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당 [한] 北堂

북경(北京)에 있던 4개의 성당(聖堂) 가운데 하나. 파리 외방전교회원 퐁트니(Fontency, 중국명 洪若)가 청(淸) 성조(聖祖)의 학질을 고친 공로로 서안문(西安門) 밖의 땅을 하사받아 1701년 건축을 시작, 1703년 완공하였다. 1601년 리치(M. Ricci, 중국명 利瑪竇)의 북경 선교 이후 북경에는 4개의 성당이 건립되었는데 각 성당들은 건립된 위치에 따라 동당(東堂), 서당(西堂), 남당(南堂), 북당(北堂) 등으로 불렸다. 그 중 가장 먼저 건립된 것은 남당으로 1601년 리치가 명(明)의 신종(神宗)에게 선무문(宣武門, 일명 南門) 안의 땅을 하사받아 건립한 후 1644년 샬(Adam Schall Von Bell, 중국명 湯若望)이 이를 개축하였다. 남당 다음으로 1628년 샬이 거처하던 동안문(東安門)밖에 동당이 건립되었고, 1703년 북당이 건립되었으며, 이어 1723년 라자리스트회원 페들리니(Pedlini, 중국명 德理格)에 의해 서직문(西直門) 대로에 서당이 건립되었다. 이들 4개의 성당은 북경의 명소로서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들었는데 특히 남당과 동당은 조선 사신들의 숙소인 옥하관(玉河館)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 사신들이 서양 선교사들과 접촉을 가져 서구문명을 배우게 되었고, 결국 이로 인해 조선에는 서학(西學)이 전래되었다. 1644년 샬과 만난 소현세자를 비롯하여 1631년 정두원(鄭斗原), 1720년 이이명(李-命), 1766년 홍대용(洪大容) 등은 모두 북경에서 서양 선교사들과 만나 서구문명, 서학 등을 조선에 전래한 인물들이다.

남당과 동당이 조선 사신들과 서양선교사들이 접촉한 곳이었음에 비해 북당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직접적 계기가 된 곳으로 1784년 이승훈(李承薰)이 이곳에서 그라몽(J. de Grammont, 중국명 梁棟材) 신부에게 베드로란 세례명으로 영세하고 귀국, 교회창설을 주도함으로써 북당은 한국 천주교회와 매우 밀접한 곳이 되었고, 이후 조선 교회의 밀사들은 북당을 통해 조선 교회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북당을 제외한 3개의 성당은 1900년 의화단(義和團)사건 때 파괴되었다가 남당과 동당은 새로 건립되었다. 현재는 북당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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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교회 [한] 北京敎會 [관련] 북경교구

⇒ 북경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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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교구 [한] 北京敎區

1946년이래 수도 대교구(首都大敎區). 북경은 이미 7세기부터 14세기 사이에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us), 즉 경교(景敎)와 접촉을 가졌었다. 북경의 최초의 선교사는 교황사절을 겸한 프란치스코회원 요한 몬테 코르비노(Monte Corvino)였는데, 그는 1294년 당시 캄발레크(Kambalek)로 불리던 북경에 도착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북경은 1307년 두 개의 속교구(屬敎區)를 가진 대교구로 설정되었고, 이듬해 요한 자신이 대주교로 성성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망 후 선교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뒤 북경에 복음이 다시 전래된 것은 마테오 리치(M. Ricci, 李瑪竇)에 의해서였다. 그는 1601년에 북경에 도착하여 사망할 때까지, 즉 1610년까지 북경에 체류하였다. 1650년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들이 북경의 성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1690년 북경이 남경과 함께 포르투갈 보초권 교구로 설정되면서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그 뒤 또 세 개의 성당이 북경에 세워졌다. 박해 후 북경주교좌는 공석이 되었고, 그래서 남경교구에 의해 관할되었다(1747-1778년). 1835년 북경교구의 관할은 라자리스트로 넘어갔다. 1924년 미국의 베네딕토회원에 의해 북경에 보인대학(輔仁大學)이 세워졌다. 1946년 중국에 교계제도가 설정되면서 북경은 수도관구 대교구로 승격되는 동시에 전경화(田耕華) 교구장이 동양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1950년 북경교구의 교세는 본당 75개, 교구사제 80명, 남자수도회 12개, 수사 400명, 여자수도회 8개, 수녀가 300명, 교회 운영의 남녀학교 118개교, 학생수는 5,361명, 자선단체 9개, 병실 2,00개, 그리고 북경 총인구 500만명 중 교우수는 21만 5,900명이었다.

북경교구는 한국 교회의 창설 발전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북경을 내왕한 조선사신(朝鮮使臣)들이 북경의 선교사들과 접촉하고 아울러 그들이 저술한 서학서를 갖고 들어와 결국 조선에 자생적인 교회가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북경 선교사들은 조선 전도에 관심을 갖고 비록 실패에 그쳤을지라도 여러 번 조선 전도를 시도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교황청도 조선 전도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게 되었다. 1702년 조선지역은 처음으로 당시 북경교구장 프란치스코회원 베르나르디노(Bernardino della Chiesa) 주교에게 위임되었다. 1784년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의 북당(北堂)에서 구 예수회원으로부터 영세한 이래 북당과 계속 연락을 취하였고, 1785년 라자리스트회원이 북당을 맡게 된 이후에도 조선 교회와의 접촉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1785년 북경에서 부임한 북경교구장 구베아(Gouvea) 주교가 조선 교회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함에 따라 이후 조선 교회는 주교좌 성당인 남당(南堂)하고만 접촉을 하게 되었다. 구베아 주교는 비록 1791년 선교사의 파견에는 실패하였으나 1795년에는 선교사를 파견하는 데 성공하였다. 1792년 교황청에서 조선 교회의 관리를 구베아 주교에게 위임한 이래 구베아 주교는 물론 그의 후임수자 사라이바(Souza Saraiva)주교도 선교사 파견 등 조선 교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마침내 1831년 조선 교회는 북경교구에서 독립, 고유한 대목구(代牧區)가 되었고 또한 조선 선교사 파리 외방전교회원의 조선 입국을 용이하게 하고자 1838년에는 만주지방이 북경교구에서 독립되어 만주교구로 설정되는 동시에 파리 외방 전교회에 위임되었다.

[참고문헌] A. Thomas, Histoire de la Mission de Pekin, Paris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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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골 [관련] 가톨릭대학

1885년에서 1887년까지 신학교가 소재했던 곳으로 당시에는 강원도 관할이었으나 현재는 경기도 여주군 관할로 되어있다. 부엉이가 많다고 하여 부흥골이 아니라 부엉골이라는 설도 있다. (⇒) 가톨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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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초 [한] 復活∼ [영] paschal candle [독] Osterkerze

성 토요일 부활 전야제에서 특별한 의식과 함께 축성된 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크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며 보통 밀랍(蜜蠟)으로 만들어진다. 벌들은 초대 교회시대부터 동정성을 지닌 피조물로 여겨져 교부들은 벌을 동정 성모의 상징으로, 이 벌들의 밀랍으로 이루어진 밀초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부활초의 기원은 갈리아 전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중세에 성지 행렬, 십자가 경배, 무덤 조배(朝排) 등 복잡한 성주간 전례가 도입될 때 빛의 상징으로 부활 전야제에 도입되었다. 부활초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으며, 십자가 위에는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인 ‘알파'(A)가, 십자가 밑에는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Ω)가 씌어져 있고, 그 해의 연수가 표시되어있다.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기념하기 위한 다섯 개의 상흔(傷痕)이 십자가 끝부분과 중앙에 있는데 예전에는 여기에 향로 덩어리를 넣었다.

사제가 부활초를 새 불에서 점화하여 제단 앞까지 행렬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광명'(Lumen Christi)이 노래된다. 신자들의 초가 부활초에서 차례로 점화된 뒤 부활초는 독서대 옆에 마련된 촛대에 세워지고 ‘부활찬송'(Exultet)이 노래된다. 사제는 이날 부활초를 성세수에 잠그면서 성세수를 축성한다. 부활초는 부활시기 동안 독서대 옆에 마련된 촛대에 세워져 미사와 성무일도 등 전례가 거행될 때 켜진다. 부활초는 관습적으로 ‘예수승천 대축일’ 미사 중 복음 선포 후 꺼졌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쇄신된 전례력에서 부활시기가 ‘성령강림’으로 끝나게 되자 부활초도 ‘성령강림 대축일’까지 켜두게 되었다. 그 후는 적절한 곳에 보관하여 영세식이 있을 때마다 불을 켜도록 하여 영세자들의 초를 부활초에서 점화시킨다. 장례미사에서도 시신을 제단 가까이 인도하고 또 전송할 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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