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댜에프 [원] Berdyaev, Nikolai Aleksandravich

Berdyaev, Nikolai Aleksandravich(1874-1948). 러시아의 그리스도교적 종교철학자. 러시아의 키에프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클라마르에서 죽었다. 루이 6세 군대의 장교인 부친 및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살다가 1894년 키에프 대학에 입학, 체스토프(L. Chestov)와 알게 되어 마르크스주의 활동에 종사, 투옥되었다가 1898년 볼로그다(Vologda)에 유형되었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2년간 철학교수로 있다가 1922년 레닌주의자들에 의해 국외 추방되어, 베를린에서 종교철학협회를 발족 1924년부터 파리에서 활동하였다. 종교철학 평론지 (1925-1940년)를 편집하는 한편, 정통파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 가톨릭의 요인들의 상호 신앙고백 모임을 주최, 종교적 실존주의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칸트, 헤겔, 마르크스, 쇼펜하우어, 톨스토이, 이프센,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솔로비요프(U.S. Soloviyov)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의 방대한 저작에서 받는 인상은 그의 독자적인 인격주의적 실존주의의 입장에 선 그리스도교 철학자의 정신이다. 그는 강단의 철학자로서보다 오히려 예언자, 문명 비평가로서 건필(健筆)을 휘둘렀으며, 자신을 헤라클레이토스, 니체에 견주기까지 하였다.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고백, 조직, 신앙론에 대한 비평자로서 중요한 반면, 교회를 떠나 있는 지식계급에게 그리스도교의 근본이념을 소개한 공적도 크다. 영역(英譯)되어 있는 주요 철학저서는 ≪Dream and Reality : An Essay in Autobiography≫(뉴욕 1951), ≪The Divine and the Human≫(런던 1949), ≪The Beginning and the End≫(런던 1952), ≪The Destiny of Man≫(뉴욕 1960)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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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니니 [원] Bernini, Giovanni Lorenzo

Bernini, Giovanni Lorenzo(1598-1680). 바로크기의 가톨릭 최대의 예술적 천재. 나폴리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조각가, 건축가로 활약하였다. 고대 자연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초기의 바로크 예술을 세계사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로마를 교황의 세계적 권위에 걸맞는 도시로 건설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여러 예술을 융합시켜 회화적인 종합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보려고 하였다. 건축에서 원근법(遠近法)과 거대한 공간처리를 철저히 구사한 그는, 베드로 대성당의 ‘베르니니 주랑(柱廊)’(1656-1665)에서 웅장한 가운데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재료 · 색채 · 채광(採光)의 효과를 가지고 환상이 넘치는 장엄함을 나타냈고, 실내장식의 미를 극치에 달하게 하였다. 특히 1646-1652년에 만들어진 산타 마리아 델라 빅토리오 성당 안의 성 데레사는 완전한 대리석 조각법이 십분 발휘되어, 산뜻한 구성 속에 그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의 명성은 나라밖까지 퍼져 1665년에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초대로 파리에 가서 그의 흉상(胸像)을 제작하였다. 또 분수 조각에도 뛰어난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피아차 나보나의 분수와 트리토네의 분수가 유명하다. 그의 예술적 창조력 및 활동성과 함께 종교적인 황홀감을 주는 것이 베르니니 작품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생활에서도 불타는 정열과 밀도 있는 교회정신을 잘 결부시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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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뇌 [원] Berneux, Simeon Francois

Berneux, Simeon Francois(1814-1866). 성인. 축일은 9월 20일.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제4대 조선(朝鮮) 교구장. 한국명 장경일(張敬一). 프랑스 르망(Le Mans)교구 소속 샤토 뒤 르와르(Chateau-de-Loir)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르망 교구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서 수학했고 1837년 5월 20일 사제서품을 받은 후 르망 대신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던 중 1839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41년 베트남의 통킹에 도착하여 전교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2년간의 옥살이 끝에 구조되었고,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滿洲) 교구에서 12년 동안 전교하였다. 1854넌 만주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이해 12월 27일 주교로 성성되었고, 이듬해 다시 제4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 조선에 입국하였다. 그 후 순교하기까지 10년 동안을 조선 교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 배론[舟論] 신학교를 세우고, 서울에 2개의 인쇄소를 차리는 외에 교세를 확장하는 등 조선 교회의 발전에 큰 공헌을 남겼다. 그러나 1866 2월 23일 체포되어 3월 7일 새남터에서 브르트니에르(de Bretenieres, 白) 신부, 도리(Dorie, 金) 신부, 볼리외(Beaulieu, 徐沒禮) 신부 등과 함께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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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디노 [라] Bernardinus, Senensis

Bernardinus, Senensis(1380-1444). 성인. 축일은 5월 20일. 프란치스코회 회원. 이탈리아 시에나 부근의 마사 마리티마(Massa Marittima)에서 태어나 아퀼라(Aquila)에서 별세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부친쪽 친척에게서 자라나 시에나 대학에서 교회법을 공부하였다. 1404년 사제로 서품, 이듬해부터 평생 동안 설교자로 일관하였다. 1417년경부터는 명성있는 민중설교가로서 예수의 성명(聖名)에 대한 신앙심을 강조하며 이탈리아 각 지방에 포교, 때로는 3만 명의 청중을 상대로 옥외 설교를 했다고 한다. 1438년부터 1442년까지는 프란치스코회 총장대리로 있었다. 1444년 나폴리 왕국 포교를 위해 아퀼라라를 출발, 얼마 못 가서 열병에 걸려 눕게 되자, 아퀼라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으로 모셔져, 거기서 영면(永眠)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이적이 있었으며 1450년 교황 니콜라오 5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1471년 성 프란치스코 성당 근처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교회로 유해가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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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라] Bernardus, Claravallensis

Bernardus, Claravallensis(1090-1153). 클레르보(Clairvaux)의 성인. 축일은 8월 20일. 대수도원장. 신학자. 교회학자. 프랑스 디종(Dijon)의 귀족 출신. 1112년 부르군드의 30명의 젊은 귀족들과 함께 시토(Citeaux)회에 입회, 탁월성을 인정받고 3년 뒤 클레르보에 새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는데, 이곳이 시토회의 주요 수도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1128년 트로예(Troye) 시노드에 간사로 참가하였으며 1130년 교황 선거에서 뒤에 인노첸시오 2세가 된 인물을 지지하여 대립교황을 물리쳤으며 대신에 교황으로부터 시토회는 특전을 받았다. 상스(Sens) 공의회(1140년)에서 아벨라르(Abelard)를 단죄, 또한 랭스(Reims) 공의회(1148년)에서 신학적 문제로 포레(Gilbert dela Porree)를 공박하였다. 2차 십자군운동을 일으키는데 공헌하였으나 원정의 실패는 그에게 비탄을 안겨 주었다. 1174년 시성 1830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된 것은 지성뿐만 아니라 그의 성성(聖性)과 인격 때문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받은 논문 <은총과 자유의지에 대하여>(De gratia et libero arbitrio)는 자신의 시대에 보내는 중심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 “자유의지를 버리면 구원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은총을 버리면 구원의 방도가 없다. 그러므로 구원작업은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De Diligendo Deo≫는 중세의 가장 탁월한, 신비주의에 대한 저서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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