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원] Bruckner, Anton

Bruckner, Anton(1824-1896).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그레고리오 성가와 같은 옛날 교회음악과 새로운 관현악법(管絃樂法)을 조화시켜 심오(深奧)하고 경건한 그리스도교 음악을 창작하였다. 린츠 근처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855년 린츠 대성당의 오르간 연주가가 되어, 즉흥 연주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키츨러에게서 악식론(樂式論)과 악기론(樂器論)을 배워, 고전파와 낭만파의 기악곡을 깊이 이해하였다. 그리고 바그너의 작품에 접하게 되어 창작에 큰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린츠시대에 미사곡 제1, 제2, 제3번과 교향곡 제0, 제1번 같은 큰 곡을 작곡하였다.

1868년 빈음악원의 교수가 되고, 1878년에는 빈대학의 강사도 겸하였다. 이 시기에 교향곡 제2번부터 8번까지 작곡하였다. 브루크너는 1865년 바그너를 만나고, 그에게 심취하여 작품을 바쳤는데, 그것이 전통파(반 바그너파)의 반감을 사게 되어 오랫동안 푸대접을 받는 처지에서 살았다. 이에 저항하여 브루크너는 <관현 5중주곡>(1879), <테 데움>(1881), <제7 교향곡>(1883), <제8 교향곡>(1885) 등을 작곡하였으며 그 성공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19세기 후반의 최대 교회음악가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최대의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브루노 [라] Bruno

Bruno(1032-1101).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창설자. 성인. 축일은 10월 6일. 콜로뉴에서 출생, 카탄자로 근처 라 토르(La Torre)에서 별세. 귀족 가문에 태어나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유년시절에 관하여 알려진 것이 없다. 코로뉴에 있는 성 퀴니베르(St. Cunibert) 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하여 랭스(Reims) 학교에서 끝마쳤다. 랭스에서 의전 사제가 되었고 랭스 학교에서 교양과목과 신학을 가르쳤으며 이 학교의 교장을 역임(1056년), 마침내 랭스 대교구의 사무국장이 되었다(1075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운동에 동조하여 교회쇄신에 앞장섰으며 그의 영향으로 성직매매 사건으로 말썽을 일으킨 대주교 마나세 1세가 퇴위하게 되었다(1080년). 세속적인 야망이 없었고 주교의 임명을 사양하였다. 퇴위사건이 끝나기 전 그리스도의 가난한 자들(pauperes Christi)의 생활 즉 수도생활을 하겠다고 서원하였고, 동료 두 사람을 데리고 랭스를 떠나 사막으로 갔다가(1082년) 다시 알프스 산 속에 들어가서(1084년) 약간의 성직자들과 평신자들과 더불어 6년간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는 카르투시오 회헌을 쓴 일도, 수도회를 설립할 의도도 없었으나 첫 카르투시오 회원들이 생활한 규범이 회헌으로 정리되고 그를 창설자로 추앙하였다. 제자인 교황 우르바노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에 갔으며(1090년) 주교의 임명을 다시 사양하였으나 시칠리의 로조(Roger of Sicily)의 물질적 도움을 받아들여 라 토르의 산타 마리아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로는 시편의 주석과 바울로의 편지에 대한 주석 및 죽음직전에 남긴 신앙의 고백이 있다.

브루노의 육신은 산타 마리아의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가(1101년) 그 뒤 그곳 성당으로 옮겼고 다시 성 스테파노 성당에 옮겨 안치하였다(1193년). 1514년 교황 레오 10세가 그를 성인품에 올렸고 그의 축일은 1623년 로마 전례에 도입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브레허 [원] Breher, Theodorus

Breher, Theodorus(1889-1950). 독일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 선교사. 초대 연길(延吉) 교구장. 주교. 한국명은 백화동(白化東). 독일에서 출생. 1915년 사제서품을 받은 후 베를린대학에 진학, 이 대학에서 중국학(中國學)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1년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하여 간도(間島)의 삼원봉(三元峰)본당에서 사목했고, 1929년 연길 교구가 설정되면서 초대 교구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1934년 연길 성 십자가수도원(聖十字架修道院)의 설립과 동시에 대원장(大院長)에 선출되어 교구장직과 대원장직을 겸하게 되었고, 이어 1937년 연길교구가 지목구(知牧區)에서 대목구(代牧區)로 승격되자 이해 9월 5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다. 1949년 5월 연길에 진주한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7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이해 12월 석방되어 독일로 귀국했으나 이듬해 2월 11일 지병인 당뇨병으로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 본원에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P.H. 왈터, 승리의 십자가, 분도출판사, 1978.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브레난 [원] Brennan, Patrick T.

Brennan, Patrick T.(1901∼1950?). 성 골룸바노 외방전교회원. 제4대 광주교구장[知牧]. 한국성(姓)은 안(安). 미국에서 출생하여 1928년 사제서품을 받고 1937년 에이레 성 골룸바노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내한, 강원도 원주 상동리(上洞里)에서 사목하다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일제에 체포되어 이듬해 4월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8.15 광복 후 다시 내한, 1949년 4대 광주교구장(지목)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6.25동란 중 목포본당 주임 쿠삭(Cusack, 高) 신부, 목포 본당 보좌 오브라이언(O’Brien, 吳) 신부와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전주감옥에 갇혔다가 대전감옥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후퇴하던 공산군에게 수감자 1,200명과 함께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브람스 [원] Brahms, Johannes

Brahms, Johannes(1833∼1897). 독일의 작곡가.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빈에서 반생을 살았다. 오페라 이외의 모든 분야에서 작품을 남겼다. 그의 대작<독일 레퀴엠>은 바하의 <나단조 미사곡>, 베토벤의 <장엄 미사곡>과 더불어 영원한 그리스도교의 합창음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밖에도 <아베마리아> <성모 찬가>, 여성 3부합창인 <시편 13편> 등의 훌륭한 종교 음악을 남겼다. 브람스의 음악은 독일 음악의 전통을 보수적일 만큼 존중하며 견고한 구성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주의적인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때로는 북(北) 독일적이며 또 때로는 빈(Wien)적이지만 인간 브람스의 피가 흐르는 소박한 품격(品格)이 그의 음악의 큰 매력이 되고 있다.

그런 만큼 브람스의 작품에서는 호화스런 색채감각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신앙심이 두터운 프로테스탄트의 신자이었기 때문에 종교적이면서도 죽음의 예감이 감도는 작품들이 많은데, 특히 만년에 발표된 성악곡에는 이러한 것들이 눈에 띄게 많다. 브람스는 낭만주의의 화려한 시대에 있어 고전파 음악의 전통을 지킴으로써, 시대의 풍조에 휘말리지 않는 독자적 작풍을 견지한 작곡가였다. 그는 남성적인 면에서 베토벤과 비교되고, 숭고하고 경건한 점에서는 바하와 비교되는 작곡가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