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시오의 애덕자매회 [영] Daughters of Charity of St. Vincent Paul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고무되어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1633년 프랑스 파리에서 성 빈첸시오와 그 협력자 성 루이즈 드 마빌락(St. Luise de Mavillac)에 의해 창립되었다. 1933년 일본관구가 설정된 후 이경재(李庚宰) 신부의 요청으로 1978년 일본인 수녀 2명(Jeanne Kinashi, Constance Aummel)이 처음 내한하였다. 나환자들의 간호와 봉사를 목적으로 내한한 수녀들은 안양에 정착하여 라자로 마을에서의 봉사와 정착촌 이동진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곧 군포(軍浦)에 수련원과 함께 본당을 건립함으로써 본당과 교육복지사업 등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중이다. 1983년말 현재 카스퍼(Baptista Casper) 원장수녀 외에 미국인 수녀 2명, 일본인 수녀 3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3명의 지원자 중 2명이 일본에서 수련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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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시오 페레리오 [라] Vincentius Ferrerius

Vincentius Ferrerius(1350-1419). 성인. 축일은 4월 5일. 스페인의 도미니코회 수사. ‘최후심판의 천사’라 불리던 설교자. 발렌시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브르타뉴지방의 반에서 별세하였다. 1367년 발렌시아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가, 2년간 타라고나에서 수학한 뒤 레리다 대학에서 논리학을 가르쳤다. 1373년부터 바르셀로나의 도미니코회 성서학원에서 신학을 연구, 그 후 프랑스의 툴루즈(Toulouse)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정식으로 마치고(1379년), 그해 바르셀로나에서 추기경 페드로 데 루나(Pedro de Luna, 후의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소수도원장으로 있다가 1384년부터 발렌시아의 대성당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1394년 아비뇽의 대립교황 글레멘스 7세가 죽고 페드로 데 루나가 그 후계교황이 되어 베네딕토 13세를 칭하게 되었다. 빈첸시오는 베네딕토 13세의 부름을 받고 아비뇽에 가서 그 고해신부가 되었다. 1399년 아비뇽을 떠나 설교자로서 20년간 스페인, 남부 프랑스,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방, 스위스, 북부 프랑스, 로우 컨트리즈(Low Countries)[현재의 네덜란드 · 벨기에 · 룩셈부르크를 포함하는 저지대] 등을 순례하며 전도하여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이때 많은 이적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만년에는 교황청의 분립(分立)을 종결시키기 위한 운동에 공헌하였다. 1455년 교황 갈리스도(Calixtus) 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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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한] ∼會 [영] Society of St. Vincent de Paul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애덕을 실천하고자 하는 평신도단체. 1833년 프레드릭 오자남(Frederic Ozanam) 신부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신부의 정신을 이어 받아 빈민구제사업을 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이 회를 창설했고, 1961년 1월 5일 청주교구의 파디(Pardy) 주교의 주선과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뉴질랜드 대표 게이노(Geynor)의 도움으로 한국에 진출하여 청주교구 내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그 후 한국에서의 활동규모가 커짐에 따라 이를 통괄할 수 있는 전국이사회 창립의 요청을 받고 1973년 4월부터 5차에 걸친 준비회합을 거쳐 1975년 2월 21일 한국 전국이사회가 창립되었다. 초대 이사장으로는 한병은, 초대 지도신부로는 호세 산도발(Jose Sandoval, 蘇) 신부가 임명되었다. 현재 한국 전국이사회 산하에 서울중앙이사회, 춘천중앙이사회, 청주중앙이사회, 광주중앙이사회, 마산중앙이사회, 부산중앙이사회, 인천지구이사회, 전북지구이사회 및 대전 대동협의회, 제주 서문협의회, 원주 풍수원협의회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본회의 회원들이 어떤 도움을 베푸는 것은 그 회원들이 은인으로서 대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서로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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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시오 아 바오로 [라] Vincentius a Paulo

Vincentius a Paulo(1580?-1660). 성인. 사제. 라자리스트회와 자선수녀회의 창설자. 축일은 9월 27일. 남서 프랑스 랑퀴엔(Ranquine) 출신의 농부 아들. 툴루즈(Toulouse)에서 신학을 배우고 1600년 서품되었다. 1605년 이슬람의 해적들에게 사로잡혀 노예생활을 하였으나 1607년 아비뇽(Avignon)으로 탈출, 1608년 파리에서 드 베륄(De Berulle) 신부의 영향으로 일생을 자선활동에 바칠 것을 결심, 노예선 선장 곤디(Gondi) 백작의 집안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죄수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1613∼1625년). 그 당시 남녀 자선단체들을 창설. 1625년 보통 라자리스트회라고 불리는, 특히 시골 선교와 성직자들의 훈련을 위한 선교회를 창설하였다. 8년 후 온전히 병자와 빈자의 간호를 담당하는 첫 여자수도회인 자선수녀회를 성 루이즈 드 마빌락(St. Louise de Mavillac)과 함께 창설함으로써 프란치스코 드 살레시오에 의해 이미 시작되었던 계획을 완수하였다. 프롱드전쟁 때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장기적 안목의 계획을 세우고, 또 얀센주의를 단죄하는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737년 시성. 1833년에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자유사상가들로부터 가톨릭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오자남(Ozanam) 등에 의해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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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시오 [라] Vincentius

① 사라고사의 빈첸시오(V. Saragossae, ?∼340?). 성인. 부제. 축일은 1월 22일. 그는 사라고사의 발레루스(Valerus) 주교의 부제였는데 304년에 순교했을 것으로 본다. 그에 대한 공경은 특히 중세기에 발전하였다. 그의 이름이 모든 성인의 호칭기도에 삽입되었고, 특히 포르투갈, 나무꾼, 포도재배원, 선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② 레랭의 빈첸시오(V. Lerinensis, ?∼450?). 성인. 라틴교부. 프랑스의 가톨릭 성직자, 신학자. 지중해의 레랭(Lerins)섬 수도원에서 살고 있던 박학(博學)한 수사. 그는 많은 점에서 아우구스티노(Aurelius Augutinus)에게 공명(共鳴)하면서도 그의 은총과 예정의 교리를 가톨릭의 전승(傳承)으로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가공적인 교리에서 인간의 의무에 대한 노력과 책임감을 희박하게 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성서야말로 그리스도교 진리의 최종적 근거이며, 교회는 다만 그 올바른 해석자라고 하였다. 한편 <신앙의 진보>란 장(章)에서, 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성서의 진리는 보다 더 잘 해명되는 것이라면서 교리의 발전을 인정하였다. 그는 또한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믿을 수 있는 진리야말로 본래의 가톨릭적인 것이므로 교회는 그 진리를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전통에 관한 가톨릭 교리를 정식화(定式化)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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