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논쟁 [한] 普遍論爭 [라] Controversia de universalibus [독] Universalienstreit

실재계(實在界)에 대한 보편 개념의 관계, 즉 우리의 추상적이며 보편적인 인식과 우리의 인식밖에 있는 사물과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의 문제에 관한 논쟁을 ‘보편논쟁’이라고 지칭한다. 이 문제의 일반적인 인식론적 및 형이상학적인 의의에서 본다면, 결코 중세에 한정된 특수문제가 아니고, 도리어 모든 중요한 철학체계에 있어서 보편 문제의 구명이 뒤따르고 있음을 때때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신학적 철학적인 논쟁은 주로 고대 및 중세철학 전(全)시기에 걸쳐 성행하였으며, 근세에는 독단론과 경험론의 대립, 현대에는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대결 형태로 이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도 보겠다.

‘보편’이라는 라틴어 ‘universale’는 보편적, 보편자(普遍者), 보편성 등으로 쓰이는데, 어떤 부류의 모든 사물에 공통된 성질을 가리킬 때 보편이라고 보지만, 그 중 몇 개의 사물에만 고유한 성질을 말할 때의 ‘특수’도 하나의 부류로 볼 수 있으므로, 보편과 특수와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그래서 철학사상 보편과 특수에 대하여 많은 갈래의 사고방식이 있으며, 잘못된 양극단론은 보편을 초월적인 실재라고 보는 입장과, 보편을 단순히 주관적인 것이라고 보는 입장을 낳게 한다. 본디 인간의 사고는 다소 비슷한 개체들을 하나의 군(群)으로 모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체들을 하나의 일반사고 아래 표현하거나, 또는 하나의 명칭으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렇듯 다양성 가운데에서도 하나의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편’이라고 하며, 이러한 보편의 정확한 본질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주요한 세 가지 견해가 있다.

① 극단적 실재론(extreme realism) : 스콜라학파의 초기에는 보편은 개체들에 앞서서 즉 ‘개체들 이전의 보편자’(universale ante rem)로서 실재한다는 플라톤적인 실재론이 우세하였고 19세기의 에리우제나(Johannes Scotus Eriugena), 11세기의 안셀모(Anselmus) 등은 모두 극단적인 실재론의 대표자였다. 이는 한정된 사고 안에 있는 보편의 개념들과는 별도로, 또는 그 보편들의 종류에 귀속된 개체들 내에서 그러한 보편들을 감지하는 것과는 별도로 존재하고 있는 어떤 사물들 또는 본질들 즉 현대용어로는 객관적 가미들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보편’이라는 주장이다. ②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 또는 명사설(名辭說, terminism) : 이 설은 보편들은 그들 자체 내에서는 아무런 실재(實在)도 갖고 있지 않으며, 보편들의 종류에 속하는 개체적인 일원들 사이에는 아무런 실재적인 유사점도 없고, 인간의 사고 안에서 보편들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개념들에 아무런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11세기의 로셸리누스(Roscelinus)가 보편은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며, 실재하는 것은 개체들뿐이라고 하여, ‘개체들 뒤의 보편자’(universale post rem)라는 관점에서 보편을 인간이 만들어낸 이름으로만 보는 유명론이 나왔다. 14세기에는 오캄(William of Occam)에 의하여 유명론이 다시 나타났는데, 이는 근세 초기의 영국의 유물론(唯物論)의 선구적인 구실을 하였다. 이 설은 개체의 실재만 인정하므로, 삼위일체의 교의가 성립되지 않는 까닭에, 그리스도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를 이단으로 배척하였다. ③ 중도적 실재론(moderate realism) : 보편 자체들 안에는 아무런 실제적 및 실질적인 보편들이 없지만, 인간의 이지(理智) 속에는 실질적인 보편개념들이 있으며, 이 개념들은 사물의 진정한 종류들에 속한 개체들의 실재적인 유사점들 내부에 하나의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보편은 천차만별한 개체들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것에 뿌리박고 있다는 의미에서 ‘개체들 속에 있는 보편자’(universale in re)라고 부른다. 13세기의 알베르토(Albertus Magnus),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중도적 실재론의 견해를 두드러지게 주장하였다. 이 설은 보편이 개체들 안에 그 형상(形相)으로서 실재한다고 보아,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완화된 실재론으로서, 보편은 신의 정신 속의 ‘이데아’로서는 개체들에 앞서고, 형상으로서는 개체들 속에, 추상적인 마음속의 개념으로서는 개체들 뒤에 있다는 설이다. 이 중도적 실재론은 가톨릭 철학에 있어 널리 용인된 가르침으로 존속되어져 왔고 20세기에 와서는 보편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새로운 종합이 앞으로 기대되고 있다.

[참고문헌] R.I. Aaron, The Theory of Universals. Oxford 1952 / H.H. Price, Thinking and Experience. Cambridge, Mass. 1953 / D.F. Pears, Uniuersals, Logic and Lrmguage ser., ed. A.G.N. Flew, New York 1953 / カトリツク大辭典, 日本富山房, 5刷 1954 / A. Quinton, Properties and Causes,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1958 / R.G. Miller, Realistic and Unrealistic Empiricisms, New Schol 35,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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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창학교 [한] 普彰學校

평양교구 순천본당의 선원면(仙院面) 교우들이 1909년 설립한 초등교육기관. 1911년 이후 일제의 탄압을 받아 폐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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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주교 [한] 補佐主敎 [라] auxiliaris, coadjutor [영] auxiliary bishop

교구의 사목활동을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하여 교황으로부터 임명된 명의주교. 교구장 후계권을 갖고 있지 않는 보좌주교(auxiliarius)와 교구장 후계권을 갖고 있는 보좌주교(coadjutor)로 구별된다. 명의주교로서의 보좌주교는 관할구역 내에 있어서 서품식을 제외하고 주교품급에 의거한 사항을 집행할 수 있고, 기타 사항에 대해서는 성청 또는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만을 갖는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에서는 보좌주교가 임명되어 있는 교구의 경우 보좌주교가 총대리직에 임명되기를 권고하고 있다. 보좌주교가 현재 한국 내에는 서울 대교구와 대구 대교구에 각각 1명씩 임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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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신부 [한] 補佐神父 [라] vicarius parochialis [영] curate

보통 C.C.로 줄여서 쓰고, 인간의 영혼을 돌보아 주는 자, 특히 본당사제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통 본당의 주임신부를 보좌하는 사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즉 본당신부의 임무수행을 돕도록 임명된 자, 한 본당의 주임사제가 공석 중에 있을 때 임시로 책임을 맡은 자, 본당신부가 부득이한 사유로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임시로 그 직을 맡은 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보좌신부들은 본당신부나 주교에게서 임명을 받고, 본당신부의 임명을 받은 경우 주교의 인가를 받아 그 직을 수행한다. 교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고지(告知) 후 주교에 의해 임명이 철회될 수도 있다. 어원은 라틴어의 ‘cura’(돌보다, 배려하다)와 ‘curator’(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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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족성의 원리 [한] 補足性∼原理 [독] Prinzip des Erganzung [관련] 보조성의 원리

모자라는 것을 보태어서 넉넉하게 하는 것을 ‘보족성’이라고 하는데, 이 보족성은 자연계를 지배하며 갖가지의 자연현상을 일관하고 있는 법칙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를 가리켜 보족성의 원리라고 말한다. 당위(Sollen)를 표현하는 규범 법칙에 대응하여 쓰여지는 자연법칙(自然法則, natural law)은 사실 사이의 일반적인 필연적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인과율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된다. 자연법칙을 대표하는 것은, 자연과학적 법칙이며, 모든 현상은 자연 필연적으로 이런 법칙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므로, 자유로운 한정 따위는 여기에 개입할 여지가 언다. 이 경우의 ‘자연’이란 자연과학의 대상으로서의 그것이며, 목적론적 즉 생물학적으로 이해된 자연이 아니라, 기계론적 즉 물리학적으로 보는 자연이다. 이리하여 처음부터 물질적 자연으로서 보는 자연계의 법칙관계를 문제삼게 마련이다. 이러한 자연법칙은 어디까지나 절대성(절대적인 참)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유사성의 것이다.

자연법칙은 경험적인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이것은 실험을 통한 낱낱의 경험적인 사실로부터의 귀납 또는 일반화에 의하여 얻어진 관계를 지칭한다. 이 때, 우리의 실험이나 환경 조건에 있어서의 유사성(이는 원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에서 자연법칙의 유사성이 나온다. 즉 법칙이란 원리적으로 유사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법칙은 어떤 유사성의 한계 안에서는 진리성과 타당성을 갖는다. 다만 절대적인 참이 아니기 때문에, 그 한도를 넘어서 적용할 경우 오류를 범한다.

이러한 원리를 보족성(Erganzung)에서 찾아볼 때 이미 인간에게는 남녀 양성(兩性)의 구별과 함께 상호 보족성이 부여되어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회화(社會化)는 근본에 있어 인간의 근원적인 사회적 소질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즉 인간은 인격의 독립적인 존재, 독자성, 독자적인 가치 등과는 관계가 없이 동료 사람들과의 공동사회 속에서 생활해 나가야 하며, 그 생명적인 과제를 다해야 할 처지에 놓여져 있다. 아퀴나스와 그 학파는,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와 결부시켜서, 아동 또는 청소년에게 신체적 정신적인 부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발견하였다. 즉 인간성은 동물과는 다르다. 인간의 여러 가지 신체적 또는 심리적인 힘은 개인의 입장에서 발전하는 법이 없고, 종(種)의 입장에서 비로소 발전한다. 즉 수많은 사람 및 인간 세대의 협동에 힘입어서 마침내 문화와 아울러 그 진보 발달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 가운데서 상호 보족적인 개인적 능력, 힘, 욕구 등의 노동 또는 생활 공동사회를 지시하는 차이 속에, 이를테면 인간에게만 고유한 언어적인 능력 속에 찾아냈던 것이다. 이상의 증명은 그 뒤에 전개되어 온 짐멜(G. Simmel), 스판(O. Spann), 리트(Litt) 등의 통찰을 통한 지지와 보족이 있었다.

모든 사회화, 모든 사회적인 구성체, 특히 혼인, 가족, 국가의 이와 같은 자연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즉 그 근원과 본질이 자연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수립하고 그것을 꾸며 이룩함에 있어서는 자유로운 의지적 산물이며, 상호 보족성의 원리 아래서 차차 정신화와 도덕화의 길에 견디어 낼 수 있었다는 점을 깊이 주의하지 않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더구나 아퀴나스가 말하는 ‘군거’(群居) 동물에 대응하여 사회는 이성적인 인간의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인간 사회의 직접적이며 가장 가까운 기원이 인간성 가운데, 즉 보족성과 함께 부여되었다는 입장은, 어느 의미에선(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전혀 현실성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세계관 및 사회관에 있어서는 최후의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1967. 3. 26)에 의하면, “남이 가져오는 것이 형제적 사랑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받는 민족들이 그것을 배격하리라는 것도 의심 없는 사실이다”고 언급하며, 세계문제에 있어 ‘인간 형제애’를 강조하였다. 국제공동체의 의무로서의 원조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을 조정 촉진할 목적에 소요되는 자원(資源)을 가장 유효하고 평등하게 분배하는 데 있어서도, “상호 보완의 원리를 지키며, 전세계의 경제관계를 정의(正義)의 규범을 따라 조정하는 일도 국제공동체의 의무이다”라고 밝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의 말은, 모두 ‘보조성’의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보족성의 원리’의 중요성도 뒷받침해 주고 있다. (⇒) 보조성의 원리

[참고문헌] K. Breysig, Kulturgeschichte der Neuzeit I, 1900 / M. Scheler, Der Formalismus in der Ethik. 1916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 T. Steinbuchel, Der Sozialismus als sittliche Idee. 1921 / カトリツク大辭典 II, 東京 富山房, 5刷, 1954 / キリスト敎大事典, 東京 敎育館, 改訂新版 5版,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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