭청년 제3권 제9~10월호, 1935년 9~10월호), <정다산(丁茶山)의 신앙여부>(가톨릭청년 제3권 제11호, 1935년 11월호), <나신부 서간수편(羅神父書簡數篇)>(가톨릭청년 제4권 제1호, 1936년 1월호), <나신부의 입선경로(入鮮經路)>(가톨릭청년 제4권 제2호, 1936년 2월호), <정다산(丁茶山)과 조선가톨릭 초창기>(가톨릭청년 제4권 제4호, 1936년 4월호), <고(高)주교 관리시대의 조선가톨릭>(가톨릭청년 제4권 제7~9호, 1936년 7~9월호), <이(李)신부 · 장(張)주교 관리시대의 조선가톨릭>(가톨릭청년 제4권 제11호, 1936년 11월호), <장(張)주교 관리시대의 조선가톨릭>(가톨릭청년 제4권 제12호, 1936년 12월호)과 ≪조선성교사료≫(Pro Corea Documenta, 서울교구, 1938) 등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