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소회등록 [한] 丙午所懷謄錄

1786년(병오) 정조(正祖)의 명에 의해 관원들이 제시한 국정개혁안(國政改革案)들을 모은 책. 일대 개혁 정치를 추구하던 정조는 국가의 현실적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문무관원들에게 소회(所懷)의 제출을 명령하였고 이에 응답한 문무 관리 324명의 소회를 엮어서 이 책을 만들었다. 관리들의 소회 내용은 당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전반에 걸친 것이었으며, 그 건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모두 548조에 이르고 있다. 이 중에는 서학(西學) 혹은 천주교에 관한 6건의 건의가 포함되어 있다. 천주교 관계를 건의한 사람들은 천주교의 유포현상에 주목하고, 이의 유포를 막기 위해서 북경으로부터의 서적수입을 엄격히 제한하도록 건의하였다. 1969년 서울대 도서관에서 영인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韓우劤, 正祖丙午所懷謄錄의 分析的硏究, 서울大 論文集 11,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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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박해 [한] 丙午迫害

1846년, 헌종(憲宗) 12년, 병오년에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의 체포를 계기로 일어난 박해. 당시 한국에 입국해 있던 페레올(Ferreol, 高) 주교는 포교에 힘쓰는 한편, 한국의 입국기회를 노리며 만주(滿洲)에 머물러 있던 메스트르(Maistre, 李) 신부와 최양업(崔良業) 부제를 맞아들일 방도를 강구하였다. 그런데 주교는 육로를 통한 입국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서해(西海)에서 비교적 안전한 바닷길을 찾아보도록 하기 위해 김대건 신부를 황해도로 보냈다.

1846년 5월 13일 서울을 떠난 김대건 신부는 황해도 연안의 백령도(白翎島)에 다달아, 중국 모인도(毛仁島)를 거쳐 한국에 은밀히 입국하는 해로(海路)를 구상, 배를 빌려 메스트르 신부 등을 데려올 방안을 살피던 중 순위도(巡威島)에서 포졸들에게 우연한 일로 잡히는 몸이 되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는 배주인인 임성룡과 뱃사공 엄수(嚴秀) 등과 함께 옹진(甕津)의 옥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5일 후에는 해주(海州)로 이송되어 신문을 받았는데, 그의 신분이 알려지자 해주 감사는 일의 중대성에 놀라, 그를 곧 서울로 압송하였다.

서울로 압송된 김 신부는 온갖 신문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부임을 밝히며 천주교 탄압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세계의 정세를 알려 정부당국의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교우들을 대라는 가혹한 추궁에도 굴하지 않고 이미 밝혀진 교인들만을 지적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와 관련된 10여명이 잡히게 되었는데, 그해 음력 6월에는 배주인인 임성용의 부친 임치백(林致白, 요셉) 등이 잡히고, 음력 7월 10일에는 일찍이 ≪기해일기≫를 지은 현석문(玄錫文, 가롤로) 등이 잡혔으며, 8월에는 한이형(韓履亨, 라우렌시오)이 체포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그 해 6월 하순 프랑스의 군함 세 척이 조선에 와서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순교한 앵베르(Imbert, 范世亭), 샤스탕(Chastan, 鄭牙各伯), 모방(Maubant, 羅伯多祿) 등 프랑스인 세 성직자를 죽인 책임을 묻게 되자, 민심이 매우 흉흉하여 정부에서는 김대건 신부 등의 처형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대건 신부에게는 그 해 9월 15일, 국가에 대한 반역과 사교(邪敎)의 괴수라는 죄목으로 군문효수(軍門梟首)의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잡혀있던 교우들 가운데 배교한 자는 석방되고 신앙을 지킨 교인은 모두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 결과 김대건 신부는 그해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순교하고, 김 신부의 뒤를 이어 끝까지 신앙을 지킨 현석문 등 남녀 교우는 그 해 9월 20일 모두 순교의 피를 흘렸다. 이 때 순교한 분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현석문(玄錫文, 가롤로), 임치백(林致白, 요셉), 우술임(禹述林, 수산나), 김임이(金任伊, 데레사), 정철염(鄭鐵艶, 가타리나), 남경문(南景文, 베드로), 한이형(韓履亨, 라우렌시오) 등 9명이었다.

페레올 주교는 이들 9명의 순교사실을 ≪기해일기≫에 첨가하여 ≪기해 · 병오 순교자전≫을 프랑스어로 편집하고, 그것을 최양업 신부가 라틴어로 옮겨 로마에 보냄으로써, 로마에서는 이 문헌을 토대로 1857년 기해 및 병오박해의 순교자 중 82명을 가경자(可敬者)로 선포하였고. 이들 중 79명이 1925년에 복자위에 올랐다가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참고문헌] Ch. Dallet,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Paris 1874 / 崔奭祐,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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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7월에 경성(京城) 교구 청년연합회에서 창간한 월간지. 대구교구 청년연합회에서 창간한 <천주교회보>의 영향을 받아. 당시 청년연합회장이던 박준호(朴準鎬)를 비롯하여 정지용(鄭芝溶), 김교주(金敎周), 이의필(李義弼), 김순석(金順石) 등 젊은 가톨릭 지성인들이 주축이 되어, 문화창달, 생활개선, 종교 도덕의 보급 등을 취지로 하여 창간하였다. 1933년 모든 잡지를 통폐합하여 새로운 청년지를 창간한다는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그해 5월 자진 폐간 때까지, 만6년 동안 71호가 발간되었다. 크기는 1호에서 6호까지가 30cm×43.8cm, 7호에서부터는 28cm×39.5cm판형의 타블로이드판 4면이었고, 내용은 교리를 주로 하여 소설, 호교, 역사, 문예 등과 칼럼, 가십, 뉴스 등을 통한 사회문제 및 일제에 대한 비판문까지도 취급하였다. 특히 뉴스란에는 서울과 지방교회의 소식, 현황 사진 등을 게재하여, 오늘날 일제하의 1920-1930년대 교회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참고문헌] 조선천주공교회 약사,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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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지례 [한] 變化之禮 [관련] 미사 성체성사 실체변화

미사성제 때 성찬의 전례 부분에서 집전사제가 성사적인 축성의 말씀으로 빵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시키는 예절. (⇒) 미사, 실체변화, 성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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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혹치언 [한] 辯惑巵言

개신교를 변박(辨駁)하는 한편 천주교가 진교(眞敎)임을 설명한 책. 1881년 중국인 신부 이체(李杕)가 한문으로 저술한 책인데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필사(筆寫)한 것을 볼 수 있지만 필사한 사람과 연도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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